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곳곳의 재건축·재개발 현장이 사업 동력을 잃고 있다. 높은 금리가 유지되는 데다 공사비가 급격하게 올랐기 때문이다. 낡은 주택을 부수고 다시 짓는 데 예전보다 돈이 훨씬 많이 드는 상황이다. 주민들이 수억원을 분담금으로 내야 겨우 재건축을 할 수 있는 곳이 늘어났다. 사업성이 뚝 떨어지며 정비사업이 지지부진해지자 서울시가 지난 3월 ‘재건축·재개발 2대 사업지원 방안’을 마련했다. 빈 땅이 별로 없는 서울에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선 정비 사업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으로 2대 방안은 ▲사업성 개선(5종)과 ▲공공지원(5종)이다. 전체 10가지 종류 대책으로 이뤄졌다.
먼저 사업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규제를 완화하고 인센티브를 늘린다. 역세권(반경 350m)에서 재건축을 추진하면 준주거지역으로 용도지역을 올려줄 방침이다. 현재 많은 역세권 단지가 제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분류돼 있다. 이를 준주거지역으로 바꾸면 최대 용적률이 기존 300%에서 500%로 확 늘어난다. 용적률이 200%포인트나 증가하는 셈이다.
서울 재건축 단지 가운데 역세권인 곳들은 꽤 많다. 강북권에서는 노원역을 둘러싼 상계주공 3·6·7단지와 중계역 역세권인 중계그린, 광운대역을 끼고 있는 월계동 ‘미미삼(미성·미륭·삼호3차)’, 월드컵경기장역 근처인 성산시영이 대표적이다. 서남권 재건축 대표 아파트인 목동 7단지(목동역)도 혜택을 노릴 수 있다. 심지어 강남권인 대치 은마아파트와 ‘우선미(우성, 선경1·2차, 미도)’, 압구정동 압구정 2·3구역도 사업성을 높일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물론 역세권 재건축 단지라고 무조건 다 준주거로 종상향되는 건 아니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고밀 개발이 필요한 지역인지 여부를 심의해 판단할 전망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도로를 비롯한 기본 인프라 스트럭처를 모두 고려해 최종 결정할 사안”이라며 “수혜지는 강북권에 몰릴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게다가 종상향을 위해선 일정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일자리 창출시설, 노인·유아 돌봄시설 등 이른바 전략용도시설을 도입해야 하는 것이다. 보통 용도지역을 올리면 의무적으로 공공기여를 해야 한다. 서울시는 이 부담도 좀 낮춰주겠다고 밝혔다. 1종→2종 일반주거지역, 3종 일반주거지역→준주거지역으로 상향할 때 지금까진 공공기여를 15% 부담해야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공공기여를 10%만 부담하도록 할 방침이다. 공공임대주택 등 건축물을 기부채납하면 주는 인센티브도 기존보다 늘린다. 비역세권 단지도 용적률을 최대치의 1.2배까지 늘릴 길이 열렸다. 가령 제3종 일반주거지역에 속한 단지가 최대 용적률을 300%가 아닌 360%까지 쓸 수 있는 셈이다. 이 혜택은 용적률이 이미 200% 중반인 과밀 단지에 주로 적용될 예정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30년 이상 돼 재건축이 가능한 노후 단지 가운데 현재 용적률이 230% 이상인 단지는 총 149곳(8만 7000가구)이다. 용산구 한강삼익(260%), 마포구 도화우성(240%), 동작구 사당극동(248%), 도봉구 방학우성1차(247%), 노원구 중계현대2차(252%) 등이 대표 사례다.
최환석 하나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은 “가장 수혜를 받는 건 용적률이 200~250% 사이인 중고층 단지들”이라며 “리모델링을 검토했던 단지들이 재건축으로 선회할 확률이 크다”고 말했다. 용적률 최대치가 360%로 주어지면 100%포인트 안팎의 여유가 생기게 돼서다. 다만 현재 용적률이 300%에 가깝거나 넘어서는 단지들은 이번 대책으로도 사업성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강북권을 겨냥한 ‘사업성 보정계수’란 제도도 처음 도입한다. 소형 평형이 많고 땅값이 낮아 분양수입이 적은 단지를 보충해줘 사업성을 올리겠단 의미다. 현재 용적률 인센티브 체계는 4가지로 나뉘어 있다. 제3종 일반주거지역을 기준으로 보면 기준 용적률(210%)→허용 용적률(230%)→상한 용적률(250%)→법적 상한 용적률(300%)로 구분된다. 제3종에 속한 노후 단지가 재건축을 한다고 바로 용적률 300%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여러 요건을 충족하거나 각종 부담을 져야 다음 단계 용적률을 얻게 된다.
기준 용적률(210%)은 한 마디로 시작점이다. 여기서 단지 디자인을 잘하는 등 쉬운 조건을 채우면 허용 용적률을 최대 20%포인트 받을 수 있다. 만약 도로나 공원을 기부채납하면 또다시 인센티브를 받아 용적률을 230%에서 250%로 올리게 된다. 이를 상한 용적률이라 한다. 상한용적률에서 법적 상한 용적률(300%)을 채우려면 늘어나는 용적률 50%의 절반인 25%를 임대주택으로 채워야 한다.
하지만 새로 도입된 보정계수를 적용하면 허용 용적률을 최대 40%포인트까지 올리는 게 가능해진다. 기준 용적률(210%)→허용 용적률(250%)이 되는 것이다. 여기다 상한 용적률 20%포인트를 받으면 270%가 된다. 이후엔 남은 용적률이 30%뿐이다. 이 중 절반인 15%만 임대주택을 지으면 되는 것이다. 결국 임대주택 비중이 기존 25%에서 15%로 줄어드는 효과가 생긴다. 분양주택 비중은 275%에서 285%로 10%포인트 늘어난다. 팔 수 있는 주택이 늘어나니 기존 주민은 재건축 분담금을 줄일 수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노원구 상계·중계처럼 분양가가 낮은 지역에 적용한다”며 “강남을 제외하면 대부분 적용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형 평수가 많아 분담금이 5억원 가까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진 상계주공 5단지가 대표 수혜처로 거론된다.
재개발 규제 역시 완화한다. 서울시는 재개발 사업의 접도율 요건을 기존보다 풀어줄 계획이다. 접도율은 재개발을 진행하려는 동네 안에 4m이상 도로에 접한 건축물이 얼마나 있는지 나타내는 비율이다. 4m면 소방차 한 대가 겨우 들어갈 수 있는 폭이다. 4m 이상이면 좀 더 넓고 쾌적한 도로란 뜻이다.
결국 접도율은 높을수록 괜찮은 도로에 접한 집이 많다는 걸 나타낸다. 반대로 낮을수록 구불구불 좁은 골목길이 많은 동네란 의미다. 지금까진 4m 이상 도로에 접한 건물 비율이 40% 이하여야만 재개발이 가능했다. 바꿔 말해 4m 미만 좁은 도로와 맞닿은 건물이 전체의 60%를 넘는 열악한 지역만 재개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울시는 접도율의 도로 기준을 4m 미만이 아닌 6m 미만으로 완화한다고 발표했다. 6m 이상 도로에 접한 비율이 40% 이하일 때 재개발이 가능해진다. 서울시는 새로운 기준을 적용하면 재개발이 가능해지는 면적이 1190만㎡로 대폭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현재 서울의 재개발 가능 면적이 484만㎡란 점을 고려하면 약 2.5배 늘어나는 셈이다. 부동산업계에선 1960~1980년대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이뤄졌던 지역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봤다. 이 사업은 과거 무질서하게 개발된 도시를 정비하기 위해 진행됐다. 이때 사업이 이뤄진 동네는 도로 여건이 좋아진 바 있다. 문제는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발생했다.
건물이 무척 낡아 노후도 요건은 충족했지만, 4m 이상 도로에 많이 닿아 접도율 요건을 채우지 못하는 동네가 늘어난 것이다. 서울 광진구 중곡동, 중랑구 중화·면목동, 강서구 화곡동의 노후 빌라촌들 얘기다. 그간 해당 지역들을 중심으로 접도율 요건을 완화해달라는 요구가 꾸준히 나왔다.
이번에 실제 완화가 이뤄지는 만큼 노후 빌라촌이 새 아파트촌으로 탈바꿈할지 주목된다. 재개발 활성화를 위해 자연경관지구·고도지구 규제도 풀어준다. 산 중턱에 주로 지정되는 자연경관지구는 현재 건물을 지을 때 높이가 12m로 제한돼 있다. 이를 20m로 올려줄 방침이다. 고도지구는 20m에서 45m 이상으로 높이를 완화해 산자락 노후 주택 단지도 개발되도록 한다.
정비사업의 인허가 기간도 줄어들 전망이다. 건축·도시계획·환경·교육 등 위원회별로 해왔던 심의를 단 한 번에 ‘통합심의’로 처리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통합심의를 하면 인허가 기간이 최대 1년 6개월까지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이미 통합심의위원회가 꾸려졌고 속속 심의를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조합 등 정비사업 추진주체가 빠르게 사업을 이끌어 나가도록 초기 융자 지원을 확대한다. 올해는 지난해(248억원) 대비 21% 늘린 300억원을 융자 지원한다. 서울시가 이 같은 대책을 내놨지만 여전히 변수는 치솟는 공사비와 주민 갈등이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공사비가 2~3배 뛰었기 때문에 용적률이 좀 오른다고 재건축이 활성화되기엔 한계가 있다”며 “사업성이 모호했던 곳들은 개선되겠지만 아예 낮았던 곳들은 여전히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이번 대책에 대해 “다소 주관적인 부분들이 있다”며 “사업성 보정계수 제도는 지역마다 달리 적용될 것도 같다”고 평가했다.
개인 상황에 따라 정비사업을 반대하는 주민들도 있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상가나 다가구주택에서 나오는 임대 소득으로 노후 생계를 이어가는 소유주들은 반대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높다. 미래의 아파트 한 채보다는 매달 들어오는 임대 소득이 더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넓은 땅을 가진 단독주택 소유주도 마찬가지다. 현행 도시정비법 76조에 따르면 단독주택 소유주이든 소형 빌라 소유주이든 재개발 이후 아파트 입주권은 1개만 받을 수 있다. 물론 대지지분이 아주 넓으면 한 채를 추가로 더 받을 수 있지만 이마저도 60㎡ 이하만 분양 가능하다. 아울러 최근 높은 금리가 계속 유지되는 것도 변수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주택 공급 확대와 도시 경쟁력 강화란 측면에선 (이번 대책이) 긍정적”이라면서도 “기반시설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 용적률을 높여주면 난개발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 원장은 이어 “준주거지역 상향이란 토지 효율성이 높아진단 뜻이다. 이는 땅값이 오른다는 것으로 투기가 재연될 여지도 있다”며 “공공기여와 임대주택이 줄어드는 것 역시 서민 복지 측면에서 바람직한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희수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5호 (2024년 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