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가 유수의 패션 하우스를 진두지휘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미켈레 노르사는 뜨거운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를 한 몸에 받으며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CEO 자리에 올랐다. 5년이 지난 지금, 페라가모는 어느 때보다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모든 제품을 제조하며, 최고의 품질과 혁신적인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최고의 럭셔리 패션 하우스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어 매우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지난 2006년 10월 이탈리아 페라가모 본사의 결정으로 CEO이자 제너럴 매니저로 임명된 미켈레 노르사의 소감이다. 그가 페라가모의 수장이 되었을 때 주어진 임무는 브랜드가 표방하는 품질과 독창성을 더욱 개발하고 발전시킴과 동시에 페라가모가 지니고 있는 특별한 잠재력을 수면 위로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 그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패션 하우스의 전문 CEO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패션 하우스의 역사와 전통 위에 현대적 감각을 덧입히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흠잡을 데 없는 비즈니스를 선보이고 있다. <매일경제>가 주최하는 ‘세계지식포럼’에 패션 하우스의 경영인으로는 유일하게 참가한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CEO 미켈레 노르사를 만났다.
한국을 자주 방문하나.
1년에 두 번 정도 방문한다. 한국은 페라가모에 굉장히 중요한 시장이기 때문에 자주 방문하는 편이다. 이번에는 ‘세계지식포럼’과 VVIP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패션쇼, 그 밖의 여러 가지 일을 하기 위해 찾았다. 보통은 이사회와의 미팅을 위해 온다.
많이 받는 질문이겠지만 한국에 대한 인상이 궁금하다.
25년 전, 처음 한국을 찾았을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남성 위주의 사회라는 인상이 강했다. 과거의 모습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대기업의 사장이나 일반 사원들이 입었던 유니폼 점퍼다. 물론 지금은 세련되고 패셔너블한 슈트 차림을 한 남성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은 아시아 시장 중에서도 패션 분야가 크게 발전한 나라다. 특히 미국이나 유럽의 잡지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의 훌륭한 퀄리티를 가진 잡지를 많이 보았다.
페라가모 매출에서 한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되나.
한국은 매출 규모면에서 4위다. 1위는 미국, 2위가 중국, 3위가 일본이다. 거의 매년 이탈리아보다 높은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구매력은 좋지만 매장의 공간 자체는 넓지 않다. 페라가모의 매장이 집중된 곳은 서울과 수도권으로 한정돼 있다. 매장을 여러 곳에 열 수는 없지만 매장의 규모를 크게 해서 좀 더 다양한 제품을 보여주려고 한다.
매장 확장 외에 한국 시장 공략을 위한 다른 방법은 없나. 럭셔리 브랜드의 마케팅은 소극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온라인 판매를 시작할 생각이다. 또한 연예인을 통한 홍보를 강화할 예정이다. 페라가모는 할리우드 스타들을 통해 널리 알려진 브랜드 아닌가. 앞으로는 한국 연예인과 적극적으로 작업할 것이다. 한국은 셀러브리티 문화가 발달된 나라다.
알고 있는 한국의 셀러브리티가 있나.
물론이다. 2005년 배우 김소연을 이탈리아로 초청해 맞춤 신발을 제작했던 적이 있다. 그 전에는 배우 이미연을 초청했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이벤트를 계속 할 생각이다.
출판 관련 일을 하다 패션 필드로 옮겨 왔다고 알고 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가장 큰 이유는 출판업은 국내에 국한된다는 특성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글로벌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출판은 한계가 있었다. 패션이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지 않나. 일을 하는 패턴도 훨씬 역동적이다. 본격적으로 국제 비즈니스, 특히 아시아 시장에서 일해보고 싶었고, 패션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페라가모 일을 시작하기 전 외부인으로서 바라본 페라가모와 CEO가 되어 경험한 페라가모는 어떻게 다른가.
사실 CEO로 부임하기 전까지는 페라가모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않았다. 물론 발렌티노에 몸담고 있었기 때문에 의류 쪽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페라가모는 신발이나 가방과 같은 가죽 제품이 강세인 브랜드여서 성격이 좀 달랐다. 페라가모 하우스에 들어와 브랜드가 지닌 역사와 전통을 알게 되면서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브랜드의 성공에는 기본적이면서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2006년 CEO가 된 이래 페라가모를 위해 어떤 경영을 했나.
페라가모는 설립된 지 90년 가까이 된 회사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큰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페라가모 패밀리와 디자이너들과 공통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추진했던 것은 보다 넓은 고객층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경우 페라가모 고객의 연령대는 젊은 편이지만 유럽이나 미주에서는 그렇지 않다.
브랜드의 타깃이나 고객층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떤 식으로 진행하고 있나.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상품적인 면에서 젊은층에게 어필하기 위해 노력했다. 현재는 온라인 사이트를 확장시키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볼거리가 많은 웹사이트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온라인 쇼핑이 가능하도록 제작할 예정이다. 한국에서는 올해 연말이나 내년 초에 페라가모 사이트에서 구매가 가능하도록 할 생각이다.
우리나라에서 럭셔리 브랜드가 온라인 판매를 하는 경우는 처음인 것 같은데.
미국이나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온라인 구매가 가능하다. 아시아에서는 한국에 처음으로 온라인 마켓을 오픈한다. 한국은 인터넷이 아시아의 어느 나라보다 발달된 곳이라 기대가 크다.
지난 2008년 밀라노에서 열린 80주년 기념 전시회를 찾은 적이 있다. 브랜드의 방대한 아카이브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감동스러웠다. 다른 브랜드보다 과거의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브랜드를 창시한 디자이너가 살아 있는 패션 하우스와 새로운 디자이너가 유지하는 브랜드의 차이점 때문이다.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죽은 지 50년도 훨씬 지났기 때문에 그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을 올바로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50년 전에도 굉장히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발휘했던 디자이너였다.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소재나 컬러를 사용하지 않았나. 때문에 그의 생각을 이어가는 것은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패션은 돌고 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것이 과거에 존재했던 것들이다. 과거를 무시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방법이다.
최근 럭셔리 브랜드는 패션뿐만 아니라 리빙이나 카페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시키고 있다. 페라가모도 다른 분야로 진출할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현재 운영하고 있는 호텔이 있기는 하지만 페라가모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 이름을 사용하면 브랜드의 이미지와 직접적인 관련이 생기기 때문이다. 두바이 지역에 초호화 아파트를 짓고 있지만 이 역시 페라가모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내세우지는 않는다. 현재로서는 브랜드의 이름을 걸고 사업을 확장할 계획은 없다. 앞으로도 그런 작업에 대해서는 신중을 기할 생각이다.
그렇다면 패션 하우스가 본연의 사업에서 벗어나 다른 분야로 확장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다른 브랜드는 나름의 방침과 내부 사정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옳다, 그르다 말하기는 힘들다. 페라가모는 핵심 사업인 패션 쪽에서도 변화를 주거나 확장시킬 만한 요소가 많기 때문에 다른 비즈니스를 진행할 계획은 없다. 패션에 집중할 것이다. 예를 들면 커스텀 주얼리의 범위를 넓히거나 하는 식으로 패션 카테고리 안에서 움직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계지식포럼’에 유일하게 패션 브랜드 CEO로 초대를 받았는데 어떤 연설을 했는지 궁금하다.
패션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주로 만나기 때문에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는 만날 기회가 적다. 세계지식포럼에 참가하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뜻 깊은 일이다. 새로운 고객층을 확보하는 방안에 대한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아시아 시장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