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봄이면 라인강이 유유한 스위스의 작은 도시 바젤에 파란 깃발이 내걸린다. 세계 최대 규모의 시계·보석 박람회 ‘바젤월드’를 기념하는 환영 깃발이다. 전 세계 내로라하는 시계와 보석 브랜드 1400여 개가 신제품을 선보인 ‘바젤월드 2014’(지난 3월 27일~4월 3일)의 생동감은 올해도 여전했다. 특히 꿈의 브랜드관이라 불리는 ‘홀 오브 드림 1.0’의 열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롤렉스, 쇼파드, 파텍필립과 LVMH그룹, 스와치그룹 브랜드의 전시관이 자리한 이곳은 명실상부한 하이엔드 시계의 격전지다. 그 중심에서 ‘혁신의 리더’라 불리는 스위스의 독립 브랜드 율리스 나르덴(Ulysse Nardin)은 세컨드 타임 존과 날짜가 앞뒤로 움직이는 ‘듀얼타임 매뉴팩처’를 선보이며 또 한 번 진일보한 기술력을 자랑했다. 전시관 현장에서 만난 파트릭 P. 호프만(Patrik P. Hoffmann) CEO는 “지난해의 트렌드가 혁신이었다면 올해는 잠시 숨 고르며 그 경향을 잇는 시기”라며 “지난해 6개의 무브먼트를 발표한 율리스 나르덴은 올해 좀 더 실생활에 유용한 기능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혁신이 없다면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
168년의 역사를 간직한 율리스 나르덴은 항해의 역사와 궤를 같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확한 시간과 경도 확인이 절실했던 19세기에 마린 크로노미터를 대량생산해 세계 각국에 공급한 최초의 매뉴팩처였다.
“해군 문화 때문인지 일본에선 인지도가 높은데, 아직 한국에선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웃음) 하지만 말 그대로 ‘Not Yet’이에요. 그만큼 기회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율리스 나르덴의 시작은 항해 시계였지만 지금은 마린 크로노미터 외에 다양한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어요. 여러 제품을 통해 브랜드를 말하고 싶습니다.”
호프만 CEO가 꼽는 율리스 나르덴의 마케팅 포인트는 제품. 여타 브랜드가 진행하는 이벤트와 광고 등 활발한 마케팅 대신 제품으로 모든 걸 말하겠다는 것이다.
“제품이 곧 브랜드죠. 제품에 집중하면 분명히 성공한다고 믿습니다. 올해 바젤월드에서 신제품을 선보인 여러 브랜드들도 다시 제품에 집중하고 있더군요. 실제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시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리치몬트, 스와치, LVMH 등 전 세계 하이엔드 명품시장을 잠식한 공룡그룹과 비교해 독립 브랜드가 갖는 장단점은 무엇일까. 호프만 CEO는 혁신과 마케팅을 논하며 전혀 다른 행보라고 강조했다.
“그룹의 경우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이 강해 많은 대중에게 어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룹의 제어가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독립 브랜드인 율리스 나르덴은 그룹에서 다루지 못하는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규소의 부산물인 실리시움을 세계 최초로 시계에 적용한 것도 마케팅보다 혁신에 집중했기 때문이죠. 반대로 독립 브랜드의 제한적인 요인이라면 비용과 마케팅입니다. 그런 이유로 제한적인 부분보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혁신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그는 전년 대비 성장률이 주춤했던 스위스 시계산업에 대해선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며 낙관론을 펼쳤다. 반면 스마트워치에 대해선 “각자의 영역이 있다”며 선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스위스 시계 산업은 성장폭이 더뎠을 뿐 지지부진하지 않았어요. 세계적으로 경제성장이 둔화됐고 특히 중국의 성장 둔화가 한몫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중국시장은 건강한 경제 성장을 위한 사이클을 거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라 말하긴 어렵지만 사람들이 여전히 손목시계에 열광하는 이유는 전자기기와 상반된 도구이기 때문이죠. 기계적인 매력뿐만 아니라 아트와 패션이 어우러져 하나의 시계를 완성합니다. 스마트워치와는 영역이 다르죠. 굳이 손목시계가 필요없는 시대 아닙니까. 하지만 시계는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파트릭 P. 호프만의 좋은 시계 고르는 법
1. 비싸기 때문에 하이엔드 시계란 생각은 버리자.
2. 시계 장인의 노력 등 브랜드 이면의 가치를 습득해야 한다.
3. 브랜드가 지닌 아이덴티티를 먼저 생각하자.
무브먼트의 끝부분을 화살표처럼 만들어 시침과 분침 역할을 대신 했다. 다이아몬드로 코팅한 실리시움을 부품으로 사용해 마모나 윤활유 교체 등 기계식 시계의 단점에서 벗어났다. 12년 전 ‘프릭(FREAK)’이라 불리던 이 손목시계는 2010년 시계 심장부에 실리시움과 LIGA 니켈을 사용한 ‘프릭 디아볼로(FREAK DIAVOLO)’로 진화했다. 가격은 2억원.
[스위스 바젤=안재형 기자 사진 DK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