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안정적이긴 하지만 투자자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키지 못했던 은행주들이 변신하고 있다. 올해 한국 주식 중에서는 밸류업 정책의 효과로 그나마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주식이 은행주이며 미국 증시에서도 은행주들은 하반기부터 S&P500을 능가하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 기술주나 테마주들이 흔들릴 때 안정적 배당과 함께 꾸준한 주가 상승으로 중위험중수익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종목이 은행주이다.
통상 은행주들은 금리인하 사이클에는 순이자마진(NIM) 하락으로 수익이 부진할 것이란 우려가 있었지만 이제는 다른 얘기다. 주주환원과 비은행부분의 이익으로 금리 인하 사이클에 접어들더라도 주가가 상승할 수 있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오히려 금리 하락이 경기 침체 리스크를 해소할 수 있다면 대손충당금 적립 필요성이 줄어들어 영업이익에는 긍정적이다.
한국의 은행주들은 신한지주를 시작으로 차례로 기업가치제고계획(밸류업공시)을 발표하면서 주가가 한 차례 도약했다. 코스피가 하반기 계속 약세를 보이는 상황에서도 은행주들은 11월 초 신고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주주환원 공시와 이에 따른 자사주 매입 효과다. 기업가치 제고 계획 내용을 보면 KB금융은 내년 상반기에는 CET-1 비율을 13% 초과하는 자본은 배당총액과 자사주 매입 소각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하반기엔 CET-1 비율 13.5% 초과 자본은 하반기 자사주 매입소각에 활용된다.
현재 은행의 주주환원에 가장 관건이 되는 지표는 CET-1(Common Equity Tier1)이다. CET-1비율은 보통주자본비율을 의미하며 자본건전성 지표로 활용된다. 금융회사의 손실흡수능력을 보여주며 국내 금융지주는 일반적으로 CET-1비율 13% 이상 유지를 목표로 관리하고 있다. 일정비율(통상 13~13.5%)을 초과하는 경우 배당을 늘리는 등 주주환원 정책에 활용하기 때문에 주주환원 정책의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CET-1 비율은 위험가중자산에 비해 보통주자본( 보통주, 자본잉여금, 이익잉여금, 기타포괄손익누계액 등이 포함)을 얼마만큼 가지고 있느냐의 의미다. 위험가중자산(RWA, Risk Weighted Assets)이란 은행의 자산을 유형별로 위험 정도를 감안해 다시 계산한 것이다.
KB금융 외에 신한지주, 하나금융, 우리금융, BNK금융, DGB금융, JB금융 모두 CET-1 비율 12~13.5%를 기준으로 주주환원정책을 제시했다. 신한지주는 CET-1 13% 초과 자본은 주주환원 재원으로 활용해 2027년 주주환원율 50%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하나금융 역시 CET-1 13~13.5% 관리를 목표로 2027년 주주환원율 50%를 제시했다. 우리금융은 CET-1 11.5%까지는 주주환원율 30%, 11.5~12.5%까진 주주환원율 35%, 12.5~13%까지는 40%, 13% 이상부터는 50% 목표를 제시했다.
BNK금융 역시 CET-1 12.5%를 관리 목표로 정하고 2027년 주주환원율 50%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DGB금융은 CET-1 11.5%까지는 주주환원율 30%, 11.5~12.3%까진 주주환원율 40%, 12.3~13%까지는 50% 목표를 제시했다. 2027년 주주환원율 40%를 목표로 자사주 매입과 소각에 1500억원을 투자한다. JB금융은 CET-1비율이 12% 초과 시 주당배당금(DPS) 안정적 상향과 자사주 매입 소각을 적극 검토하며 14% 초과 자본은 주주환원 재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2026년 주주환원율을 45%로 제시했다.
은행들은 또한 분기 균등 배당으로 가시적인 배당정책을 확립하고 있다. KB금융은 총액 기준으로 분기균등배당을 실시하는데 올 1분기 주당배당금(DPS)은 784원이었고 이익 상승에 따라 4분기엔 800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외에도 신한지주, 하나금융, 우리금융, JB금융 모두 분기 균등배당을 도입하고 있다. 신한금융은 1~4분기 모두 배당액이 동일하다.
자사주 매입과 소각도 활발하다. 순이익의 11%를 올해는 자사주 매입에 은행들이 평균으로 썼다면 내년엔 15%로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은행마다 주주환원 정책의 세부 내용은 다소 차이가 있다. KB금융이 CET-1비율을 기준으로 자사주 매입 소각 물량을 정한다면 신한지주는 주식수를 기준으로 자사주 소각 매입 양을 결정한다.
내년도 은행권의 이자이익은 금리하락에 따라 전년 동기와 유사한 수준이지만 비이자이익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비은행 부문의 수수료 이익이 늘어나고 금리하락에 따른 유가증권 평가익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금리 인하에 따라 차주들의 이자상황 부담이 다소 가벼워질 수 있는 것도 긍정적이다.
이미 가계대출을 중심으로 올 3분기 높은 대출성장률을 경험했기 때문에 내년도 대출성장률은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비은행 비중이 늘어나면서 증권사의 트레이딩 수익 확대, 캐피탈·카드사의 조달비용 하락은 이익을 늘릴 수 있다. KB금융의 경우 2011년 84%에 달한 은행 비중이 올해는 56%로 줄어들기 때문에 대출 둔화가 실적에 미칠 영향은 과거보다 적다. 내년도 CET-1 비율에서 이익 규모만 고려 시 CET-1 비율은 150베이시스 포인트 가량 늘어난다. 그만큼 주주환원 여력이 커지는 것이다. 변수는 대출성장률 둔화와 환율이다. 조아해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대출성장률이 CET-1에 미치는 영향력은 올해보다 66베이스 포인트 감소이며 원달러 환율로 인한 영향력은 25베이시스포인트 감소다”라며 “종합적으로 고려할 경우 내년도 CET-1비율은 57 베이시스 포인트 개선될 여력이 유효하다”고 말했다. 13% 상회할 체력을 보유한 종목은 KB금융, 신한지주, 하나금융, JB금융이다. 다만 증권사의 예상보다 큰 폭으로 환율이 오르고 있으며 이는 영업이익과 CET-1 비율을 추가로 낮출 가능성이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미국 상업은행은 상반기 때 다소 지지부진한 주가 흐름을 보였으나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랠리가 시작되고 있다. 3분기 실적발표 전까진 은행주 주가는 다소 소강 상황이었다. 8월엔 워런버핏이 장기간 보유하고 있던 뱅크오브아메리카 주식 매도 뉴스가 나오며 시장의 투심을 위축시키기도 했다. 워런버핏의 투자회사 버크셔해서웨이는 올해 7월부터 매달 뱅크오브아메리카 주식을 내다 팔아왔다. 기존 23% 선이던 지분율은 넉 달 안에10% 미만으로 떨어졌다. 10월에 판 금액이 3억8240만달러(약 5156억원) 규모다.
또한 10월 초엔 바클레이즈 컨퍼런스에서 JP모건이 미 연준의 금리 인하 사이클을 앞두고 시장의 순이자 마진 컨센서스가 다소 높은 것으로 언급하면서 은행주들은 큰 폭으로 하락했다. 금리 인하에 따른 이자수익 감소가 불가피할 것이란 예상에 주식 매도가 나온 것이다.
다만 10월 말부터 뚜껑을 열어본 3분기 실적 발표로 미국 은행주 주가 상승에 다시 시동이 걸렸다. 순이자 이익은 반등하고 비은행 수익까지 올라오면서 긍정적인 4분기 가이던스가 나왔기 때문이다.
JP모건의 3분기 순이자이익은 234억달러로 전분기 대비 2.9% 늘었다. 올해 순이자이익 가이던스를 당초 910억달러에서 소폭 증가한 915억달러로 제시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순이자이익가 140억달러를 기록하며 전분기 대비 1.9% 늘었다. 3분기에 이자수익이 늘 수 있었던 이유는 고금리 예금으로의 이동이 어느 정도 진정된 상황에서 금리하락으로 인해 대출성장률이 일부 회복했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 인플레이션과 강한 상관성이 있는 시장금리 때문에 여전히 내년 순이자마진의 향방에 대해선 뚜렷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김재우 삼성증권 연구원은 “순이자이익에 긍정적인 뷰를 갖고 있는 뱅크오브아메리카조차도 내년 순이자이익 가이던스는 제공하지 않았다”라며 “그 이유로는 연준의 향후 기준금리 전망에 있어 시장의 전망치가 높은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고 말했다.
미국 은행의 대출성장세는 주춤하지만 향후 회복될 잠재력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책금리 인하가 대출금리 하락으로 이어지면 신용카드 대출 외에 다른 대출도 늘어날 수 있다. 또한 대선 이후 정치적 불확실성이 일부 완화될 경우, 그동안 이연됐던 기업의 투자가 늘어나며 기업대출 수요 역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대손충당금 부담이 줄어드는 것도 향후 실적 개선의 요인이다. 올초 은행들의 충당금 적립 비용이 늘어나는 가운데 고금리가 초래한 경기침체는 은행들의 대손 비용을 더욱 악화한다는 우려를 키웠다. 하지만 3분기 실적에서 충당금 적립 비용은 크게 늘어나지 않았고 건전성 지표도 더이상 악화되지 않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미 미국 대선 이후 미국채 10년물이 4.4%까지 오른 상황이라 은행들의 내년 순이자이익 감소 우려는 희석됐다. 다만 현재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이 인플레를 자극할 우려가 선반영된 상황이라 차츰 금리가 내려올 여지도 감안해야 한다. 김재우 삼성증권 연구원은 “현재의 과도하게 높은 수준의 금리가 정상 수준으로 회귀한다는 관점에서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급격한 금리 인상은 은행의 대출 수요 위축은 물론 차주의 이자 부담을 급격히 증가시켜 건전성 악화를 야기했는데 금리 인하는 앞서 금리 급등으로 인해 발생한 부작용들을 완화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채금리 인상 효과 외에도 트럼프의 당선으로 금융주에 우호적인 환경이 펼쳐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노믹스는 기업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 환경 개선과 경쟁력 강화를 유도하는 정책 방향이라 그동안 건전성 규제로 수익성이 악화된 대형은행에겐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여전히 경기 및 금리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주가 변동성이 높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금융주를 비롯한 미국 증시가 이미 밸류에이션 부담이 커진 만큼 작은 경제 지표 충격에도 흔들릴 수가 있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실제로 올해 고용과 물가 지표가 발표될 때마다 이에 따른 경기 판단이 달라졌고, 이에 금리 인하 횟수는 물론 ‘빅컷’ 여부에 대한 시장의 컨센서스도 급격히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김제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