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6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경매법정.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의 전용 85㎡ 아파트가 감정가 5억원에 경매에 나왔다. 이날 이 아파트에는 무려 23명이 입찰해 4억1259만원에 낙찰됐다. 감정가 대비 낙찰가율은 83%로 지난 1~3월 성남시 분당구 아파트 낙찰가율이 70% 후반대에 머무른 점을 고려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는 부동산 경기를 살리기 위해 내놓은 4·1 부동산대책으로 경매시장이 뜨고 있다.
경매정보업체 부동산태인에 따르면 4월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은 78.21%를 기록했다. 2월 76.84%, 3월 77.94%에 이어 계속해서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입찰 경쟁률 역시 2월 5.54 대 1, 3월 6.24 대 1, 4월 6.35 대 1로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4·1 부동산대책의 직접적인 수혜 대상이 아닌 경매시장이 이런 열기를 보이는 것은 조금은 이례적이다. 이번 대책으로 1가구 1주택자가 보유한 전용 85㎡ 이하 혹은 6억원 이하의 기존 주택을 연내에 구입할 경우 5년간 양도소득세가 100% 감면되지만 경매를 통해 집을 사면 양도세 혜택을 보기 어렵다. 규정상으로는 가능하지만 경매에 넘어간 집이 1가구 1주택자의 집인지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취득세가 면제되는 생애 최초 주택구입 혜택도 경매시장에서는 약간 동떨어진 얘기다. 일반인들이 첫 주택을 경매로 구입하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경매시장이 달아오르는 것은 앞으로 주택경기가 살아날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부동산시장에 선행하는 성격을 가진 경매시장 지표가 향후 주택경기에 대한 긍정적 전망을 등에 업고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강은현 EH경매연구소 대표는 “이번 대책의 핵심은 세금 혜택인데 경매의 경우 양도세와 취득세 면제 모두 사실상 혜택을 보기 어렵다”며 “그럼에도 지표가 좋아지는 것은 앞으로 주택경기가 좋아질 것이란 기대로 먼저 투자를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경매를 통해 집을 사면 실수요자들은 상대적으로 싼 값으로 집을 마련할 수 있고 투자자들은 시세차익의 폭이 더 커진다는 장점이 있다. 4·1 부동산 대책으로 시장이 살아나 활성화되기 전에 미리 집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경매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매시장에는 예전보다 많은 돈이 몰리고 있다.경매정보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4월 경매시장에서 팔린 수도권 주거시설 총 낙찰금액은 4887억9987만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인 4월 3205억9312만원과 비교해 1682억원가량 늘었으며 증가율은 53%나 된다. 대책 발표 전인 3월과 비교해서는 21% 늘었고 증가폭은 841억원이다.
수도권 주거시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파트의 경우에는 상승폭이 더 크다. 4월 총 낙찰금액이 3646억4138만원으로 지난해 4월 2320억9744만원보다 57%, 액수로는 1325억원이 늘었다. 3월과 비교해보면 28%인 804억원이 증가했다.
지역적으로는 부동산 침체와 노후화로 가격이 많이 떨어졌던 분당, 일산 등 1기 신도시 아파트들이 경매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4·1 부동산대책을 통해 리모델링 업계의 숙원이었던 수직증축이 허용되면서 이 지역 아파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책이 나온 직후인 지난 4월 2일 고양시 일산서구 일산동의 감정가 3억원짜리 동문굿모닝힐 아파트 전용 84.9㎡형에는 무려 45명이 몰려 2억2415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동일면적의 아파트가 올해 1월에는 1억9119만원에 낙찰됐던 것과 비교하면 3296만원 높게 팔린 것이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지역의 3월 아파트 낙찰가율은 77.46%를 기록했고 4월에는 80.7%로 높아졌다.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이 아직 70% 후반에 머물고 있는데 80%를 돌파한 것이다. 일산도 비슷하다. 같은 기간 고양시 일산동구의 경우 3월 71.01%에서 73.64%로, 일산서구는 68.81%에서 74.09%로 급증했다.
투자 상품으로는 오피스텔이 경매시장에서는 ‘핫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부동산경기 침체로 시세차익을 노리기 어려워진 후부터 꼬박꼬박 월세를 받을 수 있는 수익형부동산의 인기는 상승곡선을 그려왔다. 더욱이 부동산 투자 상품 중에선 값이 싼 축인 오피스텔을 경매를 통해 저가로 구입하려는 수요가 꾸준한 상황이다.
주거용 오피스텔은 지난 5월 7일 양도세 감면 대상에 포함됐고 9일에는 기준금리가 7개월 만에 0.25%포인트 인하되면서 저금리로 인해 오피스텔 투자가 상대적으로 더 매력적이게 됐다.
실제로 오피스텔이 4·1 부동산대책의 수혜를 입기 전부터 경매시장에선 인기가 있었다. 부동산태인에 따르면 서울 오피스텔 낙찰가율은 3월 79.95%, 4월 81.45%로 상승세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4·1 부동산대책 효과를 믿고 섣불리 경매로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조언한다. 경매시장의 가격을 나타내는 낙찰가율이 계속 높아지면서 낙찰을 받기 위해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써내는 ‘승자의 저주’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취득세 감면 혜택이 6월 말로 종료돼 지난 1월 취득세 감면 효과 실종으로 거래가 급감했던 ‘거래 절벽’ 상황이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거래가 없어지면 급매물이 쌓이면서 부동산 가격이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대홍 부동산태인 팀장은 “4·1 부동산대책 호재로 상승세를 보였던 경매시장 증가율이 조금씩 둔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입지와 가격 등 조건을 꼼꼼하게 따져 신중하게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