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출범을 앞두고 새 정부의 건설·부동산 정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박 당선인이 침체 일로를 걷고 있는 주택시장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정책을 내놓을 것이란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GS건설 등 32개 대형·중견 건설사가 감원을 한 데서 나타났듯이 지금 건설·부동산 경기는 2008년 글로벌 위기가 시작된 이래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수도권 미분양 주택은 3만4385가구로 2001년 이후 최대로 늘었다. 국민 10명 중 8명은 당분간 주택을 분양받을 생각이 없다고 한다. 당연히 새 집으로 이사가려는 사람도 급감했다. 부동산 거래가 뚝 떨어지다 못해 아예 찾는 이들이 실종될 지경에 이르면서 많은 사람들이 집을 처분하지 못해 주거를 옮길 자유마저 박탈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엔 그동안 상대적으로 양호한 흐름을 보였던 지방 부동산 경기마저 꺾이고 있어 올해 경매 물건이 2010년의 25만여건보다 훨씬 많은 30만건까지 늘어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할 박근혜 정부의 정책은 크게 시중 자금흐름을 살려 경기 자체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할 가계부채 대책과 서민 주거안정을 중심으로 하는 직접적인 부동산 시장 대책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막힌 자금흐름 풀어줄 가계부채 대책
많은 전문가들이 바닥을 기고 있는 부동산 경기의 해법을 아파트를 비롯한 주택의 수급이나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초점을 맞춰 찾고 있다.
그러나 이번 부동산 경기 침체가 참여정부 때 시작된 총부채상환비율(DTI)과 담보인정비율(LTV) 규제에서 시작된 거래감소와 이에 따른 자금흐름 경색이었다는 점에서 실마리의 한축은 여기서 찾아야 한다.
김학권 세중코리아 대표는 “가계부채 대책은 부동산 대책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면서 “가계부채가 안정돼야 부동산 경기가 살아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역으로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 가격이 회복되면 가계부채 문제는 자연스레 해소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대책은 가계부채 대책과 함께 나올 때 효과가 배가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므로 새 정부에서 빠르게 채택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가 됐던 DTI나 LTV 규제는 MB정부의 잇단 완화조치로 사실상 규제의 의미가 없을 만큼 풀렸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런데도 부동산과 관련해 돈이 돌지 않는 것은 10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가 무언의 부담으로 작용해 대부분 금융기관들이 자금을 돌리는 데 겁을 먹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최근 감독당국이 건전성 감독을 강화하려 하는 점도 금융기관들의 대출 분위기를 위축시키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011년 1월부터 11월까지 예금은행의 대출은 22.7조원이 늘었으나 2012년 같은 기간엔 6.6조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특히 2012년 11월 예금은행의 주택대출은 3000억원이 줄었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주택대출이 심각할 정도로 급감해 경기를 악화시키고 있음이 드러났다. 지난해 들어 11월까지 수도권의 주택대출은 2조7000억원이나 감소했는데 10월에 6000억원, 11월에 9000억원이 줄어드는 등 연말로 갈수록 주택대출이 급격히 얼어붙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양상을 볼 때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대출이 정상으로 돌아와야 부동산 경기가 회복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가계부채 대책은 이런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박근혜 당선인은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11월에 가계부채 대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자활의지가 있는 채무자에 한해 지원하고 △금융회사에 손실을 분담시키며 △선제적 대응으로 금융시장 불확실성을 줄인다는 세 가지 원칙을 갖고 접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발표한 대책의 핵심은 채권자에게 (대출에 대한) 책임을 묻고 채무자를 보호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대출에서 채권자 책임을 강조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로 가계부채 대책이 매우 빠르게 진행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박 당선인은 구체적으로 정부가 직접 재원을 투입하지 않고 18조원의 ‘국민행복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새누리당은 이에 대해 부실채권정리기금이나 한국자산관리공사 고유계정 차입금, 신용회복기금 잔여재원 등 1조8700원의 기초자금으로 10배의 채권을 발행하겠다고 했다. 여기에 채권자 책임을 묻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금융권에 국민행복기금 채권을 배정해 자금을 모으려고 할 가능성도 크다. 실제 금융권 고위 관계자들 가운데는 이런 재원조달 방식을 전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렇게 조성한 자금으로 연체채권을 매입해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높임으로써 대출 여력을 높여 고착상태에 있는 시중 자금흐름을 회복시키겠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기금의 일부를 신용보증기금 등에 출연해 대출 보증을 확대할 경우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금융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과거에 했던 것처럼 재원의 일부를 신용보증기금에 출연하면 신용보증기금이 출연금의 10배까지 보증을 설 수 있기 때문에 금융권의 대출이 활성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가계대출의 상환 기간을 연장하거나 만기 일시(전액)상환제를 대출금 중 일부를 납입할 경우 연장해주는 방식을 도입할 수도 있다. 상환기간 연장은 박 당선인 측이 제시한 바 있고, 만기 일시상환 대출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야권에서도 제기하고 있던 터라 실현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1월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직접적인 부동산 시장 대책들
박근혜 당선인은 다양한 부동산 대책들을 이미 제시한 바 있다. 이 가운데 취득세 감면안은 1월 임시국회에서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함께 임대주택 정책인 행복주택프로젝트,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 주택연금 사전가입제도 등도 곧 구체적인 모습이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신호를 보낼 지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나락에 빠진 주택시장을 극적으로 반등시키려면 정부의 의지와 타이밍이 중요하다.
그러나 당선인의 공약에는 뉴타운과 같은 대규모 개발프로젝트가 안보이고 서민 주거복지가 핵심이어서 단기적인 반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의 중론이다. 다만 박 당선인이 후보 시절 “단기적으로는 부동산 시장 부양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말한 바 있어 깜짝 부동산 활성화 방안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하우스푸어·렌트푸어 대책 화두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하우스푸어, 렌트푸어 등 가계부채 문제가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나날이 떨어지는 집값과 거래 마비를 정상으로 되돌려 놓고, 서민들의 목줄을 죄는 전세금은 하루 빨리 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뛰는 집값 잡기가 유일한 고민거리였던 참여정부와 MB정부보다 머릿속이 훨씬 복잡해진 셈이다.
박 당선인이 핵심 공약으로 내건 ‘중산층 70% 복원’을 위해선 대출 부담에 허덕이는 하우스푸어 문제부터 손댈 것으로 보인다.
박 당선인은 선거 직전 TV토론회에서 “단기적 부동산 경기 부양이 필요하고, 집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중산층 고민을 덜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우스푸어 문제를 풀기 위해선 필요하다면 공적자금 투입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 당선인은 이미 ‘보유주택지분매각제도’를 도입해 하우스푸어가 소유한 주택 지분 일부를 공공기관이 사들여 유동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본인 집에 계속 살면서 해당 주택의 지분 일부를 매각한 대금으로 대출금 일부를 상환하면 이자 부담을 한결 덜 수 있다는 것. 새 정부가 출범하면 이 같은 기능을 담당할 공적기관을 신설하거나 기존 캠코나 주택금융공사 기능을 대폭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미국에서도 하우스푸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일정 부분 이자를 깎아주는 지원을 했던 만큼 취지 자체는 바람직하다”며 “그러나 하우스푸어 정의와 지원 대상·범위를 두고 금융당국과 이견을 좁힐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주택 매각이 어려운 하우스푸어는 ‘주택연금 사전가입제도’를 통해 구제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60세 이상만 가입할 수 있는 연금 가입 나이 제한을 50세 이상으로 낮춘다는 것이다. 서민층 민심을 잡기 위해 ‘렌트푸어’ 해결을 전면에 부각시켰던 만큼 공약으로 내세웠던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와 철도용지 상부에 인공 대지를 조성해 임대주택을 짓는 ‘행복주택 프로젝트’도 본격 실행할 것으로 보인다.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는 집주인에게 주택담보대출을 받게 해 보증금을 마련해 주고 대신 세입자가 월세 격으로 이자를 갚는 것이다. 소득이 5000만원 이하인 가구를 대상으로 수도권은 3억원, 지방은 2억원 이하 전세 주택이 대상이다. 연간 5만 가구에 대출자금 5조원을 지원(전세보증금 1억원 기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집주인은 전세보증금 이자 상당액에 대해 과세 면제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현 정부 보금자리주택 중 아직 사전청약을 하지 않았거나 사업이 본격 시작되지 않은 지구에선 상당 부분이 임대주택으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철도용지 임대주택 20만 가구 공급은 사유 토지를 매입하는 데 따른 재정 부담이 없고 그린벨트를 허무는 환경 파괴 논란이 작은 반면 소음·진동을 막기 위한 기술적 문제가 걸림돌이다. 새 정부는 2013년 하반기부터 시범적으로 5곳에서 1만 가구를 착공할 계획이며, 향후 5년간 총 20만 가구를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행복주택 건설비용은 매년 2조4600억원 정도이며 40년간 국민주택기금 융자(3년 거치 37년 상환)로 충당한다.
과다한 건축비와 관련된 사업성 문제, 진동 및 소음을 우려한 쾌적성 논란이 있어 철도기지창 등 철도시설과 인접한 부지를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이다. 일반분양 중심의 보금자리주택 체계도 임대주택 위주로 바뀐다. 하지만 임대주택의 85%가량을 공급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재원 부족 상황을 감안한다면, 분양주택을 완전히 배제한 임대주택 공급으로 전환하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등 부동산 세제 변화 관심
새 정부의 부동산 세제가 어떻게 바뀔 것인지도 관심거리다. 지난해 12월 31일로 종료된 취득세 감면 조치가 박근혜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다시 부활할 가능성이 큰 데다 올해 말까지는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등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김규정 우리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부동산팀장은 “여전히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어 다주택자의 경우 올해 말까지 적용되는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를 활용해 불필요한 주택을 처분하는 게 이익”이라고 말했다. 서승환 연세대 교수가 경제 2분과 인수위원으로 임명되면서 분양가 상한제 등의 규제 철폐도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부의 시장 개입을 꺼리는 시장주의를 서 교수가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인수위원의 경제 철학이 그대로 국가 정책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면서 “다만 박 정부가 서 교수를 택한 것은 서 교수의 시장주의를 따른다고 볼 수 있는 만큼 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신자유주의 성향의 시장 불개입, 정부의 규제철폐가 주를 이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 하반기 회복 전망
이 같은 정책들이 부동산 시장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주택시장에서 수요자들의 심리가 살아나기 전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것으로 진단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런 분위기를 감안해 부동산 시장이 2013년 상반기엔 약세를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상당한 규모의 대기자금이 있는 만큼 분위기만 바뀌면 투자심리는 급속도로 회복될 수도 있다.
특히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입주물량 급감에 따른 수급 불균형이 예상돼 수도권 부동산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지가 새로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수도권 입주물량은 10만7262가구로 조사가 된 2001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내년에는 8만7127가구로 올해보다 더 줄어들어 전세대란도 예견되고 있다. 지방 부동산 시장은 다른 변수보다는 공급물량과 그동안 매매값 상승률이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주택건설 인허가 실적 집계 결과 전국에서 55만호가 인허가돼 2010년 39만호 대비 42%, 최근 3년(2008∼2010년) 대비 44.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방에서는 아파트 신규 분양이 호조를 보이는 등 시장 활성화에 힘입어 아파트를 중심으로 인허가(지난해 18만호, 2010년 대비 126.8% 증가)가 크게 증가했다. 이는 수도권에서는 도시형생활주택·다세대·다가구 등에 대한 저리(2%) 건설자금 지원 및 건설규제 완화 등에 따라 도심 내 소형주택 건설(다세대·다가구주택 : 2010년 대비 110.1% 증가)이 크게 증가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세종시를 비롯한 기업, 공공기관 이전 등으로 이주 수요가 증가하는 지역 이외에는 내년 지방 부동산 시장은 약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수익형 부동산 원룸 지고 투룸 뜨고
전문가들은 도시형생활주택 등으로 공급량이 많았던 원룸보다 투룸형 수익형 부동산이 유망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전세값 상승이 예상되는 만큼 투룸을 찾는 가구가 더욱 늘어날 것이란 생각이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올해에도 전세값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어 원룸보다 상대적으로 투룸에 대한 수요가 많아 임대를 놓기에 수월하다”며 “수익형 부동산에 투자할 사람들이라면 투룸이 원룸보다 상대적으로 유망하다”고 말했다. 다만 공급과잉 논란에도 불구하고 유망 지역의 오피스텔 분양은 당분간 공급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저금리시대에 돈 굴릴 데가 마땅치 않은 사람들이 임대주택시장에 계속 뛰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상가 시장은 경기침체와 대형마트, 온라인 오픈마켓 시장의 경쟁심화로 인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침체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진건 기자 정동욱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사진 김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