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주현 부동산개발협회·MDM 회장 | 디벨로퍼의 창의 모이면 서울도 뉴욕 뺨치는 도시 될 수 있습니다
입력 : 2014.08.05 08:57:42
뉴욕 스카이라인의 변신을 이끈 도날드 트럼프, 늪지대에 샌프란시스코 규모의 놀이시설 MGM스튜디오를 건설한 월트디즈니, 중국의 명동 격인 베이징 왕푸징(王府井)에 랜드마크 둥팡광창(東方廣場)을 만든 리카싱(李嘉誠).
‘황량한 대지에 꿈과 도시를 디자인하는 예술가’ 혁신적인 부동산 디벨로퍼(Developer)는 도시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킨다. 뛰어난 주거시설은 주민의 행복지수와 자긍심을 높인다. 미관이 수려한 건축물은 인근 주민들은 물론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해 도시 전체가 관광지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세계적인 디벨로퍼가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존경받는 이유다.
그러나 국내에서 디벨로퍼들의 입지는 조금 다르다. 오랜 기간 디벨로퍼는 대중에 애증의 대상이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 부동산 개발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던 시절, 주역은 건설업체들이 아닌 디벨로퍼들이었다. 현재 도심에 자리한 상가와 수천 가구의 아파트 단지, 대형 복합단지들은 대다수 디벨로퍼의 손길이 닿았다.
그러나 ‘굿모닝시티 분양사건’ 등 부도덕한 몇 개의 업체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며 직업군 자체가 ‘사기꾼 집단’으로 내몰리던 시기도 있었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디벨로퍼 업계도 서서히 옥석이 가려졌다. 튼튼한 기반 없이 모래성을 쌓았던 디벨로퍼는 급격히 시장에서 사라졌다. 1000여 개에 달했던 디벨로퍼들의 수는 금융위기가 지나면서 두 자릿수로 줄어들었다.
반면 뛰어난 실력과 혜안으로 승승장구하며 대가의 반열에 우뚝 선 인물도 속속 등장했다. 지난 3월 제3대 부동산개발협회장에 부임한 문주현 MDM 회장이 대표적이다. 유난히 해가 뜨겁던 지난 7월 7일 MDM본사 인 서울 역삼동 카이트타워에서 그를 만났다.
내가 살 집 만들겠다고 생각하면 고객과 통한다
“반갑습니다. 문주현입니다.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눈매, 구수한 전라도 억양이 섞인 말투로 환하게 웃으며 건네는 문 회장의 첫인사에 살가운 마음이 물씬 전해진다. 점심식사를 하며 인터뷰를 진행하자고 제안했던 그는 지하의 구내식당으로 안내했다.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듯 입구부터 몰린 바글바글한 인파를 자세히 보니 내부 직원들 외에도 인근 회사원들이 상당수 섞여 있었다. 준비된 음식을 맛보고 난 후에 인산인해를 이룬 이유를 알게 됐다. 제육볶음에 다양한 채소와 쌈장, 각종 전, 순두부찌개 등 종류도 다양하지만 구내식당이라 믿기 힘들 정도로 음식 맛이 훌륭했다.
“제가 가난한 샐러리맨 출신 아니겠습니까?(웃음) 다 잘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제대로 해줘야겠다 싶었어요. 외주를 주던 것을 실력 있는 요리사와 영양사를 고용해 직접 운용하고 있습니다. 임대료 부담이 없어져 이전보다 투입되는 단가가 높아졌지만 이윤은 남기지 말고 다 투입하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자연스레 품질이 좋아지더군요. 또 저도 자주 내려와서 먹으니 자연스레 관리도 잘 되는 편이죠.”
음식 맛도 일품이었지만 직원들의 건강을 생각한 세심한 배려도 돋보였다. 배식대로 향하는 길목에는 먼저 손을 씻을 수 있도록 계수대가 설치돼 있었다. 그 덕분에 깔끔한 손으로 마음 놓고 상추쌈을 즐길 수 있었다. 직원들의 입장이 되어보면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있다고 강조한 그는 부동산 개발사업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실제 거주할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한 후 실행에 옮기면 자연히 따라오는 것이 성공이라고 했다.
“디벨로퍼는 기획·설계를 100% 마케팅 마인드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창문 하나도 소비자가 어떤 것을 선호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디벨로퍼로서 그의 첫 작품은 부산 해운대의 주상복합 해운대 대우 월드마크 센텀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해운대 땅을 매입했습니다. 인근 아파트가 평당 900만원 하던 시절이었는데 평당 2000만원 책정하고 최고급 주상복합을 짓자고 했더니 직원들이 뜯어말리기 시작하더라고요. 부대표까지 와서 아무리 품질이 좋아도 1350만원이 넘어가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해보지도 않고 가격을 깎아 내리는 것은 ‘내 작품에 대한 모독’이라고 꾸짖어 내보내고 계속 진행했죠.”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분양은 성공적이었다. 로비를 호텔식으로 꾸미고 헬스클럽, 클럽하우스, 게스트룸 등 부대시설을 모두 최고급으로 꾸민 월드마크 센텀은 아직까지 인근 지역에서 최고 시세를 보이고 있다.
산뜻한 스타트를 끊은 MDM은 이후 손대는 프로젝트마다 완판행진을 거듭했다. 판교 푸르지오 월드마크’(경기 성남시 삼평동), ‘송파 푸르지오시티’(서울 문정동), ‘광교 푸르지오 월드마크’(경기 수원시 하동), ‘판교엠타워’(경기 성남시 평동), ‘신야탑 푸르지오시티’(경기 성남시 야탑동), ‘서초 글로벌S 리슈빌’(서울 우면동)은 모두 성공적인 성과를 기록하며 지역의 랜드마크로 떠올랐다. 특히 최근 분양한 광교 더샵레이크파크는 하루 세끼 최고급 식사를 제공하는 클럽하우스를 만들어 내걸었던 ‘설거지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슬로건이 히트를 치며 매진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더샵레이크파크의 경우 주변 시세보다 30%가 비싸게 분양가를 높였는데 시공사, 분양사에서 난리를 치더라고요. 그래서 일산호수공원에 2배 크기의 호수를 남향으로 바라보고 훌륭한 아침점심저녁을 해주는 이런 곳을 어떻게 꽉 막힌 오피스텔과 비교하겠냐고 하고 다 내쫓았어요. 결과적으로 혼자 사는 분, 건강한 실버 부부, 맞벌이 부부들로 입주 예정자들이 거의 다 찼습니다.
기존에 있는 것과 차별화된 것을 만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건설사의 목적은 원가절감을 통한 수익 확대에 있지만 디벨로퍼에겐 가치 창출이 중요한 덕목 아닙니까.”
서울은 아직 C급 도시, 민관 협동 개발 중요
“검정고시 치른 촌놈이 무슨 인맥이 있었겠습니까? 열정적으로 정직하게 일하다보니 신뢰도 쌓이고 도와주시는 분들도 하나둘 늘어가면서 기회도 찾아온 것이죠.”
문 회장과의 인터뷰는 시종일관 유쾌했다. 정감 있는 목소리로 친근하게 풀어가는 화법은 상대방을 무장해제하는 힘이 있었다. 디벨로퍼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은 넘쳤지만 문주현 개인은 철저하게 낮췄다. 업계 정점에 서 있는 남성들이 가질만한 오만함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없이 인간적인 문 회장이지만 상식을 벗어난 부당함에는 철저하게 맞선다. 한번은 한 경제지에서 협찬을 요구하며 부당한 엄포를 놓았을 때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사장을 직접 만나 따지겠다”며 호통을 치고 물리친 사건도 있었다. 원칙을 중시하는 문 회장의 소신은 부동산개발협회에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대중에게 디벨로퍼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자구책을 마련해 나가고 있다.
“초창기 우후죽순 생겨난 디벨로퍼들이 피해자를 많이 양산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몇몇 투자가 아닌 투기를 한 사람들이 나쁜 인식을 퍼트린 것이죠. 디벨로퍼는 한 번의 프로젝트로 얼마를 버느냐가 다가 아니라, 그 도시의 디자인, 편리성, 교통 등 여러 가지를 변화시키기 때문에 고도의 도덕성이 필요합니다. 앞으로는 미꾸라지가 물을 흐리지 않도록 협회 내에서도 직업윤리 교육을 실시하며 정화위원회도 만들 생각입니다.”
그는 일부 디벨로퍼에 문제가 전체의 도덕성 문제로 확대되는 것을 경계했다. 디벨로퍼의 창조적인 역량이 점차 국가와 도시의 중요한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 문 회장의 주장이다.
“디벨로퍼는 사람의 머리에 해당합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해 나가는 주체죠. 건축사와 금융사와의 관계에서도 주도적인 역할, 오케스트라에서 지위자가 되어 도시 가치를 높여 나갈 수 있도록 제도적 정비가 필요합니다.”
사람이 있고 도시가 있는 한 디벨로퍼의 존재는 필수불가결하다고 밝힌 문 회장은 노후화된 도심을 시대 흐름에 맞게 발전시켜야 한다고 밝히며 서울이 국제적인 도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관광 개념은 이전과 다르게 두 가지로 접근해야 합니다. 만리장성을 보러 가는 자연 관광이 첫번째, 아름다운 건축물과 그 속의 문화를 향유하기 위한 도시 관광이 두 번째죠. 멀게는 뉴욕이나 가깝게는 홍콩, 싱가포르 등과 비교해보면 한국은 아직 C급 도시에 불과합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싱가포르의 경우 배를 하늘에 띄워 놓고 건축물에 곡선을 주니 그것을 관람하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잖아요.”
싱가포르에 자리잡은 독특한 건축물인 마리나베이샌즈 호텔을 예로 들며 디벨로퍼의 역할을 강조한 그는 정부주도 부동산 개발사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우리나라는 민간주도 사업이 전부인데 싱가포르를 보면 관주도 개발사업이 활성화되어 있어요. 낙후된 도시는 블록단위로 개발이 필요합니다. 몇 천 평이 아니라 몇 만 평 단위로 체계적으로 개발해야 수준 높은 도시가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LH공사가 택지 공급 외에 민간합작 형태로라도 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하나의 복안이 될 수 있습니다.”
문 회장은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샌즈 호텔과 같은 아름다운 건축물을 통해 서울도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죽기 전까지 장학재단 늘려나갈 것
손대는 프로젝트마다 성공 신화를 써온 문 회장이지만 삶이 그리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넘치는 자신감과 밝은 인상에서는 연상하기 힘든 시절을 묵묵히 견뎌왔다. 그는 전남 장흥의 시골마을 9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어려운 집안 형편상 고등학교에 갈 생각은 처음부터 포기하고 영농후계자를 꿈꾸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군대를 다녀온 후 뒤늦게 학업에 뜻을 두고 검정고시를 통해 27살 늦깎이로 대학에 입학했지만 학비가 문제였다.
“어린 시절 가난함에 치여 살았고 이 정도로 성공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대학도 어느 독지가가 장학금을 지원해 줬기에 마칠 수 있었죠.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 나게 고마운 분이죠.”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서른 살이 넘어서야 사회에 진출한 그는 나산실업에 입사해 안병균 전 회장과 연을 맺고 부동산개발사업에 발을 들이게 됐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문 회장은 탄탄대로를 걸었다. 차례로 히트작을 탄생시키며 7년 만에 최연소 임원이 돼 언론에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다 IMF 외환위기라는 암초를 만난 회사는 부도가 나고 문 회장은 하루아침에 실업자 신세가 됐다. 능력을 검증받은 문 회장은 여러 대기업의 러브콜을 받았다. 하지만 실직이 창업을 하라는 하늘의 뜻으로 여긴 그는 서초동의 작은 오피스텔 방 한 칸에서 자본금 5000만원으로 분양대행 업체를 세웠다.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한 MDM의 전신이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회사가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문 회장이 시작한 일은 부지 매입이나 사세 확장이 아니었다.
“2년 정도 고생해서 10억원 좀 넘게 수익이 났는데 5억원 떼서 장학재단 만들었습니다. 최소단위거든요. 그랬으니 직원들은 ‘저 양반 이제 회사 그만할라나 보다!’ 생각했을 거예요. 자본금 5000만원에 겨우 이익 나기 시작했는데 반을 떼서 장학재단을 만드는 것을 보니 제정신 아니구나 생각했겠죠.”
장학재단설립은 대학 시절 독지가의 도움으로 졸업을 하는 순간 자신과 맺은 약속이었다고 회고했다. 직원들의 ‘원망’ 섞인 눈빛을 뒤로하고 그는 장학재단 등록증서를 받는 순간 환갑 전에 100억원으로 재단적립금을 늘리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식사자리를 함께한 구명환 MDM 대표이사는 문 회장의 통 큰 장학재단 운영에 대해 한마디 거들었다.
“사실 저희는 고객들을 직접 만나는 B2C가 아닌 건축사나 분양사와 접점이 많은 B2B 기업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대중의 인지도나 좋은 이미지를 위해 크게 노력할 필요가 없는데 왜 장학 사업을 하는지 의문이 들 수 있죠.”
“그거야 내 철학이지!”라고 웃고 있지만 단호한 톤으로 말을 자른 문 회장은 지난 3월, 3년 앞당겨 장학재단적립금 100억원 목표를 달성한 바 있다. 지금까지 68개 대학 1265명의 학생에게 수혜가 돌아갔다.
목표는 끝이 없었다. 그는 65세 200억원, 70세 최소 300억원 이상을 목표로 재단을 확장해 나가며 죽기 전까지 장학재단을 늘려나갈 것이라 강조했다.
“제가 그랬듯이,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사회에 긍정적인 선순환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디벨로퍼로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학재단 사업을 통해 사회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마음도 큽니다. 죽기 전날까지 일을 하는 것이 제 삶의 계획이자 목표고 그를 통해 장학재단 적립금을 늘려 한 사람이라도 더 수혜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