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이 앞다투어 하우스푸어를 비롯한 금융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집을 소유할수록 빚이 늘어나는 하우스푸어들은 국내외 경기침체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자칫 가계부채 문제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조작 의혹과 대출서류 조작, 대출금리 차별, 공금 횡령 등 은행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쇄신하려는 목적이 있다고도 지적된다.
이처럼 은행권이 하우스푸어를 위한 대책을 쏟아내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하우스푸어 처지에선 무엇보다 은행권이 쏟아낸 대책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부작용이 없도록 효과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우리은행과 새누리당의 ‘세일 앤드 리스 백’
하우스푸어 구제 방안 중 가장 눈에 띄는 대책은 ‘세일 앤드 리스 백(sale and lease back)’이다. 이는 정부나 은행이 하우스푸어의 ‘깡통주택’을 싼 값에 사들이고, 집을 판 사람에게 일정 기간 임차해서 살 수 있는 권리와 되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이다.
이 방안이 시행되면 하우스푸어는 집의 소유권을 잃게 되지만 살던 집에서 떠날 필요는 없다. 원래 살던 집에서 살되 월세를 은행에 내면 된다. 우리은행의 경우 임대 기간을 최대 2년으로 하고 이후 원 소유주가 희망할 경우 다시 집을 사들일 수 있도록 하는 권리(바이백 옵션)를 주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예를 들어 A씨가 5000만원을 대출받아 1억원짜리 집을 샀는데, 집값은 8000만원으로 떨어졌다. 그는 월 대출 이자 21만원도 장기간 갚지 못해 하우스푸어가 됐다. A씨가 만기 3년의 세일 앤드 리스 백을 신청하면, 우리은행이 설립한 부동산신탁회사가 8000만원에 집을 산 뒤 A씨에게 월세로 내준다. 은행 대출금을 뺀 나머지 3000만원은 A씨 몫이지만, 월세 보증금 용도로 재예치해야 한다. 은행은 여전히 대출금 5000만원에 대한 채권자로 남는다.
A씨 처지에서는 집이 당장 경매에 넘어가면 6240만원(올 상반기 평균 낙찰가율 78% 적용)밖에 못 건져 대출금(5000만원)을 갚고 나면 수중에 1240만원밖에 남지 않는다. 이에 비해 세일 앤드 리스 백을 신청하면 집에서 쫓겨나지 않고 싸게 세들어 살 수 있다. 또 3년 뒤 집값이 더 떨어져 시가가 7000만원이 된다 해도 빚을 빼고도 2000만원(주택 매도 가격 7000만원-대출금 5000만원) 정도는 건질 수 있다. 이 방식대로라면 은행은 집값이 5000만원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면 손해를 보지 않고 대출금을 100% 회수할 수 있다. 반면 대출자는 3년 뒤 결국 집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은행에 유리한 제도라는 비판도 있다.
정치권에서도 세일 앤드 리스 백이 추진되고 있다. 새누리당은 시중은행과 저축은행, 보험사 등 전 금융권이 참여하는 기금 형태의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해 깡통주택을 사들이기로 했다. 새누리당이 검토하고 있는 정부 주도 방식은 ‘공적 매입 후 임대 전환’이다. 부실기업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것처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을 내세워 재정을 투입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일 앤드 리스 백’은 집값이 계속 떨어지거나 월세가 밀린다면 집을 사준 정부나 은행이 손실을 입게 된다는 것이 약점이다. 또 수혜 대상자를 어떻게 선별하고, 집을 살 때 얼마에 사주느냐 하는 결정에 따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해 정치적으로도 쉽지 않은 결정이다. 또 집을 너무 싸게 사들인다면 하우스푸어가 응하지 않아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금융 당국은 정부와 우리은행의 안을 검토 중이지만, 부정적인 의견이 많아 실현 가능성은 아직 불투명하다.
금융권의 ‘DTI 금리 완화’
금융당국은 지난 8월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9월부터 시행하는 DTI 완화로 인해 대출 증가가 예상되는 대상은 20~30대의 직장인과 고정 수입이 없는 대신 자산이 있는 은퇴자다. 또 지난달 발표된 DTI 규제 완화안은 소득 인정 범위를 확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아무래도 젊은 직장인들에게 적용되는 소득 인정범위가 넓어졌다는 것이다. 젊은 직장인들은 미래에 벌어들일 소득을 반영하기로 했다. 즉 40세 미만 무주택 직장인은 ‘10년 뒤 예상소득’을 적용한다.
40대 미만의 직장인 예상소득 계산은 국제통계연보상의 연령대별 근로자 급여 증가율을 토대로 한다. 예를 들어 200만원의 20대 근로자는 대출한도가 1억5000만원에서 1억9000만원으로 26.1% 증가한다. 월 급여가 300만원인 35세 근로자일 경우는 현재 연소득은 3600만원이지만 장래 예상소득은 4172만원으로 증가한다. 여기에 DTI가 50% 적용되면 대출한도는 2억2400만원에서 최대 2억6000만원으로 15.9% 확대된다. 단 만기가 10년 이상인 비거치식 분할상환 대출신청 시 적용된다.
규제 완화안에 따르면 급여소득은 없지만 자산이 있으면 은행 이자율을 적용한 만큼 소득으로 인정돼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국세청에 신고된 급여소득 등이 없을 경우 주택담보대출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이 보유한 부동산 자산을 기준으로 대출금액 산정이 가능하다. 6억원 이상 주택 비중이 높은 강남권 아파트의 경우 완화된 DTI 효과가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고정금리·비거치식 분할상환 대출의 경우에는 5%포인트씩 최대 15%포인트의 DTI 우대비율을 적용하는 대상이 현재 6억원 미만 주택 구입에서 6억원 이상으로 확대된다”며 “이런 대출 요건을 갖추면 서울에서 6억원 이상 주택을 구입할 때 DTI는 현행 50%에서 최고 65%까지 높아질 수 있고 인천·경기는 60%에서 75%로 오른다”고 귀띔했다.
금융소득을 따로 신고하는 사람은 증빙소득(근로소득과 사업소득)만 소득으로 보고 DTI를 매겼지만, 앞으로는 금융소득도 신고하면 DTI 인정 소득에 포함된다. 이 같은 신고소득의 인정 한도는 4100만원에서 5100만원으로 높아진다. 체크카드 사용액도 신고소득으로 인정받는다. DTI 산정 시에는 기존에 받은 신용대출 등 모든 대출의 합계가 부채금액으로 합산되고 마이너스 통장도 설정금액만큼 부채금액으로 인정된다. 반대로 주택담보대출이 실행된 후 필요에 따라 신용대출이나 마이너스 대출을 받는 것은 상환 여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추가 대출도 가능하기 때문에 신용대출은 최후 순위로 미루는 것이 좋다.
국민은행의 담보물 매매중개지원 제도
이 제도는 은행 대출금을 갚지 못해 주택 등이 법원 경매로 넘어갈 처지에 있는 하우스푸어가 경매 전에 스스로 주택을 처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금융당국과 은행들이 이 제도를 활성화하기로 한 가운데 국민은행이 ‘담보물 매매중개지원 제도’를 가장 먼저 도입했다.
이 제도는 사실 2007년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을 갚지 못한 채무자들의 지원책으로 만들어졌으나 이후 유명무실해졌다. 따라서 금융감독원은 은행들이 이 제도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권고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가 5억원 규모의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B씨가 은행 대출을 연체하게 됐다고 하자. B씨의 빚은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을 합쳐 3억원 규모. 이 집에는 전세금 2억원을 주고 들어온 세입자도 살고 있다. 은행이 이 아파트를 경매에 부칠 경우 평균 경락률(약 70%)을 고려하면 매각 가격은 3억5000만원이다. 이 경우 전세입자는 전세금 1억5000만원을 날리게 된다. 하지만 담보물 매매중개지원 제도를 활용하면 사적 매매를 통해 4억5000만원이 넘는 수준에서 주택을 매각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B씨는 훨씬 높은 가격으로 집을 매각할 수 있고 매수자가 전세금을 그대로 승계하면 세입자도 전세금을 온전하게 보전할 수 있다.
이 제도로 인해 채무자는 법원 경매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담보물을 매매할 수 있어 법원 경매에 대한 심리적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세입자도 전세금을 떼일 위험을 줄일 수 있게 된다.
매매가격은 매매 당사자 합의로 결정되지만 금융회사가 정하는 최저매매가 이상이어야 한다. 최저매매가격은 금융회사가 조사한 가격에 법원 평균매매가율을 곱해 산출된다. 매매중개를 신청할 수 있는 담보물은 아파트와 주상복합아파트,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오피스텔 등이다.
대상자는 금융회사의 대출금을 연체하는 고객이다. 담보물 소유자가 저당권을 보유하고 있는 금융회사에 소정의 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 매매대금은 채권 순위에 따라 금융회사에 배분되며 저당권 및 가압류는 말소된다.
매매 중개지원 대상이 되면 채권금융회사는 3개월 동안 매매 대상 부동산과 관련된 법적 절차나 독촉을 할 수 없다. 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매 절차를 기다리지 않고 빨리 처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매매중개는 공인중개사협회가 시·군·구별로 지정한 협력공인중개사가 맡는다. 거래가 성사되면 매매대금이 금융회사에 입금돼 대출금을 우선 상환하고 남은 금액을 채무자에게 지급하게 된다. 기타 부동산도 채권금융회사가 동의하면 가능하다. 하지만 은행연합회와 자율협약을 맺지 않은 채권자나 채권금융회사에 의한 저당권, 가압류, 가처분, 가등기가 설정된 담보 부동산은 매매중개 대상에서 제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