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 관리하는 정부 데이터센터에 불이 난 것은 지난 9월 26일. 한 차례의 화재는 정부가 추진해온 디지털 전환의 핵심 인프라가 한 차례 화재만으로도 망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 결정적 사건이다.
사고 이후 대전본원이 담당하는 605개 정부 전산 시스템이 동시에 멈추면서 전국 각 부처 및 산하기관의 전자업무가 정지됐고, 일부 국민 대상 온라인 서비스는 접속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대전본원은 정부의 디지털 업무 전반을 뒷받침하는 핵심 거점 중 하나다. 행정안전부·국세청·경찰청·통계청 등 주요 부처의 정보처리 서버와 DB 시스템이 집중돼 있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은 데이터센터를 대전, 광주, 대구 등 3곳에 분산 배치해 왔지만, 실제 이번 사고에서는 물리적 이중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문제의 심각성이 커졌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리튬이온 배터리의 ‘열폭주(Thermal Runaway)’ 현상이다. UPS에 사용된 리튬이온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높은 대신, 내부 발열이 일정 수준을 초과하면 화학 반응이 제어 불가능해지고, 인접 배터리로 연쇄 발열이 확산되는 특성이 있다. 소방청은 화재 발생 후 40분 동안 불씨를 완전히 확인하지 못했고, 그 결과 완전 진압까지 22시간이 소요됐다.
대전소방본부에 따르면, 현장에는 리튬이온 전용 진화장비나 화학가스 차단 설비가 없었고, 초기 대응은 일반 화재 대응 매뉴얼에 따라 진행됐다. 소방당국은 “배터리 폭발 특성상 초기 열 차단에 실패하면 진화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전산 인프라의 물리적 설계였다. 대전본원은 서버·UPS·네트워크 장비를 한 건물 내 수직 배치한 구조로 운영돼 왔다. 이번 화재로 5층 UPS실에서 발생한 불길이 4층, 6층 서버실로도 전이되며, 전체 센터 운영이 중단됐다.
정부는 이중화를 위해 광주·대구 센터에 복제본을 보관 중이라고 밝혔지만, 실제 운영 환경에서는 해당 복제본이 수동 백업 상태였고, 실시간 동기화(Failover) 시스템이 적용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본원의 정지가 곧 전체 서비스의 정지로 이어졌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공공데이터센터 30곳 중 80% 이상이 ‘중간이중화’ 수준 이하에 머무르고 있으며, 완전 이중화를 갖춘 시설은 3곳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전본원은 핵심 업무 수행에도 불구하고 이중화 수준은 ‘부분 백업’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한 정보보안업계 관계자는 “민간 클라우드 사업자의 경우, 장애 발생 시 수 분 내 복구 가능한 다중화 구조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공공 부문은 아직도 수작업 복구 절차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는 2022년 10월 경기도 성남시 판교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한 카카오 서비스 중단 사태와 거의 동일한 패턴으로 전개됐다. 당시에도 UPS에 사용된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열폭주로 인해 카카오톡, 카카오페이 등 서비스가 최대 127시간 이상 중단된 바 있다. 당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배터리 안전성 기준 강화와 공공망 점검이 필요하다”고 밝혔지만, 실질적인 조치는 미흡했다.
특히 2022년 이후 3년간 리튬이온 배터리 관련 안전 지침 개정은 단 1건에 그쳤으며, 대부분 권고 수준에 머물렀다. 또한, 공공 데이터센터에 적용된 ‘리튬이온 대체 기술’은 파일럿 테스트 수준에 그쳤고, 대규모 도입은 예산 문제로 계속 지연돼 왔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리튬이온은 휴대기기나 전기차 등에서 광범위하게 쓰이지만, 고열·고전압 환경의 데이터센터에서는 안전성과 회복력 측면에서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고의 배경에는 예산 문제도 자리하고 있다. 2022년부터 2025년까지 4년간 데이터센터 시설 개선 예산은 매년 평균 11.2%씩 삭감됐으며, 2025년에는 1조 326억원이었던 예산이 8342억원으로 줄었다. 무정전 전원 장치 교체, 데이터센터 분산 배치, 노후 장비 교체 등 핵심 사업들이 ‘비용 효율성’의 이유로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회 관계자는 “정부가 ‘디지털 플랫폼 정부’ 슬로건을 내걸며 전자정부 고도화를 외쳤지만, 실제 인프라 투자는 축소돼 왔다”며 “시스템은 돈이 아닌 신뢰로 돌아간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단순 화재 대응이 아닌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유사 사고 방지를 위해 배터리 기술 전환부터 인프라 설계 재정비, 재난 대응 체계 정비까지 전방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우선, 에너지 밀도는 높지만 화재 발생 시 폭발성과 열폭주 위험이 큰 리튬이온 배터리 대신, 발화 가능성이 낮고 연쇄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고체전해질 기반의 차세대 배터리 도입 필요성이 언급된다.
또한, 기존의 단순 전력공급 장치인 UPS(무정전 전원장치)는 온도 감지·자동 차단·내부 격리·자체 진화 기능을 갖춘 지능형 ‘스마트 UPS’ 모듈로 교체할 경우 문제 발생 가능성이 줄어든다.
설비 배치 구조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현재처럼 서버, UPS, 네트워크 장비가 동일 건물 내에 수직으로 밀집돼 있을 경우, 단일 사고가 전체 시스템 마비로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장비는 건물 간 수평으로 분산 배치하고 일정 거리 이상 이격하는 물리적 안전 설계가 필요할 것으로 파악된다.
이와 함께, 전력과 냉각, 통신망 등 핵심 인프라가 하나의 경로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물리적 이중화 설계를 갖춘 독립 시스템 구축도 필수다.
데이터 보존 방식도 재검토 대상이다. 자체 서버에만 데이터를 저장하는 구조는 장애 발생 시 복구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어, 민간 클라우드 기반 백업 시스템을 활용하고, 자동 전환(Failover)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사고 대응력 강화를 위해 IT 재난을 가정한 정기 합동 모의훈련을 법제화하고, 훈련 결과를 평가·공개하는 제도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현재 일부 기관에서 시행 중인 자율 훈련은 실효성이 낮고, 실제 상황에서의 대응 능력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다.
정보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고는 단순 하드웨어 고장이 아닌, 정책 실패와 기술 설계 미비, 예산 부족, 대응력 부재가 복합된 시스템적 붕괴”라며 “디지털정부의 근간을 구조적으로 다시 짜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른 나라의 데이터 관리 시스템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미국은 2018년 이후 연방 정부 산하 모든 데이터센터에 대해 ‘티어Ⅳ’ 수준의 이중화 설계와 물리적 분산 구조를 의무화하고 있다. 티어Ⅳ는 국제데이터센터표준협회가 분류한 최고 등급으로, 이중화뿐 아니라 장애 발생 시 실시간 자가 복구, 독립 냉각·전력·통신 회선 구성이 필수다. 미국 연방 조달청은 국가 기관의 클라우드 이전을 독려하며, 민간 사업자와 연계한 정부 클라우드 백업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 이후, 정부 전산망의 회복력 강화를 위해 지진·화재·정전·침수 등 다양한 재난 상황을 가정한 다층적 테스트와 훈련을 법제화했다. 총무성은 데이터센터 운영기관에 대해 연 2회 이상 정기 훈련과 자율 점검 보고를 의무화하고 있으며, 주요 행정시스템은 동일한 데이터를 복수의 민간 클라우드에 이중으로 저장한다. 독일 역시 2020년대 들어 연방정보기술청(BIT)의 주도로 공공 데이터센터의 운영지침을 대폭 강화했다. 독일은 2019년 베를린 정부청사 인근 화재로 인한 통신망 장애를 계기로, UPS 장비의 리튬이온 사용을 전면 중단하고, 고체 배터리 및 초전도 전원공급장치로 교체했다.
정부도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행정안전부는 10월 초, ‘디지털정부 핵심인프라 안전성 강화 종합대책’ 마련에 착수했다고 밝혔으며, 연말까지 데이터센터 운영 기준, 배터리 안전지침, 전산 장비 배치 구조, 이중화 체계 구축 계획 등을 담은 중장기 로드맵을 수립할 계획이다.
행안부 산하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은 대전본원의 전면 복구와 함께, 광주·대구 센터에 분산된 데이터 복제 시스템을 실시간 동기화 체계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스마트 UPS 모듈 적용 여부와 고체 배터리 도입에 대한 실증 사업도 동시에 검토 중이다.
정부 관계자는 “국민이 디지털정부를 신뢰하려면 시스템이 단절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전제돼야 한다”며 “단순한 복구를 넘어, 근본적 재설계 없이는 같은 사고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추동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2호 (2025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