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중순 가까스로 날을 잡아 '식객'의 만화가 허영만의 서울 자곡동 화실을 찾았다. 화실은 서울이지만 아파트보다 산이 보이는 시골 같은 마을에 있다. 허 화백이 수십 년 살던 집인데 거실은 문하생들이 쓰고 허 화백은 안방에 진을 치고 있다.
객이 찾아가니 문하생들이 건넌방으로 안내한다. 그렇지만 허 화백의 작업실을 보고 싶어 안방으로 향했다. 방은 벼룩시장을 연상케 했다. 아니 진짜 벼룩시장만큼 재미있다.
허 화백은 앞뒤로 큰 책상 두 개를 놓고 쓴다. 뒤편 책상엔 우리말큰사전이나 '한국의 섬', '몽골', '몽골족과 훈족 바이킹족', '세계와인기행' 등 작업에 도움이 될 책들은 기본이고 허 화백이 모은 수많은 자료로 가득하다. 몽골인이나 숲, 독수리 등 동물에 관한 자료들이 별도 파일에 빽빽이 들어가 있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첩과 메모장이 또 장벽처럼 쌓여 있다. 그 사이사이에 메모가 꽂혀 있고 그래도 틈이 나는가 하면 어김없이 그 자리엔 건강보조제며 무슨 보따리 같은 게 메우고 있다.
책상 옆엔 파일 박스들이 여러 층으로 만든 선반에 빈틈없이 놓여 허 화백이 앉은 자리를 호위하는 듯하다. 앞쪽 책상에도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여러 자료들이 깔려 있고 그 위에 갓 펜 끝에서 태어난 따끈따끈한 작품들이 놓여 있다.
대조적으로 허 화백의 책상 앞엔 꽤나 품위 있는 오디오 세트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고 클래식 음악이 쉬지 않고 흐른다. 오디오 시스템 위에는 몽골에서 가져온 여우털 모자가 역시 꽤나 근사하게 자리 잡고 있다.
얼핏 보면 전혀 조화롭지 않을 분위기인데 찬찬히 뜯어보면 연륜과 격조가 묻어난다.
재미있으면서도 사실적인 만화
허 화백은 두 책상 가운데 앉아 동시에 대여섯 가지인지 십여 가지인지 모를 많은 자료들과 씨름하며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래서일까. 허 화백의 얼굴이 예전보다 핼쑥한 것 같다.
“9월 초 백두산 갔을 때 감기 몸살이 걸려서 그래. 얼마나 지독한지 체중이 4kg이나 줄었다가 이제 겨우 2kg 회복됐어. 지금까지 까불었는데 그게 아니구나 싶어.” 그렇지만 허 화백은 잠시도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벽면엔 그의 일상을 읽을 수 있는 메모들이 잔뜩 붙어 있다. 그중 하나는 이렇다.
백두산 다녀와 감기몸살 앓은 뒤 체력을 회복하려고 짠 시간표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후 시간을 벌기 위해 1시간 당겨 일어나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다른 메모를 보면 그럴 만도 하다.
‘4시 기상, 4:30 화실 신문 아침식사, 06:00 작업시작, 13:00 작업 끝, 점심 명상 운동’
이대로라면 문하생들이 무척이나 고달플 것 같다.
“요즘 그렇게 하라면 다 도망가지. 아이들은 10시까지 나오라고 해. 그 전에 내가 할 일을 다 해놓는 거지.”
그렇게 일찍 화실에 나오는 허 화백의 아침 식사는 어떨까.
“아침 식사? 누룽지 불려서 먹어. 끓일 필요도 없이 따뜻한 물에 잠깐 담갔다가 먹으면 돼. 거기에 김치나 새우젓 곁들이면 그만이지.”
벽면 메모는 계속된다. 2010년 3월23일엔 이런 메모도 했다.
‘餘裕, 천천히, 길게, 충분히’
내용이 궁금했다. 허 화백은 너무나 바쁘게만 살아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너무 바쁘게 살아 나를 찾는 시간이 부족했어. 요즘 '혼자 사는 즐거움'이란 책을 읽고 있어. 사회생활과는 다른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미국 사람이 썼는데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벼룩시장을 가더라도 휙 지나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꼼꼼히 보면 아름다움이 보이고 즐거움도 보인다고 해.”
허 화백은 화실서 흰색 테의 돋보기를 썼다.
“MC몽이 흰 테 안경 쓰는데 사실 나도 오래 전부터 색깔 있는 테의 돋보기를 썼어. 흰 테 뿐 아니라 노랑 테, 빨강 테도 있지. 오래 전 누님이 아버지께 넥타이를 선물하는데 빨간색이었어. 그게 맞을까 했는데 상당히 좋아하시는 거야. 그래서 ‘노인은 홍색’이라는 말이 이해가 갔지. 나이 들수록 그런 색이 어울리는 거야. 김기창 씨가 빨간 양말을 신고 다녔는데 나이 들수록 빨간색이 맞는 것 같아. 그런데 내가 그 나이가 됐어.”
허 화백은 오디오 데크며 책꽂이까지 빨간 색이라며 “어디서 빨간 팬티라도 구해 입어야지…”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마라톤 풀코스보다 긴 그의 작품
허영만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제일의 만화가다. 70년대가 이상무, 80년대는 이현세의 전성기였다면 이후는 허영만이 독주하고 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작품 가운데 허영만을 상징하는 작품이라면 아마 ‘식객’일 것이다.
출판사는 식객 하나만으로 183만권이나 나갔다고 한다. 그의 인기가 얼마 만큼인지 짐작이 간다. 실제 전국의 한다하는 식당에 가면 으레 허영만의 사진이나 그의 만화가 액자에 걸린 것을 볼 수 있을 정도다.
지난 연말부터 식객의 에피소드를 지역별로 묶은 '식객 팔도를 간다'가 나오고 있어 그의 식객 시리즈는 곧 200만부를 넘길 전망이다.
허 화백에게 몇 편이나 그렸는지 물었으나 스스로도 다 꼽을 수 없다고 했다. '식객'이나 '타짜', '히트' 등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진 작품만도 열 손가락 가지고는 꼽을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할 만큼 많으니 당연한 얘기다.
그렇다면 그가 그린 그림을 이으면 얼마나 될까.
“아마 십 수만 장은 될 거야. 정확히는 모르고. 정신없이 그리기만 했지.” 넉 장을 1m로만 잡아도 그의 작품을 이으면 40km가 훨씬 넘는다. 지금까지 그린 그림의 길이가 마라톤 풀코스보다도 긴 셈이다. 그래서 여유를 갖고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꼼수 부리지 않는 우직함이 일등 비결
[식객]의 두 주인공 진수와 성찬
그렇게 많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그의 원칙은 무엇일까.
“책상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한다.”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아무리 재주가 있어도 오래 앉아 있어야 결과가 나오고, 결국 책상에 오래 앉아 있는 사람이 이긴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후배들에게도 그런 얘기를 한다.
“잔인한 주문 같지만 그래야 해. 혼자 할 때도 6~7시간은 앉아 있어야지. 꾀부릴 수가 없어.”
이 대목에서 허 화백이 언젠가 한 강연에서 “똥꼬가 화났다”고 한 얘기를 꺼냈다.
“옛날 만화가는 결핵을 많이 앓았어. 좁은 방에서 담배 피워대지, 술 많이 마시지…. 그런데 요즘은 치질이 문제라고들 해. 오래 앉아 있어야 하니 화가 날만도 하지.”
허 화백은 “세상에 한 방 없고, 공짜가 없다”고 한다. 고루하다고 할 정도로 정석을 고집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미련스럽게 했다. 다른 짓 할게 없어서 그랬지”라며 웃어젖힌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는 데생 하나를 하더라도 대충 지나치지 않는다.
“타짜 그릴 때는 노름꾼을 여러 명 만나서 그들 얘기를 제대로 들었지. 식객은 일일이 다 발로 뛰었어. 자료가 없어서 공부도 많이 했고 취재도 많이 했고…. 지금 하고 있는 징기스칸(다음 웹툰에 연재 중인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말무사)') 을 하기 위해 몽골에 두 번 다녀왔고 또 책을 많이 읽었고….”
언제든 칼 뽑을 준비하고 있어야
허영만은 한국 최고의 만화가일 뿐 아니라 숫한 후배를 키워내기도 했다. 웹툰 '이끼'로 단숨에 스타 반열에 오른 윤태호와 '기계전사 109'의 김준범 등 그의 문하생들은 허영만 사단을 이룰 정도다. 허 화백에게 만화의 길을 걷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했다.
“이 판이 안 좋아져서 할 말이 없어. 그렇지만 만화가 없어지지는 않아. 그러니 언제든 칼을 뽑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지. 잘 갈아두었다가 필요할 때 즉시 뺄 수 있어야 해.”
아울러 일만큼 노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언젠가 낚시터에 갔는데 한 선배가 보따리 싸들고 와서 일을 하는 거야. 그게 뭐야. 그건 아니야. 그래선 몸만 피곤해져. 놀 때는 잘 놀아야 해. 그래야 일할 때 모두 잊고서 할 수 있어.”
만화와 관련해서 그는 독자를 생각하라고 했다.
“정확한 데생력을 키울 생각보다 재미있게 표현하려고 해야 해. 잘 그리는 것보다 재미있어야지. 그래야 계속 그릴 수 있고, 남에게 보여줄 수 있어. 아무리 잘 그려야 뭐해. 재미없으면 독자에게 다가설 기회조차 얻을 수 없는 걸.”
'식객' 이후 8년만의 대 서사시 '말무사'
허 화백은 지금 다음 웹툰에 칭기즈칸의 일대기를 다룬 만화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말무사)'를 연재중이다. 그 중 1, 2권이 최근 김영사에서 단행본으로 나왔다. 웹툰을 보면 그의 신작도 인기가 높을 것 같다. 다음 웹툰에 연일 열혈팬들이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그냥 만화를 보러 방문하는 정도가 아니다. 매일 누가 먼저 들어왔는지 경쟁까지 한다. 그들은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란 긴 제목조차 네티즌 특유의 축약어(말무사)로 바꿔 진짜 제목처럼 만들었다. 촌평을 이어가고 칭기즈칸 전기를 읽은 일부는 다음에 무슨 내용이 나올지 중계 내지 해설까지 한다. 무성영화 시대의 변사처럼….
젊은 네티즌의 감성을 자극하는 젊은 만화가들이 즐비한 세상에서 거장이 굳건히 버티고 있는 것은 그들 수준에 맞춰주는 것 이상의 무엇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칭기즈칸을 연재하려고 3년을 준비했다. 매체를 생각하지 않고 준비했어. 현지를 두 번 다녀오기도 했고, 준비가 다 됐을 즈음 연재 매체를 섭외했지.”
그렇다면 그는 많은 소재 가운데 왜 칭기즈칸을 택했을까.
“위인 얘기는 많은데 그중에서도 칭기즈칸은 이야기를 아주 잘 만들어내는 사람이 만든 것처럼 재미있어. 그래서 전부터 하고 싶었지. 게다가 남이 완전히 해놓은 것을 하는 것은 재미가 없는데 칭기즈칸은 역사가 완전하지 않을 때 얘기라 내가 들어갈 틈이 많아.”
허 화백은 작품에서 창작이 차지하는 비중이 반 이상이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소설가 이상으로 대상을 파고들었다.
“책마다 이야기가 다르고 연대도 틀려. 문자가 없던 당시 구전되던 것을 모았기 때문인 것 같아. 그래서인지 몽골 기록이 다르고 중국의 기록이 다르고 또 유럽의 기록이 달라. 그런 것들을 종합해도 빈 곳이 있는데 그 때는 ‘이랬을 것이다’라고 스토리를 짜서 넣었지.”
실제 '말무사'에는 테무진이 금나라 군사에게 잡혀 오랫동안 노예생활을 하다가 부족의 장군을 구해 탈출하는 장면이 그려졌고, 샤먼들의 역할이 다채롭게 소개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말무사'의 스토리는 이제까지 나온 어느 칭기즈칸 전기보다 방대하고 내용도 풍부하다. 그런 게 '식객'이나 '타짜' 등에 나타났던 허영만 만화의 강점이다. 이렇게 잘 짜인 스토리에 끌려 많은 PD나 감독들이 그의 작품들을 드라마나 영화로 만든 것이다.
“'말무사'는 안하던 칼라 작업까지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려. 한참 그리다보면 소설을 쓸 걸 괜히 만화가가 됐다는 생각이 들 정도야. 전쟁을 할 때 양쪽에서 1만 명씩 나와 붙는다고 해봐. 소설이라면 ‘1만 명씩 2만 명이 나와 벌판에서 맞붙었다’라고 쓰면 끝인데 나는 2만 명을 그려야 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웃음)….” 농으로 껄껄 웃으며 한 얘기지만 컷마다 담긴 그의 열정을 이해할 만했다.
허영만이 보는 칭기즈칸
[말무사] 주인공 테무진
'말무사'는 연재를 시작한 지 1년이 넘어 오래 전 300회를 넘겼다. 자연히 허 화백은 칭기즈칸 전문가(?)가 됐다.
“느낀 점이 뭐냐고? 땅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확보했다는 것이지. 아무튼 놀라워. 통신수단이 전혀 없을 때인데 그 많은 부하를 어떻게 통솔했는지. 많은 부하를 다루다보니 실제 전쟁에서 ‘공격 앞으로’ 했다가 그만두라고 해도 한쪽에선 끝까지 가기도 했다고 해.”
그렇다면 칭기즈칸은 어떻게 아시아 끝에서 유럽 중심부에 이르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허 화백은 충분한 보상과 엄격한 규율을 꼽았다.
“귀족들이 정치할 땐데 칭기즈칸은 신분을 따지지 않고 등용했어. 노예라도 능력이 있으면 충분히 보상했고 남자가 전쟁에 나가서 죽으면 가족들을 끝까지 보살폈지. 깡패 두목들이 부하의 가족을 보살피는 것과 마찬가지야. 사람 다스리는 재주, 이게 칭기즈칸의 큰 재산이야. 상벌이 명확했지. 그에겐 남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포용성도 있었지. 종교도 모두 인정했고. 복종이라는 전제가 따르기는 했지만.” 몽골 사람과 몽골 말에 대해서도 그는 일가견을 보였다.
“제일 궁금했던 게 우리 체격 같은 몽골인들이 어떻게 유럽인들을 이겼을까 하는 점이었어. 그런데 몽골 갔더니 낯선 사람이 왔다고 하나 둘 나오는데 그게 아냐. 그들에게 라면을 나눠주는데 손이 얼마나 큰지 라면이 손 안에 가볍게 들어가는 거야. 가슴도 아주 두껍고 힘이 장사야. 시멘트 반죽을 할 때 우리는 시멘트 삽으로 깨작거리는데 그들은 넉가래처럼 큰 삽으로 버무리는 거야. 몽골 말도 힘이 좋아서 주인이 달리라고 하면 심장이 터질 때까지 종일이라도 계속 달려. 유럽 말은 커서 빨리 달리기는 하지만 단거리만 달릴 수 있는데…. 그걸 모르는 유럽인들은 멀리서 보고 사흘 뒤에나 올 거라고 기다리고 있다가 하루만에 들이닥친 몽골인에게 당한 경우가 허다하다고 해.”
허 화백은 그런 이야기들을 빈틈없이 그려낸다.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하게 취재하고 분석해 그림으로 담아낸다. 동물 삽화 하나를 그리더라도 걷는 동작과 뛰는 동작을 비교하며 근육의 움직임까지 살려내려 한다. 언덕이나 계곡을 그릴 때도 현지에서 찍은 사진이나 그게 없다면 작가들이 찍은 사진을 뒤척이며 현장감을 살리려고 애쓴다. 그게 ‘허영만표’ 만화다. 그래서 '말무사' 이후 무엇을 할지 벌써부터 궁금했다.
“(말무사를) 3년 계획했는데 겨우 1년 했으니 당분간 여기에 집중해야지. 다른 것할 여력이 없어. '식객' 할 때는 '꼴'을 함께 연재하긴 했는데 '꼴'은 공부만 하면 됐기 때문에 가능했어. 취재할 시간에 하면 됐기에 함께 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