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 세계은행 총재의 이름 앞에는 ‘아시아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늘 붙어 있다. 그는 이미 아이비리그 대학으로 미국 내에서도 전통 명문으로 손꼽히는 다트머스 대학의 ‘아시아계 최초’ 총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올해 7월부터는 ‘아시아계 최초’ 세계은행 총재로서 5년 임기를 시작했다. 김 총재는 심지어 하버드대 의학박사와 사회과학 박사 통합학위에 입학한 ‘최초의 학생’이기도 하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핏줄만 한국인일 뿐 생각이나 철학은 분명 미국인일 것’이라는 염려다.
하지만 김용 총재는 확실히 다르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를 통해 “퇴계 이황 철학을 공부한 모친 영향으로 ‘나는 누구인가?’ ‘세상에서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등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많이 던졌다”고 말했다. 심지어 그는 지난 3월 총재 지명 이후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스스럼없이 ‘박 선배’라고 불러 당시 함께 자리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김 총재는 분명 미국인이지만 한국적 철학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주위에서는 평가한다.
그는 한국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평소 김 총재는 한국적 가치가 전 세계를 이롭게 할 수 있는 길에 대해 많은 고민과 연구를 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경제 성장 스토리는 (위기에 놓여 있는) 전 세계에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이번 방한에서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번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보내오면서 그가 밝힌 말이다. 사실 김 총재가 부임 후 첫 한국 방문으로 세계지식포럼을 택한 이유는 한국 경제 성장 스토리가 위기에 빠진 전 세계 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 각국 재정부 장관을 만날 때마다 “누구도 어떤 국가를 보고 ‘절대 당신들은 성장할 수 없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국을 예로 든다. 과거 어려웠던 시절을 겪고 현재처럼 발전한 한국을 보면 어떤 나라든지 빈곤은 퇴치할 수 있는 질병이며 경제 성장이란 달성할 수 있는 목표라고 확신을 갖게 해준다는 것이 김 총재의 생각이다. 실제 그는 지난 7월 매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성공 사례는 ‘어떤 나라라도 발전할 수 있다’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나에게 심어줬다”고 말했다.
전방위적 ‘빈곤 걷어차기’
“지금 당장 일하고 싶다.(I can’t wait to get started)”
지난 7월 2일 워싱턴 D.C. 백악관 근처 H스트리트에 있는 세계은행 본부로 첫 출근하면서 그가 던진 말이다. 김 총재의 빈곤 퇴치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이다.
그는 총재 부임 이후 첫 공식 출장도 아프리카로 행선지를 잡았다. 김 총재는 코트디부아르에서 청년들을 만나 “무척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학업에 매진했고 결국 세계은행 총재가 됐다”며 “여러분도 세계은행 총재가 될 수 있다”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아프리카야말로 내 최우선 관심의 대상”이라며 “아프리카 성장과 성공에 매우 열성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미 김용 총재는 지난 1987년 ‘파트너스 인 헬스(Partners In Health)’라는 비영리 의료단체를 설립했다. 아이티, 페루, 러시아, 말라위가 그의 주 무대였다. 김 총재는 아이티에서 10여 년 동안 결핵환자 10만명 이상을 치료하는 성과를 보였다. PIH에서 17년 동안 일하면서 전 세계 40여 개국에 이 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2만달러에 달하는 약품을 아이티에서 200달러로 낮춘 것은 그의 혁신적인 성과다. 2003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 국장으로 자리를 옮겨 ‘3x5 이니셔티브’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05년 말까지 개발도상국 에이즈 환자 300만명을 치료받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비록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그의 프로젝트로 인해 2012년 현재 아프리카 에이즈 누적 치료자 수는 700만명을 넘어섰다.
김 총재의 관심은 빈곤국에만 집중된 것은 아니다. 그는 최근 빈곤국에 집중돼 있던 세계은행 지원 기능을 선진국으로 확대할 가능성도 열어 놨다. 김 총재는 지난 7월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세계은행에는 인프라스트럭처 투자나 빈곤 퇴치 같은 분야에 전문가가 많다”면서 “세계은행만이 갖고 있는 이런 기술을 그리스와 같이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선진국에도 전수하고 컨설팅해주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공부벌레 절대 반기지 않아
김 총재는 2009년부터 올해까지 재직했던 다트머스대 총장 시절 다양성을 추구하는 교육철학으로 매스컴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한국 교육의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자주했다. 한 방송 인터뷰에서 “책만 보고 공부만 한 ‘공부벌레’들은 대부분의 학교에서 반기지 않는다”며 “모든 학생이 좋은 학점에 클럽 리더이고 체스를 하고 바이올린을 켠다면 얼마나 지루하겠느냐”고 말했다.
오히려 다양성과 자유로움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서로 다른 생각, 다른 모습을 한 학생들이 모여 함께 배워나가는 것이 올바른 학교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 부모들에게 “아이가 원하지 않는데도 부모가 어떤 것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며 “학생이 강요받아서 했다는 것이 우리(대학당국) 눈에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인문학과 운동, 예술 활동은 그의 교육철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김 총재는 “한국이 기술에만 집중해서 발전하겠다는 생각은 잘못됐다”며 “심지어 일부 학교에서 인문학과를 폐쇄한다는데 그것은 옳지 못하다”고 한국 교육당국을 꼬집기도 했다.
그는 일반 청중과 대학생 등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총재는 다트머스대 총장 시절 인터뷰에서 “내가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뭔가 큰일을 하기 위해’ 일하라는 것”이라며 “조만간 한국 젊은이들과 만나서 이런 부분에 대해 강연을 하고 이야기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운동 예술 인문학 애호가
김 총재는 만능 스포츠맨이다. 그는 “운동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집중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더 많이 더 열심히 운동할수록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운동 예찬론을 펼치기도 했다.
또 그는 김 총재는 예술을 사랑하는 인물이다. 평소 피아노 예찬론 등을 펴던 그는 매년 열리는 다트머스 대학 가요제인 ‘다트머스 아이돌’ 결승전 축하무대에서 춤을 추기로 했다. “대충하지 않고 제대로 연습하겠다고 결심했다.
한 달 동안 4~5회 정도 보이스 코치에게 수업을 받았다.” 준비 과정을 묻는 말에 대한 그의 답변이다. 뉴욕타임스는 김 총재의 세계은행 후보자 지명을 전하는 ‘세계은행의 수장으로 오바마가 대학 총장을 선출하다(College President Is Obama’s Pick for World Bank Chief)’라는 기사에서 아이돌의 모습을 한 그가 춤추는 사진을 걸어 놓았다.
예술을 사랑하며 권위에 얽매이지 않는 모습을 미국 사회에서도 호평하고 있다는 증거다.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5세 때 미국으로 이민간 그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오와주 머스커틴 고등학교에서 전교 회장과 수석 졸업생 대표로 졸업했고 1982년 브라운대를 거쳐 하버드대 의학 박사(1991년)와 인류학 박사 학위(1993년)를 받았다.
2005년 US뉴스앤월드리포트의 ‘미국의 최고 지도자 25명’에 선정됐고 2006년에는 타임이 뽑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히기도 했다.
김 총재는 오는 10월 9일 제13회 세계지식포럼의 연단에 서서 ‘우리의 꿈은 세계 빈곤의 해방’이라는 세계은행의 정신을 설파한다.
“한국의 성공사례는 ‘어떤 나라라도 발전할 수 있다’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나에게 심어줬다.” 지난 7월 그가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밝혔던 것처럼 수여국에서 공여국으로 발돋움한 한국의 위상을 직접 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