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본시장이 ‘정부 밸류업 프로그램’의 도입을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이 정책은 국내 주식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기업의 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중대한 조치로 주목받고 있다. 정부 밸류업 프로그램의 핵심요소는 저평가된 한국 상장기업들의 기업가치를 재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가치 제고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도록 요구한다. 주로 자본비용과 수익성, 지배구조 개선 등이 포함되어야 하며, 이는 3년 이상의 중장기 목표로 설정된다. 기업들은 이 계획을 연 1회 이상 공시해야 하며, 이와 함께 주요 투자지표별 순위와 같은 중요 정보도 분기마다 공표해야 한다.
한국거래소는 이러한 노력을 지원하기 위해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개발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ETF를 이르면 하반기에 출시할 예정이다. 이 지수는 주가순자산비율(PBR), 주가이익비율(PER), 자기자본이익률(ROE) 등을 포함한 여러 주요 투자지표를 통해 기업가치가 우수한 기업들로 구성된다.
기업 밸류업 표창 기업 등 기업가치 제고가 기대되는 기업도 편입될 예정이다. 또 분기마다 시장별, 업종별로 PBR, PER, ROE 등 주요 투자지표 순위가 거래소 전자공시시스템(KIND) 등을 통해 공표된다. 배당성향과 배당수익률은 연 1회 공표된다. 이러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한국거래소는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의 시행·보완·발전을 지원하는 자문단을 구성·운영한다.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 현황 등 각종 정보를 한눈에 조회할 수 있는 ‘통합 페이지’도 구축한다. 전담 지원체계를 중심으로 상장기업 대상 공시교육, 중소기업 컨설팅, 영문 번역 지원, 공동 IR·온라인 홍보 등 기업의 적극적 참여를 위한 지원 기능을 강화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우리 자본시장이 ‘국민과 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상생의 장’으로 발전해 나가기 위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고자 한다”며 “이번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해당 기업과 투자자 등 모든 시장 참가자들의 이해와 협조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충분한 제도 이해와 협조를 위해 5월 중 개최될 2차 세미나를 통해 의견을 폭넓게 수렴한 뒤 6월 중 가이드라인을 확정할 예정”이라며 “준비된 기업은 올해 하반기부터 참여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 마련과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세부 과제도 차질 없이 이행해 나가겠다”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2023년 3월 있었던 일본의 증시 부양책을 벤치마크한 정책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일본은 프라임마켓 상장기업의 약 50%, 스탠더드마켓 상장기업의 60%가 ROE 8% 미만, PBR 비율이 1 미만으로 기업들의 수익성 및 성장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인식했다. 이에 따라 PBR이 1 이하인 저평가된 기업들을 대상으로 중장기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구체적인 이행 목표를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이후 해당 계획이 잘 이행되고 있는지 도쿄증권거래소 홈페이지를 통해 지속해서 수행 과정을 공개하고 있다. 해당 정책의 주요 내용은 총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자본 효율성 및 주가에 대한 인식 제고, 둘째, 기업지배구조의 질적 향상, 셋째, 영어 공시 관행의 확산, 넷째, 투자자(주주)와의 대화 효율성 제고다. 국내 프로그램도 이와 유사한 정책 방향을 견지하고 있어 같은 효과가 나올 것인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해당 정책의 시행 이후 일본의 대표 주가지수인 니케이225, 토픽스 지수는 지난해 3월부터 현재까지 각각 31%, 27% 상승하며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저PBR주들의 밸류에이션 역시 개선되며 증시 부양 효과가 잘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희철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 역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논의되면서 처음에는 단순 저PBR 주식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라며 “주주환원 여력이 충분하다고 여겨지는 금융, 지주, 자동차를 중심으로 강한 상승이 이어지고 있으며, 대형주 중심으로의 외국인 매수세 역시 강하게 유입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최근 투자자들 사이에 관심이 높아진 저PBR의 의미는 기업의 시장가치가 그 기업의 실제 자산가치에 비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당 기업의 미래 성장 가능성이나 현재 수익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투자자들의 관심도가 높은 PER이 낮은 경우도 비슷한 맥락에서 기업의 미래 성장 기대치가 낮게 평가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앞서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 최근 주목받은 저PBR과 저PER 외에 증권가에서는 ROE를 함께 살펴야 한다고 조언한다. 기업의 현재 수익성과 주주가치 환원 능력을 반영하는 이 지표를 통해 시장의 기대보다 더 높은 수익성을 보이거나 수익성 개선의 여지가 있는 기업들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신희철 연구원은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언급한 시점 이후로 저 PBR 기업들 중심으로 자금이 집중되고 있다”라며 “단순 테마플레이하듯 PBR이 낮은 주식을 매수하기보단, ‘저평가된 가치주’의 본질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사실 PBR은 기업의 주가가 그 기업의 순자산가치에 비해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ROE와 PER의 함수로 표현된다. 기업가치의 제고를 위해서는 높은 PBR을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곧 ROE와 PER의 상승을 요구한다.
신 연구원은 “듀퐁분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기업은 높은 마진과 총자산회전율을 통해 사업구조를 최적화한다”라며 “지속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는 영업활동으로 인한 견조한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한다”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듀퐁분석을 통해 하이투자증권이 추천한 종목으로는 동원F&B, 이노션, SK텔레콤, 하나금융지주, 세아제강, 현대해상, 삼성증권, 현대차, DB손해보험, 신한지주 등이다. 그 외 관심 후보군으로는 삼영무역, 제이에스코퍼레이션, SK디스커버리, SNT홀딩스, 현대코퍼레이션, DN오토모티브, 동원산업 등이 순위에 올랐다.
연초부터 정부 정책에 맞는 대형주 중심으로 밸류 상승이 나타났다면 3월 들어 분위기가 변할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먼저 지난해 말부터 주식시장 자급 유출입 패턴도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12월부터 코스피200 현물에 금융투자의 배당 차익 관련 순매수와 1~2월까지 순매도 패턴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은데 지난해 12월부터 순유입된 금융투자유입 자금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이경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3월 말 배당락(일부 기말배당·분기배당) 후 이러한 자금은 유출될 가능성이 높다”라며 “경험적으로 현물배당차익 물량의 유출은 특히 고배당주들에는 악재였고 실적 시즌 롱쇼트 수요 증가 및 성장주 진영의 반등세, 5월 있을 밸류업 정책 2차 세미나 전까지의 정책 공백기, 금리 하락 등도 변동성을 높일 수 있는 이슈”라고 분석했다. 중장기적인 주주환원을 할 수 있는 기업은 안정적인 순익과 현금흐름을 가져가는 기업일 가능성이 높고 기존 관심을 받았던 저PBR 테마보다는 저PER·고ROE 중소형주 중심으로 매수세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 연구원은 “일본 프라임150 지수처럼 밸류업 스코어링 기준으로 50%의 종목을, PBR 1배 이상인 시가총액 상위 종목으로 나머지 50%를 선정하고 유동시총으로 비중을 구성할 가능성이 높다”라며 “그렇게 되면 스코어링과 무관한 초대형주를 일정 부분 편입해 벤치마크와의 추적오차를 관리하고 밸류업 스코어링 상위 중소형주에도 편입의 수급적 수혜가 동시에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일본 사례에서도 초반 저PBR의 상승이 관찰됐지만, 결국 저PER과 고배당, 고ROE 순으로 성과가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 연구원은 “밸류업 지수의 세부 사항이 공개돼야겠지만, 고ROE, 저PER, FCF, 고배당, 배당성향, 저PBR을 각각 3:2:2:2:1:1로 감안한 밸류업 스코어가 높고 코스피200에 포함되지 않는 종목군이 현재 코리아 밸류업 지수가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수혜가 있을 전망”이라고 밝혔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3호 (2024년 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