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전적 85승(69KO) 무패, 프로전적 173승(108KO)6무19패, 91연속 무패 행진, 1940~50년대 세계 웰터급 챔피언과 미들급 챔피언에 오른 슈거레이 로빈슨의 화려한 전적이다. 전 세계 권투 전문가들이 인정한 세계 최강의 복서 로빈슨은 은퇴 후 배우로 활약하며 전성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말년은 쉽지 않았다. 1989년 세상을 떠난 로빈슨에게 언론이 남긴 유고는 알츠하이머와 당뇨 합병 증세였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즐겨 읽는다는 추리소설 작가 로스 맥도널드는 <위철리가의 여인> <소름>등의 작품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의 작품 중 <움직이는 표적>은 영화 <하퍼>(폴 뉴먼 주연)로 제작되며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로스 맥도널드의 죽음으로 한 흐름이 끝을 맺었다.” 하루키가 남긴 추모 글 중 한 대목이다. 맥도널드는 1983년 알츠하이머병을 앓다 생을 마감했다.
<황야의 7인> <데드위시>시리즈에서 원조 터프가이로 각인된 찰스 브론슨은 81세의 나이에 눈을 감았다. 주치의가 공식적으로 밝힌 사인은 폐렴. 하지만 그도 사망 2년 전부터 알츠하이머병으로 심하게 고통 받고 있었다. 영화 <철의 여인>으로 다시금 대중에게 회자된 영국 최초의 여성총리 마가렛 대처, 미국의 40번째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도 은퇴 후 알츠하이머병의 덫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최근 배우 잭 니콜슨이 이들과 같은 증상으로 은퇴할 것이란 주장이 제기되며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잭 니콜슨 측에선 루머라고 일축했다지만 안타까움은 쉬 가시지 않는다. 기억이 사라진다고 알려진 알츠하이머병, 과연 무엇일까.
(왼쪽)영국 최초의 여성총리 마가렛 대처, (오른쪽)영화배우 찰스브론슨
이 사람, 기억하십니까?
흔히 치매라 불리는 알츠하이머병은 1907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 알로이스 알츠하이머(Alois Alzheimer) 박사가 처음 발견하며 이름 지어졌다.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뇌세포에 축적되며 결국 뇌세포를 파괴하면서 증상이 나타난다.
국내 치매 환자의 약 70%가 알츠하이머병일 만큼 가장 흔한 퇴행성 질환이다. 소리 소문 없이 서서히 발병해 진행된다.
‘치매에 효자없다’는 말은 이러한 병의 특징에서 비롯됐다. 발병 초기에는 최근 일에 대해 기억력 감퇴 증상을 보이다 언어나 판단력 등의 기능이 무너지며 결국 모든 일상생활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초기증상에 대해 캐나다 몬트리올대학 스펜 조우버트 교수팀은 유명 인사의 이름과 업적을 잘 기억하는지 여부로 알츠하이머를 진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름, 단어, 상징에 대한 ‘의미적 기억력’은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우선 60~91세까지 건강한 노인 117명에게 유명인사 30명의 얼굴을 보여주고 그들의 이름, 직업, 국적, 구체적인 일생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몇 주 후 다시 동일한 30명의 이름을 묻고 기억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조사 결과 연구에 참가한 이들은 유명인의 얼굴보다 이름을 듣고 기억을 더듬었다. 얼굴에 대한 기억은 나이가 들수록 줄어들지만 이름을 통해 각인된 정보는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알츠하이머 초기 단계에 있던 노인들은 의미적 기억력에 문제를 보였다. 특히 경도인지장애를 보인 이들의 50~80%는 몇 년 후 알츠하이머로 발전했다.
유전적인 요인도 발병에 한몫하고 있다. 직계 가족 중 이 병을 앓았다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대표적인 위험 유전자는 아포지단백 E ε4(APOE ε4). 연구결과 이 유전자형을 1개 갖고 있을 땐 약 2.7배, 2개일 땐 약 17.4배나 발병 위험이 높았다. 물론 고령의 나이도 무시할 수 없다. 65세 이후에는 5년마다 유병률이 2배나 증가하는 추세다. 아쉽지만 확실한 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세계적인 치매 권위자이자 프랑스 폴 사바티에 대학 내과·노인학과 교수인 브뤼노 벨라스(Bruno Vellas) 박사는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치매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치매를 조기에 발견하고 진행속도를 늦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중기 이상 병이 진행되면 뇌세포가 완전히 파괴되기 때문에 치료약이 있어도 정상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벨라스 박사가 권한 예방법은 적절한 영양 섭취와 식습관 개선. 그는 “등 푸른 생선과 함께 당근, 브로콜리, 오렌지, 사과 등을 꾸준히 먹으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며 “기름진 음식과 과식을 반드시 피해야 한다”고 전했다. 운동은 필수. 격렬한 운동보다 하루 30분 이상 꾸준히 걷는 것만으로도 예방효과를 볼 수 있다.
알츠하이머의 원인은 뇌가 아니라 목 정맥?
최근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으로 새로운 이론이 제기됐다. ‘알츠하이머병 저널(Journal of Alzheimer’s Disease)에 게재된 내용을 살펴보면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이 뇌가 아니라 목 정맥 기능장애에 있다는 것이다. 미국 버펄로 대학과 영국 브래드포드 대학, 타이완 국립양밍대학 공동연구팀의 연구에 따르면 뇌에서 빠져나와야 할 정맥혈이 배출되지 못하고 뇌로 역류해 치매 환자나 치매의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 환자에게 나타나는 것과 같은 뇌 백질 손상을 일으켰다. 치매 환자 12명과 경도인지장애 환자 24명, 건강한 노인 17명을 대상으로 검사한 결과 치매 환자와 경도인지장애 환자한테만 목정맥역류 현상이 관찰됐다. 목정맥역류는 정맥혈을 배출하는 내경정맥판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뇌에서 빠져나가야 할 피가 다시 뇌로 돌아가는 현상이다. 연구팀은 독성 단백질이 뇌세포에 쌓이는 것은 목정맥역류로 뇌척수액이 제대로 청소되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목정맥역류가 뇌혈류순환에 미치는 영향이 여러 해에 걸쳐 축적되면서 치매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안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