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위원장이 2007년 당시 한나라당 대선주자로 나섰을 때 내세웠던 시장주의적 경제공약과 비교하면 지금의 경제관과 편차가 상당하다. 이명박과 박근혜 두 대권 후보의 경제공약은 사실 큰 차이가 없었다.
각각 747과 줄푸세로 상징되는 시장주의 또는 성장주의가 뼈대였다. 줄푸세란 세금을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바로 세운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난 5년간 성장 중심의 정부 정책을 실패로 규정하는 목소리가 비등했다. MB정권과 차별화할 필요성이 커지면서 박 위원장의 경제관도 변화가 불가피했다.
5년이 흐른 지금 가장 큰 변화는 2007년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내세웠던 대표적인 경제공약인 ‘줄푸세’ 가운데 ‘줄’을 사실상 폐기한 것이다.
2007년 경선 때 박 위원장에게 ‘줄푸세’를 제안한 김광두 서강대 교수는 “ ‘줄푸세’에 관한 오해가 많다”며 “ ‘줄푸세’는 엄밀히 말해 (무한경쟁과 시장 원리만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앞으로도 ‘푸’와 ‘세’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설명이다. 서비스업 등에서 규제 완화가 더 필요하고 법질서 바로 세우기는 우파정당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가치라는 것이다.
박 위원장이 소득세나 법인세 증세에 소극적이란 점은 야권과 차별화되는 포인트다.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 방법을 고민하지만 국민 대다수에게 부담을 주는 증세는 머릿속에 그리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증세로의 노선 전환은 아니지만 최소한 감세정책 폐기 선언이다.
성장이란 단어가 전면에서 사라진 점도 특징이다. 그 대신 경제민주화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대기업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근절, 중소기업 업종에 재벌 진출 방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등을 내세웠다.
박근혜노믹스 핵심은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
측근들에 따르면 박 위원장의 가장 큰 관심사는 예나 지금이나 경제와 민생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박 위원장이 은둔 생활을 접고 공식 정치활동을 개시했던 것은 지난 1990년대 후반이다. 이때부터 박 위원장은 오랜 침묵을 깨고 학계에 포진해 있는 경제전문가들을 만나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박 위원장의 경제브레인 본류는 서강학파다. 서강학파는 남덕우 전 국무총리와 이승윤·김만제 전 경제부총리가 1세대, 김종인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 등이 2세대, 현재 박 위원장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을 이끄는 김광두 서강대 교수 등이 3세대로 분류된다.
지금은 국가미래연구원 원장인 김 교수를 비롯해 안종범(성균관대·비례대표 당선), 김영세(연세대), 신세돈(숙명여대), 최외출 교수(영남대) 등이 주축이고 이번에 분당에서 당선된 이종훈 명지대 교수 등도 브레인으로 꼽힌다. ‘원칙이 바로선 자본주의’ ‘맞춤형 복지’ ‘조세개혁’ 등 박근혜노믹스 근간은 이들과의 오랜 토론의 산물이다.
박 위원장의 경제 철학 변화가 처음으로 드러난 것은 지난 2009년 미국 스탠퍼드대 강연에서다.
당시 세계 경제는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혼돈 속에 있었다. 박 위원장은 금융위기 원인으로 ‘원칙이 무너진 자본주의(Undisciplined Capitalism)’를 꼽고 “민간과 정부가 자본주의 핵심 가치인 ‘자기책임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 역할과 기능이 새롭게 구축돼야 한다”면서 “관치주의는 안 되지만 시장경제가 작동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될 소지를 미연에 방지하는 역할은 정부가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근혜노믹스 핵심 중 하나인 ‘맞춤형 복지’ 개념이 강조된 것도 이 시기다.
시장경제체제의 한계가 사회양극화 심화로 현실화되고 있는 이상 이를 정부가 사후적으로 교정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소속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정부가 아동, 청년, 중장년, 노인 등 생애주기별로 맞춤형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되 이를 고용과 연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구체적인 정책 주문들을 쏟아내기도 했다. “복지재원 조달 해법으로 세출 구조조정-세입 증대 ‘6대4 비중’이 적절하며 SOC 투자를 줄여야 한다”(9월 20일 기획재정부 국감), “수출과 내수가 경제를 이끄는 ‘쌍끌이 경제’로 변화해야 하며 이를 위해 내수·수출 중립적인 환율정책 필요하다”(10월 6일 종합국감) “대·중기 상생 위해 ‘성과공유제’를 확대해야 한다”(10월 7일 종합국감) 등 발언이 그것이다.
실제로 이 발언들은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등을 골자로 한 새누리당 정강정책과 4월 총선 공약에 그대로 반영됐다.
‘박근혜 브레인’들이 전하는 박 위원장의 최근 경제관은 △시장경제 부작용 보완 △탈이념 현장주의 등으로 집약된다.
김광두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박 위원장의 기본 철학은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 ”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공정성과 양극화가 가장 큰 문제인데 그 배경엔 탐욕이 깔려 있다”며 “탐욕을 적정 수준으로 억제하기 위한 방법이 바로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라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박 위원장이 복지 원칙으로 내세운 ‘맞춤형 복지’ 역시 시장경제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사후적으로 보완하자는 의미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국민의 피부에 와 닿는 현장형 정책을 만든다는 게 박 위원장의 경제 철학”이라면서 “공정성·신뢰 등 박 위원장이 강조하는 원칙들은 결국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다만 신 교수는 “경제민주화를 곧 재벌 해체라고 이해하는 것은 큰 오해”라면서 “경제주체 간 균형 성장, 공존·공생, 불공정거래 차단 등 헌법에 나와 있는 기본 원칙을 충실히 적용한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총선 공약에 드러난 박근혜노믹스
총선 후 국립묘지를 찾은 박근혜 위원장.
박근혜 경제관은 새누리당의 지난 4월 총선 공약에 대부분 반영됐다. △재벌개혁 △골목상권 보호 △비정규직 처우 개선 △저출산문제 해결 등 거의 모든 분야가 망라돼 있다.
새누리당의 재벌개혁 방안은 구체적으로 △일감 몰아주기 등 대기업 사익(私益) 추구 근절 △담합 등 고질적 불공정거래 관행 근절 △지배주주 일가의 법 위반 행위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 등을 꼽을 수 있다. 과도한 하도급 단가 인하에 대해서는 ‘징벌적(3배) 손해배상제도’를 적용하고 일감몰아주기와 담합행위에 대해선 처벌을 강화한다.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서 새누리당은 대형마트·기업형슈퍼마켓(SSM)이 인구 30만명 미만의 지방 중소도시에 신규 진출하는 것을 5년 간 금지하는 방안을 입법화하기로 했다. 또 대기업이 무분별하게 중소기업 사업영역에 진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중소기업이 시장점유율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업종은 대기업의 점유율 한도를 현재 5%에서 1%로 하향조정키로 했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 분야에선 2015년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전면 폐지키로 했다. 근로자들에게 고정 상여금, 작업복, 명절선물, 식당, 주차장, 샤워장, 통근버스 이용, 경영성과에 따른 인센티브성 성과급 등도 정규직과 같은 수준으로 지급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저출산문제 해결을 위해선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는 만 5세 이하 전 계층 아동을 대상으로 매월 최대 20만원의 양육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만 5세 이하 전 계층 아동들에게도 월 최대 39만원에 이르는 보육료를 지급할 계획이다.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공약은 사병 월급 인상, 등록금 부담 경감 대책이 눈에 띈다. 노인들에게는 부분틀니 진료시 건강보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치매노인에 대한 장기요양보험 적용대상도 확대하기로 했다. 정부가 생애주기별로 맞춤형 복지서비스를 제공해줘야 한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