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초 에셋플러스자산운용이 판교 신사옥 입주식을 가졌다. 대부분의 운용사들이 서울에, 그것도 여의도나 강남에 터를 잡으려 하는데 에셋플러스자산운용은 유일하게 지방에 사옥을 마련했다. 무슨 까닭일까. 시장 움직임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미국 서부의 자그마한 도시 오마하에 자리 잡은 워런 버핏이나, 아예 미국을 떠나 카리브해 바하마에 근거지를 튼 월가의 신화 고 존 템플턴 경과 같은 생각을 한 것은 아닐까.
새 사옥에 소박하게 꾸민 사무실에서 만난 강방천 회장은 “남과 다른 생각을 하려고 이곳에 왔다”며 밝게 웃었다.
그는 투자에 필요한 좋은 가치를 발견하는 비법을 세 가지로 꼽는다. 첫째는 재무구조와 사업가치를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재무구조로 얻은 사실을 남과 다르게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고, 세 번째는 정확하게 판단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능력이다. “과거엔 첫 번째와 관련한 정보를 얻는 데 여의도가 좋았으나 지금은 차이가 없어졌다.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가 통하는 세상이니 그 정보 얻는 것은 서울이나 남극이나 같다. 두 번째는 상상을 통해 주어진 정보를 해석하는 영역인데 이 면에선 지방이 훨씬 낫다. 차분히 생각하면서 정적가치를 넘어선 동적가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강 회장은 이 때문에 아주 오래 전부터 지방 이전을 생각했다고 밝혔다.
“지난 1999년에 제주도로 갈 생각으로 서귀포에 땅을 샀다. 그러나 그 때만 해도 정보 접근성이 떨어진 데다 직원들의 교육과 문화 인프라 문제도 있어 포기했다. 그러다가 3년 전인 2011년에 이 땅을 사 2년 동안 건물을 짓고 이번에 입주하게 됐다.”
강 회장은 모두에게 주어진 정보를 남과 다르게 보려면 사실을 뛰어넘는 해석이 필요한데 그런 점에선 판교가 제격이라고 했다.
“판교엔 IT나 BT CT 관련 기업이 1000여 개나 있다. 그들과 함께 생활하고 그들의 삶 속에서 가치 있는 기업을 발굴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요즘 매주 2~3개 기업을 방문하고 그 성과를 펀드에 반영하고 있다.”
“판교는 금쟁반에 옥구슬이 굴러다니는 명당”이라며 풍수까지 거론한 강 회장은 사실 이곳으로 오면서 그만둔 직원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라고 털어놨다. 그렇지만 함께 내려온 직원들은 모두 만족한다고 했다.
“공기도 좋고 강남 접근성도 높을 뿐 아니라 역동성이 넘친다”는 것이다.
에셋플러스 자산운용 판교 신사옥
고집으로 지킨 최고 성적
에셋플러스는 자산 규모가 중소형이지만 운용실력 만큼은 최근 5년간 수익률 상위 1~3%를 놓치지 않을 만큼 뛰어나다. 이 회사의 주력펀드인 코리아리치투게더나 차이나리치투게더, 글로벌리치투게더는 최근 5년 수익률이 각각 133.1%와 78.0%, 150.7%나 된다. 그런데도 이 회사는 유럽 재정위기가 장기화되는 와중에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바람에 2012년 큰 폭의 적자를 냈고 지난해 겨우 흑자를 맞췄을 정도다. 끝까지 남은 투자자들에게 엄청난 이익을 내주고도 회사가 적자를 본 것은 고객을 희생시키며 이익을 낼 수는 없다는 강 회장의 고집 때문이었다.
“랩이 유행할 때 우리의 수익률을 보고 랩 운용을 하자는 제안이 무수히 들어왔지만 모두 거절했다. 그 상품이 운용사에 정당하려면 포트폴리오와 완전히 일치돼야 하고 적시에 반영돼야 하는데 랩은 특성상 포트폴리오와 다를 수밖에 없고 적시성을 놓칠 수밖에 없다. 그 책임을 누가 지냐. 그래서 하지 않았다. 자산이 빠져나가면서 일부 직원들까지 떠났지만 고집스럽게 버텼다. 회사가 크는 것과 좋은 회사가 된다는 것은 다르다. 나는 후자를 택했다.”
이익을 내고 회사를 키울 수 있는 유혹이 많았지만 스스로의 약속을 지켰다는 얘기다. 그런 면에서 강 회장은 “에셋플러스는 어떤 일이 있든 살아남아야 한다. 세계 어디를 가도 이런 회사 찾기 어렵고 또 그런 철학을 지켜낼 지배구조가 있는 회사는 더욱 드물다”고 강조했다.
다행히 최고 수준의 수익률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을 믿고 자금을 맡기는 투자자들이 늘어나면서 올해부터는 안정적으로 흑자를 낼 구조를 갖추게 됐다고 했다. 지난해 이후에만 주식형 펀드로 1조7000억원이 넘는 자금이 들어와 기반이 단단해졌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강 회장은 회사의 미래뿐 아니라 투자자들의 미래까지 낙관했다.
최고 기업 고르는 세 기준
“우리 펀드는 지금까지 아주 좋았는데 앞으로도 계속 좋을 것이다. 좋은 기업을 정의하는 본질적인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좋은 기업을 고르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주식 매수행위의 첫 단계는 비즈니스 모델을 사는 것이다. 우리는 특히 구조적으로 강한 기업을 매수한다. 재무제표보다도 비즈니스 모델을 알아야 한다. 두 번째는 그 모델을 마켓에서 검증하는 것이다. 우리는 삶 속에서 검증된 기업을 찾는다. 모든 기업은 우리의 삶과 연결돼 있다. 세 번째는 우리의 삶에서 발견되고, 또 아무리 기업모델이 좋더라도 미래의 기업환경과 결부되는 기업이어야 한다. 닌텐도나 노키아 블랙베리를 봐라. 그 좋은 기업들이 왜 무너졌나. 나는 이 원칙들을 에셋플러스 정신이라고 부른다.”
이 회사가 운용하는 코리아리치투게더나 글로벌리치투게더, 차이나리치투게더 등 세 간판 펀드가 모두 최고 수준의 수익률을 내는 것도 이러한 명쾌한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강 회장은 자신이 존재하는 한 그 성과는 살아있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들 세 주식형 펀드와 1년 반 전 설정한 혼합형 펀드인 ‘해피드림투게더’ 등 네 펀드만 끌고 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좋은 주방장이 있는 식당은 메뉴가 적지 않나. 우리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10년 동안은 이들 4개만 운용할 방침이다. 고객을 위해선 이 넷이면 충분하다. 눈에 보이는 흑자를 내고자 했다면 우리도 많은 펀드를 만들어 팔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를 위해 고객을 희생시킬 수 없다는 원칙을 지켰다.”
그러면서 그 원칙이 아주 오래 지켜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운용사와 달리 그 좋은 주방장이 떠나지 않는다. 내가 주주라서 떠나지 못하니 우리 펀드는 계속 유지될 것으로 봐도 좋다. 게다가 이들 펀드를 책임지는 세 CIO가 모두 10년 이상 같이 해온 사상의 동반자들이다. 이들이 오래도록 함께 한 게 좋은 성과를 낸 비결이다.”
강 회장은 요즘 펀드에 자금이 들어오고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회사가 흑자를 내는 것보다 돈 없는 사람들 부자 만들어주려고 시작한 펀드가 이제야 제 자리를 찾은 것 같아서다.
다만 “금융으로 돈을 버는 것이기에 기왕이면 한국 산업과 한국 기업에 투자해 벌었으면 했는데 요즘 한국 기업들의 역동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유망한 세 가지 테마
그는 유망한 투자 대상을 고른 테마로 “중국 소비 성장의 수혜를 보는 기업, 소프트웨어를 비롯한 모바일 생태계 변화의 수혜를 보는 기업, 전기차를 비롯한 그린혁명에서 가치가 나오는 기업” 등으로 요약한다. 미국에는 그런 기업들이 많다고 했다. 3M이나 테슬라, 구글 아마존 등이 그런 유형의 기업들이라고 했다. 반면 한국은 중국 관련 비즈니스를 많이 하지만 중국 소비보다는 중국 투자에만 너무 집중하고 있다는 게 그가 안타까워하는 대목이다.
“앞으로 돈 가지고 돈을 버는 단계로 갈 수 밖에 없다. 이왕이면 한국 기업을 통해 벌고 싶은데 한국 기업들의 기업가 정신이 약화된 것 같다. 이병철, 정주영 씨가 뿌린 것 말고 혁신적 기업이 어디 있나. 그런 점에서 이민정책도 바뀔 필요가 있다. 미국을 보라. 애플이나 구글 아마존 모두 이민자가 세운 기업이다.”
한국에서 중국 소비 성장이나, 모바일 생태계 변화, 그린혁명 등으로 가치상승을 주도할 역동적 기업이 나오려면 규제혁파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논지다.
펀드투자도 배워야 한다
강 회장은 투자자들에게 펀드는 매우 중요한 투자수단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런 의미에서 신사옥 이름도 투자자들과 함께 펀드투자로 부자가 되는 꿈을 이뤄가겠다는 차원에서 ‘리치투게더센터’로 지었다고 한다.
“앞으로 펀드가 없으면 재산관리가 안된다. 그러니 과거의 상처 때문에 펀드를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에게 펀드투자 요령을 물었다.
“첫째, 인기펀드 말고 좋은 펀드를 사라. 두 번째, 좋은 펀드를 사려면 발품을 팔아라. 공부해서 좋은 펀드를 찾아야 한다. 퀄리티를 아는 사람만이 고수익을 누릴 수 있다. 세 번째는 인내하라.
5년 전 투자자의 반이 떠났다. 인내하고 기다렸으면 고수익을 누렸을 것인데 …. 그러니 좋은 펀드에 넣었다고 판단되면 기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