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해운항공’이라는 물류 기업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2012년 기준으로 국내 매출액 257억원, 해외 지사들을 포함한 계열사 외형을 모두 합쳐도 626억원에 불과한 중소기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CJ대한통운과 현대글로비스 등 대기업 계열 물류회사라야 명함을 내밀 수 있는 글로벌 물류육성대상 기업에서 선정돼 주목을 받았다. 정부는 국내 물류산업 발전을 위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글로벌 물류육성대상 기업을 뽑는다.
선진해운항공을 이끄는 최고경영자(CEO)는 갓 40대에 접어든 정유진 대표다. 그는 창업 2세다. 선진해운항공은 정 대표의 부친인 정기태 회장이 1978년 설립한 국내 1세대 물류 회사다. 정유진 대표는 30대 후반이었던 지난 2009년 이 회사에 합류했다.
사실 그는 이렇게 빨리 가업을 승계할 생각을 못했다. 자신만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기태 회장의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는 바람에 회사를 맡게 됐다. 그러다 보니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최고경영자 역할을 해야 했다.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했습니다. 세계적인 석학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기였지요. 졸업 후에는 노무라연구소에서 5년간 경력을 쌓았습니다. 그 후에는 2년가량 해외에 거주하면서 헤지펀드 매니저로 일했지요. 부친이 경영하는 물류 회사와는 전혀 관계없는 분야에서 일한 셈이지요. 이때까지만 해도 부친이 경영하는 회사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종사했던 분야도 달랐고 부친께서도 회사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으니까요.”
하지만 부친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서 그는 삶의 궤도를 수정해야 했다. 그는 빠른 시간 안에 중소 물류기업의 경영자로 변신해야 했다. 국내 물류 회사는 수천 개에 달한다. 모두 선진해운항공의 경쟁사는 아니지만 참여 업체가 많다는 것은 큰 수익을 내며 생존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대기업 계열의 대형 물류사와 DHL 같은 글로벌 기업과도 치열하게 승부를 벌여야 했다. 젊은 CEO가 감당하기 힘든 과제였다.
“무엇보다 영업이 쉽지 않았습니다. 1세대 물류를 이끌었던 분들은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저는 그렇지 못했거든요. 20~30년 단골 고객이 많았는데 이 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막막했습니다. 부친이 손을 뗀 뒤에 거래가 끊길 뻔 했던 곳도 있었습니다.”
그는 이런 난관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 나갔다.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해 영업과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던 것이다. 끈끈한 관계도 중요하지만 품질과 서비스가 더 결정적인 경쟁력 중심 시대가 되고 있음을 간파했다. 저렴한 가격만으로 고객을 사로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모든 것을 데이터베이스(DB)화하기로 했습니다. 영업은 물론 각 지원부서와 인력 관리까지 가급적 수치로 파악하려 했던 것이지요. 어떤 고객이 얼마나 서비스를 이용하는지 분류하고 거기에 맞는 영업 인력과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는 데이터베이스가 절실했습니다. 물류 뿐 아니라 재고 관리 부문으로 사업을 확장한 것도 데이터가 중요해진 이유였어요. 국내 9개, 해외 3개의 사무소와 국내 8개, 해외 2개의 물류 창고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업체당 수천 개 품목이 반입되고 반출되고 있어 한 눈에 데이터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렇듯 투명하고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새로운 방식의 경영을 도입하자 직원들은 다소 힘들어 했어요.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좋은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죠.”
글로벌 파트너와 공동 마케팅
글로벌 스포츠브랜드 휠라의 전 세계 물류를 담당하게 된 것도 정 대표가 도입한 경영 혁신의 결실이다. 일본 기업이 한국에서 생산해 중국 등 제3국으로 수출하는 상품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을 착안해 글로벌 파트너와 공동 마케팅을 펼치면서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시너지를 올린 것 역시 그의 작품이다.
이에 앞서 선진해운항공은 해외 영업망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갔고 군수물자 같은 특수 분야의 물류에서 착실하게 기초를 다졌다. 정 대표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면 앞으로 한국이 충분히 물류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다”며 “보세운송과 재고관리, 유통가공 등 다양한 사업을 모색하다 보면 이것이 허황된 목표만은 아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선진해운항공이 작은 덩치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물류기업으로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정 대표의 부친인 정기태 회장이 30년 이상 쌓아온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79년 국내 물류업계 최초로 시베리아 횡단철도 화물운송(TSR) 서비스를 시작해 70%의 시장을 점유했고, 1980년대에는 미국 수입물자 운송사업을 수주했다. 대기업들이 해외 수출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선진해운항공은 글로벌 물류 기업만이 할 수 있는 영업을 시작한 것이다. 국제물류와 창고운용, 육상운송 서비스를 통해 국내 기업은 물론 공공기업, 일본을 비롯한 외국기업 등 다양한 고객을 확보해 나갔다. 창업 이래 연속 흑자경영을 유지했으며 수익의 사내유보와 재투자로 견실한 재무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1980년에는 미국시장 진출의 교두보 마련을 위해 뉴욕과 LA에 사무소를 개설했다. 1986년 미군 물자 운송 사업을 따냈고 2000년에는 미국에 현지법인을 설립해 군수물자 뿐 아니라 상업물자와 비밀물자 운송서비스도 제공하기 시작했다. 1994년에는 중국 사무소를 개설했고 2007년 현지법인으로 전환했다.
정 대표가 취임한 지난해에는 ‘글로벌 물류기업 2020 프로젝트’를 선포했다. 이런 일련의 노력이 글로벌 물류육성대상기업으로 선정된 저력이 되기도 했다. 정 대표는 “글로벌 물류기업 2020 프로젝트가 달성되면 오는 2020년 그룹 전체 총 매출액 1600억원이 달성되고 이 중 해외 비중이 30%에 육박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핵심 인재를 영입하고 경영효율화를 지속적으로 펼칠 방침”이라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