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은 적정한 수익을 올리고 이를 기반으로 기업과 시민들의 필요에 맞게 자금을 지원하고 남는 이익으로 사회에 공헌해야 사회 전체가 선순환 할 수 있습니다.”
국내 최대금융기관인 KB금융지주의 임영록 회장(58)은 지난 11월 19일 매일경제 LUXMEN과 가진 인터뷰에서 건강한 금융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얘기로 화두를 열었다.
“오늘 KB금융공익재단 이사회를 열었는데, 이사들이 한 목소리로 KB금융에 걸맞은 사회공헌을 해달라고 주문하더군요. 소외계층에 대한 경제금융교육이나 소방 유자녀 지원 같은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금융기관이 적정한 이익을 내야겠지요.”
임 회장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시우금융(時雨金融)’을 강조했다. “시우는 필요할 때 알맞게 내리는 비입니다. 이를 금융에 적용해 서민들에게 다가가면 바로 시우금융이요, 정책에 적용하면 시우정책이 됩니다. 금융기관은 특히 고객이 어려운 시기를 잘 넘길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기울여야 합니다.”
서민지원 금융상품 내놔
그는 특히 KB금융지주의 자회사인 KB저축은행이 지난 9월 25일 내놓은 ‘KB착한대출’을 서민들이 어려울 때 도움을 주는 상품으로 꼽았다.
“대부업체에서 대출 받으려면 연 38%의 금리를 물어야 합니다. KB 상품은 이보다 금리가 무려 연 20%포인트나 낮습니다. 향후 연체율을 모니터링해 추가로 금리를 내릴 여지가 있는지 살펴볼 생각입니다. 출시 두 달이 못돼 이 상품으로 401건에 20억원 상당을 지원했으니 상당한 인기를 끈 셈이죠.”
임 회장이 내건 시우금융은 침체기일수록 금융기관이 적극적으로 자금을 지원해 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금융당국의 고민과도 맥이 통한다. 임 회장은 다만 무조건적 지원이 아니라 수익성과 안정성에 바탕을 둔 지원이라고 이야기했다.
“당국의 고민인 금융기관의 경기순응성을 완화하는 문제는 시우금융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다만 리스크 관리와 잘 조화시켜야죠. 민간 금융기관은 수익성과 안정성을 고려하는 게 기본입니다. 현재 NIM(순이자 마진)이 악화되는데 경쟁이 심하고 조달금리를 낮추기는 어려워 대출금리 조정을 통해 수익성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고객별로 위험 관리를 세분화해 예대마진을 개선할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신용평가 모델도 새로 정비 중입니다.”
리딩뱅크는 주인의식 회복으로
임 회장은 금융기관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면 기본적으로 건전성을 갖추고 적정수준의 이익을 내야 한다며 이를 위한 주인의식을 강조했다.
“팀장은 팀장에 머물지 말고 대리도 대리라는 생각을 넘어서야 한다고 늘 주문합니다. 소CEO(최고경영자)라는 주인의식을 갖고 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뜻이 얼마나 공감대를 형성하고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가 열심히 노력하더라도 임직원들이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KB금융의 거버넌스(지배구조)가 계속 바뀌었기 때문에 직원들은 ‘당신도 얼마 안가 떠날 거 아니냐’며 쉬 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좋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동안은 끊임없이 소매금융의 강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과 주인의식을 갖자고 설득할 것입니다. 내 뒤에 온 누군가가 거기에 더해 또 주인의식을 갖자고 하다보면 소기업과 서민을 위한 KB만의 시우금융이 가능해지겠죠.”
임 회장은 다만 “주인의식이라고 내마음대로 하는 것은 방종이며 무책임이다”라고 선을 그은 뒤 “내 것이므로 더 소중하게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해야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KB금융 계열 전체가 이런 각오로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지주회사는 큰 그림을 그리고 매일매일 영업은 계열사가 결정하며 여러 계열사가 함께 해야 하는 영업은 지주회사가 연결해 시너지를 내도록 하겠다고 했다.
임 회장은 그렇지만 아무리 수익성 개선이 필요하더라도 인위적 구조조정은 하지 않겠다고 거듭 확인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 업무를 담당하면서 직원들을 내보내야 했습니다. 그때는 준비가 안 돼 IMF의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기에 급급했죠. 외환위기를 빨리 극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일입니다. 이 과정에서 고도로 훈련된 금융인력을 길거리로 내보내야 했습니다. 이것이 단기적으로는 비용을 줄일지 모르겠으나 중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는 요인이 됐습니다. 이번에 KB금융지주 회장에 선임될 때 노조 간부를 만나 당시 이야기를 들려주며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노사가 함께 1인당 생산성을 높여나가자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게 돌아가는 것 같지만 길게 보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는 길이죠.”
외국계와 달리 한국 금융기관은 실적 베이스로 연봉을 주지 않는 대신에 고용을 보장하는 장점이 있는 만큼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직원들이 주인의식으로 응해줘야 가능한 부분이다.
KB의 오랜 숙제인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두 채널간 화합도 같은 맥락에서 풀어야 할 과제다.
“밖에선 잘 모르지만 안에 들어오면 큰 골이 보입니다. 그래서 취임 후 기회 있을 때마다 직원들에게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 머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 지금 있는 그곳이 바로 진리의 세계라는 임제록의 한 구절)’을 이야기하며 주인의식을 강조해왔습니다. 주인의식이 있으면 KB금융은 모두가 함께 하는 공동의 일터라는 인식을 갖게 되죠. 그 큰 골을 메울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도 하고 제도나 시스템도 보완할 것입니다. 다행히 통합세대로 새로 뽑은 사람들이 벌써 10년 됐는데 그들은 그런 골을 모릅니다. 이들의 애사심을 바탕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우리투자증권 인수 등 비은행 성장 추구
임 회장은 공개매각이 진행 중인 우리투자증권 인수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KB투자증권은 DCM(Debt Capital Mar ket, 채권자본시장) 쪽에 있던 회사인 반면 우리투자증권은 전국적 조직력을 갖췄고 웰스매니지먼트와 IB(투자은행) 쪽에 강점을 갖고 있습니다. KB는 1200개 점포에 3000만 고객이 있고 핵심 고객만도 450만명에 달합니다. 이 분들의 니즈를 충족시켜줘야 합니다. 우리 조직에 우리투자증권의 실력을 연계하면 주식 브로커리지는 물론이고 웰스매니지먼트와 IB 등 다양한 방면에서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최고 전문가들로 태스크 포스를 구성해 입찰 준비를 하고 있는데, 최선의 노력으로 최선의 결과를 낼 것입니다. 가격 외에 인수 후 정상화하는 능력도 필요한 만큼 복합적으로 우리가 적임자라고 봅니다.”
임 회장은 증권 뿐 아니라 자산운용이나 보험 등을 포함한 비은행 부문에서도 선도 금융그룹의 지위를 확보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비은행 계열사의 중장기 성장 계획도 세우고 있습니다. M&A를 통한 비은행 부문의 성장 기회가 있다고 보고 포트폴리오를 보완할 생각입니다.”
이 차원에서 이미 우투증권 인수 후 운영방안까지 심도 있게 검토 중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은행 부문을 추가해야 하는 메가뱅크(거대은행)에 대해선 강하게 부정했다.
덩치보다 실력으로 승부
“덩치만 크다고 리딩 뱅크가 될 수 있는 게 아니죠. 지금은 덩치보다 체력을 키울 때입니다. 압도적 규모로 덩치의 우위를 점할 수 있다면 모르지만 자산 300조원짜리 두 개 은행을 합쳐도 아시아에서 10위권에 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체력이 중요하죠. 씨름선수 이만기가 덩치 큰 선수들 넘길 때 관중들이 열광한 것은 덩치가 아니라 체력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늘 강조하지만 기본으로 돌아가(Back to the Basic) 소매영업 부문을 강화해 우리의 실력을 보여줄 작정입니다.”
시우금융은 덩치보다 체력이 중요하며 기본이 튼튼하고 적정수준의 이익을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해외은행 M&A 역시 원론적 수준에서 검토할 뿐 당분간은 국내 부문에 치중할 뜻을 비췄다.
“해외진출 방법은 다양합니다. 소규모 은행을 인수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여기서 보내는 인원은 최소화하고 현지 인력을 활용하는 게 중요합니다. 다만 옥석은 가려야 합니다. 선(先)점검 후(後)진출 방침을 정해 우선 기존 해외 네트워크의 리스크 요인을 제로 베이스에서 심층 점검 중입니다. 동남아 진출에 관심이 있으나 경쟁이 심합니다. 현지 금융기관 뿐 아니라 영연방 국가의 은행 등도 적극 진출하는 추세입니다.”
지난 11월 13일 캄보디아 프놈펜 지점을 개설하고 연내 미얀마 양곤 사무소도 설치할 계획인 KB금융이 이처럼 신중한 자세인 것은 최근 불거진 현지법인 문제 때문이다.
임 회장은 “취임하고 보니 해외점포 관리가 제대로 안됐다”며 “최근 문제가 노출된 도쿄와 카자흐스탄 뿐 아니라 전체 영업장을 철저하게 점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동안 해외까지 나가야하는 문제로 영업감사를 하지 못하고 경영감사만 했는데 차제에 이 부분을 뜯어 보겠다는 것이다.
다만 삼성전자나 현대차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때 한국 금융기관은 여전히 ‘우물안 개구리’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 대한 그의 견해는 무엇일까.
“삼성전자처럼 국제화를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은데 KB는 리테일(소매금융)의 강자이므로 국제화와는 거리가 있는 편입니다. 덩치가 리딩 뱅크라도 국제화는 마스터 플랜에 따라 단계적으로 착실히 추진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쓴 경험을 잘 새겨야 합니다.”
현 정부의 핵심 정책인 창조금융과 관련해 임 회장은 KB국민은행 통합점포 일부를 종합금융센터로 전환하는 등 체계적인 기업금융 전문채널을 구축해 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부분은 현재로선 벤처캐피탈이 앞장설 부분이라고 보고 KB캐피탈에서 펀드를 설정해 지원 대상을 선정해 투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 회장은 매일 출근할 때 계단을 걸어 7층까지 오른다. 황량했던 계단 벽면은 지금 時雨(Timely Rain)와 Ownership Spirit(주인의식) Strong POS(강한 현장) Trust, Risk Management, Creative 등의 단어들이 장식하고 있다. 직원들 뿐 아니라 임 회장 스스로 리딩 뱅크를 만들려는 의지를 다지는 것이다.
후배들이 인정한 ‘닮고 싶은 상사’
임영록 회장은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의 핵심 금융보직을 두루 섭렵한 데 이어 2차관을 지내고 잠시 법무법인에 적을 뒀다가 KB금융지주 사장과 회장으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완벽에 가까운 경력이다. 그는 관료 시절 잠시 노무현 정부의 국장급 교류방침에 따라 외교부에 파견 나갔던 때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고 했다.
“국장급 교류로 외교부로 가게 됐는데, 사표를 내라고 하더군요. 일반직이 아닌 외무공무원이라 특채 형식으로 가야 한다는 이유였어요. 그 경험 때문에 이후 언제 자리를 떠나게 되더라도 연연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죠. 30년 근거지를 그렇게 떠나는 게 황당했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고, 외교부 가서 최선을 다해보자고 다짐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모두 영어가 능통하니 영어로는 안 되겠고 외교부에 부족한 것을 보완해주는데 주력했습니다. 그래서 규정 만들기와 타 부처 조율 등을 돕는데 집중했어요.”
외교부 근무시절 그는 FTA 마스터플랜을 짰다. 체결 절차나 규정을 대통령령으로 매뉴얼화한 것. 다자협상서 양자협상으로 바뀐 FTA를 위해 안전행정부의 반대를 물리치고 FTA국을 만들어 2004년 11월 한-싱가포르 FTA타결에 일익을 담당했다. 그가 기재부로 복귀하는 게 아쉬워 반기문 장관(현 UN사무총장)은 홍조근정훈장을 신청하고 기념패까지 건넸다.
임 회장은 서글서글한 외모에 차분한 목소리, 그대로 받아 적어도 훌륭한 문장이 될 정도로 논리정연한 말솜씨까지 갖췄다. 기재부로 복귀한 직후인 2005년엔 후배들로부터 ‘닮고 싶은 상사’로 선정될 정도로 일처리와 몸가짐, 후배를 배려하는 선배로 정평이 나 있다. 외교부로 나갔던 1년 공백에도 불구하고 그가 후배들의 신뢰를 산 비결은 무엇일까.
“아래 사람들에겐 역시 진실이 통하는 것 같아요. 나는 사범대 출신이기에 일로 승부를 내자고 했습니다. 그러니 후배들과의 소통이 중요했죠. 특히 어려울 때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어려울수록 정신 차리고 평상심에서 판단하고. 복잡할수록 상식선에서 원칙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어릴 적 고난 딛고 우뚝 선 수재
임 회장이 사범대를 나온 데는 사연이 있다. 그의 부친은 시골 초등학교 교감이었다. 그때만 해도 그는 동네에서 대접받는 집 아이였다. 그런데 부친이 교감을 그만 두고 퇴직금으로 광산업에 뛰어들었다. 임 회장이 태어난 곳은 강원도 영월. 1950년대 한국의 수출품목 1위였던 텅스텐을 채굴하던 대한중석 상동광산이 있던 곳이다.
광산학을 전공한 부친은 서울로 올라와 석탄광을 비롯해 금광, 석회석광, 고령토광산까지 광산이란 광산을 두루 손댔지만 2년 만에 실패해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가족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임 회장과 누이는 친척집을 전전했다.
잠자리를 걱정할 처지는 오히려 어린 임 회장에게는 좋은 자극제가 됐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공부를 파고들어 전국 수재가 몰리는 명문 경기중학교에 합격했다. 서울 돈암초등학교 6학년 때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 공부 잘 하는 어린이로 소년신문에 실려 등록금을 지원받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경기중 3학년 때는 입주과외를 하며 초등학교 6학년생을 가르치는 ‘소년 과외 선생님’으로 홀로서기에 도전했고, 경기고에 입학했다.
살림이 전혀 나아지지 않자 부친이 도피성 미국 이민을 결정해 그의 고단한 삶도 잠시 느슨해졌다. 하지만 이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아 결국 국내 대학을 진학하게 됐다. 마침 담임인 국어 선생님의 권유로 서울사대 국어교육학과에 입학했다.
고시 공부 1년반 만에 행정고시에 합격했는데 사범대 출신이 주류인 교육부를 마다하고 평소 희망한 금융 분야를 다루는 당시 재무부에 자리를 잡았다. 서울대 법대와 상대가 아니면 뒷전에 밀리던 터라 마음을 다잡고 업무에 혼신을 다해야 했다. “내가 사대(사범대) 나온 걸 몰랐던 한 상사는 (상대에서) o(이응)이 빠진 것 아니냐고 한 적도 있다”고 임 회장은 회고했다.
사범대 진학은 한 살 연상의 과 동기인 현재의 부인을 만나는 계기가 돼 고시 공부할 때도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받았다. 편찮은 부인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불가피한 자리를 제외하고는 만찬 일정을 잡지 않는 게 일상이 될 정도로 임 회장의 부인 사랑은 애틋하다.
임 회장이 KB금융지주가 지향하는 가치로 내세우는 ‘시우(時雨)금융’은 곧 ‘착한 대출’ ‘따뜻한 금융’과 맞닿아 있다. ‘필요할 때 알맞게 내리는 비’와 같이 서민들이 금융의 문턱을 쉽게 넘을 수 있도록 하는 ‘시우금융’은 그의 어린 시절 고난을 건너는 징검다리를 연상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