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 작업의 흥행을 위해 농협이라는 거대조직이 움직이겠나. 농협은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움직인다. 이사진과 조합장들의 지지를 받아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투자증권 인수는 농협금융의 장기 전략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해 나서게 됐다. 어떻게 될지 알 수는 없으나 경쟁에 참여했으니 최선을 다할 것이다.”
임종룡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은 단호한 어조로 우리투자증권 인수 참여의 당위성을 밝혔다.
재무관료 출신인 임 회장은 지난 6월 NH농협금융지주 회장에 취임했지만 어느새 농협 사람이 다 된 느낌이다. 얼마 전 갔던 함양을 포함해 벌써 7번이나 지방 현장을 다녀왔을 정도다. 밑바닥부터 업무를 챙겼기 때문인지 그는 인터뷰 내내 자료 하나 없이 농협의 현황과 당면한 이슈에 대한 입장을 술술 풀었을 뿐 아니라 농협금융이 나아갈 방향까지 명확히 제시했다. 우리투자증권 인수 참여와 관련해선 시너지효과가 분명히 보여 나섰다고 했다.
“지금 금융권의 판도는 크게 금융그룹 대 금융그룹의 대결 형태로 움직인다. 어느 한 부문만 갖고는 안 된다. 은행과 증권 보험 등 3대 영역을 고루 갖고 있어야 경쟁력을 얻을 수 있다. 농협의 경우 보험은 4등이니 어느 정도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단위농협 네트워크를 이용한 판매망도 강하다.
그렇지만 증권은 14위로 중소 규모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포트폴리오의 경쟁력 보강 차원에서 우리투자증권이 필요하다. 특히 농협은 금융뿐 아니라 경제사업도 하고 있어 시너지 내기에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인수가 성사되면 우리투자증권에도 좋겠지만 농협의 경제사업에도 바람직하다. 농협의 조직력에 우투증권처럼 자산관리까지 잘 하는 곳이 오면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을 위한 좋은 여건을 갖출 수 있다. 그게 시너지를 내고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구체적으로 범 농협금융의 여유자금이 160조원이나 된다.
이 자금을 잘 운용하려면 우투증권처럼 자산관리나 IB에 능한 증권사가 필요하다. 또 범 농협 자회사도 27개나 된다. 이들은 지방과 소매금융에 강점을 갖고 있다. 우투증권처럼 대도시와 기업금융에 강한 기관이 오면 시너지를 크게 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 우투증권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임 회장은 패키지 매각으로 우투증권 외에 다른 금융기관을 함께 인수하더라도 역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은행업은 농협은행만으로도 건실하게 해나갈 수 있다. 은행은 나름대로 자리를 찾아갈 것이기에 우리은행 인수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아비바생명은 인수해도 좋다. 농협생명의 자산이 40조원이나 되고 경쟁력이 있기에 우리아비바생명을 인수해도 충분히 잘 해낼 여력이 있다. 이미 자산운용사가 있지만 자산운용사를 인수해도 좋다. 운용을 잘 하려면 백그라운드가 든든해야 하는데 NH농협증권과 우리투자증권이 있으면 잘 해낼 수 있다. 농협은 저축은행은 갖고 있지 않으나 소매금융에 강점이 있기에 충분하다.”
임 회장은 우리은행을 인수할 의향은 없지만 어찌됐든 민영화는 빨리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 동안 (우리은행) 매각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나 성과가 없어 아쉽다. 내가 언급하는 게 적절치는 않지만 빨리 민영화 하는 게 우리금융에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매각 작업은 내년쯤 다시 시작될 것 같다. 그때가 되면 환경이 변해 매수 수요가 구체화될 것이다. 또 계열사를 매각한 뒤라 몸집이 가벼워져 매각 방식과 관련해 적절한 전략이 나올 것이다. 주인 찾는 시도가 빨리 완결돼야 한다.”
다만 그는 대형은행이 우리은행을 인수하는 것에 대해선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국가적 부담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어떻게 되든 메가뱅크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리스크를 키운다는 점에서 숙고해야 한다. 우리 경제의 전체 규모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 리스크 등을 고려해 반영해야 한다. 공적금융기관으로 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빠른 시일 내 민영화해야 한다.”
정과 유대감은 농협의 강점
임 회장은 여러 차례 지점을 순회하면서 저변에 깔려 있는 농협의 강점을 파악했다.
“본점서 앉아 하는 기획이나 정책이 현장에 가 보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현장 중심의 상품 기획과 현장 중심의 평가를 해야 한다. 현장 직원들은 아주 치열하게 경쟁한다. 가서 보니 숨어서 일하는 직원들이 많다. 산전·후 휴가 대체직이 정규직보다 실적이 좋은 경우도 많다. 그렇게 하고 있지만 이제 은행이 됐으니 훨씬 더 치열하게 할 것을 주문한다.”
그는 시도 금고나 정부 금고 등을 많이 맡고 있는 것도 보이지 않는 강점이 있어서라고 했다.
“농협이 엄청난 노력을 했다. 금고지정 제도가 입찰 방식으로 바뀐 지금도 농협이 시도 금고의 70% 이상을 차지하며 여전히 공금융기관 같은 지위를 누리는 것은 엄청난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공금융 관리를 위한 준비가 되어 있고 그만큼 경쟁력도 있다. 오랫동안 공금융 업무를 해왔기에 노하우가 있고 지점 네트워크도 잘 되어 있다. 지점 1180개가 지방에 70%, 수도권에 30% 비율로 있다. 다른 은행은 이 비율이 정반대다. 그만큼 준비가 돼 있다.”
최근 농협은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금융기관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공익적 성격이 강하면서도 정으로 뭉친 조직 때문이란 게 임 회장의 설명이다.
“농협은 지향하는 목표가 분명하고 이익도 농민을 위해 쓴다. 상업성의 기관이지만 공공성이 강한 기관이다. 게다가 조직원들의 충성심이 강하고 서로 간 유대 역시 강하다. 농협이 이만큼 버틴 것도 조직원의 유대감 때문이다. 그 독특한 문화가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영업조차도 기법이나 상품 뿐 아니라 끈끈한 정과 고객과의 유대로 이뤄지는 게 많다. 감동 받았다.”
그래서 조직관리 때 농협만의 이런 특성을 살려서 할 것이라고 했다.
“성과평가에서 은행 시스템을 적용할 수 있으나 농협은 태생이 협동조합이다. 개인보다 집단의 성과를 강조하게 된다. 그런 만큼 개인성과를 쉽게 적용하기는 어렵고, 집단의 성과에 개인의 성과를 가미하는 식으로 조직이 움직일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이다. 충성도와 조직원간 유대가 우리의 버팀목이고 우리 조직의 장점이다.”
그렇더라도 조직이 마냥 느슨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과거엔 느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금융기관과 똑같은 은행이고 보험이고 증권을 가진 금융그룹이다. 똑같이 경쟁해야 하는 사업구조로 개편됐고 경쟁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리스크 관리 기반 닦을 것
재무관료 시절 임 회장은 누구보다도 많은 시간을 구조조정 관련 업무를 하며 보냈다. 스스로 공직생활의 절반을 금융 업무를 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구조조정이라고 할 정도다. 사무관 때부터 부실기업 정리 등에 참여했던 그는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때 직간접적으로 구조조정 관련 업무를 맡았다. 그런 만큼 리스크 관리의 필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인식하고 있다. 중요한 지표들은 술술 읊을 정도로 꿰고 있다.
“(NH농협은행의) 최근 BIS 비율은 14% 선으로 10%가 권고 선인 바젤 Ⅲ가 도입돼도 여유가 많다. 최근 5000억원의 유상증자도 했다.
외형적 기준은 충분히 충족했다. 다만 부실여신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한때 고정이하 여신이 2.3%까지 올라간 적도 있다. 그래서 임직원들에게 부실여신을 이 악물고 지켜보자고 했다. 최근엔 1.9%까지 떨어져 안정을 찾고 있다. 내용을 보면 산업은행과 연계해 대출한 STX와 PF 대출 등에서 부실이 생겼다. 구조가 나쁜 것들은 소매금융 하다가 기업금융으로 영역을 넓히는 과정에서 나왔다. 그렇지만 농협은행의 건전성은 문제없다. 부실여신 비율이 높아진 것을 해소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고 성과도 있다.”
재무안전성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건전한 금융기관을 만들겠다는 그의 바람은 여전하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건전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건전하면 위기조차도 기회가 된다는 것을 보았다.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 위기관리를 해야 하는지, 있는 동안 제도적으로 보완할 것은 보완하고 그런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국민들이 믿고 거래할 수 있었던 것은 농협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건전한 금융기관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다.”
장관까지 역임한 임 회장이기에 그가 농협에 온 것은 잠시 경력 관리를 하다가 다음 자리로 옮기려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임 회장은 스스로 선택해서 온 만큼 농협의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내가 선택해서 왔으니 (농협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2년의 임기 동안 내가 다한다기보다는 정식 금융기관이 됐으니 (농협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방향 제시를 제대로 할 것이다.”
농협금융 이익 당연히 농민에 가야
최근 일부 금융지주의 명칭사용료 문제가 이슈로 불거진 것과 관련해 임 회장은 농협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우리는 농협 안에서 움직이다가 농협은행이 떨어져 나왔다. 그래서 명칭 사용료를 내는 게 당연하고 법률적으로도 맞다. 특히 농협의 모든 금융기관은 반드시 명칭사용료를 내야 한다. 모태가 농협이었고 거기서 사업구조에 따라 분화돼 나왔다. 또 농협의 범금융기관은 특히 농민을 위한 협동조합이다. 최초 소유자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게 당연하다.”
이런 점에서 농협중앙회가 관리하던 IT를 분리하는 것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은행법이나 금융관계법 등에서 IT를 적절히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업부문이 떨어져 나왔으니 당연히 분리해야 한다. 법률에선 2017년까지 시설을 갖추도록 하고 있다. 조만간 중앙회와 금융회사 간 조정을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의왕시에 전산센터를 새로 설립해 좋은 시설을 갖추기로 계획했다. 그렇다고 전산사고의 모든 가능성을 해소하는 것은 아니다. 단기적으로 집중 관리해야 하고 궁극적으로 IT는 금융 쪽으로 가져와 체계에 맞춰 운영해야 한다.”
후배 키우는 게 관리자 책무
온유한 성품의 임 회장에겐 따르는 후배나 부하 직원이 많다. NH농협금융 내에서도 그는 이미 호평을 받고 있는 최고경영자다. 그는 비결을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관리자의 기본은 첫째가 자기 후배를 키우는 것이다. 부하의 능력을 키워야 조직을 유지할 수 있다. 나는 업무 중 부하들을 키우는 데 가장 큰 비중을 두었다. 그런 일 때문에 동료나 부하 직원들의 호감을 산 것 같다. 그러나 개별적으로 큰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밑에서 싫어한다고 가르치는 것을 피해서는 안 된다. 더 경험이 있고 정보가 있다면 후배를 키워야 한다. 다만 가르칠 때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그는 함께 근무한 모든 선후배로부터 많이 배웠지만 특히 차관 시절 모신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을 기억했다. “윤증현 장관은 큰 줄기를 잡고 일하는 데 능했던 분이다. 게다가 아랫사람들 키우는 배려심이 아주 뛰어난 분이었다. 옆에서 보며 많이 배웠고 도움도 받았다.”
임종룡 회장이 말하는 국가재정
2008년 이전 경제정책은 금융 위주로 갔다. 그러다가 금융위기가 일어나니 재정정책 위주로 가게 됐다. 재정의 역할은 분명히 있다. 잘 하면 경제를 살릴 수도 있다. 한국은 외환위기 때 160조원, 2008년 위기 때는 67조원의 재정을 썼다. GDP의 6.7%를 사용한 것이다.
재정을 쓸 때는 유연하고 신축적이어야 한다. 위급할 때 늘렸더라도 바로 줄여야 한다는 얘기다. 한번 늘리면 다시 줄이기 어렵기 때문에 아예 늘리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금융의 리스크가 너무 커지니 갈수록 재정의 역할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재정지출 확대로 거품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에 유연하게 늘렸다가 줄였다 해야 한다. 어쨌든 재정은 포기할 수 없는 매력적인 카드다.
한국이 그렇게 (재정을) 쓰고도 국가부채 수준을 낮게 유지할 수 있던 것은 과거 공직자들이 그만큼 국가재정을 건전하게 운영했기 때문이다. 최근 복지가 확대되며 재정 부담이 늘어나고 있는데, 복지는 국민의 선택이다. 고부담 고복지가 유럽형이고 저부담 저복지는 미국이나 우리나라 등에서 채택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저부담 고복지는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공기업의 과도한 부채가 불거지고 있는데 사업성 있는 공기업은 당연히 해야 한다.
다만 공기업 부채는 자산과 함께 봐야 하고, 부채를 볼 땐 상응하는 자산이 있나, 자산의 건전성은 어떤가를 살펴야 한다.
협동조합법 제정 이후 여러 유형의 협동조합이 우후죽순처럼 난립하는데 같이 벌어서 같이 산다는 개념만으로는 협동조합은 안 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동반성장 등 가치개념을 부여해야 하는 게 협동조합이다. 공동의 목표를 달성한다는 기본적 동기에 충실하면서 그 성과를 나누는 게 협동조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