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나 증권사 창구에서 가입했던 펀드와 똑같은 상품을 온라인으로 손쉽게 가입한다. 판매수수료는 일반 펀드의 3분의 1 수준이다.’
지갑이 얇은 금융소비자들이라면 누구나 환영할 만한 일이 조만간 현실이 된다. 3월 일명 펀드 슈퍼마켓으로 불리는 ‘펀드온라인코리아’가 문을 열기 때문이다.
펀드온라인코리아는 자산운용사, 평가사, 유관기관 등 47개사가 주주로 200억원을 공동 출자해 지난해 9월 설립한 온라인 펀드 쇼핑몰로 증권사나 은행을 거치지 않고 자산운용사가 내놓은 각종 펀드에 가입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시중에 출시된 공모형 펀드를 한 곳에 모아 투자자들이 수익률, 수수료 등 조건을 비교하고 자유롭게 가입할 수 있다.
펀드온라인코리아는 오는 3월 26일을 디데이로 정하고 개설 준비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온라인펀드쇼핑몰에서 팔릴 펀드는 52개 자산운용사의 펀드 948개다. 대부분 펀드를 온라인으로 가입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저렴한 수수료 손쉬운 가입
펀드슈퍼마켓이 영업을 시작하면 펀드 투자자들은 지금보다 싼 수수료를 내고, 보다 쉽게 펀드에 가입할 수 있게 된다.
자산운용사들은 은행이나 증권사 등에서 팔리고 있는 기존 펀드에 클래스를 신설해 펀드슈퍼마켓에서 판매할 계획이다. 펀드는 판매 수수료에 따라 클래스가 구분되는데 펀드슈퍼마켓에서 팔 펀드는 ‘S클래스’로 수수료가 오프라인 판매 펀드의 3분의 1, 기존 온라인 전용 펀드인 ‘E클래스’의 절반 수준이다.
펀드온라인코리아가 책정한 판매 보수는 △주식형 0.35% △주식혼합형 0.35% △채권혼합형 0.25% △채권형 0.15% △파생상품 0.30% △재간접 0.25%이며 후취판매 수수료는 환매금액의 0.15% 내에서 차등 적용된다.
판매 펀드는 해외주식형이 304개로 가장 많고, 국내주식형이 299개, 국내혼합형 91개, 해외채권혼합형이 69개에 달한다. 머니마켓펀드(MMF)도 44개 상품이 판매된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펀드 슈퍼마켓이 문을 열었다.
미국의 찰스 스왑은 1992년 미국 최초로 펀드 슈퍼마켓을 시작했다. 1만4000개 이상의 펀드 상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펀드 슈퍼마켓 시장 점유율은 40%에 달한다. 주 고객은 자문업자(FA)와 10만~100만달러 규모의 금융자산을 가진 개인고객이다.
영국의 코펀즈(Cofunds)는 펀드운용이나 투자자문은 하지 않고 단순히 판매채널의 기능만 하는데 75개 자산운용사에서 1500개 이상의 펀드를 제공받아 판매하고 있다.
실명확인 위해 금융사 한 번은 방문해야
온라인 쇼핑몰에서 펀드 가입과 환매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펀드슈퍼마켓이라고는 하지만 최초에 계좌를 개설할 때는 실명확인을 위해 금융사 창구를 한 번은 방문해야 한다.
펀드온라인코리아와 제휴된 우리은행이나 우체국을 방문해 실명확인을 거친 후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지정해야 한다. 이후 온라인으로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다.
펀드슈퍼마켓은 개인별 포트폴리오와 투자성향 등을 입력하면 가장 적합한 펀드상품을 추천하는 프로그램 등을 준비 중이다. 전산 시스템 개발의 초점도 펀드 가입시간을 30~40분 수준으로 단축하는 데 맞췄다.
기존에도 온라인으로 가입할 수 있는 펀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상품이 한정돼 있었다.
또 펀드가 은행이나 증권사를 통해 판매됐기 때문에 은행이나 증권사가 추천하는 상품 또는 주력 판매상품에 가입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면 A은행 창구에서 B자산운용사가 설정한 C펀드에 가입하고 싶어도, A은행이 해당 상품을 팔지 않으면 가입할 수 없었다. 일부 은행들은 계열 운용사 펀드나, 수수료가 높은 펀드를 권유하는 부작용도 있었다.
하지만 펀드 슈퍼마켓을 이용하면 이런 불편 없이 투자자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상품을 고를 수 있게 된다.
다만 금융기관 직원에 비해 상품 이해도가 떨어지는 개인투자자들이 직접 펀드를 골라야 한다는 점에서 위험요인도 있다. 소비자도 신중한 선택을 위해 펀드에 대해 많이 알아보고 공부를 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중소형·외국계 운용사 환영
펀드 슈퍼마켓을 반기는 것은 소비자뿐이 아니다.
그동안 판매망 확보가 여의치 않았던 중소형 자산운용사나 외국계 운용사, 비은행 계열 자산운용사들이 대표적이다.
이들 자산운용사들은 판매사 눈치를 보지 않고 각 회사가 만든 상품을 판매하고, 평가받을 수 있어 펀드 판매가 늘어날 것으로 내심 기대하고 있다.
대형 운용사들도 펀드 저변 확대를 위해 적극적으로 펀드슈퍼마켓에 참여하겠다는 입장이다. 펀드 슈퍼마켓이 바람몰이에 성공할 경우 자본시장의 신규자금이 유입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기존 펀드 판매사인 은행과 증권사들은 펀드 슈퍼마켓의 등장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처지다. 펀드 슈퍼마켓이 기존 펀드 판매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을 염려해서다.
다만 펀드 슈퍼마켓이 경쟁력 있는 판매채널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펀드 슈퍼마켓에서는 투자자들이 직접 펀드가 어떤 상품인지를 찾아봐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여전히 증권사나 은행 등 펀드 판매처를 방문해 상담을 받고 싶어 하는 심리가 강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소수 인력의 전화상담만으로 펀드슈퍼마켓이 상품 설명을 충분히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도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훑어보고 온라인으로 책을 구입하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 펀드판매에서도 벌어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차문현 펀드온라인코리아 대표는 “여러 상품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고, 저렴한 수수료로 가입할 수 있는 것이 펀드슈퍼마켓의 최대 장점”이라며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인터넷 뱅킹 이용자가 많은 한국의 특성을 감안하면 온라인 펀드 판매도 연착륙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불완전 판매 우려
그러나 숙제도 남아있다.
오프라인 창구를 통해 전문인력한테서 상품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듣고 펀드에 가입하는 것에 비해 불완전 판매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펀드슈퍼마켓과 함께 독립투자자문업자(IFA)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IFA는 투자자 성향과 자산 현황 등을 고려해 적합한 금융투자상품 선택을 돕고 재무설계 등에 대한 자문을 해주는 자문업자를 말한다. 미국에서는 개인이 직접 펀드 슈퍼마켓을 통해 펀드에 가입하는 비율(6%)보다 IFA 등을 통해 가입한 비중(15%)이 더 높다.
박종수 금융투자협회장은 “자본시장 수요기반 확대와 펀드 불완전판매 등을 막기 위해 IFA는 꼭 필요하다”며 “상반기 중 협의체를 구성해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차문현 대표는 “펀드슈퍼마켓은 투자자들이 온라인을 통해 여러 항목을 직접 체크해야 다음 단계로 진행되기 때문에 오히려 불완전 판매 가능성이 낮다”며 “온라인으로 상품설명을 충분히 제공해, 불완전 판매 소지를 줄이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IFA 도입은 펀드 슈퍼마켓이 뿌리를 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펀드 정보 한눈에 원클릭 서비스
각 금융사의 펀드 상품을 한 곳에서 살 수 있는 슈퍼마켓과는 별도로 각종 협회와 자산운용사 등에 나눠져 있던 펀드 관련 정보를 한 곳에서 찾을 수 있는 온라인 시스템도 마련됐다.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협회는 투자자가 펀드관련 정보를 한 곳에서 쉽고 편리하게 검색할 수 있는 ‘펀드정보 원클릭(One-Click) 시스템’을 지난 1월부터 가동 중이다.
현재 국내에 등록된 자산운용사 및 펀드판매사 등 펀드관련회사는 약 240여 곳으로, 과거에는 펀드가입을 희망하는 소비자가 관련 정보를 검색하려면 각 회사나 협회 홈페이지를 수시로 들락거려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원클릭 시스템 도입으로 각 펀드별 특성과 수익률, 법률정보 등에 관한 내용을 금감원이나 금융투자협회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