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eism] 어드만 팔모어 美 듀크대 명예교수, "100세 시대 맞는 한국, 연령주의부터 극복하라"
입력 : 2011.09.28 16:18:51
수정 : 2012.04.05 11:46:05
“한국에서 노인을 공경하고 노인에게 권위를 부여하는 것도 한편에서는 고령자를 차별하는 ‘연령주의(Ageism)’에 해당합니다.”
노인을 배려하지 않는 게 오히려 노인을 돕는 것일까. 세계적 석학으로 꼽히는 어드만 팔모어 미국 듀크대 명예교수가 예(禮)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 던진 화두다. 그는 고령화와 평균수명 연장으로 ‘100세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한국 사회를 향해 “나이를 둘러싼 일상의 편견부터 걷어내라”고 조언했다.
한국연구재단 한국사회과학기반연구팀(SSK·연구책임자 김주현)이 지난 6월24일 주최한 ‘노인의 사회적 지위 변화와 연령주의 재고찰’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한 팔모어 교수는 일상에 숨어 있는, 지금까지 차별이 아닌 배려와 존중으로 인식했던 연령주의 현상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인터뷰는 학술대회 개회 전 '매일경제신문'과 단독으로 1시간 동안 진행됐다.
6월 24일 ‘노인의 사회적 지위 변화와 연령주의 재고찰’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한 어드만 팔모어 명예교수.
연령주의(Ageism)의 정의를 내린다면.
연령주의는 나이에 기인해 시작되고 사회적으로 정형화된 모든 편견과 오해를 의미한다. 나이 든 노인이 자전거를 타려고 할 때 위험하다며 만류한다거나 심지어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는 일상의 찬사조차도 연령주의에 기반을 둔 차별에 해당한다. 이런 인식은 결과적으로 노년세대의 사회적 자립성을 훼손하게 된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노년세대를 공경하는 의식이 강한 유교 문화권 국가였다. 연령주의에 대한 정의를 들어보니 한국 사회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대단히 생소한 개념 같다.
맞다. 한국과 일본은 특히 노인에 대해 굉장한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늘 받들어 모셔야 하고 권위를 부여해야 하는 이 같은 인식이 정작 노년세대의 행복한 삶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자. 한국처럼 나이와 경로사상을 중시하는 유교 문화권 국가에서는 생소하겠지만 노년세대가 ‘나이와 무관한(age-irrelevant)’ 동등성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연령주의가 다른 인종차별이나 성차별보다 더욱 심각한 사회적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차별적 인식의 범위에 주목해야 한다. 연령주의 차별이 무서운 이유는 그 인식이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이상으로 세대 전반에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100세 시대 관련 정책을 처방하려면 한국 정부부터 노년세대를 다른 세대와 동등하게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을 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100세 시대를 준비하는 한국의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이자 출발점이다.
구체적으로 한국의 유교 문화가 연령주의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보나.
일본과 매우 유사하다. 사회적으로 정형화된 공경의식이 존재한다.
노년세대가 진정 무엇인지에 무심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예컨대 직업의 기회를 제공할 때도 노년세대에 대해서는 이 공경의식으로 인해 기회가 차단되는 역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1인 가구로 분열되는 사이에서 이 공경의식은 노년세대를 더욱 빠르게 모든 사회적 기회로부터 고립시킬 수 있다.
과거에 비해 많이 완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부양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게 존재한다.
일본의 사례를 연구해 보니 이미 미국과 같이 노년세대가 자녀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노년을 책임지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아직 한국은 이런 정도로 바뀌지는 않은 것 같다. 미국은 오히려 지나치게 독립적인 의식으로 전환돼 있다(웃음). 일본과 한국의 노년세대가 그동안 가족 중심의 사고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노년은 스스로 책임지고 스스로 즐거움을 찾아야 하는 시기다. 가족 중심의 사고에서 독립 중심의 사고로 부모들의 생각이 달라져야 할 시기가 왔다.
노년세대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는가.
미국의 경우 정형화된 편견이 심각하게 존재한다. 완강하고 유약하고 무식하고 더 이상 유용한 사회경제적 존재가 아닌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대부분 노년세대는 여전히 생산적이고 자발적으로 사회 봉사활동에 참여하고자 한다. 여전히 똑똑하다. 그들 스스로를 돌볼 수 있을 만큼 건강하다.
미디어의 잘못된 정보가 이런 연령주의 인식을 강화한다는 비판도 있는데.
신문·방송의 잘못된 이미지가 문제다. 과거에는 무용지물 같은 이미지로 노년세대가 그려졌는데 지금은 정반대의 왜곡된 이미지도 있다. 드라마에 출연하는 노년세대는 여전히 좋은 직장과 사회적 지위, 고급차를 소유한 세련된 이미지로 그려진다. 지나치게 과장된 이미지로 인해 실제 그렇지 않은 노년세대는 오히려 무기력감을 느낄 수 있다. 노년세대가 직면한 현실을 정확히 보여주려는 미디어의 노력이 필요하다.
노년세대가 자각할 수 있는 기회가 중요한국 정부는 100세 시대를 맞아 우리 사회에 필요한 다양한 정책 과제를 모색하고 있다. 100세 시대를 대처하는 정부가 어떤 점에 포커스를 맞춰야 하나.
나이 연장에 따른 사회적 변화상에 대해 한국 정부 역시 많은 고민과 걱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대단히 도전적인 과제지만 무엇보다 건강보험 정책에서 중대한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
미국 오바마 정부 역시 지난해부터 건강정책에서 커다란 변화를 모색해왔다. 한국 역시 사회적 관심과 동의가 필요한 건강보험정책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사회적으로는 무엇보다 노년세대가 활동할 수 있는 봉사활동의 기회를 넓혀주는 게 중요하다. 이들에게 사회적으로 어떤 기회가 존재한다는 자각을 북돋우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노년세대의 기회를 자전거 타기로 비유하는데 젊은 세대의 역할은 무엇인가.
지금 한국은 노년세대가 자전거를 타려고 하면 넘어져 다칠까봐 만류하는 시기다. 100세 시대를 맞는 한국은 노년세대가 자전거를 끌고 나오면 만류해서는 안 된다. 노년세대도 그만한 판단을 한다. 충분히 위험한 일임을 알고 시도하는 것이다. 젊은 세대는 단지 잘 타는지 관심 있게 지켜보고 혹여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지면 그때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된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한국의 정년제를 폐지하는 게 옳다고 권고한 바 있다. 당신의 견해는.
적극 찬성한다.
노년세대는 여전히 일을 할 수 있고 자원봉사에 그 어느 세대보다 적극적이며 여전히 똑똑하다. 지금 한국의 연령제가 나이 든 직장 상사의 정년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계속 존재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고령층의 근로 욕구를 높이기 위해 정년제 폐지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누구에게나 일할 권리나 일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이는 단지 나이로 규정지을 문제가 아니다.
현재 한국의 40~50대를 구성하는 베이비붐 세대는 향후 100세 시대를 이루는 핵심 노년세대로 부상하게 된다. 이들은 당신이 우려하는 바와 달리 기존 노년세대보다 높은 교육 수준과 근로 욕구로 무장해 있다.
높은 교육 수준과 보수, 사회적 지위를 경험한 세대가 존재한다는 건 국가적으로 행운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축복받은 국가다. 100세 시대를 구성하는 초기 세대가 이처럼 안정된 사회·경제적 기반을 갖고 노후를 준비하면 훨씬 국가적 부담도 덜할 것이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베이비붐 세대가 나중에 뛰어놀 지역 사회의 시니어센터를 잘 구축해야 한다.
한국의 경로당과는 다른 의미의 시니어센터다. 이곳에서 자신이 보유한 지적 능력을 토대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하자. 직장에서 퇴직했지만 사회적으로 퇴직하지 않고 계속 활동을 벌이면서 제2의 취업도 가능한 기회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사회에 조언을 한다면.
젊은 건 좋고 늙은 건 나쁘다는 사회적 인식이 끔찍하고 슬프다.
한국이나 일본은 노년세대에 대해 추상적인 공경 의식이 특히 강하다. 진정한 공경 의식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 봐야 할 때다. 정형화된 유교 문화적 공경 의식과 현실을 직시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공경의식 사이에서 어떤 게 옳은지 판단해야 할 때다. 노년세대를 공경하지만 정작 정년이 지나면 사회·경제적으로 고립되는 한국의 현실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