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ian] 낙동강 바람 전국구 태풍이 되나…‘노무현의 친구’ 문재인과 그의 브레인들
입력 : 2012.02.29 11:26:03
수정 : 2012.08.16 10:14:59
‘바람이 다르다.’
새누리당의 20년 텃밭인 부산 사상구에 출마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선거운동에서 쓰고 있는 캐치프레이즈다. 이전과 다른 바람이 일기를 바랐던 문 이사장의 바람이 정말 통했는지 총선에서 고전할 것으로 보였던 친노그룹 출신들의 돌풍이 거세다. 문 이사장은 대선 지지율에서도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치열한 접전 중이다. 야권의 선두 주자로 떠오른 문 이사장은 누구인가.
유력 대권 후보로 부상한 문재인은
기자가 지난달 부산 사상의 선거구에서 길거리 유세를 시작한 문재인 이사장을 만나서 받은 인상은 수수한 옆집 아저씨 그 자체였다. 동사무소와 새마을금고에 들르고 시장통을 돌아다니면서 인사를 건네는 모습은 아직 어색하기만 했다. ‘정말 야권의 유력한 대권 후보로 부상하고 있는 사람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수수해서 프로 정치인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문 이사장 주변의 사람들은 그의 캐릭터를 한마디로 외유내강의 전형으로 설명한다. 그는 주위 사람에게 큰소리 한 번 내는 법 없고 후배들에게도 말을 놓는 법이 없다. 청와대에서 민정수석을 2번, 대통령실장을 1번 맡았지만 청와대 모든 직원들에게 존대한 사실은 유명하다. 그러나 옳지 않은 것과 타협하지 않는 강단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능가한다는 평가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입니다. 문재인은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원칙주의자입니다.”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문 이사장에 대해 내렸던 평가다. 문 이사장보다 7살이나 위였던 노 대통령은 문 이사장이 사시에 합격한 뒤 초보 변호사로 법조계에 발을 디뎠을 때부터 그에게 하대한 적이 없었다. 솔메이트(soulmate)라고 할 만큼 문 이사장을 평생의 친구이자 정치적 동반자로 여겼다.
그가 이런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나 권력 핵심에 대해서도 공적인 판단을 내릴 때는 단호했기 때문이다.
지금 ‘문재인 대권론’의 진앙이자 참여정부 시절 문 이사장과 가장 가까웠던 실세 이해찬 전 총리와의 얘기도 유명하다.
문 이사장은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 ‘이해찬 전 총리가 부적절한 관계에 있는 인사들과 내기골프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심하던 노 대통령에게 이 전 총리의 해임을 촉구했다고 한다. 그의 원칙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외유내강의 문 이사장에게 우려의 목소리를 보내는 시각도 있다. 대권을 쥐고 국정을 책임지려면 어느 정도의 권력 의지와 정치인으로서의 적극성이 있어야 하는데 문 이사장에게서는 이런 부분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 민주통합당의 한 의원은 “문 이사장이 많은 장점을 갖고 있는 사람이지만 권력 의지가 너무 약해 주위에서 더 걱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안철수 원장이 총선 뒤 대권 후보로 나서겠다고 하면 ‘당신이 하시라’고 무조건 얘기할 사람”이라고도 평가했다.
진지하면서 진중한 성격도 그의 특징으로 거론된다. 문 이사장을 잘 아는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기자들과의 사석에서 “문 이사장을 만나 얘기를 나눠보니 역시 풍모와 사람됨은 높이 살 만했다. 정치권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지지율도 올라갔지만 이전과 다를 바 없이 평정심을 잃지 않고 겸손한 모습을 잃지 않더라”고 평가했다.
문재인의 경제관
경제 분야에 대해 문 이사장은 아직 명확한 입장을 말하거나 생각을 밝힌 적은 없다. 이명박 정권 출범 후 야인으로 돌아가 지내다 지난 연말에야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 각 분야의 정책을 마련하고 참모진을 꾸릴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총선 결과에 따라 자신의 거취가 명백해지면 문 이사장은 인재풀을 가동해 경제 분야 전문가들을 접촉하고 생각을 가다듬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문 이사장이 대권을 잡거나 정권 창출에 크게 기여할 경우 참여정부 때보다 더 ‘좌향좌’한 정책들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문 이사장의 인맥이 경제계 인사들보다는 노동계, 시민단체, 운동권 출신, 법조계, 노 전 대통령의 참모진 그룹, 진보적 학자그룹 등에 치우쳐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각종 정책 수립과 인재 발탁에 있어 실물 경제를 아는 인사들의 영향력이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다. 그러나 민주통합당 내부에서는 문 이사장이 시장경제나 개방경제의 원칙을 훼손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참여정부에서도 개방경제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노 전 대통령과 호흡을 같이했던 그의 소신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민주통합당 공심위원장으로 발탁된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의 시각과 태도가 문 이사장의 시각과 가장 유사한 것으로 꼽기도 한다. 강 위원장은 대기업 개혁을 주장한 1세대 학자이자 경실련을 창립한 사람이다. 수학 모델을 이용해 독점과 경쟁구조가 자원 배분에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분석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 위원장은 이념에 매몰되기보다는 실사구시를 중시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평소 그는 “시장제도는 인류가 발견한 자원 배분 방식 중 가장 진보한 것이다. 다만 그 결함을 고쳐 보자는 것이 시장개혁의 요체”라고 말해왔다.
강 위원장과 시각이 비슷한 것으로 알려진 문 이사장이 대기업 개혁과 공정한 경쟁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보편적 복지 및 공정한 경쟁과 분배가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는 가운데 문 위원장이 대권 후보로 부상한다면 경제 관료 중에는 예산통과 세제통이 다시 각광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의 성장을 위한 정책보다는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 참여정부의 정책 철학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핵심 수단은 예산의 우선순위 책정과 세제정책이다.
문 이사장 역시 이런 부분에 공감을 표시하고 있어 이 분야에 전문성을 갖고 있는 관료나 관료 출신 정치인들이 관심을 받고 있다.
문 이사장에게 많은 조언을 할 정치권 인물로 꼽히는 사람은 이용섭 민주통합당 정책위의장이다. 초선의 이 의원은 문 이사장이 참여정부 시절 발탁한 사람이다. 문 이사장은 당시 관세청장을 역임한 호남 출신의 이 의원을 참여정부의 초대 국세청장으로 발탁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 의원은 국세청장 재임 시 박원순 변호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세정개혁위원회를 둬 접대비 상한제, 골프와 유흥업소의 접대비 불인정 등 많은 세정개혁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후 그를 청와대 혁신관리수석, 행자부장관, 건교부장관으로 계속 기용했다. 이 의원은 현재 개방경제 자체를 부인하는 과격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민주통합당 내에서도 강단 있게 중심을 잡고 있는 인물이다. 경제 이슈이자 정치권에서 뜨거운 논란이 있었던 한·미 FTA와 저축은행특별법에 대한 문 이사장의 발언을 통해서도 그의 경제관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문 이사장은 지난 연말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한·미 FTA 처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힌 적이 있다. 그는 “한·미 FTA의 일부 내용에 독소 조항이 있는 것으로 보이고 재협상 과정에서 우리의 실리를 내준 측면도 있다”는 선에서 비판 수위를 조절했다. 한·미 FTA를 전면 철회해야 한다는 식의 목소리와는 거리를 둔 셈이다. 최근 영등포당사를 찾았던 문 이사장은 부산 민심을 잡기 위해 추진된 포퓰리즘의 전형 ‘저축은행특별법’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부산에 출마한 만큼 문 이사장은 저축은행 사태의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점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부실을 키우고 방관한 핵심적인 책임이 감독을 책임질 금융당국에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문 이사장은 국회 본회의에서 특별법이 통과되어야 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부산의 표심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포퓰리즘적인 법안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원칙을 지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분권과 균형발전에 국정 중심 둘 듯
국가균형 발전 선언 8주년 기념행사에서
문 이사장이 새누리당의 텃밭이었던 부산에서 당선될 경우 민주당은 물론 정치권 내에서 그의 위상은 급격히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대권에 도전하려면 외부적으로는 안철수, 손학규 등 야권의 잠재적 대권 후보들과의 연대가 필요하고, 안으로는 선거 기획과 정책 개발 등 대권을 향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이럴 경우 고 노 전 대통령이 대권 후보로 나섰을 때 그를 도왔던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안희정 충남도지사 같은 문 이사장의 참모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이광재 전 지사와 안희정 지사는 노 전 대통령이 대권에 도전하기 수년 전부터 국정현안과 정책에 대해 수시로 토론했고, 대선이 있었던 2002년에는 각계 인사들과 노 전 대통령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대선 당시 안희정 지사는 정무팀장을 맡아 386세대 지지자들을 규합했고, 이광재 전 지사는 대학교수 등 외부 자문그룹과 함께 정책개발 작업을 이끌었다.
12월 대선에서 필요한 정책 공약 개발은 성경륭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서는 총선 선거사무소와는 별개로 대선정책 개발팀이 이미 가동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한림대 교수 출신인 성 전 실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4년간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을 맡는 등 참여정부의 정책통으로 활약했다. 노 전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자 정책이 지방분권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성 전 실장의 부상은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그림자’를 자처하는 문 이사장은 참여정부 시절과 비교해 국정운영의 큰 틀을 바꾸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참여정부에서 정책실장을 맡았던 이정우 경북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 출범 뒤 한 강의에서 참여정부의 정책을 4가지 키워드로 정리한 적이 있다. △개혁과 개방 △사회통합 △균형발전 △장기적 관점의 접근의 4가지다. 개혁과 개방의 폭이나 속도에 있어서는 야권 내에서도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다른 3가지에 대해서는 문 이사장이 참여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하버드대에서 분배경제학을 전공하고 소득과 분배의 불평등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연구해 온 전형적인 분배론자다.
그러나 그의 논리의 기저에는 ‘성장과 분배가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신념이 깔려 있다.
참고로 이 교수는 우리 경제의 불평등 심화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4가지를 제시한 바 있다. △재산세 과표 현실화를 골자로 한 자산 재분배 정책 △일자리 창출과 차별 완화를 중심으로 한 소득 재분배 정책 △저소득층 보호를 목표로 한 빈곤 대책 △주거비와 과외 교습비 등 지출 부담의 축소 등이 그것이었다.
이런 아이디어들은 앞으로도 문 이사장의 국정철학 형성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고 보인다. 문 이사장이 국토의 균형발전뿐 아니라 계층 간 균형성장과 분배 공정성에 대해 어떤 해법을 제시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