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지 않으면서 길게 이어지는 농익은 과일의 향미와 부드럽게 녹아든 탄닌, 거기에 잠시 뜸을 들인 뒤 시간차를 두고 나타나는 허브 아로마의 여운. 이런 게 호주의 간판 품종인 쉬라즈 와인의 매력인 것 같다. 그런 와인의 특성을 잘 살려낸 호주의 대표적 와인 브랜드 하디가 올해로 160주년을 맞았다. 유럽인의 호주 정착 역사와 거의 함께 해왔다고 할 하디는 호주 와인을 세계 시장에 알린 간판 브랜드이기도 하다.
호주가 막 개발되기 시작한 1850년 8월 브리티시 엠파이어호를 타고 온 약관의 영국 청년이 호주 남부에 내렸다. 하디의 설립자인 토마스 하디였다. 그는 곧 같은 고향 출신으로 이미 호주에서 와이너리를 운영하던 존 레이넬을 만나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를 배운 뒤 1853년 남부 호주 애들레이드 부근 토린스 강변에 ‘토마스 하디 & 선(Thomas Hardy & Son)사’를 설립했다. 오늘날 호주 와인의 대표 주자가 출범한 것이다.
하디는 1857년에 첫 빈티지를 생산해 호주 와인 메이커로는 사상 최초로 영국으로 와인을 수출했다. 1882년엔 프랑스 보르도의 ‘세계 와인 쇼’에서 첫 금메달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하디 덕분에 호주 와인의 우수성이 만방에 알려졌고 이후 하디는 호주 와인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현재 하디는 연간 25만 톤의 와인을 생산하는 세계 10대 와인업체 중 하나이자 호주에서 가장 큰 프리미엄 와인회사가 됐다.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이기도 한 하디는 세계 80여 개국으로 와인을 수출하고 있다. 영국의 저명한 브랜드 가치 평가 기관인 ‘인탠저블 비즈니스’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 연속으로 하디를 전 세계 100대 와인 브랜드 중 2위로 꼽았고 4년 연속으로 호주 와인 브랜드 1위로 선정한 바 있다. 하디의 연간 판매량은 약 350만 케이스에 달한다. 2011년 국내 와인 총 소비량이 300만 케이스 정도였다는 것을 감안할 때 얼마나 많은 양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디의 가장 큰 특징은 포도 산지가 호주 전 지역을 아우르고 있다는 점이다. 호주 동부 시드니 인근 평원 지대로부터 서부 퍼스 남쪽으로 흐르는 마가렛 강 유역, 남부 애들레이드 인근의 구릉지대는 물론이고 타즈매니아 섬까지 아우르는 지역에서 나오는 포도로 와인을 만들고 있다. 또 포도 품종도 호주의 간판 품종인 쉬라즈는 물론이고 글로벌 품종인 까비네 소비뇽이나 피노누아 같은 레드 와인과 샤도네이 리슬링 등 화이트 화인까지 생산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하디는 어느 브랜드보다도 다양한 스타일의 와인을 구비하고 있다.
세계적 품종인 까비네 소비뇽만 보더라도 포도 생산 지역에 따라 특징이 선명하게 달라진다. 예를 들어 토마스 하디 까비네 소비뇽은 남호주의 대표적 까비네 소비뇽 산지인 쿠나와라에서 재배되는 양질의 포도만을 선별해 만들고 있다.
HRB 까비네 소비뇽은 서호주 대표 지역인 마가렛 리버에서 재배된 포도를 사용한다. 이를 통해 호주의 다양한 기후에서 비롯된 섬세한 떼루아의 특징을 와인에 반영하고 있다. 하디는 설립 초부터 호주 전역의 와인 생산 기술에 큰 영향을 끼치며 생산방식의 트렌드를 주도해 온 선구자다. 특히 전통 양조 방식과 최첨단 양조기술을 병행하거나 접목한 게 하디의 양조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당시 토마스 하디가 사용하던 바스켓 프레스로 압착을 하고 원시적인 슬레이트 오픈 발효 탱크를 이용하면서 동시에 현대적인 발효 시스템과 냉장 스텐리스 스틸 탱크, 최상급 오크통 등도 사용한다. 모두가 하디의 개성이 강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다.
하디의 와인
하디를 대표하는 제품으로는 45~105년 수령의 오래된 포도나무에서 생산되는 엘린 하디 쉬라즈를 비롯해 HRB 시리즈, 우무 시리즈, 하디 노타지 힐 시리즈, VR 버라이탈 시리즈 스탬프 리지즈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 하디 최초의 레인지이자 시그니처 레인지인 우무는 까비네 소비뇽과 쉬라즈를 생산하는 호주 내 최고 떼루아를 선별하는 프로젝트를 실시해 내놓은 결과물이다. 특히 쉬라즈의 경우 최근 쉬라즈 품종으로 가장 각광받고 있는 맥라렌 베일에서 선별한 포도로 만들어 품질이 더욱 향상됐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우무는 설립 후 50여년간 판매되다 단종 된 후 창립 150주년을 기념해 2003년부터 재생산되고 있다. 레이블에도 호주 대륙의 특성을 살려 원주민과 캥거루 등 호주 동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우무(Oomoo)’는 호주 원주민인 어보리진 언어로 ‘아주 좋다’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