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금융 명가를 일군 마이어 암셀 로칠드는 다섯 명의 아들을 두었다. 그는 다섯 아들을 불러놓고 화살 다섯 개를 주며 꺾어보라고 했다. 하나씩은 쉽게 꺾었던 아들 중 누구도 다섯 개를 한 번에 꺾지는 못했다. 프랑크푸르트와 런던 비엔나 파리 나폴리 등을 나눠 맡은 다섯 아들은 아버지의 교훈에 따라 힘을 합쳐 세계적 금융 그룹을 일궜고 이를 바탕으로 여러 방면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셋째인 나단의 아들 나다니엘은 샤또 무통 로칠드를 사서 대성공을 거뒀다. 조카의 성공을 확인한 다섯 째 제임스는 라피트 로칠드를 손에 넣었다. 제임스의 증손자 에드먼드는 1973년에 보르도 리스트락의 샤또 클라크와 물리스엉메독의 샤또 말메종을 인수해 바롱 에드먼드 로칠드를 설립했다. 이후 세계 각지의 와이너리를 인수하거나 합작으로 투자해 세계적 와인그룹을 일구고 있다. 그 샤또들은 지역마다 이름은 다르지만 만든 와인엔 모두 다섯 개의 화살 문양을 넣고 있다. 로칠드 가문의 와인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명가의 와인엔 어떤 특징이 있을까.
좋은 와인의 70%는 밭에서 결정돼
바롱 에드먼드 로칠드 계열의 와인 전체를 관장하는 얀 부쉬월터 와인메이커가 최근 한국을 찾았다. 첫 번째 아시아 여행이라고 했다. 그는 보르도를 거점으로 매년 아프리카와 남미를 오가며 프랑스와 남아공 아르헨티나 등 세 나라에서 포도 재배부터 와인 양조까지 전 과정을 총괄하고 있다.
“고품질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포도 수확부터 선별, 포도밭 관리, 스텐리스 통을 이용한 침용 등 모든 것을 로칠드의 기술로 하고 있다.” 그토록 열정적으로 움직이는 그의 와인 메이킹 철학이 궁금했다.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심플하다. 좋은 와인 메이킹은 70%가 밭에서 결정된다. 가급적 와인 양조에 적게 관여하려고 한다. 그 대신 집중도가 높은 포도, 잘 익은 포도를 고르는 데 주력한다. 와인 메이킹은 자연이 준 것을 최대한 잘 표현하는 것이다.” 최근 보르도의 트렌드가 가벼운 와인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하자 그는 그렇다고 했다. “집중도가 높은 빅 와인들은 오크통에서 오래 숙성했으나 최근 어떤 사람들은 가급적 오크통에 짧게 넣어 보다 과일향이 풍부한 좋은 와인을 내고 있다. 대형 나무탱크를 이용해 탄닌을 부드럽게 하면서 오크통 숙성은 짧게 해 향의 밸런스를 추구한다.” 오크통에 넣는 정도에 따라 파워풀한 와인인지 과일향이 풍부한 신선한 와인인지를 가르게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대륙별 기후 특성 고려해 포도 재배
서로 다른 대륙에 있는 세 나라에서 그는 어떤 와인을 만들어 낼까. 기후와 토질이 다른 세 곳에서 최상의 와인을 뽑아내는 능력이 궁금했다. “프랑스의 보르도는 서안해양성 기후라 포도가 자랄 때는 관개를 하지 않아도 되고 기후도 서늘하다. 그러다 여름이 되면 날이 더워져 포도가 잘 익고 자연스레 밸런스도 맞춰진다. 이에 비해 아르헨티나는 매우 건조한 지역이다. 비가 아주 적게 오고 자갈이 많아 건조하기 때문에 물을 대는 게 필수적이다. 또 토양이 거칠기 때문에 생산량을 제한하고 있을 뿐 아니라 더운 날씨 때문에 당도가 높으므로 알코올이 높아지지 않도록 제한한다. 아르헨티나에선 겨울엔 눈이 오지만 남아공에는 눈이 오지 않는 것도 다르다. 남아공에선 카비네 쇼비뇽이 잘 자라고 아르헨티나 멘도사 지역에선 말벡 품종이 잘 자란다.” 그 뿐만이 아니다. “남아공은 밭마다 미세기후가 형성되기 때문에 복합미가 강한 와인이 나오는 반면에 아르헨티나는 밭 전체의 기후가 고른 편이다. 남아공에선 각기 다른 성격의 밭에서 나온 포도를 혼합해서 와인을 만들기 때문에 자연히 복합적인 풍미의 와인이 나온다. 대신 남아공은 각각의 밭마다 포도를 체크해야 한다. 특히 수확할 때 세밀하게 둘러봐야 한다. 동시에 여러 가지 능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보르도에선 비가 오기 때문에 포도 익는 게 늦어질 때도 있다. 그래서 알코올이 너무 높아질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탄닌과 밸런스만 조절하면 되기 때문에 쉬운 작업이다. 그런데 아르헨티나 와인 제조는 매우 도전적인 일이다. 햇빛 가리기를 해야 한다. 알코올 발효를 아주 조심스럽게 통제해야 한다.” 그러면서 보르도는 빈티지 차이가 큰 반면에 아르헨티나와 남아공 와인은 빈티지 차이가 상대적으로 적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와인을 묻자 “샤또 말메종 2000이다. 그러나 내 셀러엔 없다. 벌써 다 마셨다”고 웃었다.
바롱 에드먼드 로칠드의 와인들
바로니스 나딘 샤르도네 2009
에드먼드 로칠드의 부인 이름을 붙인 와인. 바롱 에드먼드 로칠드와 리치몬드 그룹이 합작으로 만든 남아공의 화이트 와인으로 손으로 수확한 포도로 만드는 부르고뉴 풍 와인. 약간 오일리하면서 버터와 꽃의 향기가 난다.
샤또 데 로헵 2009 푸쉬껭 쌩떼밀리옹
메를로를 주종으로 카비네 쇼비뇽을 20% 정도 블렌딩해 잘 익은 과일의 느낌이 살아있다.
풀과 과일 향기가 그윽하다. 오크향이 약하고 강한 탄닌을 튀지 않게 다듬었다.
샤또 말메종 2007 물리스엉 메독
메를로를 주로 하는 물리스 지역 특유의 맛이 살아있는 와인. 2007년은 여름에 비가 많이 와 신선한 과일향이 살아있다. 음식과 잘 맞는 와인으로 그냥 마셔도 좋다.
플레차스 로스 안데스 그랑말벡 2009
위대한 말벡이라고 불릴 정도로 풍부한 향미와 파워풀한 느낌을 주는 와인이다. 그러면서도 달착지근한 부드러움이 마지막으로 느껴진다. 멘도사 산맥 아래에 있는 와이너리로 100헥타르가 넘는다고 한다.
플레차스 로스 안데스 그랑 꼬르떼 2008
말벡을 주종으로 시라와 메를로를 블렌딩했다. 플레차스 로스 안데스의 아이콘 와인으로 말벡의 강렬함 속에 풀 향기와 과일의 향도 강하게 느껴진다. 산도와 탄닌이 모두 강하며 오래된 나무 특유의 농축된 향미가 길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