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취급하는 현금만 최소 2000억원?
자본금 10억원에 불과한 중소기업이 이처럼 엄청난 금액을 만진다면 믿을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풍이 심하다는 말을 먼저 할 것이다. 하지만 발렉스코리아라면 다르다. 현금수송업계 1위 기업인 발렉스코리아가 일일 유통 현금 2000억원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발렉스코리아는 업계에서 최고란 찬사를 가장 많이 듣는 기업이다. 국내 최초인 1호 현금수송업체 면허를 받은 것은 물론, 전국 50여개 지사를 통해 현금운송과 관련된 선진 용역업무인 캐시 매니지먼트를 전담하고 있어서다. 최근에는 기업들의 보안 문서 취급과 특수 물류 업종에도 나서면서 사세를 확장하고 있다. 핵심역량에 집중하기 위해 몸집을 줄이고 있는 대기업들의 핵심 파트너로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현금수송업계 선두를 넘어 기업들의 비즈니스 아웃소싱 파트너로 급부상하고 있는 발렉스코리아의 권태석 대표를 만나봤다.
전문경영인에서 금융인 다시 창업자로 변신
발렉스코리아를 이끌고 있는 권태석 대표의 이력은 그야말로 화려하다. 국내 최초의 현금수송업 1호 면허 업체의 전문경영인을 맡았고, 이후에는 금융인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현재의 발렉스코리아를 설립해 업계 1위의 강소기업으로 키워냈다.
“1987년 정도였을 겁니다. 상업송달 업무를 하던 선배가 이 사업을 제안했죠. 하지만 당시에는 현금수송이나 유가증권을 취급할 수 없었습니다. 법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권 대표는 아예 교통부에 법령 개정을 요청했다. 현금수송업이란 새로운 사업을 할 테니 법적인 근거를 마련해 달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교통부는 난색을 표했다. 당시만 해도 은행의 현금을 외부에 맡긴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일. 권 대표는 교통부를 찾아 사업의 당위성을 재차 설명했고, 결국 교통부는 여러 조건을 달아 법을 개정했다.
“당시 교통부는 현금수송 사업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난데없이 그런 사업을 하겠다고 법을 만들어 달라고 하니 당황했겠죠. 그래서 사업파트너와 수익자를 요구했습니다. 주 고객이 될 당시 주한외국계은행연합을 찾아가 추천서를 받아 제출했죠. 그런데 이번에는 은행과 관련된 장관의 추천서를 요구하더군요. 결국 당시 재무부를 찾아가 사업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장관의 추천서를 받아 교통부에 줬습니다.”
권 대표는 이런 우여곡절 끝에 1988년 1월에 법령개정을 통해 현금수송 1호 면허를 받게 됐다. 당시 그가 선배와 함께 창업했던 회사가 1호 업체가 된 것이다. 하지만 권 대표는 1996년 회사를 떠나 홀로서기에 나선다. 오너 가족들이 회사 경영에 참여하면서 스스로 물러날 때라고 여긴 것이다.
발렉스코리아는 1년 뒤인 1997년 설립됐다. 하지만 권 대표는 곧바로 발렉스코리아에 합류하지 않았다. 설립 과정에서 인터뷰를 했던 은행이 그를 임원으로 채용했기 때문이다.
“1996년에 발렉스코리아를 설립했는데 IMF가 오면서 어려움이 많았어요. 그 와중에 씨티은행에서 로지스틱스 전문가를 찾는 요청이 왔죠. 거기에 인터뷰를 하러 갔더니 같이 일하자는 제의를 해서 기업금융 부분의 지배인을 하게 됐죠.”
금융인으로 변신한 권 대표는 그야말로 승승장구했다. 입사 1년 만에 시티은행 전 직원을 대상으로 업무실적을 평가해 주는 최우수 등급(Excellent A)을 연속으로 받은 것이다.
그러나 2001년 초 자신이 설립했던 발렉스코리아가 어려움에 처하자 주변 만류에도 불구, 과감히 사직서를 던지고 사업에 합류했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곧 망할 정도였어요. 시티은행에서 나름 열심히 하고 있었고 인정도 받았지만 내가 세운 회사는 문을 닫을 지경이었죠”라고 회상했다.
시큐리티 서비스로 진화 중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권 대표가 합류한 발렉스코리아는 이후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며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시티은행에 사표를 낼 당시에는 직원이 11명에 불과했어요. 매출도 엉망이었죠. 하지만 열심히 노력한 결과 지금은 업계 1위 회사가 됐습니다. 직원들도 800명이 넘죠. 거래처 역시 금융회사를 비롯해 대기업은 물론 다양한 회사들과 거래하고 있습니다. 약 900여 곳이 넘죠. 하지만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치안이 잘 된 나라에서는 사업하기가 쉽지 않았죠.”
권 대표는 사업 초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하루에 한 번 이상 현금차량 탈취사건이 일어나는 다른 나라와 달리, 국내는 치안상황이 너무 좋았다는 게 어려움의 이유였다.
“현금수송을 맡으려면 금융회사로부터 아웃소싱 계약을 받아야 했는데, 치안이 좋다 보니 금융사들이 굳이 현금을 외부에 맡길 이유가 없었어요. 그래서 사업 초기에는 금괴나 달러 등 국제 무역 일감을 취급했죠. 특히 당시에는 여행자 수표를 많이 취급했는데, 이게 회사를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사고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가입해야 하는 보험사가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도 국내 보험사들은 이런 종류의 기업보험 상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권 대표는 영국의 글로벌 보험사인 로이드社에 25만달러 규모의 보험을 가입해야 했다.
“사업 초기에 금융사에 아웃소싱을 의뢰했더니 보험을 물어봤어요. 그래서 국내 보험사들을 상대로 상품을 달라고 요청했더니 그런 상품은 아예 없다고 했어요. 결국 영국 로이드사에 보험가입을 요청했는데 조건이 까다로웠죠. 문제는 방탄차량이었어요. 그래서 이 차량을 수입하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국방부가 제동을 걸었죠. 방탄차량은 군수물자에 해당돼 민간기업이 수입할 수 없다는 거였죠. 그래서 다시 미국으로 가 방탄차량을 개조했고, 강화차량이란 명목으로 수입했어요. 보험가입도 그렇게 이뤄졌죠.”
사업에 탄력이 붙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이후였다. 전국 방방곡곡에 ATM 기기가 들어서면서 수시로 현금수송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발렉스코리아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전국적으로 갖고 있는 지사를 통해 ATM 위탁 관리업무를 맡은 것이다. 현재는 이를 발전시켜 아예 발렉스코리아가 자체적으로 ATM을 관리하고 있다. 회사에서 직접 현금을 충전하고, 입금된 돈을 가져와 정사(돈을 고르는 작업) 작업까지 하고 있는 것. 금융 거래 시 전산적인 부분은 금융권이 처리하지만, 실질적인 현금은 발렉스코리아가 유통시키고 있는 셈이다.
“ATM 관리서비스부터 은행의 현금운반, 그리고 편의점 같은 곳에 주화를 공급하는 일을 통틀어 저희는 ‘캐시 매니지먼트(Cash Management)’라고 합니다. 현금과 관련된 모든 서비스를 하고 있는 거죠. 이를 위해 전국 30여개사 지사와 동시에 연결되는 토털현금수급관리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이 시스템을 통하면 어디에 현금차량이 있는지, 어느 ATM 기기에 현금을 충전하고 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죠.”
실제 발렉스코리아가 운영하는 서울지역의 한 정사소를 방문했다. 입구에서부터 삼엄한 경비가 이뤄지고 있는 이곳에서는 서울 중심가의 현금이 유통되고 있었다. 주화실, 지폐실, 상황실로 구성된 이 건물은 한곳의 문이 열리면 다른 문이 열리지 않는 보안시스템이 적용되고 있었으며, 곳곳에 CCTV와 경보장치가 작동하고 있었다. 하루에만 취급하는 현금이 2000억원이란 권 대표의 장담이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캐시 매니지먼트는 높은 이익을 내는 사업은 아니란다. 권 대표는 “많은 사람과 인력이 들어가지만 수수료는 박한 편”이라며 “경쟁 업체들이 많아지다 보니 수수료가 갈수록 낮아진다”고 토로했다.
저가 경쟁 아닌 블루오션 찾기
“회사를 지금의 위치에 있게 해준 사업을 포기할 수 없지만,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서 다른 먹을거리를 찾아야 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업계 1위 회사가 사세 확장을 위해 저가 경쟁을 할 수는 없으니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죠.”
그래서일까. 발렉스코리아는 새로운 분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현금수송업에서 시작했지만 최근에는 보안업종과 문서관리 서비스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 이를 위해 동종업체 중 가장 많은 마케팅과 기획 담당 직원들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쟁업체를 직접 인수하기도 했다. 금융자동화기기 운영대행업체인 씨큐리티코리아서비스를 인수한 것이다. 권 대표는 “정사 작업을 통한 수수료를 낮아지고 있지만, 자동화기기 관리 분야는 여전히 높은 수익률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분야에도 진출했다. 사무용품 업체들이 경쟁을 벌이고 있는 문서관리서비스 시장에 나선 것이다. 권 대표는 이런 문서관리 종합서비스를 ‘오프사이드 스토리지’라고 칭했다. 기업의 중요 문서를 하루에 한 번씩 저장해 보관하는 창고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 이를 위해 발렉스코리아는 인덱싱 과정을 거친 문서를 보관할 금고를 보유하고 있다. 중요한 문서를 보관할 수 있는 외부금고의 역할도 하고 있는 셈이다.
3자 물류사업도 권 대표의 새로운 사업 중 하나다. 발렉스코리아는 공항에 약 6000평의 창고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를 이용해 새로운 물류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
“우리나라가 최근 중국과 일본 관광객들의 필수 여행코스가 되면서 명품산업도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어요. 그래서 해외에서 명품을 일정량 구입해 와 우리 창고에 보관하다가 고객에게 판매되면 우리가 대행판매에 나서는 명품사업을 진행하고 있죠. 전처럼 고객이 공항에서 물건을 직접 찾는 게 아니라 고가품의 경우 우리가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가 댁까지 보내드리는 서비스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뿐 아니다. 은행의 개인금고처럼 중요 문서나 귀중품을 보관해주는 사업도 하고 있다. 권 대표는 “기업들의 문서를 보관해주는 문서서비스도 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개인 고객들의 의뢰도 받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은행의 경우 물건의 훼손이나 분실 시 보상받을 길이 없지만, 발렉스코리아는 로이드사의 보험을 가입한 만큼 고객들이 더 안심할 수 있을 것이란 게 권 대표의 설명이다.
현금수송 아웃소싱 더 늘어날 것
그렇다면 권 대표가 꿈꾸는 발렉스코리아의 미래는 어떨까.
“20년 전에는 은행의 현금을 외부업체가 전부 챙겨서 나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죠. 하지만 지금은 모든 금융회사들이 현금수송과 관련해 아웃소싱을 하고 있어요. 멀지 않아 금융기관이 직접 현금을 취급하는 일은 없어질 겁니다. 이런 부분은 전부 우리 같은 전문 업체들이 아웃소싱을 할 것으로 생각되네요.”
경쟁 역시 더욱 치열해질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중소기업체들의 난립과 대기업 계열사들도 현금수송 시장 등에 진입하고 있어 전문 인력과 신뢰, 그리고 전국적인 네트워크망을 갖춘 기업만이 생존할 것이란 게 권 대표의 분석이다.
“앞으로는 경쟁이 계속 치열해질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법적인 규제는 시장의 흐름을 따라오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아쉬워요. 업체들마다 보험가입을 의무화하고 면허 정지 규정을 푼다면 현금수송 업종의 규모는 앞으로 더 커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업계 1위의 자리에 안주하고 않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오늘도 고민하는 권태석 대표. 발렉스코리아가 치열한 경쟁에도 업계 1위를 지켜며 순항하는 이유는 바로 그의 고민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