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교육은 한 개인의 행복한 삶을 지지해줄 뿐 아니라 국가의 경제적 건강까지도 받쳐준다. 최근의 금융위기가 보여주는 것처럼 금융상품이나 금융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의사결정을 한 소비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총체적으로 광범위한 경제적 안정성을 증진하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미국경제뿐 아니라 세계경제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로 꼽히는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금융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서 주목된다. 세계 금융시스템이 마비됐던 2008년 금융위기 때 돈을 퍼부어 시스템을 살려냄으로써 ‘헬리콥터 벤’이란 애칭까지 얻은 그가 금융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버냉키 의장은 지난 8월 7일 워싱턴DC에 있는 연준의 타운홀에서 미국 전역에서 올라온 교육자들을 대상으로 왜 학생들에게 금융교육을 해야 하는지를 강조했다. 버냉키 의장은 이틀 후인 세인트루이스 연준은행이 주최한 텔레콘퍼런스에서도 학교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경제적 사건들을 이용해 수업을 해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금융시장이 어떤 때 잘 작동하고 어떤 때 잘 작동하지 않는지, 또 대학 교육을 위해 돈을 들여야 좋은지 등도 다뤄보라고 했다.
의사결정 전반을 제대로 하게 한다
“효과적인 금융교육은 학생들에게 단지 금융상품에 대해 가르치고 금융에 관한 계산을 연습시키는 것만이 아니다. 학생들로 하여금 중요한 금융 관련 선택을 하는 데 필요한 본질적 기법이나 개념을 가르치는 것까지 포함한다. 고등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더라도 그들이 1년 뒤 생애 첫 번째 차를 산다거나 학자금 대출을 받을 때 대출에 관한 교육에서 구체적 정보를 떠올리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적어도 어떤 기초적 개념을 이해하거나 기억하고 있다면, 예를 들어 대출을 받더라도 최저 이자율을 적용받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본다거나 금융기관 수수료를 하나하나 따져본다든가, 상담사나 자문업체에 연락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면 적어도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가능성은 훨씬 커질 것이다.”
학생들이 자라서 의사결정을 할 때 경제적 사고방식을 어떻게 적용하는가를 가르쳐주는 게 지금 학생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아주 가치 있는 교육 중 하나란 게 버냉키 의장의 지론이다. 한마디로 경제지표 몇 가지를 가르치는 것보다 경제적 사고를 실생활에 적용하는 연습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버냉키 의장은 또 학자금 대출로 인한 빚이나 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그 빚을 갚을 수 있는 준비를 했는지 여부 등 현실적 주제들이 학생들의 관심을 끌고 있고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고 했다.
“경제적 사고를 해본 학생들은 그들 스스로 인적자본 형성을 위한 투자로서 고등학교 이후 교육에 대한 지출을 보다 더 개념화할 줄 알고 학교 선택이나 교육과정, 자신들의 교육을 위한 지불수단, 마음속에 두고 있던 전공의 선택 등에 있어서도 보다 적절하게 개념화할 줄도 안다. 비용-편익 분석 같은 경제적 도구들은 학생들이 개인의 의사결정이나 금융의사결정을 보다 건전하게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조기 금융교육이 합리적 지출 습관 길러줘
버냉키 의장은 이 같은 조기 금융교육이 규칙적인 저축을 하게 만드는 등 생애 자산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뿐 아니라 합리적으로 소비하도록 유도한다고 덧붙였다.
“예산 수립이나 위기에 대비한 저축, 은퇴준비와 같은 스마트한 파이낸셜 플래닝은 금융 쇼크가 진전되는 동안 가계가 보다 나은 삶을 향유할 수 있도록 돕게 된다. 금융교육은 이러한 성과를 얻는 데 핵심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버냉키 의장은 그 근거로 연준 연구진이 젊은 군인들을 대상으로 금융교육의 영향력을 연구한 결과를 소개했다. 고등학교에서 금융교육 과정을 이수한 사람들은 보다 규칙적으로 저축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버냉키 의장은 특히 금융교육은 금융거래에선 물론이고 생활 전반에 걸쳐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증진시켜준다며 이는 학교가 학생들에게 가르쳐줄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금융교육은 학생들에게 중요한 기법들을 보다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발전시킬 수 있는 맥락을 잡는 능력을 키워준다. 올바른 금융의사결정을 하려면 믿을 만한 소스로부터 적절한 정보를 취득해야 하고 비판적 사고나 수리적 추론, 다양한 의사결정 기법 등을 적절히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역량들은 학교가 학생들에게 심어줘야 할 일종의 근본적 능력이기도 하다.”
강의 후 제니퍼 매칼레이디 노르만디고교 교사가 학교에서 경제교육과 금융교육을 추가로 더 해야 하는지를 묻자 버냉키 의장은 우회적으로 그래야 한다고 밝혔다.
“사람들이 매일 무엇을 하는지 생각해봐라. 어른들이 자금을 운용하고 은퇴준비를 할 때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봐라. 경제에 대한 지식과 금융에 대한 지식은 교육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학생 통해 부모까지 교육
그렇다면 학교는 어떻게 학생들에게 금융교육을 할 것인가. 버냉키 의장은 구체적 방법론까지 제시했다.
“다른 종류의 교육과 마찬가지로 (금융교육) 콘텐츠의 포맷이나 질은 매우 중요하다. 현실적이고 재미있으며 또한 적절한 내용의 금융교육을 제공해야 학생들이 금융관련 정보를 숙지하고 그런 정보에 관심을 갖게 된다. 게임이나 시뮬레이션은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흥미를 갖도록 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버냉키 의장은 학생에게 금융교육을 함으로써 이미 교육받을 시기를 넘긴 부모들까지 가르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나는 2010년에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시에 세운 청소년 금융학력공원(The Junior Achievement Finance Park) 개장식에서 연설을 한 적이 있다. 이 기구는 미국 전역에 있는 유사한 기구들과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한 가정의 가장 역할을 맡아 금융 위기나 기회에 대처하도록 함으로써 실제 상황에서 그들이 실제로 금융의사 결정을 하도록 도와준다. 학생과 부모는 이 과정에서 여러 세대가 함께 하는 숙제 같은 것을 통해 금융지식을 습득하게 된다. 이러한 금융교육은 교실에서 배운 개념들을 보강해준다. 또 이러한 전략으로 교사들은 이때까지 금융개념에 접해볼 기회를 갖지 못한 성인들까지 도울 수도 있다.”
교수 출신 의장다운 설명이다. 버냉키는 효율적인 금융교육을 하려면 커리큘럼이 명확한 기준과 목표를 갖고 있어야 한다며 연준이 참여해 만든 교육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연준이 멤버로 참여하고 있는 연방 금융지식 교육위원회(Financial Literacy and Education Commission)는 금융교육이 반드시 다뤄야 할 다섯 가지 핵심 역량을 정립해 놓았다. △근로소득을 포함한 소득(Earning and Income)과 △지출(Spending) △저축과 투자(Saving and Investing) △대출(Borrowing) △방어(Protecting) 등이다. 각각의 핵심역량을 보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일련의 관련된 지식과 기법, 상응하는 행위 등까지 다루게 된다. 예를 들어 근로소득을 포함한 소득의 범주에선 학생들은 그로스 임금과 네트 임금의 차이를 배우고 또 후생제도와 세금(Benefits and Taxes) 같은 정보에 대해 배우게 된다.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들은 근로의 대가로 받아야 할 것들에 대해 알게 되고 회사에서 받을 수 있는 복지혜택을 온전히 받을 수 있게 된다.”
버냉키 의장은 다섯 가지 핵심 역량이 미국 경제교육위원회가 개발한 미국 개인금융 기준(The National Standards for Personal Finance)을 반영하고 있다고 했다. 물론 이 기준을 만드는 데 연준 인사들이 참여했다고 한다.
한편 버냉키 의장은 최근 금융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두 부문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편으로는 거시적 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금융시스템 전반을 감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기관의 자기자본비율을 높여서 금융시스템의 안전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