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나는 헤픈 내 눈물이 부끄러웠다. 책 읽거나 영화 보다가 우는 일은 다반사요, 음악을 듣다가도 곧잘 눈시울이 뜨거워져 곤혹스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불혹을 넘긴 이 나이에 나는 더 이상 내 눈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철학자인 이왕주 씨가 그의 산문집 <쾌락의 옹호>에서 한 말이다.
라디오 토론 프로그램에 이왕주 씨와 함께 출연한 적이 있었다. 토론인데도 질문을 던지면 얼굴이 빨개지는 모습이 참 순수해 보이는 학자였다. 밤늦게 토론이 끝나고 지방에 있는 집으로 내려가는 차를 타기 위해 총총히 사라지던 가식 없는 뒷모습도 좋았다.
그가 말하는 쾌락은 상징적으로 ‘울고 싶을 때 울고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쾌락을 포기하는 인간이 성숙하다’는 논리에 시달려왔다. 쉽게 감정을 드러내거나 작은 일에 전전긍긍하면 소인배 취급을 받았다. 결국 삶을 즐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소인배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이왕주 씨는 “가장 지혜로운 생의 목표는 진정한 쾌락주의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적인 쾌락, 예술적 감동, 성적 쾌락, 미각과 시각의 쾌락 등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라는 것이다. 그는 공자나 소크라테스와 같은 위대한 현자들은 쾌락을 거부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것을 현명하게 추구했던 사람들이라고 단정한다.
이 한 권의 책을 읽으며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맛있는 음식점에 들어섰을 때 풍기는 냄새, 아름다운 미인의 황홀한 미소, 창밖에 내리는 풍성한 눈의 포근함, 쇼윈도에서 빛나는 예쁜 상품들, 어느 날 밤 나를 눈물짓게 했던 음악 등 이 모든 것들을 온몸으로 느끼고 즐기는 삶은 행복하다. 도대체 왜 일부러 이런 것들을 피하는가. 우리는 오랫동안 거대담론과 권위주의에 시달려왔다
내가 주인이지 못하고 명분이 주인이었던 셈이다. 그것은 얼마나 많은 착각을 가져다주었던가. 박찬호가 승리투수가 되면 우리는 미국을 모두 이긴 것처럼 흥분하는 우(愚)를 범했다. 야구를 야구로 즐긴 것이 아니라 자의식과 열등감을 보상받는 것이다. 따라서 박찬호가 못 던지면 우리는 그를 배신자로 낙인찍는다. 박찬호는 미국 프로 야구의 수많은 투수 중 한 명일 뿐이지 약소국의 운명을 걸고 전쟁터에 나간 의병장은 아니다.권위와 명분을 줄이면 삶이 즐겁다. 그것이 이 책의 깨달음이다.
“나는 내가 바라는 대로 인생을 만들어 가려는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더 이상 끌려갈 곳이 없었다.”
대학에서 미술사와 심리학을 전공한 엘리트 여성 알린 번스타인의 인생은 별 문제 없이 행복해 보였다. 잘 나가는 변호사와 결혼도 했고 남편과의 애정에도 문제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예기치 않은 불행이 연이어 찾아 왔다. 미숙아로 태어난 첫째 아이를 19일 만에 잃었고, 어렵게 얻은 둘째마저 1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입양한 아이마저 키울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그녀는 모든 걸 버리고 캘리포니아 시골마을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에게 약속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흙을 밟을 것이며, 그곳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 묵묵히 바라보고 세심하게 돌보겠노라고. 살을 에는 좌절 속을 거닐던 번스타인은 시골 텃밭에서 새로운 삶의 가치를 찾아낸다.
그녀는 결국 이파리 하나, 흙 한 톨의 소중함을 깨우쳤다. 개미와 지렁이에게 감사함을 느꼈고, 퇴비 속에서 무심하게 싹을 틔운 토마토 줄기에서 환희를 배웠다.
그녀가 쓴 <텃밭에서 발견한 충만한 삶>을 보면 당장이라도 텃밭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미소가 내 마음에 차올라 살짝 흘러내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것은 수확을 할 때가 가까웠다는 표시다. 넘쳐나는 그 풍요로움을 주변과 나누는 것은 조금도 희생이 아니다. 그 미소는 인간의 의지로는 만들 수 없는 자연의 선물이다.”
작은 것의 환희를 알게 하고, 나누는 기쁨을 가르쳐 준 채소밭과 포도원은 그녀에겐 영적 스승이었다.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포도나무 가지치기에서도 그녀는 우주의 진리를 발견한다.
“전체를 바라볼 것, 중심에서 뻗어 나온 탁 트인 독단적인 가지를 선택할 것, 균형과 공간에 유의할 것, 중용의 묘미를 잊지 말 것.”
기가 막히다. 검도선수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라고 해도 되고, 보편적인 인생론이라고 이야기해도 되는 훌륭한 깨달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