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서울시 25개 구(區) 구청장 중에선 유일한 3선이다. 더 나아가 66개 수도권 지방자치단체장 중에서도 유일한 3선이다. 지난 2022년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참패를 했는데 한강벨트에선 유일하게 당선된 민주당 후보가 정원오였다. 시장은 오세훈, 구청장은 정원오, 이런 교차투표가 여기선 상식이다.
지지율 90%대. 북한에서나 가능한 수치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역사를 썼다. 영국 매체인 <타임아웃>이 재작년 성수동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네 4위로 꼽았다. 마르세유의 노트르담 뒤 몽, 카사블랑카의 메르스 술탄, 발리의 페레레난 다음이다. 성수가 도시재생을 하면서 벤치마킹한 곳은 뉴욕의 브루클린.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브루클린에서 한 수 가르쳐 달라며 성수를 찾는다. 2020년 성수를 방문한 외국인은 총 6만 명, 작년엔 296만 명으로 늘었다. 무려 50배 증가. 한양대학교 산학협력단 최창규 교수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성수동의 경제적 가치는 2014년 대비 33.3조원 증가했다.
작년 9월 15일부터 1주일간 성수동 전역에서 개최한 ‘2025 크리에이티브×성수’는 성수의 미래를 엿볼수 있는 문화창조산업 축제였다. 456개 기업과 자원봉사자, 예술가 등 1635명이 참여해 102개의 프로그램을 진행시켰다. 국내외에서 23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은 매머드급 행사였다.
그는 <성수동> 책에다가 이렇게 썼다.
“성수동을 발전시킨 비결이 무엇이냐 다시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경청했으며 뒤로 물러섰고, 멀리 보고자 했다. 그렇게 얻은 시야에 힘입어 지역 사회와 함께 현실을 분석했고 전략과 계획을 수립했다.”
‘지역 사회와 함께’. 바로 그거였다. 전략과 계획을 수립하는 역할을 공무원들이 한 게 아니다. 공무원들이 먼저 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한껏 화려한 단어로 치장된 사업계획을 제시해봤자, 실상 소수의 공무원이 데스크에 앉아 빈칸 채우는 마음으로 쥐어짜낸 것이고, 이는 출력과 동시에 죽은 언어로 묻히는 결과를 수없이 봤다”라고 한다. 그건 주민들 속에서 생동하는 언어가 아니었다.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한 조례를 만든다고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조례를 만들기 전까지의 주민들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의 과정도 험난했다. 정 구청장은 “제도는 제도일 뿐 그 제도를 실현 가능하게 만드는 게 진짜”라고 말한다. 재산권 침해라고 말하는 건물주도 있었고 구청이 왜 이런 문제에 나서느냐며 어리둥절해 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6급 이상 간부 공무원 48명이 현장으로 나갔다. 총 127명의 건물주를 직접 찾아가서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 인사들도 다수 있었다. 가게와 동네가 함께 잘되자고 설득하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먼저 지역 실정에 밝은 팀장급 간부들이 일대일 전담으로 건물주들을 직접 찾아가 끊임없이 설득했습니다. 처음엔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지만 당장 임대료를 올리는 것보다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는 부분을 설명드리고 이해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진심 어린 설득 끝에 건물주와 상인의 약 65%가 참여해 주셨고, 현재도 247명의 건물주가 동참하고 있습니다.”
성수동을 포함한 뚝섬 지역은 총 5개의 특별구역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1·2 구역은 소위 재건축 프로젝트. 지역주택조합 사업으로 추진됐다. 서울숲 아이파크 리버포레 1·2차 아파트다. 1차 아파트는 2024년, 2차 아파트는 2025년에 입주했다.
다세대 주택 중심의 저층 주거지인 3·4·5구역이 핵심. 이곳은 이른바 도시재생 사업이었다. 그렇게 결정된 게 2017년 5월 18일. 특별계획구역을 해제를 골자로 하는 지구단위계획을 결정해 고지한 날이다. 이런 결정에 이르기까지 정 구청장은 총 13번의 설명회를 열어 주민들과 소통했다. 전체 주민설명회를 한 차례 열고 블록별 설명회를 3달간 진행했다. 이렇게 수렴한 의견을 4차례에 걸쳐 서울시로 전달했다.
“성수동의 새로운 변화에 맞춰 도시 공간을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결단이었습니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하는 게 자산 가치를 높일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인데 이를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죠.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젊은 구청장이 나타나 재개발이 아닌 도시재생 사업으로 지역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얘기하니 많은 분들이 의구심을 품었습니다. 끊임없는 대화와 협의를 통해 사업 추진에 대한 감을 이끌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10여 년 지난 현재 성수동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새로운 모델의 ‘핫플레이스’가 됐다. 정 구청장은 “도시재생의 실패는 주민들을 배신하는 일이라 생각하니 어떻게든 성공시켜야겠다는 심적 부담이 어깨를 짓눌렀다”라면서 “지금의 성수동을 만드는 데 큰 발판이 된 주민들의 결정에 감사하다”라고 말한다.
정 구청장과 인터뷰를 하기 전 팁을 얻을 겸 그를 아주 잘 아는 분에게 “정 구청장의 가장 큰 장점이 뭐냐”라고 물어봤다.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하는 말. “매일매일 발전하는 사람”이라며 약간의 설명을 곁들인다.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합니다. 아이디어가 많죠. 그런데 그 아이디어라는 게 경청과 소통에서 나옵니다. 보통 지자체장 2번 하면 매너리즘에 빠집니다. 공무원들에게 포위되고 권위 내세우고 어디가서 폼 잡는 거 좋아하게 됩니다. 주민들 목소리 듣는 거 귀찮아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정 구청장은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매일매일 발전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 말을 전하고 반응을 떠봤다. 듣고 나니 일리가 있어보였나 보다. 정 구청장은 이렇게 말한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저는 그런 노력을 하는 편입니다. 새로운 것을 계속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보통 하던 방식이 아니면 관성이 있어 튕겨 나가기 십상인데 전 그런 새로운 도전에 두려움이 없는 것 같아요. 어떻게든 해보려고 합니다. 성동구청에 금지어가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예산이 없어서 못한다. 두 번째는 전례가 없어서 못한다. 주민들이고 기업들이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으면 저희한테 수시로 제안합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발전한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버스정류장에 가면 엉뜨엉차(엉덩이 뜨겁게 엉덩이 차게) 벤치 있죠. 그게 주민 아이디어 받아서 한 거고요. 그런데 좀 사용하다 보니 센서 기능이 없어 효율성이 떨어지는 겁니다. 전력 소모도 많고요. 어떤 분이 또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이걸 해결할 디지털 기술이 있다고. 그래서 시도해 봤습니다. 그게 오늘날 버스 정류장의 혁신을 가져오게 된 것이지요. 전국이 성동구를 따라하게 됐지요.”
손에 꼽을 수도 없이 많은 일들을 했다. 버스 정류장을 냉난방에 와이파이가 되는 스마트 쉼터로, 병원의 음압 장치 원리를 적용한 총 14개에 달하는 스마트 흡연부스 설치, 바닥에도 파랑 빨강 신호등이 들어오는 횡단보도, 도서관 겸 카페로 개조한 구청 로비, 인도가 없어 사고가 잦았던 금남시장 길 확장, 그리고 30년 숙원 사업이던 삼표레미콘 공장 철거…. 정 구청장의 행정은 눈부시다.
정 구청장은 혼자 이런 일들을 다 할 수는 없다는 걸 안다. 조직이 한다. 1500명 성동구청 직원들이다. 정 구청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통은 바로 직원들과의 소통이다.
“저는 직원들을 모두 파트너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때 배석한 직원들이 4명이 있었는데 그들 보고 그렇지 않냐고 묻는다) 제가 갖고 있는 생각이 직원들과 교류돼야 합니다. 직원들이 제 생각을 이해하고 함께 갈 때, 1500명이 같은 목소리가 나올 수 있을 때 엄청난 파괴력이 생기는 거죠. 인사권자와 피인사권자 관계라면 시너지가 나오지 않습니다. 직원들과 족구도 하고 섬으로 워크숍도 가고 이런 노력을 많이 합니다.”
정 구청장은 “어떤 문제든 이를 극복하거나 해결하는 힘은 내부에서 나온다”라며 “첫 번째가 구성원들의 마음을 모으는 것이며, 둘째는 그걸 담을 조직을 만드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성수동은 본질적으로 일에 대한 이야기다. 새로운 생각이 탄생하면 그걸 시도해 보고, 생각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다르면 그런 분들의 뜻을 좁히고, 일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길 단단한 내부 조직을 만들고, 그렇게 해서 낡고 허름했던 동네를 새롭고 멋진 곳으로 바꾼 멋진 스토리다.
필자는 다시 아이아이컴바인드로 왔다. 단순한 본사 건물이 아니라 예술과 건축, 리테일이 융합되는 상징적 장소라는 오재욱 이사의 설명. 건물의 외관은 금속과 유리가 겹겹이 접힌 형태다. 낮에는 햇빛을 반사하고, 밤에는 그림자를 쌓는다고 한다. 건물 상층부에 삐쭉삐쭉 돌출한 막대기 모양의 구조물. 동서남북 정방향으로 뻗어가는 게 정 구청장이 강조하는 고객과의 소통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이아이컴바인드 역시 도시를 재개발하지 않았다. 성수가 도시를 재생했듯이 이들은 이들의 방식으로 도시의 감각 체계를 다시 써 내려갔다. 이들은 가장 상업적 가치가 높은 1층을 매장으로 활용하지 않았다. 전시와 협업이 열리는 프로젝트 스페이스로 일반인이면 누구나 둘러볼 수 있는 오픈된 공간이었다. 구매를 강요하지 않고 머무르면서 소통하라고 한다. 과거를 해석하고 미래를 상상하라고 한다.
건물을 나오면 모퉁이에 설치미술 작품을 발견하게 된다. 황금색 비닐봉투를 들고 있는 노인의 조각상이다. 바닥에 내동댕이친 수많은 검은 비닐봉투 더미 속에 유일하게 픽업한 황금 비닐봉투. 오 이사가 말한다. “세상에 모두가 다 가치 없는 쓰레기라고 여긴다 해도 그 어딘가엔 우리가 찾고자 하는 황금 같은 보물이 있다”고. 아프리카 남부에 위치한 나미비아 출신의 독일 아티스트 맥스 시덴토프가 젠틀몬스터와 협업해 만든 설치작품. 우리가 소비하는 수많은 물건 중에도 황금이 있으며 우리가 지나치는 수많은 시간 중에도 황금 같은 시간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매일경제신문이 매년 창간기념일을 맞아 정례적으로 선보이는 프로그램이 국민보고대회다. 국가 어젠다가 될 만한 특정한 주제를 선정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할 액션플랜을 제시하는 행사로 1997년 외환위기 와중 시작한 <한국보고서>가 그 시발점이다.
2013년 제21차 국민보고대회의 주제는 ‘도시’였다. 어떻게 하면 대한민국의 핵심 도시인 서울을 국제 경쟁력이 있는 도시로 탈바꿈할 것이냐를 연구한 프로젝트였다. 600년 역사의 사대문 안, 서울을 한반도 중심으로 만든 서울역과 용산역, 그리고 천만 도시 서울의 또 다른 신도시 여의도, 여기에 500만 규모의 강남 신도심이 거대한 어반 링크(Urban Link)를 형성하면 서울은 21세기 창조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는 담대한 제언. 당시 우리는 핵심지역을 ‘용산’으로 잡았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매일경제는 국내 자문위원 5명을 선정해, 보고서의 감수를 맡겼고 이들로 하여금 대한민국 최초의 ‘도시선언’을 도출했다. 이름하여 ‘서울창조도시선언’. 외부의 명망가들의 코멘트도 받았는데 그중 한 분이 앞서 언급한 리처드 플로리다 캐나다 토론토대학 교수였다. 그는 “미래 번영의 초석은 사람의 지식을 동원하는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곳은 대기업, 국가도 아닌 도시”라고 했다. 플로리다 교수와 도시문제에서 쌍벽을 이루는 에드워드 글레이저 미국 하버드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도시는 지적 폭발을 창조하는 곳”이란 언급을 했는데 이 문구를 우리는 도시선언문의 핵심으로 삼았다.
예술의 전당을 설계한 건축과 도시 디자인의 대가인 고(故) 김석철 교수가 초안을 작성하고 나머지 분들이 감수를 해서 탄생한 도시선언문에 “서울은 도시 경쟁의 선두에 서기 위해 역사와 지리, 문화와 예술, 환경과 산업을 융합하여 21세기 창조도시로서 과감한 대전환을 이뤄야 한다”라며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지금 보면 전율을 느낄 만한 대목이다.
“창조적 산업은 지식서비스, 정보통신산업을 넘는 보다 큰 차원의 산업이다. 창조산업은 도시의 역사, 지리, 문화, 예술, 환경의 인문적 시대정신이 산업과 함께 어우러져 탄생한다. 이런 창조산업은 대도시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자유롭고 창조적인 인간군의 지적 폭발을 자극하는,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특별도시구역에서 가능하다. 서울이 아직 세계도시가 되지 못한 것은 19세기 런던의 더시티, 20세기 뉴욕의 월스트리트 같은 창조적 인간군을 조직화할 도시 구역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13년 전 우리는 그 도시 구역이 용산이었으면 했다. 용산이 황금 비닐봉투였으면 했다. 그러나 용산은 이 비전을 실천하지 못했다. 그걸 성수가 해냈다. 도시 프로젝트에 참여한 그 어느 누구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곳. 매일경제의 도시선언이 나온 그 이듬해부터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그 싹을 틔웠다.
[손현덕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