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시대’의 권력지도는 어떤 모습일까. 쉽게 예단하기 힘들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특유의 인사스타일 때문이다. ‘깜짝 인사’로 예상치 못했던 인물을 발탁하고 그 과정은 항상 베일에 싸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 당선인이 내놓은 첫 번째 권력지도 그림이 바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사다. 김용준 인수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상당수 인수위원들은 언론에서 한 차례도 후보로 거론되지 않았던 인물들이었다. 당초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던 친박 핵심 인사들은 대부분 인수위에 입성하지 못했다. 대신 그 자리를 대학교수 등 전문가 그룹이 차지했다.
인수위 측은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인수위는 군림하는 권력기관이 아니다. 우리는 ‘조용한 인수위’를 추구한다. 실무적인 전문가들이 정부의 업무 인수인계 역할을 차분하게 수행하면 된다.” 이런 연장선에서 인수위원들이 청와대나 내각에 대거 발탁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5년 전 핵심 측근들이 대거 투입됐던 이명박 정부 인수위와는 완전히 차별화하겠다는 의지다.
그렇다면 이번 인수위는 정말로 ‘앙꼬 빠진 찐빵’일까. 그렇지 않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을 전후해 형성된 측근 그룹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이후 2012년 대선 과정에서 박 당선인과 함께 정책을 연구하며 호흡을 맞춘 인사들이 대거 기용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대학교수이거나 교수를 하다 이제 막 국회에 입성한 ‘새내기 정치인’들이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과거 친박 그룹과는 차별화된 ‘신주류 권력’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인수위원으로 활동하는 주목할 만한 인물 5인방을 소개한다.
인수위 3인자 된 최고의 ‘깜짝 카드’
지난 1월 4일 발표된 인수위원 명단 중 최고의 ‘깜짝 카드’는 유민봉 국정기획조정분과 간사였다. 누구도 예상 못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과거 대외활동이 거의 없었고 언론에 자주 얼굴을 비치는 학자도 아니었다. 더욱이 박 당선인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에서 정책 조언을 한 것도 아니고 새누리당의 총선, 대선캠프에서도 활동하지 않았다. 인사발표 직후 친박 인사들조차 “도대체 유민봉이 누구냐”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 그가 인수위 활동을 총괄하는 국정기획조정분과 간사 자리에 전격적으로 발탁된 것이다. 위원장, 부위원장에 이어 사실상 ‘3인자’의 자리다.
그는 어떤 인물일까.
유 간사는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정치권에 기웃거리지 않는 전형적인 학자의 길을 걸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리더십과 인사행정이 전공이다. 그가 집필한 <한국 행정학>은 행정고시 준비생들의 필독서로 꼽히기도 했다.
공무원 생활을 잠깐 하기도 했다. 행정고시 23회로 상공부에서 근무하다 1990년 미국 오하이로 주립대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공무원 대신 모교인 성대로 돌아가 교수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사실상 ‘무명’에 가깝다 보니 인수위 주변에서는 그가 국정기획조정분과 간사라는 막중한 직책을 잘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런 우려를 일거에 씻어내게 된 계기는 바로 ‘조직개편 브리핑’이었다.
유 간사는 정부조직개편안 브리핑에 이례적으로 직접 등장해 40여분간 취재진의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놨다.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정확한 사실과 배경을 유창하게 설명한 것이다. 그동안 ‘철통보안’으로 취재에 갈증을 겪던 기자들에게는 ‘단비’와 같은 브리핑이었다.
이후 ‘깜짝 인사’의 대명사였던 유 간사는 인수위의 ‘깜짝 스타’로 떠올랐다. 향후 박근혜 정부에서 중책을 맡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온다.
기른 지 10년 됐다는 희끗한 턱수염이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右종범… 박의 핵심 브레인
청동 금융연수원에 위치한 인수위는 항상 북적인다. 새 정부가 공식 출범하기 전까지 인수위가 사실상 최고의 권력기관으로 인식되다 보니 들락날락하는 사람들이 많다. 부처 공무원, 정치인, 민원인 등 수많은 사람들이 인수위를 찾는다. 1000여명에 달하는 인수위 출입기자들도 한몫을 한다. 이 때문에 삼청동 일대 식당과 카페는 때 아닌 ‘호황’을 누린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처럼 권력의 중심에 선 인수위에서 최고의 실세를 두 명 꼽으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강석훈 국정기획조정분과 인수위원과 안종범 고용복지분과 인수위원을 이야기한다.
이 두 명은 공통점이 아주 많다.
우선 그들이 성장해온 궤적이 비슷하다. 두 명 모두 비슷한 시기에 미국 위스콘신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때문에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과 친박계 실세인 최경환 의원 등과 더불어 ‘위스콘신 4인방’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 그들은 대우경제연구소에서 함께 일했던 인연도 있다. 이후 두 명 모두 성신여대(강석훈)와 성균관대(안종범)에서 각각 교수 생활을 하다가 박 당선인의 부름을 받아 동시에 19대 국회의원이 됐다. 사석에서 만나면 형님, 아우로 호칭할 만큼 친밀한 사이다.
또한 이들은 대선 당시 박 캠프 공약의 초안 작성부터 마무리까지 전 과정을 담당했던 정책실세들이다. 새누리당 공약 준비 기구였던 행복추진위원회(행추위)에서 안 위원이 실무추진단장, 강 위원이 부단장을 맡으면서 박 당선인의 ‘브레인’ 역할을 했다. 박 당선이 정책과 관련해 두 사람에 대한 ‘무한신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대선 직전 김종인 행추위원장이 경제민주화를 강하게 추진하려하자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잡음이 발생했다. 경제민주화를 놓고 강경파와 온건파가 나뉜 것이다. 이때 두 사람은 온건한 경제민주화 노선을 견지하며 김 위원장과 마찰을 빚었다.
그러자 박 당선인은 이들을 행추위에서 후보 비서실로 재배치해 정책 조율에 대한 핵심 역할을 계속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박 당선인이 이들을 신뢰하는 이유는 또 있다. 안 위원과 강 위원은 모두 일 중독자다. 특히 겉으로 자기의 위상을 드러내지 않는다. 묵묵하게 자신이 맡은 책무를 끝까지 해결하는 스타일이다. 이 때문에 주변 인사들은 이들이 박 당선인 측근 중에서도 잔머리를 굴리지 않고 몸으로 부딪혀 솔루션을 찾는 참모라고 평가한다.
이번 인수위 인사에서 이들이 분과 간사로는 임명되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인수위의 ‘키’를 쥐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좌석훈-우종범’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정부조직 개편 칼 휘두르는 사나이
인수위원들은 대부분 인수위 사무실로 오전 일찍 출근해 밤늦게까지 일을 한다. 하지만 이런 룰에 예외가 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옥동석 국정기획조정분과 인수위원이다.
그는 인수위로 출근하지 않는다. 같은 분과 사람들도 “나도 옥 위원이 어디 있는지 잘 모른다”고 말할 정도다.
그가 종적을 감춘 이유는 그에게 주어진 임무 때문이다. 옥 위원은 정부조직개편 작업을 담당한다. 그의 생각에 따라 한 정부부처가 살아 날수도 죽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칼잡이’다. 당연히 수많은 로비의 표적이 된다. 이 때문에 그는 박 당선인의 허락을 받아 시내 모처에 비밀 사무실을 차리고 정부조직개편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가 인수위에 합류할 것이라는 건 과거부터 기정사실처럼 이야기됐다. 박 캠프에서 정부개혁추진단장을 맡으면서 정부조직개편, 창조정부 3.0 공약 등을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박 당선인과는 김광두 원장이 이끄는 국가미래연구원에 참여하면서 첫 인연을 맺었다. 2007년 박근혜 당선인과의 첫 만남을 옥 교수는 이렇게 회고했다.
“당선인이 참석한 연구모임에서 발표 보고서를 준비했는데 다른 주제로 논의가 길어지면서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당선인에게 보고서만 전달했는데 다음 모임에서 당선인께서 보고서를 잘 읽었다며 다음에 꼭 보자는 말을 했어요.”
당시 현장에 있던 박 당선인의 측근인사가 “당선인이 다음에 보자는 말을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그에게 귀띔해 줬다. 이후 박 당선인이 참여하는 각종 연구회에 옥 교수가 참여하는 횟수가 늘어났고 18대 대선과 인수위에 잇달아 중용되는 계기가 됐다.
그는 부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에서 석사,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인수위에서 몇 안 되는 국내 박사 출신이다. 하지만 그는 남다른 학구열로 자신의 영향력을 키워 왔다. 재정, 예산 전문가이기는 하지만 정부조직개편에 대해서도 해외사례 등에 대해 10년 이상 연구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 안종범 위원과 친분이 두텁다. 나성린 새누리당 의원과는 부산고 선후배 사이로 재정 분야에서 자주 의견을 교환해 왔다.
안보 ‘꼿꼿장수’ 朴의 든든한 동반자
김장수 외교국방통일분과 간사는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노무현 정부 사람이다. 그는 참여정부 마지막 국방장관을 지냈다. 장관 입각 당시 합창의장을 거치지 않고 육참총장에서 곧바로 국방장관에 발탁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특히 그는 2007년 제2차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하며 허리를 굽히지 않아 ‘꼿꼿장수’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는 당시 언론인터뷰에서 “군사적으로 적대국가에 있는 국가의 원수에 대해 68만 국군의 수장으로 적장에게 허리를 굽힐 이유가 없다”고 밝혔었다. 그런 ‘꼿꼿함’에서 나오는 남다른 안보관을 박 당선인이 높이 샀기 때문일까. 그는 박근혜 정부에서 안보 분야의 최고 실세로 통한다.
인수위의 외교국방통일분과를 책임지는 간사를 맡은데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 새로 신설될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장관급) 후보로 거론된다. 일각에서는 대북 정보를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김 위원이 국정원장에 임명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는 평소 스타일대로 인수위에서도 ‘소신발언’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보 문제에 대해서는 타협과 양보가 없다는 원칙 때문이다.
‘보안’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인수위 분위기 속에서 기자들과 만나 “사거리 800km의 탄도미사일의 조기 전력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안보 대비태세 점검이 가장 급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광주일고를 졸업해 새누리당의 대표적인 호남인맥 중 한 사람으로 분류된다. 18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 양측의 무수한 러브콜을 받았지만 예상과 달리 한나라당을 선택해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당시 참여정부 각료를 지냈고 호남 출신인 그가 민주당을 선택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지만 그는 “여당으로 가야 정책적 결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역할이 더 크겠다고 생각해 결정했다”고 설명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