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1세대 아파트의 상징이자 사교육의 ‘메카’ 강남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치동 은마아파트(서울 강남구)가 최근 조합설립 총회를 개최하고 서울 강남구청에 조합설립서를 제출했다. 조합설립서 제출과 함께 부동산 시장에서 은마아파트에 대한 관심은 급속도로 높아졌다. 아실에 따르면 올해 서울 강남구에서 가장 거래가 많이 이뤄진 아파트는 99건(9월 13일 기준)을 기록한 은마아파트다. 지난해 거래량 37건을 일찌감치 추월했다. 은마아파트는 1월과 9월 각각 4건, 2건의 거래 건수를 제외하면 매달 두 자릿수의 거래량을 기록했다. 조합 설립 신청이 이뤄진 8월에는 16건의 매매가 이뤄지며 전월 10건 대비 60% 거래량이 늘었다.
투자자들이 조합설립 신청에 민감한 것은 강남구가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이후에도 여전히 투기과열지구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강남·서초·송파구와 같은 서울 강남 3구와 용산구 등 투기과열지구에서는 조합 설립인가 이전까지 신고된 거래만 조합원 지위 양도가 인정된다. 이후에 매수하면 현금 청산 대상이 된다. 조합원 자격 ‘막차’를 타려는 매수세가 대거 몰리면서 은마아파트 가격도 오름세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은마아파트 전용면적 84㎡는 지난 8월 27억2000만원에 거래가 이뤄졌다. 지난 1월 21억5000만원에 거래된 것과 비교해 5억원 넘게 가격이 올랐다.
호가도 오름세를 타면서 최고가에 근접하는 추세다. 인근 공인중개사에 따르면 전용면적 84㎡ 매매 호가는 약 28억원이다. 2021년 11월 기록한 최고가 28억2000만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는 “전용면적 76㎡는 집주인들이 22억원에 매물을 내놓았다가 대부분 거둬들였다”며 “지금은 24억원보다 비싼 가격에 거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은마아파트 전용면적 76㎡ 최신 거래금액은 9월 중순 체결된 23억5000만원이다.
은마아파트 재건축은 1996년 처음으로 시작됐다. 이후 27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요즘 아이돌이 원로가수가 돼 축하공연을 열 때쯤 재건축이 가능할 것’이라는 우스갯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재건축 추진 이후 26년 만인 지난해 10월 서울시는 도시계획위원회를 열고 은마아파트 주택재건축 정비계획 수립과 정비구역 지정·경관심의안을 수정 가결했다. 기존 28개동·4424가구 규모의 은마아파트는 33개동·5778가구의 신축 단지로 탈바꿈하는 출발선에 섰다.
서울시 계획안에 따르면 은마아파트의 최고 층수는 35층이다. 은마아파트 재건축에 긍정적인 부분은 지난 1월 서울시가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을 통해 기존 ‘35층 룰’ 규제를 폐지하겠다고 밝힌 점이다. 여기에 지난 2월 서울시는 디자인 특화설계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초고층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은마아파트는 현재 정비계획안을 최고 49층으로 변경하는 심의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은마아파트가 위치한 대치동은 강남에서도 손꼽히는 인기 주거지다. 이 일대에 5000가구 넘는 대단지가 공급될 환경이 마련됐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평가다.
아파트 재건축은 일반적으로 안전진단, 정비구역 지정, 조합설립인가,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인가, 이주·착공, 준공 순서로 진행된다. 현재 은마아파트 재건축은 조합설립인가를 앞두고 있다.
2000년 이후 서울에서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재건축 사업장 163곳을 대상으로 재건축이 마무리될 때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9.7년으로 조사됐다. 은마아파트 재건축의 경우 걸어온 길보다 가야 할 길이 더 많이 남은 셈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단계가 재건축 사업에서 매우 중요하기는 하지만 정비사업 전체 과정을 놓고 보면 이제 출발선에 오른 수준”이라며 “여전히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외부 환경 역시 녹록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밝혔다.
핵심 변수로는 ‘사업성’이 꼽힌다. 정비사업에서 사업성을 판가름하는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가 용적률이다. 은마아파트 용적률은 204%로 재건축 추진위 내부에서도 ‘용적률이 좋은 편은 아니다’라는 의견이 있다. 최정희 조합장은 창립 총회에서 “용적률이 204%에 달해 사업성이 좋지 않기 때문에 분담금 부담을 낮추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가 지난 2월 공개한 ‘은마아파트 재건축 사업 정비계획 결정 및 정비구역 지정안’에 따르면 은마아파트 재건축 일반분양가 추정액은 평(3.3㎡)당 7700만원으로 책정됐다. 기존 최대 금액인 래미안원베일리(서울 서초구)의 약 5669만원보다 2000만원 이상 비싸다.
기존 재건축사업 과정에서는 정비계획 결정 단계에서 분양가 추정액을 제시하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지난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과 함께 올해부터는 분양가 추정액과 아파트 소유자가 부담할 분담금 추산액도 재건축 정비계획을 짤 때 명시해야 한다.
이 같은 일반분양가가 책정됐지만 조합원 부담은 여전히 만만치 않은것으로 나타났다. 은마아파트 추정 종전가액은 전용면적 76㎡과 84㎡가 각각 19억원, 22억원으로 책정됐다. 종전가액은 개발이 예상되면서 오른 가격을 제외한 현재 가치를 감정평가한 금액이다.
추정액을 기준으로 따져보면 현재 전용면적 76㎡ 소유주가 84㎡를 분양받기 위해서는 약 4억원이 필요하다. 109㎡를 분양받기 위해서는 최대 7억7000만원가량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물론 이 같은 분담금 액수는 향후 사업 진행과 함께 변동될 수 있다.
정비업계가 재건축사업에서 가장 큰 걸림돌로 꼽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와 분양가 상한제 등과 같은 규제가 여전하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는 재건축 조합원 한 사람당 3000만원을 초과하는 개발이익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될 때 예상 개발이익의 최대 50%를 정부가 개발부담금으로 환수하는 제도다. ‘강남이 집값 상승의 근원’이라는 인식과 함께 마련된 규제인데, 집값을 잡기는커녕 공급을 저해하는 제도라는 비판이 거세다.
정부는 지난해 9월 ‘재건축 부담금 합리화 방안’과 함께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부담 완화에 나섰다. 그러나 법률 개정 사항이라 여전히 국회에 계류된 탓에 묶여 있을 뿐만 아니라 통과 가능성도 낮다는 전망이 주를 이룬다.
대치동이 여전히 분양가상한제 규제 지역이라는 점도 은마아파트 재건축에는 부담이다. 경기 침체 속에 원자재가격과 인건비가 급등하면서 최근 정비업계에는 공사비를 둘러싼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분양가상한제에 활용되는 기본형 건축비의 경우 공사비 상승분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속된 금리 인상으로 인한 고금리와 부동산 경기 침체 등의 이유 때문에 자금 조달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은마아파트뿐만 아니라 재건축 조합 입장에서 조합원 부담을 줄이려면 자신들의 부담을 반영해 일반분양가를 높이는 방법이 남게 된다”며 “이미 역대 최대 규모 일반분양가가 책정된 상태에서 더 오르면 분양 시장에서 흥행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 향후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재건축을 통한 ‘대박’을 노리는 예비 매수자들은 이 일대가 토지거래허가 구역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인 은마아파트는 매수하면 3개월 이내에 잔금을 지급해야 한다. 잔금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입주해야 하고, 입주하면 2년간 실거주해야 한다.
사들인 후 조합이 설립되면 훗날 파는 일도 어려워진다. 조합 설립 후 거래가 이뤄질 때 매수인이 조합원자격을 승계하려면 매도인 측이 ‘1가구 1주택·10년 보유·5년 거주’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정석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