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 부촌인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일대와 신흥 부촌으로 부상한 성동구 성수동 인근이 최고 250m 초고층 아파트로 재건축·재개발된다. 높이로는 여의도 63빌딩과 맞먹고, 층수로는 도곡동 타워팰리스(69층)를 뛰어넘는 랜드마크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이다.
서울시는 2024년 11월 제12차 도시계획위원회 수권분과소위원회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압구정 2구역 재건축 정비구역·정비계획 결정, 성수전략정비구역 지구단위계획 결정안을 가결했다. 이에 따라 강 건너 마주한 압구정·성수를 중심으로 한강변 스카이라인이 크게 바뀔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을 대표하는 부촌인 압구정동은 천지개벽을 앞두고 있다. 압구정동은 1970년대 초기엔 모래밭, 과수원, 채소밭이었다. 1970년대 중·후반부터 1980년대에 일어난 건설붐과 민영아파트 대중화 바람을 타고 이 일대엔 강남을 상징하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당시로서는 드문 고층(최대 15층)에 대단지, 파격적 평면 구조와 조경 설계로 ‘K아파트’의 새 지평을 열었다. 단순 주거지를 넘어 강남 개발과 한국 도시화의 상징으로 강남 부촌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런 가운데 압구정2구역 정비계획안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한 건 최고 부촌으로 꼽히는 압구정 일대 재건축이 본격 신호탄을 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압구정 아파트지구 구축 단지들의 경우 공통적으로 하이엔드·랜드마크를 키워드로 60~70층에 달하는 초고층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는 특징도 있다.
현재 압구정동 일대에선 현대, 미성, 한양 등 아파트 1만여 가구가 6개 구역으로 나뉘어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이 중 2~5구역은 신속통합기획을 확정했다. ‘오세훈표 정비사업 모델’로 불리는 신통기획은 서울시와 주민이 함께 정비계획안 초안을 만들어 사업 속도를 높이는 제도다. 정비구역 지정까지 통상 5년 정도 걸리던 것을 최대 2년까지 단축할 수 있다.
‘첫 주자’로 나선 압구정 2구역은 진행속도가 가장 빠르다. 압구정 2구역은 지난해 2023년 7월 신속통합기획 수립 이후 지난 3월과 5월 두 차례 신속통합기획 자문을 거쳐 16개월 만에 정비계획까지 확정됐다. 시는 정비계획을 고시한 뒤 통합심의(건축, 교통, 교육, 환경 등)를 거쳐 건축계획을 확정하고 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할 방침이다.
1982년 준공돼 올해로 42년째를 맞은 압구정2구역은 이번 심의를 통해 최고 250m 높이의 12개 동, 2606가구로 재건축된다. 용적률은 300%이하로 결정됐다.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최고 층수는 확정되지 않았다. 최고 높이 내에서 조합이 자유롭게 층수를 계획하면, 향후 건축심의 등에서 구체적인 층수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에 확정된 최고 높이 250m는 조합이 제안한 높이(264m)보다는 낮지ㅡ만 63빌딩(249m) 수준으로 마천루 아파트의 조건을 갖췄다. 통상적으로 아파트 한 층 높이가 3~3.3m임을 감안하면 조합이 계획한 70층 재건축도 가능한 높이다. 압구정 아파트지구 내 단지들이 모두 초고층을 바라보고 있는 만큼 압구정2구역 조합은 최고 높이 65~70층 아파트를 추진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모든 동을 250m 높이로 짓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는 전체적으로 텐트 모양의 스카이라인을 계획했다. 유연한 높이를 적용해 강남·북을 잇는 동호대교의 남단 논현로 주변은 20∼39층으로 낮게 계획했다. 서울시는 공동시설을 외부에 개방하는 ‘열린 단지’로 재건축하기로 하면서 70층을 허용했다. 너비 8m의 공공 보행통로를 계획해 압구정동을 찾는 누구나 이 길을 가로질러 한강공원에 갈 수 있게 하고, 담장도 설치하지 않는다. 경로당, 어린이집, 작은 도서관, 돌봄센터, 수영장, 다목적체육관도 개방하기로 했다. 압구정2구역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이번 서울시 심의통과를 시작으로 재건축에 더욱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면서 “압구정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단지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압구정2구역 심의 통과를 계기로 압구정동 일대 재건축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압구정 3~5구역의 경우 정비계획안에 대한 주민공람을 거쳤거나 현재 진행 중인 단계에 있다. 나머지 압구정 3개 구역은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앞두고 있다.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도시계획위원회에 상정, 심의가 이뤄지는 절차다. 이번 2구역 심의 결과가 향후 3·4·5구역 재건축 심의의 지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압구정 구현대’로 불리는 압구정 3구역은 압구정 재건축 중에서도 ‘대장’으로 꼽힌다. 압구정 아파트지구 중 규모가 가장 크고, 한강과 접하는 면이 가장 넓기 때문이다. 여기에 재건축 구역 정중앙에 위치하고, 단지 내에 압구정 초·중·고가 들어서 있다는 장점도 있다. 2024년 11월 진행된 정비계획안 열람 공고안에 따르면 현재 3934가구 규모인 압구정3구역은 최고 70층(291m), 5175가구로 재건축된다. 압구정역과 접한 지역은 준주거지역을 적용해 56층으로, 나머지는 3종일반주거지역을 적용해 최고 70층으로 짓는다. 다만 관심을 받았던 한강보행교는 공공기여방안에서 빠졌다. 4000억원 가까이로 추정되는 사업비 부담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조합은 대신 공공청사와 덮개도로, 공원 등을 공공기여하겠다고 제안했다. 향후 서울시 심의 과정에서 공공보행교 조성 여부가 집중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성수대교 남단 압구정동 481 일원에 위치한 압구정4구역은 최고 69층, 1722가구로 재건축을 추진한다. 압구정4구역은 성수대교 남단 언주로를 사이에 두고 압구정 3구역과 마주하고 있다. 수인분당선 압구정로데오역과 가깝고 갤러리아백화점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현재 1341가구인 압구정4구역은 재건축을 통해 381가구가 늘어난다. 한강변 디자인을 특화해 한강과 접한 첫 주동은 20층 내외로 지어진다. 또 동측 청담초·중·고교~서측 압구정초·중·고교를 연결하는 보행 동선이 계획된다. 압구정 아파트지구 중 유일하게 20평대 소형이 있는 압구정5구역도 최고 70층, 1401가구로로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압구정5구역은 수인분당선 압구정로데오역 초역세권 단지이고, 갤러리아백화점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한강을 가운데 두고 성수동 서울숲과 마주하고 있다. 이에 초고층 재건축 뒤엔 한강과 함께 서울숲 조망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재건축을 통해 일반분양하는 물량이 29가구에 불과해 억대 분담금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압구정 재건축 단지들이 모두 69층~70층 초고층 재건축을 추진하는 건 랜드마크로서 지위를 선점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60층 이상 초고층 재건축에 따라붙는 공사비 증가, 공사기간 연장, 분담금 증가 등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일례로 최고 69층 재건축을 추진했던 ‘잠실 장미 1·2·3차 아파트’의 경우 최고 49층으로 계획을 바꿨다. 주민들이 초고층 랜드마크가 아닌 신속한 사업 진행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됐다.
최근 들어 압구정 재건축 단지들이 정비사업에 속도를 내기 시작하며 가격이 큰 폭으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재건축이 완성될 경우 반포 신축 아파트와도 연식이 10년 이상 차이가 나며 무게 중심이 다시 압구정으로 옮겨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사업 속도가 가장 빠른 압구정 2구역에 대한 주목도가 높다. 2024년 10월 이 아파트 전용 183㎡는 81억5000만원에 신고가로 매매 계약이 체결됐다. 동일 면적의 올해 초 매매 거래(67억5000만원)과 비교해 14억원이 오른 것이다. 특히 9월부터 대출 규제가 본격 시행되며 부동산 시장의 분위기가 한풀 꺾이고 있지만 압구정 일대는 영향을 덜 받는 모양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압구정 재건축 아파트는 미래가치가 확실하고, 전국구 단지로 입지 강점을 지니고 있는 만큼 현금을 다량으로 보유한 부유층이 대출 규제에 관계없이 매수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성동구 성수전략정비구역 1~4구역이 9428가구 규모 ‘미니 신도시’로 탈바꿈한다. 여의도 63빌딩 높이만큼 건물을 높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를 통과한 성수전략정비구역 정비계획과 도시관리계획 변경안의 핵심은 건축물 높이를 250m까지 풀어준 것이다. 그동안 성수 재개발 사업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재임 당시 만들어진 ‘35층 층수 제한’으로 인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이번에 높이 규제가 풀리며 성수전략지구 사업이 본격 재개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도시·건축 창의혁신 디자인 가이드라인’이 적용된 건축계획을 수립하는 경우에 한해 250m이하 높이 계획이 가능하다.
변경안에 따르면 성수전략지구는 용적률 300%(준주거 500%)가 적용돼 9428가구(임대 1792가구) 아파트촌으로 탈바꿈한다. 지난 2011년 세워진 정비계획과 비교해 획지면적이 5만㎡ 확대되며 가구 수가 14% 이상 늘어 사업성 확보가 가능해졌다.
성수전략정비구역은 2009년 전략정비구역으로 지정되고, 2011년 재개발 정비계획이 수립됐지만 이후 오랜 기간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어왔다. 2021년 서울시 신속통합기획 대상지로 선정되며 사업이 재개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했다.
성수 일대에서 한강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이번 계획안에서는 광폭 선형공원 2곳과 단지 내 입체데크 조성, 공공보행통로 확보 등을 계획했다. 또 강변북로와 한강 사이 단절을 보완하기 위해 약 1㎞ 길이 수변문화공원도 조성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단지에서 걸어서 한강변 접근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뚝섬로와 성수이로변엔 공공시설을 집중 배치한다. 한강으로 열린 주거단지 조성을 위해 수변과 4개 축으로 점차 낮아지는 점층형 경관을 마련한다.
성수전략정비구역 4개 지구 중 입지가 가장 좋은 것으로 평가받는 건 1지구다. 서울숲과 가깝고, 수인분당선 서울숲역도 걸어서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근에 위치한 갤러리아포레, 아크로 포레스트, 트리마제 등에 이미 조성된 기반시설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4지구는 조합원 수가 적어 사업성 확보에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영동대교를 통해 강남에 접근하기 편리하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성수 일대는 이미 주목받는 상권으로 전략정비구역의 잠재력이 뛰어나지만, 초기 투자자금이 크다는 점은 단점으로 꼽힌다. ‘대장’ 지구로 꼽히는 1지구의 가장 저렴한 매물은 약 22억원 가량이다. 실제로 지난달 1지구에 위치한 한 다세대주택이 22억원에 거래됐다. 이마저도 성수전략정비구역 전체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어 갭투자가 불가하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성수전략정비구역은 향후 서울을 대표할 럭셔리 주거단지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벌써부터 시공권을 따내기 위한 시공사들의 눈치싸움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 대표는 “성수전략정비구역은 재개발이 완료되면 한강변에 위치한 초고층 신축 아파트로 탈바꿈하는 만큼 서울 신흥 부촌으로 떠오를 것”이라며 “이미 정비사업 수주를 위한 시공사들 간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압구정과 성수의 고층 단지들은 향후 한국 아파트 가격을 선도하고 새롭게 창조하는 수준의 최고급 주거벨트가 될 잠재력이 있다”면서 “두 지역은 한강을 두고 인접하고 있어 향후 연결성을 높일 경우 시너지가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유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