3년간 매주 편지로 직원과 소통 정일영 교통안전공단 이사장 | “안전의 첫걸음은 원칙입니다”
입력 : 2014.08.05 08:57:55
도로와 철도, 항공을 아우르는 국내 유일의 교통안전 전문기관인 교통안전공단이 지난 4월 김천 혁신도시로 본사를 이전하고 제2의 도약에 나서고 있다. ‘오천만 안심 프로젝트’를 추진해 세계 최고의 교통안전 전문기관이 되겠다는 각오다. 올초에는 새로운 비전 선포식을 갖고 교통사고 사망자수 50% 감축, 철도항공안전 세계 1위, 매출액 3000억원 달성, 국민평가 최고등급 달성, 지속가능경영 실태조사(KoBEX) AAA 달성 등의 계획을 발표했다.
사실 이러한 비전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건 그동안의 변화 때문이다. 교통안전공단의 최근 3년간 실적을 살펴보면 공공기관의 개혁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성과의 중심에는 2011년 8월에 취임한 정일영 이사장이 있다. 교통부에서 시작해 30년간 교통 관련 정부부서에서 일하며 청렴과 소통을 강조한 그는 3년 임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지금도 현장을 찾아 동분서주했다. 인터뷰는 서울 양재동의 교통안전공단 스마트워크센터에서 진행됐다. “어제는 문경, 그제는 대구에 다녀왔다”며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는 “10년이면 도로교통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인재(人災)를 최소화할 수 있는 건 테크놀로지다김천 혁신도시로 사옥을 옮긴 지 세 달 남짓 지났습니다. 근무 환경이 달라졌는데 어떠신지요.
직원들의 생활 패턴이 달라졌어요. 처음에는 어색한 점이 많았는데, 이제 여가도 즐기는 것 같더군요. 기반시설은 차차 나아지겠지요. 김천은 전국 혁신도시 중에 유일하게 KTX역이 있습니다. 교통여건이 좋다 해도 장거리 출장이 많아지다보니 화상회의를 늘렸습니다.
올초에 ‘교통안전 선진화’를 새로운 경영 목표로 설정했습니다. 상반기 성과는 어떻습니까.
교통사고 사망자수 50% 감축은 공단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입니다. 특히 세월호 사고 이후 교통안전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 버스나 택시 같은 대중교통 안전관리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전세버스나 차내 음주가무, 차량 불법 구조 변경 단속도 지원하고 또 7월 1일부터 전국 택시 콜센터를 단일번호로 통합 운영하고 있고, 올해 택시 운행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내년에 전국으로 확대하려고 합니다. 아직은 공단의 중간 집계인데, 올 상반기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수가 전년 대비 약 10% 감소했어요. 사업용 자동차 사망자수도 약 6% 감소했습니다.
그러한 성과에도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OECD 32개 회원국 중 꼴찌에서 두 번째로 집계됐는데요. 원인은 무엇입니까.
1990년대 초에 도로 사고 사망자가 연간 1만3000~1만3500명이었어요. 당시 자동차가 약 600만 대였습니다. 현재 자동차는 2000만 대, 사망자는 5000여 명에 이릅니다. 차량은 늘었고 사망자는 줄었지만 아직도 OECD 회원국 중 최하위예요. 지난해 사망자가 10%, 올해도 7%가 줄면서 유사 이래 가장 많이 줄었는데도 OECD의 순위가 오르지 않더군요. 이유를 살펴보니 우리보다 앞선 교통문화 선진국이 사고율도 적지만 사고 감소율도 우리보다 높았어요. 이건 정말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만큼 안전에 대한 투자도 많지만 사회 분위기도 큰 몫을 차지한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개선책이 있을 텐데요.
대통령께서도 법치와 원칙을 강조하고 있는데,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중요합니다. 물론 교육과 홍보, 캠페인도 중요하죠. 하지만 가장 효율적인 건 강력한 단속입니다. 유럽을 예로 들면 대중교통 무임승차에 대한 벌금이 어마어마하고, 주차 구역이 아닌 곳에 정차하면 반드시 교통위반 딱지가 날아옵니다. 정해진 규정대로 하지 않으면 반드시 손해를 보게 되니 질서를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국가의 사정은 어떻습니까.
교통사고 줄이기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대표적인 나라가 영국과 스웨덴입니다. 34년 전인 1980년에도 자동차 1만대당 교통사고 사망자수가 영국이 3.3명, 스웨덴이 2.5명으로 상당히 낮았어요. 이후에 꾸준히 정책을 유지하면서 현재 두 나라 모두 1명 미만입니다. 영국의 교통안전 대책은 속도 억제책인데, 보행자, 자전거 이용자처럼 교통 약자가 우선입니다. 스웨덴은 ‘Vision Zero’란 개념을 도입해서 주택가에 자동차 이동을 줄이고 대중교통, 보행자, 자전거에 우선권을 부여하고 있어요.
질서의식에만 의존할 순 없을 텐데요.
물론이죠. 사고의 원인 중 가장 큰 부분이 인재인데, 전 그래서 테크놀로지가 중요다고 생각합니다. 인재를 최소화할 수 있거든요. 우리 공단도 첨단 IT를 활용한 스마트 트랜스포테이션 네트워크, 그 속에 트랜스포테이션 세이프티 스마트 네트워크 모니터링 시스템을 강조하고 있어요. 앞으로의 교통 시스템은 스마트 하이웨이, 스마트카 분야로 진화할 텐데, 공단에서 특히 차선 이탈 경보 장치, 졸음운전 방지 장치, 충격 완화 장치 같은 스마트카 분야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IT와 정보를 활용한 장치가 자동차와 도로에 장착되기 시작하면 무인자동차 시대가 도래하게 됩니다. 현 시점에선 많이 부족하지만 5년에서 10년 뒤에는 실현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어떤 분들은 먼 미래라고 말씀하시는데, 정부나 공공기관이 먼저 준비해야죠. 국민이 원하는 기능을 못한다면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국민이 인정할 때 공공기관이 존립할 수 있다지난해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성적이 눈에 띄게 좋았습니다. 특히 개량 평가에선 리더십, 경영효율, 매출액, 당기순이익, 청렴도, 고객만족도 측면에서 만점에 가까웠다는 평인데요.
교통안전공단은 도로와 철도, 항공 등 분야에서 여러 가지 교통안전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통계적으로 철도와 항공 분야의 안전은 세계 최고 수준에 올랐어요. 국토교통부 관련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해양안전은 관여하고 있지 않지만 아무리 평가가 좋아도 세월호 참사 이후 무거운 마음은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여느 때보다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부임 첫해는 교통안전공단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많았습니다.
힘들었죠. 부임하기 몇 달 전에 경찰청 압수수색도 있었고 노조위원장과 경영본부장이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인사 비리 문제가 가장 컸는데 뿌리를 뽑아야 개혁할 수 있겠더군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절대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지난해 당기순이익 100억원을 기록하며 경영 쇄신에 성공한 교통안전공단은 정일영 이사장이 부임하던 2011년 당시 개혁 대상 공공기관 중 하나였다. 직원 승진 과정에서 인사 청탁에 연루 돼 전·현직 고위 간부와 노조위원장이 경찰의 수사를 받았고, 비리 정황이 드러나 구속되기도 했다. 정 이사장은 부임 후 비리 직원들을 직위 해제하고 인사와 감사 라인 핵심 간부를 모두 교체했다. 당시 26명 파면자를 포함해 중징계를 받은 직원이 38명이나 됐다. 썩은 살을 도려낸 상처에는 생각보다 빠르게 새 살이 돋았다. 개혁의 결과 교통안전공단은 2012년 국민권익위원회 반부패 경쟁력 평가 최우수기관에 선정됐고, 그해 공공기관 경영 평가에서 B등급으로 한 단계 상승했다. 당시 정 이사장은 직원들과의 소통을 위해 매주 월요일마다 이메일로 ‘희망의 편지’를 발송했다. 지금껏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은 희망의 편지는 직원들의 회신으로 이어지며 교통안전공단의 또 다른 상징이 됐다.
희망의 편지가 회자되곤 합니다.
사실 김황식 전 총리가 처음 시작한 일이에요. 취임하고 그걸 시작하겠다고 했더니 주변에서 말리더군요.(웃음) 공단의 1400여 명 직원 중에 본부의 400여 명을 제외하면 다른 지방 직원들은 제 얼굴을 1년에 한번 볼까 말까 합니다. 이사장이 어떤 생각을 하고 뭘 먹고 주말을 어떻게 보냈는지, 직접 편지를 썼어요. 제 생각, 철학, 공단 운영, 인사는 예고된 대로 하고 청탁하면 어떻게 되는지, 계약은 반드시 투명하게 해야 한다는 내용까지…. 오늘 아침에 다음 주 편지 초고를 잡았는데 139호더군요. 그랬더니 직원들이 답장해 오면서 소통이 됩니다.
기억에 남는 답장이 있을 텐데요.
며칠 전에 익명으로 답장이 왔습니다. 연차휴가를 쓰라는데 자동차검사소 현장에 10명 직원 중 연차 쓴다고 한두 명 빠지면 나머지 인원이 업무를 나눠야 한다고. 다른 직원에게 미안해서 연차를 쓸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외부 이메일 주소였는데, 검토하겠다고 답장 보내고 방송 인터뷰가 있어서 이런 사연도 있다고 소개했더니 다시 답장이 왔어요. 이사장이 직접 메일을 읽고 방송에서도 말할 줄 몰랐다면서 어디 근무하는 누구라고 자진 신고하더군요.(웃음) 사실 저도 편지를 보내면서 힘들 때가 있어요. 하지만 문서로 통보할 때와 직접 편지를 보낼 때는 다르더군요. 편지는 개인적인 인격을 건 약속입니다. 제 스스로에게도 구속이죠. 저부터 투명해져야겠더군요.
임기가 한 달 남짓 남았습니다. 이후의 계획이라면.
아직은 없습니다. 꼼꼼하게 재면서 살지 않아서.(웃음) 아, 직원들과 책을 하나 쓰고 있어요. ‘교통정책론’이라고. 산업이나 금융정책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많은데, 교통은 기술적인 분야 외에 정책적인 면이 부족하더군요. 교통과 관련한 제 지식과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남겨주고 싶습니다.
교통 전문가의 시각으로 한국의 교통을 평가한다면 어느 정도 수준입니까.
철도, 항공, 대중교통 체계는 선진국인데, 안전 분야는 후진국입니다. BIS시스템은 한국이 가장 잘 돼 있어요. 문제는 교통문화에요. 효율성과 성공에만 집착하면 안전에 소홀해집니다. 목표 달성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합리성, 남을 배려하는 문화로 이어져야 안전문화의 선진국이 될 수 있습니다.
오천만 안심 프로젝트
교통안전공단에서 추진 중인 사업으로 도로·철도·항공 등 교통수단에 혁신적인 안전관리 기법을 도입해 전 국민이 안심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도로 분야’에서는 UN의 도로교통안전 10개년 계획과 연계해 운수회사 안전관리 수준을 국제기준(ISO39001 등)에 맞게 상향하고 택시 안심 이용을 위한 통합 콜센터 도입, 전세버스 등 취약 업종에 대한 안전정보 제공 서비스의 상시 제공을 추진하고 있다.
‘철도 분야’는 지난해까지 시행한 종합안전심사 제도를 개편해 철도 운영·시설관리 자격을 사전에 승인하는 철도안전관리체계 승인 제도와 신규 철도 노선의 개통 전 종합시험운행 결과 검토 제도를 도입, 철도인접공사 사고 감소를 위한 안전관리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항공 분야’는 항공보안 자율신고제도 운영과 중소 항공업체에 대한 안전관리 지원 강화, 이착륙장 실태 점검, 기술자료 개발 및 보급, 종사자 교육 등의 안전관리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