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30일 저녁 7시. 프랑스 파리 앙리4세 고등학교에 마련된 런웨이 뒤로 한국 디자이너들의 손이 분주했다. 집 나갔던 이도 돌아온다는 추석 당일, 차례상도 마다하고 파리 무대 뒤에 선 이들은 정구호 디자이너가 이끄는 제일모직의 여성 컬렉션 브랜드 ‘헥사바이구호(Hexa by kuho)’의 디자인팀. 그 중심에서 2013 봄·여름 컬렉션 무대를 주시하던 김현정 실장은 한순간 간담이 서늘했었노라고 고백했다.
“리허설에 참가하지 못한 모델이 런웨이 마지막에 마련된 포토라인을 지나치더라고요. 뒤따르던 모델 두서넛도 똑같이 진행하기에 급하게 진행팀에 알려서 해결했어요. 그때는 어찌나 다급했던지.(웃음)”
올해 디자이너 경력 16년차가 된 김 실장은 ‘헥사바이구호’와 ‘구호플러스’를 담당하고 있다. 브랜드 디렉터인 정구호 제일모직 전무와 디자이너들의 소통은 물론 이번 컬렉션에 올린 33벌의 의상을 하나하나 직접 입어볼 만큼 꼼꼼한 완벽주의자다.
“디렉터가 완벽주의자시니 자연스레 몸에 밴 습관이에요. 실제 입는 옷을 만들기 때문에 디자이너들 스스로 입어보고 불편한 점을 체크하고 있어요. 덕분에 몸 관리는 어쩔 수 없이 기본이죠.”
그런 노력 덕분에 영화 <제인에어>에서 영감을 얻은 헥사바이구호의 2013 봄·여름 컬렉션은 “풍성한 소매의 볼륨이나 섬세한 레이스 패턴 등 우아하고 독창적인 디테일이 디자인의 완성도를 높였다”는 현지 관계자들의 찬사를 낳았다. 당연히 컬렉션 이후 주문도 늘었다. 우선 전 세계에서 옷을 주문하는 유명 매장이 늘었고 새로운 바이어도 줄을 대고 있다. 업계에선 벌써부터 헥사바이구호의 신장세가 화제다. 처음 참가한 파리컬렉션(2012 가을·겨울 컬렉션) 이후 매출이 전년대비 70% 이상 늘었으니 ‘이번엔 과연’이란 호기심이 한몫하고 있다. 하지만 결과가 어떻든 디자이너의 일상은 다시금 출발선이다. 지금 준비하는 컬렉션이 다음 컬렉션을 위한 준비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컬렉션이 끝나면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컬렉션에 집중하게 됩니다. 이번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각 시대별로 완성된 <제인에어> 영화를 섭렵했고, 빅토리아 시대 복식을 연구했는데 다시 시작이죠. 헥사바이구호의 2013 가을·겨울 콘셉트는 이번 컬렉션을 준비하며 이미 결정됐어요. 6개월 먼저 산다고 할까. 정답이 없는 예측이지만 우리가 내놓은 답이 최대한 트렌드를 리딩하길 바랄 뿐입니다.”
월화수목금금금, 그래도 올인
그렇다면 패션디자이너의 일상은 어떨까. 여러 공연과 전시를 접하며 트렌드를 이해한다는 김 실장은 “여타 장르에 대한 관심이 새로운 영감으로 이어진다”며 새로운 시도를 이야기했다.
“브랜드 디렉터의 동물적인 감각도 중요하지만 실무자들은 다른 장르 아티스트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기도 해요. 해외출장에 나서면 스트리트 패션이나 해외 컬렉션, 유명 편집매장을 둘러보는 건 기본이죠. 쉬는 날이요? 컬렉션 한 달 전에는 월화수목금금금이죠. 가족보다 팀원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습니다. 일상에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보다 큰 만족감을 포기할 순 없잖아요.
[안재형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