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주시의 아담한 공장. 내부로 들어서자 20여 명의 직원이 4대의 자동차를 조립하고 있다. 여느 자동차 생산 공장과 비교하면 단출하기 짝이 없는 풍경. 베이지 컬러의 내장과 가죽시트를 하나하나 손으로 밀어 넣고 조이자 다음 공정을 준비 중이던 직원이 자리를 교체한다. 30여 년을 한 가지 일에 몰두한 숙련공이 작업을 지시하면 20년 경력의 후배가 너트를 풀고 조이는 식이다. 약 1160여 개의 부품을 모두 한 팀에서 직접 조립, 두 달이 걸려야 완성차 한 대가 출고된다. 가격은 9400만~1억8000만원.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 데 불과 3.5초가 걸리는 수제 스포츠카 ‘스피라(SPIRRA)’의 산고(産苦)는 이렇듯 손으로 시작해 손으로 마무리된다. 지난 8월, 양산된 스피라 1호를 고객에게 전달한 김한철 사장은 “한국자동차성능인증 테스트를 마쳤을 때, 정식으로 한국 번호판을 달았을 때, 1호차가 출고됐을 때, 어느 정도 텀을 두고 기쁨을 나눴기 때문에 정작 고객에게 전달했을 땐 감흥보다 성취감이 컸다”고 소감을 전했다.
대학시절 이탈리아에서 자동차 디자인을 전공하고 귀국, 쌍용자동차에 둥지를 틀고 ‘무쏘’를 토해낸 그는 당시 그곳에서 아내이자 사업 파트너인 최지선 사장(현 어울림모터스 공동사장)을 만났다. 이후 1991년 기아자동차 연구소로 적을 옮기고선 3년 후 아내와 함께 자동차 디자인 전문회사 ‘프로토자동차(Proto Motors)’를 설립한다. 잘 나가던 회사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벽에 부딪혔다. 그러나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같은 수제 슈퍼카를 만들고 싶었던 그의 꿈은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킨다. 1999년 공부하는 셈치고 작업에 착수한 그는 엔진이 차축 중간에 있는 미드십 스포츠카 개발에 몰두했다. 스피라의 콘셉트카 ‘PS-Ⅱ’는 개발 2년 만에 완성된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확보된 자금이 이미 개발비로 소진돼 양산할 여력이 남지 않았던 것. 그런 그에게 현 어울림모터스 박동혁 대표이사가 선뜻 투자를 약속하며 스피라의 본격 행보가 시작된다.
“2009년 8월 유럽자동차성능인증을 획득했고, 올 3월 한국자동차안전성능인증을 획득했어요. 현재 해외 판매를 위해 딜러와의 계약 조건과 스피라 전기차(스피라 EV) 개발 마무리에 전력을 다하고 있고, 신규 사업을 검토 중입니다.”
수제 자동차의 걸림돌은 수많은 인증 조건
수제 자동차에 대한 매력을 묻자 김 사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스피라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선 스피라 같은 차종이 없었지요. 아직 시장은 크지 않지만 스피라는 같은 급의 수제 스포츠카와 비교했을 때 가격 대비, 성능이나 스타일, 구성부품의 퀄리티가 상당한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일률적인 양산차에 비해 나만의 멋을 추구할 수 있어요. 무엇보다 메이드 인 코리아입니다. 엄청난 매력이죠.(웃음)”
1호차 이후 현재까지 출고된 스피라는 11대(렌터카 주문 포함). 주문량을 소화하기 위해 주말도 반납하고 공장이 돌아가는 탓에 정작 김 사장 본인이 주문한 스피라는 내년 봄에나 인도될 예정이다. 물론 이 모든 상황에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김 사장은 수제 자동차 기업이 지속적으로 탄생하려면 생산조건이 완화돼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자동차 생산은 단독으로 할 수 없습니다. 수백 개의 협력업체가 필요하죠. 기존 업체들은 이미 대량생산에 맞게 설비 시스템이 구축돼 있어요. 또 주 거래처와 보이지 않는 종속관계 때문에 대응이 쉽지 않죠. 적은 량을 주문하려면 엄청난 노력과 설득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이 너무 어려워요. 자동차안전성능인증도 완화할 필요가 있어요. 차 한 대 생산에 두 달 걸리는 회사와 하루에 수백, 수천 대 양산하는 회사의 제품이 같은 기준으로 인증됩니다. 유럽이나 선진국에선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는데 우리나라만 유독 작은 기업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없습니다.”
김 사장은 향후 계획을 묻자 대뜸 ‘선박’ 이야기를 꺼냈다. 1년 생산량 200대가 기대되는 스피라가 3분의 2 이상 해외 수출이 예상되듯, 선박 또한 해외 수출을 염두에 두고 추진하는 것이다.
“스피라의 반응이 아직은 더디지만 6개월 후에는 진도가 빨라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유럽, 중국, 중동 지역에 딜러계약을 체결했어요. 또 스피라 전기차가 내년 상반기에 출시되고 2013년엔 후속 모델 출시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향후 계획 중인 선박은 역시 전기선박이죠. 현재 사업성 검토가 마무리 단계에 왔어요. 가능성? 그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웃음)”
▶ 김한철 어울림모터스 사장 8년간 이탈리아에서 자동차 디자인을 전공하고 1988년 쌍용자동차에 입사, ‘무쏘’를 디자인했다. 1994년 프로토자동차를 설립, 2인승 미드십 스포츠카 개발에 주력한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어울림모터스와 합병, 스포츠카 스피라의 양산에 성공했다. 현재 어울림모터스 사장으로 재직하며 해외 및 대외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안재형 기자 ssalo@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