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를 하면 많은 여성들이 좋아하지 않으실 것 같아요. 하지만 가정을 이루고 나서 지금까지 어지간한 일이 없는 한 아침식사는 거르지 않고 직접 준비했습니다. 아이들 운동회나 소풍갈 때면 빠지지 않고 쫓아 다녔고 김밥도 새벽부터 말았어요. 어떻게 보면 극성스러운 엄마라고도 할 수 있었지요.(웃음)”
114년간 깨지지 않았던 강력한 방탄(?) 유리천장을 깨고 대한민국 1호 여성 은행장이 된 권선주 신임 기업은행장 얘기다. 은행장이 된 지금 그는 업무파악으로 정신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저녁 약속이 빠지지 않고 잡혀 있으며 퇴근할 때조차 빈손으로 가지 않는다. 차를 타는 순간까지 비서실장이 이 정도는 꼭 봐야 한다며 숙제할 자료를 넣어준다고 했다. 늦은 시간 지친 몸으로 들어가더라도 권 행장은 손수 장을 본 후 귀가한다. 그렇지만 지금도 매일 아침 5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사랑이 담뿍 담긴 아침상을 차린다.
“아이들이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해 부지런하게 다녔어요. 또 건강과 바로 직결된 아침식사는 꼭 내손으로 해서 먹이자는 생각도 있었어요. 저녁은 각자 밖에서 해결하는 경우도 많지만 아침이라도 가족들이 함께 모여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식사를 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어요.”
그것뿐이 아니다. 권 행장은 자신이 모든 일을 혼자 해치우는 단순한 슈퍼맘 스타일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아들과 딸에게 공평하게 집안일을 분담시킨다는 것. 특히 휴일엔 침대 밑 같은 보이지 않는 곳의 머리카락 하나까지 꼼꼼하게 치우도록 감독한다고 덧붙였다. 공동으로 쓰는 공간은 돌아가며 청소하고, 식사를 마친 사람은 설거지를 하도록 했다. 마지막 사람은 싱크대 개수대 청소를 하는 것이 집안의 매뉴얼처럼 굳어졌다. 평소 가족들과 많은 대화를 하며 온화하게 지내지만 예의나 규칙에 엇나간 행동에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화장실 사용하고 난 뒤 어지럽히는 것을 용서하지 않아요. 시간이 맞지 않아 각자 따로 식사를 할 경우 개별적으로 설거지를 하고 각자 방은 보이지 않는 공간까지 청소하도록 합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중요한 가정교육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꼼꼼히 모은 정보는 힘의 원천
전반적으로 성실하고 꼼꼼한 성품을 지녔지만 필요한 순간에 단호한 강단을 지닌 권 행장의 성품은 직장생활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카리스마를 거론하는데 그보다는 잘 알고 있다는 게 더 무서울 수도 있지요. 36년간 은행원으로 재직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을 했고 덕분에 그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습니다. 속속들이 모두 알 수는 없겠지만 같은 과정을 겪어왔기 때문에 (직원들의) 상황이나 마음을 잘 이해 할 수 있죠. 남자들 같으면 무심코 넘겼을 것까지 상당부분 입력된 상태입니다. 자기 자신을 과장해서 보고하더라도 믿지 않을 수도 있겠죠. 처음에는 잘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만 조금 지나면 알게 되지 않을까요.(웃음) 공과 사는 엄격히 구분할 것입니다.”
부드러움 속에 숨은 강인함이다. 그 많은 정보가 기업은행이란 거대 조직을 끌고 가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했다.
권 행장은 과거 상업은행 지점장을 지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1978년 17기 공채로 기업은행에 입사했다.
그러나 입사 후 남성들 틈에서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은행생활이 그리 만만치만은 않았다. 그 대열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그는 동료들보다 늘 10분이라도 먼저 사무실에 나갔다. 기상시간을 앞당기는 한편 짬나는 시간은 온전히 신상품개발이나 은행약관 등 업무에 필요한 공부에 할애했다. 금용연수원의 수십 개에 달하는 통신연수 교육과정을 모두 마칠 정도였다.
“항상 제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남들은 자존감이 어떻고 하는 얘기를 하지만 배우는 것은 자존감과는 별개의 것이죠. 그렇게 배워서 발전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전통적으로 여성이 강점을 보이는 PB분야는 물론이고 영업 현장이나 금융소비자 보호 업무, 리스크 관리 업무 등 새로운 쪽에 늘 도전해 온 것이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함께 입사한 4명의 동기 가운데 3명은 모두 결혼을 하면서 퇴사했지만 권 행장은 첫 아이를 출산하고 한 달 만에 복직했다. 둘째 아이를 가졌을 때는 출산 하루 전까지 출근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일에 매달렸다. 그렇게 해서 은행 업무 대부분을 꿰차게 됐다.
판단의 순간 현명할 결정
성실성과 투철한 자기관리로 승승장구해 온 권 행장에게도 직장을 나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1991년에 남편이 직장에서 해외로 발령을 받았을 때다.
“그때는 주위에서 자식교육에 좋은 기회이니 함께 가라고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시댁에서는 남편과 떨어져 생활하는 점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셨어요. 장고 끝에 가족과 상의해 아이들과 남아서 내 일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다행히 남편과 아이들이 잘 이해해줬고 가족들 모두 내적으로 성장하는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또 한 번은 외환위기 때다.
“그 때 구조조정을 하느라 조기퇴직 신청을 받았는데 그 조건이 상당히 좋았어요. 주위에서 권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돈이 문제가 아니었어요. 돈보다는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게 더 중요했죠. 그래서 후배에게도 이건 아니라며 그대로 다니자고 해 함께 남았죠.”
그렇게 해서 가뭄에 콩 나듯 드물었던 여성 지점장이 됐다. 그런데 한 번은 악명 높은 사채업자가 매일 수억 원을 예탁한 후 여러 가지 부정한 특혜를 요구했다. 그러나 쇠심줄 같은 권 행장의 태도에 사채업자는 아무 소득 없이 돈을 전부 인출해 돌아갔다. 그만큼 그는 원칙을 벗어난 일에는 강단 있는 카리스마를 보이기도 한다.
여성으로서 1만3000명의 거대 조직을 이끌어가기에는 카리스마가 부족하지 않겠느냐는 항간의 우려에 대해서도 권 행장은 여유가 넘쳤다.
“여성 대통령 정권이라는 시류의 수혜를 받았다는 이야기들이 많은데 수혜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처음이니 당연히 조직 장악력이나 대 정부 교섭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비판적 시각이 존재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최초의 여성 행장에 대한 대중의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어머니 같은 배려심과 소통 능력 등의 여성성이, 패러다임이 바뀐 시대에 오히려 새로운 리더십 역할을 하는 데 제격일 수 있다고 자신했다.
“가정에서 자녀들은 대체적으로 아버지를 무서워하고 어머니를 더 편하게 대합니다. 어머니에게는 쉽게 속 얘기도 터놓고 어리광도 부릴 수 있잖아요. 그러기에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자녀들에 대해 속속들이 많이 알죠. 그래서 실질적으로 가정을 컨트롤 하는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인 경우가 많습니다.”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조직의 발전방향을 수립해 나가겠다고 밝힌 권 행장은 권위적이고 일방적인 방식을 배제한 수평적 방식의 의견수렴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점장시절이나 부행장 때도 마찬가지로 비밀에 부칠 것을 전제로 승진이나 진로, 가족문제에 대한 고민도 서슴지 않고 나누곤 했습니다. CEO가 권위적이고 일방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고민을 듣고 공감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조직을 창의적으로 바꿀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가계부 얘기도 꺼냈다.
“가계부를 써보면 집안사정이 꼼꼼하게 보이지 않습니까? 은행에도 누수되는 부분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가계부 쓰듯이 그렇게 꼼꼼히 경영을 하면 효율적일 뿐 아니라 은행의 실적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Back to Basics
권 행장의 전임인 조준희 행장은 안팎에서 경영을 잘 한다는 소문이 났던 인물이다. 권 행장도 이 점을 인정한다. 그런 조 행장 대신 은행 살림을 맡았기에 권 행장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직시하고 있다.
다년간의 리스크 관리를 하면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은행의 큰 현안 중 하나인 수익성 개선과 내실강화를 통해 질적 성장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특히 선두은행 대비 자기자본비율(BIS)이 낮게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중시했다.
“BIS규정이 강화되고 있어 재무구조 개선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수익이 나야 더 많은 중소기업 지원도 가능한 만큼 수익성을 개선해야 합니다. 기업은행은 국책은행으로서 신용위험이 높은 중소기업을 지원해야 합니다. 대기업이나 가계 대출에 비해 리스크는 크고 이익은 적지요. 그렇더라도 중소기업 자금지원은 계속해야 합니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4분기 신종자본증권 2000억원과 후순위채권 5000억원을 추가 발행해 재무구조를 개선했다. 그렇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고 추가로 내실을 다질 방침이다.
“지금은 과거와 같은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며 기본과 기초가 탄탄한 은행이 경쟁에서 승리할 것으로 생각하고 사업구조를 재편하고 있습니다. 특히 힘든 환경에서 양적인 성장에 치중하다보면 관리비용만 늘어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올 한해는 내실을 기하기 위해 점포운영이나 비용집행, 인력배치 등을 재점검해 효율성을 높여 거품을 제로화할 방침입니다.”
상장사로서 수익성 강화를 위해서는 저원가성 예금을 증대하는 등 조달구조를 개선하고 선제적 건전성 관리를 통해 불필요한 경비를 절감하며 공격적으로 신규고객 유치에 나선다는 중장기 비전도 제시했다.
권 행장은 수익성 개선을 위해 섣불리 신사업 분야에 뛰어들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금융업의 특성상 한두 가지 사업 분야 진출로 전체 수익을 개선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권 행장의 생각이다. 오히려 기존의 중소기업 컨설팅과 기업금융 분야 확대를 통해 수익확대를 노리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한 섹터에서만 수익이 좋아진다는 것은 리스크가 커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히려 기업금융 확대를 통해 고객을 늘려갈 방침입니다. 고객 회사의 여건이 좋아지면 CEO는 물론이고 근로자도 파생된 잠재 고객이 될 수 있습니다. 올해는 대출뿐 아니라 투자 쪽도 관심을 가지고 자금투입을 늘릴 생각입니다.”
현 정부의 핵심 과제인 창조금융에도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2017년까지 잠재력이 큰 창조기업 200개를 육성하고 다음달에는 지적재산권 담보대출상품도 출시할 예정입니다. 지난해 6000여 개 기업에 4조7000억원의 자금을 공급한 동반성장협력대출 펀드는 파이를 키워 올해는 5조7000억원의 저리자금을 지원할 예정입니다.”
권선주 행장
1956년생으로 경기여고와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나왔다. 1978년 기업은행에 입행한 이후 서울 방이역 지점장, CS센터장, 외환사업부장, 중부지역본부장을 거쳤다. 이후 카드사업본부 부행장을 거쳐 리스크관리본부 부행장 겸 금융소비자보호센터장을 거쳐 은행장 자리에 올랐다. 이처럼 은행업무 전반을 두루 섭렵한 경험이 은행장 업무에 큰 힘이 될 것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