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들에게 이번에 한국에 간다고 하자 그곳이 어디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싸이가 사는 나라라고 했더니 엄지손가락을 내보이는 거예요. 한국의 변화를 단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국 브랜드 ‘아스피날 오브 런던(Aspinal of London, 이하 아스피날)’의 앤드류 마샬 대표가 꼽은 한국의 위상 중 한 대목이다. 지난달 중순 서울 갤러리아 백화점에 첫 매장을 낸 아스피날은 이탈리아산 가죽을 소재로 가방과 핸드백, 지갑, 액세서리, 스테이셔너리 등을 만드는 가죽 전문 브랜드다. 영국 월리엄 왕자의 삼촌인 앤드류 왕자가 왕세손비 케이트 미들턴에게 선물한 핸드백으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석 달 전 아스피날에 스카우트된 마샬 대표는 25년간 구찌, 몽블랑, 던힐을 거쳐 ‘링크 오브 런던’ ‘라벨룩스’ 등의 대표를 지낸 명품 전문가. 일터를 쫓아 독일, 일본, 홍콩 등지에 살면서 7~8년 전까지만 해도 자주 한국을 찾았던 지한파다.
“지금 인터뷰하는 이곳 청담동이 강남스타일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면서요? 7년 전에 비해 너무나 많이 변했네요. 사람들 옷차림이 컬러풀하고 개성이 넘칩니다. 대단해요. 거리에 가득한 자동차들도 얼마나 럭셔리한지. 전 세계 누구나 삼성이나 현대를 아는 시대에 싸이가 왜 강남스타일을 노래했는지 제대로 알게 됐어요.(웃음)”
아스피날은 착한 가격이 시선을 사로잡는 이른바 실용적인 럭셔리 아이템이다. 핸드백이 40만~100만원대, 지갑이 10만~30만원대로 여타 브랜드에 비해 가격이 낮다.
“착한 가격과 고품질, 누구나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이 아스피날입니다. 가격은 낮지만 소재는 이탈리아산 가죽을 고집하고 있어요. 왜냐고요? 고객은 늘 가르침을 주거든요. 품질, 재료, 마감, 포장 등 원하는 수준을 거스르면 브랜드가 버틸 수 없습니다. 여기에 가격까지 낮으니 그게 또 하나의 강점이죠. 한국 고객은 가격과 품질을 꼼꼼히 따져보는데, 이 시장에서 통하면 어느 곳에 진출해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겁니다.”
영국과 스페인, 터키 등지에서 생산되는 아스피날의 제품은 아이템별로 우수한 장인의 공장을 선택하는 게 특징. 경쟁 브랜드를 묻자 멀버리, 던힐, 몽블랑 등 명품 브랜드를 이야기하며 품질 면에선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왼쪽)Heplizard Hepburn, (오른쪽)Brook Street Blackliz
단 10년 만에 브리티시 럭셔리의 중심으로
2002년에 론칭했으니 올해로 11년. 100년이 넘는 세월을 이겨내며 명품으로 인정받은 여타 브랜드와 비교하면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갓난아기 수준이다.
하지만 첫 걸음의 보폭은 그리 앳되지 않다. 지난해 1500만파운드(약 260억원)의 매출을 올린 아스피날은 올해 한국과 아랍에미리트에, 내년에는 미국 뉴욕, 카타르 도하, 중국, 일본, 홍콩에 매장을 낼 계획이다. 과연 짧은 기간에 아이덴티티를 확실히 정립한 비결이 뭘까.
“셀러브리티 마케팅, PR, 온라인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진행했습니다. 아스피날은 창립 당시에 온라인에서 스테이셔너리 제품을 판매했어요. 자연스럽게 온라인 비즈니스와 마케팅을 진행했고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아스피날이 지향하는 마케팅과 PR의 중심은 온라인. 특히 파워블로거나 SNS를 이용한 마케팅이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제품을 모르는 소비자에게 브랜드 히스토리와 품질, 숍 위치 등을 상세히 알려줄 수 있는 확실한 방법 중 하나라는 게 마샬 대표의 설명이다.
여타 명품 브랜드가 해외, 특히 아시아로 공장을 옮기는 현상에 대한 견해를 묻자 사회 환원에 대한 아스피날의 뚜렷한 시각이 이어졌다.
“아시아로 공장을 이전하는 명품 브랜드가 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스피날은 영국에 좀 더 집중할 생각입니다. 지금은 스페인과 터키에 공장이 있는데, 영국에 포커스를 맞추면 고용창출도 되고 수익을 사회에 환원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방향이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 아닐까요?”
[안재형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