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를 필두로 SNS가 황금알을 낳는 시대에 음원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건 백번천번이 아깝지 않다. 2023년 제59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예능 작품상을 받은 유튜브 ‘피식대학’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국내외 셀럽들을 초청해 쇼를 진행하는 피식대학의 오늘을 있게 해준 ‘한사랑 산악회’는 평범한 중년 남성들의 등산 모습을 재현해낸 코미디 프로그램이다. 피식대학 본인들이 밝힌 바에 따르면 전 연령층의 공감을 끌어내며 많은 사랑을 받아 매해 수백만~천만 조회수를 탄생시킨 이 콘텐츠 수익은 안타깝게도 영상에 사용된 배경음악 제작자에게 대부분이 돌아갔다고 한다. 한 회당 엄청나게 공들인 저작물의 수익이 한 순간에 날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료 배경음악을 사용하면 다른 영상 제작자들이 사용한 음원과 같은 인기 배경음악을 사용해 콘텐츠의 변별력이 사라지고, 유료 배경음악 서비스를 사용하면 까다로운 사용 약관 때문에 구독 종료 후 수익 제한 조치에 걸릴 수도 있다.
유튜브는 물론이고 영화, 드라마, 광고 등 영상 제작자들의 음악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것이 다반사다. 블랙핑크, BTS 등 유명 가수들의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면 좋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2017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한 공모전에서 수상한 허원길 대표는 이러한 음원시장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포자랩스(Pozalabs)를 설립했다. 처음에는 ‘뮤직쿠스’ ‘몽상지능’ 등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인공지능 작곡, 작사 모델을 개발했다. 이후 2018년 1월, 포자랩스 법인을 설립하고 ‘누구나 쉽게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고 소유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든다’라는 비전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인공지능 음악 작곡 모델 개발에 착수했다.
이후 포자랩스는 영화, 드라마 배경음악이나 게임, 광고, 영상 콘텐츠에 필요한 음악을 작곡해주는 AI 엔진, ‘디오AI’를 선보였다. 이러한 엔진을 통해 개발된 서비스가 바로 비오디오 서비스다.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은 이 서비스를 통해 사용자는 AI를 통해 5분 내 원하는 분위기의 음원 생성이 가능하다. 또한 음원 스타일을 텍스트로 입력하기 어려운 경우, 레퍼런스 음원을 등록하면 비슷한 분위기의 음원 제작도 가능하다. 월 구독료는 1만2900원이며, 가입 후 첫 2달은 무료 사용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음원 제작자에 의뢰해 악기 50개가 사용된 음악의 경우, 2주의 제작 기간이 소요되나 포자랩스는 AI 기반 자동 음원 생성을 통해 제작 시간을 혁신적으로 절감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비오디오에서 서비스하는 모든 음원은 2차 판매를 제외한 모든 수익 창출 활동이 가능해 CJ ENM, 네이버 같은 콘텐츠 제작사 등 국내 유수의 기업이 비오디오를 사용하고 있다.
포자랩스 관계자는 “비오디오는 2022년 9월 출시 이후 가입자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라며 “향후 1인 유튜브 크리에이터 혹은 MCN(Multi-Channel Network·1인 크리에이터들의 기획사) 등 고객층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포자랩스는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 외에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기업이 음원 제작을 의뢰하면 요청 사항에 맞는 전문적인 인공지능 음원을 만들어 제공한다. 기존의 곡을 상업적으로 사용하려면 보통, 사전에 저작권자들에게 저작권 사용 승인을 받아야 한다. 1곡의 저작권자로 20명 이상이 등록된 때도 있다. 이런 경우, 저작권자 모두의 승인을 받아야 저작물 사용이 가능해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상당한 자원이 소요될 수 있다.
포자랩스의 무기는 기존 AI 창작곡의 낮은 품질을 개선하기 위해 모든 음원이 믹싱, 마스터링 등 섬세한 수정 작업을 거친다는 점이다. 최근 AI 음원 생성기업이 무더기로 출시되고 있는데 품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비슷비슷한 질의 음원이 무더기로 사용되다 보니 변별력도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양산업체와 포자랩스의 차별성은 전체 인력 약 60명 중 50%가 클래식, 실용음악을 전공한 작곡가로 포진해 있다는 점이다.
포자랩스 관계자는 “작곡팀은 AI 학습 데이터로 사용되는 참조 음원을 직접 제작한다”라며 “기존 기성곡을 배제하고, 100% 자체 제작 음원으로 데이터를 구성함으로써, 높은 질의 음원 생성이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창작된 음원의 표절 문제 해결을 위해 작곡팀에서 음원 제작, 편집 등 전 과정을 검수하기 때문에 저작권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다.
최근 AI 음원이 양산되면서 몇몇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다. 일례로 브루노 마스가 부른 뉴진스 노래 등 저작권 문제가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포자랩스는 처음부터 저작권 문제에 집중했다.
포자랩스는 기존 저작물을 학습 데이터로 사용해 자사 AI 음원을 창작하지 않고, 회사 소속 작곡가들이 제작한 독자적 미디(midi) 음원 데이터만을 활용해 AI 음원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자랩스 측은 “가왕 조용필의 ‘Hello’를 기계 학습 데이터로 사용해 이와 유사한 음원을 만드는 모델이 아니라는 의미”라며 “데이터 사용에 있어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저작권 문제를 미리 방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포자랩스는 2018년 설립 당시부터 2023년 7월까지 자체 음원 데이터 구축에 힘쓴 결과 총 80만 개 수준의 미디 데이터를 모았다. 음원 샘플 데이터의 종류도 다양해 록, 재즈, 힙합, 뉴에이지 등 거의 모든 장르의 AI 음원을 생성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포자랩스 관계자는 “2022년 9월 음원 생성 기술력을 담은 논문 <ComMU: Dataset for Combinatorial Music Generation>이 세계 최고 권위의 학회 신경정보처리시스템학회 뉴립스(NeurIPS)에 등재됐다”라며 “참고로 뉴립스는 기계 학습, 빅데이터, 시청각 정보처리 등 다양한 AI 분야의 연구가 발표되는 학회로 각 분야 우수 연구자들의 논문 중 25% 정도만 채택될 정도로 기준이 까다로운 것으로 유명하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포자랩스는 CJ ENM, MBC, 매경미디어그룹, 크래프톤, 삼성생명 등의 고객에게 AI 음원을 납품하고 있다. 영화, 드라마, 예능, 게임, 광고 등 사용처도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포자랩스는 최근 제일기획과 함께한 삼성생명의 ‘좋은 소식의 시작’ 광고 캠페인 BGM(배경음악)을 제작했다. 이 광고는 업계 최초로 배경음악, 징글, 광고 영상의 모든 이미지까지 오직 AI 기술만을 활용해 제작한 것이 특징이다. 포자랩스는 이번 광고 캠페인에서 배경음악과 징글 제작을 맡았다. ‘좋을 때 더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자’라는 슬로건에 맞추어 경쾌하고 희망찬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빅밴드 느낌의 AI 재즈곡을 생성했다. 특히, 재즈 장르의 즉흥적이고 리드미컬한 특성을 살려 완성도 높은 AI 음원을 제작했다.
한편 포자랩스가 기업들의 광고나 앱 배경음악 외에 공을 들이고 있는 분야는 바로 수면음악이다. 포자랩스는 수면음악의 대가로 자리잡은 피아니스트 윤한과 손을 잡았다. 윤한은 의학, 음악학, 신경정신학, 뇌과학의 이론적 근거를 바탕으로 2022년 7월부터 5장의 수면음악 앨범을 제작했다. 음악과 수면의 상관관계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 중인 그는 더 과학적인 수면음악 제작을 위해 AI 기술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한은 이번 AI 수면음악 연구, 개발을 위해 지난 4년간 쌓아온 수면음악 작곡 알고리즘을 포자랩스에 제공해 AI작곡 데이터로 활용할 계획이다. 포자랩스는 윤한의 작곡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수면음악 작곡 규칙을 학습시키고 이를 활용해 과학적인 AI 수면음악의 제작을 담당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포자랩스는 SK텔레콤의 AI 스피커 ‘누구(NUGU)’에 탑재되는 AI 수면음악을 제작하기도 했다. 해당 수면음악은 시니어 불면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성한 AI 음원으로, SK텔레콤과 재단법인 행복커넥트가 시행하는 AI 돌봄 서비스 사업의 하나로 제작되었다. 음원은 AI 스피커 ‘누구’의 신규 수면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잠이솔솔’에 탑재된다. ‘잠이솔솔’은 포자랩스와 SK텔레콤이 협력해 만들었으며, 재단법인 행복커넥트와 함께 사용자 데이터를 분석해 효과성을 검증할 예정이다.
포자랩스는 2018년 설립돼 2018년 5월·8월에 네이버와 본엔젤스로부터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 이후 2022년 10월 CJ ENM은 포자랩스에 시리즈A 투자를 완료하며 2대 주주에 올랐다고 밝혔다. 이러한 전략적 투자를 계기로 CJ ENM은 포자랩스의 AI를 활용해 프로그램 제작의 편의성과 글로벌 유통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 중이다. 이번 투자를 통해 CJ ENM만의 AI 음원 라이브러리를 구축해 제작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장기적으로는 메타버스 등 신사업에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허원길 대표는 “CJ ENM의 글로벌 콘텐츠를 통해 AI 음원을 전 세계에 선보일 수 있는 기회”라며 “국내외 사용자들을 위한 AI 작곡 플랫폼 개발에 박차를 가해 국제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포자랩스는 2024년 1월 중 음악 생성 AI 서비스 ‘LAIVE’ 베타를 출시할 예정이다. ‘LAIVE’는 AI 기술을 활용해 작곡, 작사, 보컬까지 한 번에 생성해 나만의 음악을 만들어 소유할 수 있는 웹 서비스다. 이 서비스를 통해 작곡, 작사, 보컬 생성, 믹싱, 마스터링 전 과정을 100% AI로 생성하며, 음원 생성에 사용된 모든 데이터는 포자랩스가 직접 구축한 음원 데이터만을 활용해, 저작권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는 게 특징이다.
포자랩스 관계자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누구나 쉽게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고 소유할 수 있는 미래’를 만든다는 비전을 품고 서비스를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포자랩스는 올 3월, 세계에서 가장 큰 음악 축제 SXSW2024에 참여할 예정이다. 기업 부스를 열고, 미국 현지 관계자들을 만나 LAIVE를 소개하는 자리를 가질 예정이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