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재건축, 재개발 등 정비사업시장에 큰 장이 들어설 전망이다. 정부가 수요가 많은 도심에 신규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정비사업과 관련한 규제를 대폭 손질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우선 정부는 지난 1월 10일 발표한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에서 준공 30년이 지난 아파트는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도록 재건축 절차를 개편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안전진단’은 재건축을 시작하기 위한 첫 관문 역할을 해왔다.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하면 정비구역 지정, 계획 수립 등의 단계로 넘어가지 못해 사업이 지연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정부는 이런 불편을 없애기 위해 재건축에 ‘패스트트랙’ 절차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준공 30년이 지난 아파트는 안전진단 없이도 입안 제안과 정비구역 지정이 가능해진다. 다만, 안전진단 절차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업시행인가 전까지만 안전진단을 통과하면 된다. 정부는 2월 이 같은 제도 개선안을 담은 도시정비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진현환 국토부 1차관은 “패스트트랙을 통해 사업기간을 3년 단축시킬 수 있고, 서울시 신통(신속통합) 기획까지 합쳐지면 최대 5~6년 단축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준공 30년이 지난 아파트 단지 중 아직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한 사업장이 많은 곳은 서울에선 노원, 강남, 강서, 도봉 순으로 많고, 경기도는 안산, 수원, 광명 등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전문위원은 “재건축 추진이 다소 어려웠던 1990년대 중반 아파트들이 리모델링 대신 재건축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안전진단 기준도 완화된다. 정부는 노후도가 높은 아파트는 안전진단이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도록 안전진단 기준을 개선하기로 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월 11일 정부세종청사 기자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안전진단 기준을 배관, 주차, 층간소음 등 생활 제반요소를 고려하는 방식으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준공 30년이 지난 아파트는 안전진단 없이도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며 사업시행 인가 전까지만 안전진단을 통과하도록 절차를 개선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사업에 착수했는데 이후에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할 수 있어 오히려 불확실성이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이런 우려에 박 장관은 “현재 안전진단은 콘크리트가 튼튼한지 여부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평가한다”며 “주차장, 배관, 소음 등 주거환경이 개선될 수 있도록 의견 수렴 절차를 충분히 거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앞서 윤석열 정부 들어 안전진단 기준은 한 차례 완화된 바 있다. 국토부는 기존 구조안정성 점수가 전체 평가의 50% 비중을 차지하던 것을 30%로 낮추고, 주거환경(15%→30%)과 설비노후도(25%→30%)의 비중을 높였다. 이에 더해 앞으로 주거환경과 설비노후도 점수 비중이 더 높아질 것을 시사한 것이다.
재건축 조합원들이 초과이익에 대해 지불하는 부담금도 줄어든다. 지난해 12월 재건축 조합원들의 부담금을 줄여주는 내용을 담은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는 재건축 부담금이 면제되는 초과이익을 3000만원에서 8000만원으로 상향하고, 부과 구간 단위를 2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초과이익을 산정하는 개시 시점도 추진위원회 구성 승인일에서 조합설립 인가일로 조정했다. 1주택 장기보유자에 대한 혜택도 추가됐다. 1가구 1주택자로 20년 이상 장기 보유하는 경우 최대 70% 부담금을 감경하도록 했다. 6~9년은10~40%, 10~15년은 60%, 20년 이상은 70% 부담금이 줄어든다. 만약 1세대 1주택자 중 만 60세 이상 고령자는 부담이 어려울 수 있어 담보 제공을 전제로 상속, 증여, 양도 등 주택 처분 시점까지 납부를 유예해준다. 또 임대주택 등을 국가에 공급한 경우 주택 매각비용을 초과이익에서 제외해 부담금에 반영되지 않도록 했다.
이 같은 개정안 통과로 부담금이 부과되는 전국 111개 단지 중 44곳이 면제받을 수 있게 될 것으로 예상됐다. 서울 7곳, 경기·인천 12곳, 지방 25곳이다. 전국 평균 부과금액도 개정안 통과 전 8800만원에서 통과 후 4800만원으로 줄어든다. 서울은 2억1300만원에서 1억4500만원으로, 경기·인천은 7700만원에서 3200만원으로, 지방은 2400만원에서 640만원으로 감소된다.
여기에 더해 부담금 산정 때 신탁방식 운영비처럼 초과이익에서 제외되는 비용 인정 범위를 넓히기로 했다. 이에 따라 국토부가 서울시 A단지의 재건축 부담금을 시뮬레이션한 결과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1인당 내야 하는 부담금이 1억1000만원에 달했지만, 개정안 통과 이후엔 5500만원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신탁방식 비용과 공공임대비용을 초과이익에서 제외하면 부담금은 2800만원으로 낮아지게 된다. 만약 1주택자가 20년간 장기 보유할 경우 부담금의 70%를 면제받아 최종 부담금은 900만원 수준으로 줄어든다.
재개발 사업 추진 요건도 완화한다. 현재는 재개발 사업을 하려면 해당 지역의 30년 이상 건축물이 전체의 3분의 2 이상이어야 한다. 국토부는 이를 60%로 완화하고, 촉진지구 지정 시 50%로 낮추기로 했다. 또 노후도 외에 접도율과 밀도 같은 요건을 충족하지 않더라도 사업 추진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하기로 했다. 정부는 오는 4월 도시정비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이를 시행할 계획이다.
정부의 정비사업 제도 개선을 통해 2027년까지 총 95만가구가 정비사업에 착수할 수 있을 전망이다. 수도권에서 재건축 착수가 가능한 곳은 55만가구, 지방은 20만가구다. 재개발의 경우 수도권은 14만가구, 지방은 6만가구다.
노후계획도시는 택지조성사업 완료 후 20년 이상 경과한 100만㎡ 이상 택지를 대상으로 한다. 특별법에 따르면 만약 여러 단지들이 함께 통합 정비를 하면 안전진단 면제, 용적률 상향, 통합 심의 등 각종 도시·건축 특례를 부여받는다. 구체적으로 주거지역의 평균 용적률은 100%포인트 내외로 상향하고, 3종 주거지를 준주거로 변경하는 경우엔 최대 500%까지 높인다.
국토부는 2024년 하반기 노후계획도시 재정비의 모범이 될 선도지구를 선정한다. 1기 신도시당 1곳 이상이 선도지구로 선정될 예정이다. 정부 임기 내 재정비를 위한 첫 착공에 돌입해 2030년 첫 입주를 목표로 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정부는 향후 정비사업이 대거 실시될 경우 자금 조달을 원활히 하기 위해 12조원 규모의 ‘미래도시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이는 연기금, 일반 국민, 주택도시기금, 금융기관으로부터 출자 및 투자를 받는 펀드다. 미래도시 펀드는 각각의 특별정비구역 자펀드에 투자하고, 이에 따른 수익을 배분받는다. 국토부 관계자는 “금융기관으로부터 수요를 조사해본 결과 관심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사업은 주민들이 조합 또는 신탁방식을 자유롭게 선택하게 하고, 공공은 총괄사업관리자로 지원한다. 기반시설 확충 방안도 제시했다. 특별정비구역 공공기여금을 담보로 지방자치단체가 채권을 발행해 기반시설 설치비용을 적시에 조달하겠다는 것이다. 또 이주 수요를 고려해 2025년부터 1기 신도시별로 1개소 이상 이주단지를 미리 조성한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다만 일부 1기 신도시 주민들은 정부가 안전진단 절차를 사실상 폐기해 통합 재건축의 동력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다. 안전진단 절차가 뒤로 미뤄지고 허들도 낮아지며 통합 재건축에 따른 ‘안전진단 면제’ 인센티브가 약화됐다는 평가 때문이다. 성남시 분당구 한 주민은 “정부에서 통합재건축을 하면 안전진단 면제와 같은 규제 완화를 적용한다고 해서 어렵게 주민들 동의를 이끌어왔는데, 이번 발표로 인해 개별 재건축으로 이탈하려는 사람이 늘어날 것 같아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통합 재건축의 경우 이해 관계자가 늘어나는 만큼 주민 간 갈등이 커지고 사업 속도가 지연될 수 있다는 점도 주민들 우려사항 중 하나다.
하지만 국토부는 여전히 통합 재건축 이점이 크다는 입장이다. 우선 안전진단 면제 외에도 용도지역 변경 및 용적률 상향이 가능하다. 재건축은 안전진단이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사업성이 문제가 돼 중단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통합 재건축을 하면 용적률이 상향돼 사업성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와 함께 개별 재건축보다 통합 재건축이 오히려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국토부 관계자는 “특별법이 아닌 도시정비법을 통해 재건축을 추진하더라도 도시정비기본계획 수립이 필요해 특별법을 통한 재건축보다 시일이 더 소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장관도 “1기 신도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재건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형태로 제도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반 정비사업이 어려운 곳은 소규모 정비사업 또는 도심복합사업 추진이 가능하도록 사업 문턱을 낮춘다. 인접 도로 건너편까지 구역 지정을 허용하고, 노후도 요건도 현행 3분의 2에서 60%로 낮춰 사업 대상지를 확대한다. 정부는 또 사업성이 부족해 자력 개발이 어려운 단지는 토지주택공사(LH)가 참여해 사업성을 보완한다. 소규모 정비사업 절차도 간소화해 조합 설립 주민동의율 기준을 80%에서 75%로 완화하고, 통합심의 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
미니 뉴타운 지원도 늘린다. 재정비 촉진지구 내 소규모 재건축이나 일반 재개발사업 등은 노후도 요건을 현행 3분의 2에서 50%로 완화해 사업 추진을 확대한다. 또 중소 규모의 신규 촉진지구를 지자체와 합동 공모하고, 용적률 완화 등 특례도 부여할 계획이다.
[김유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