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사과를 먹고 잠이 들었다가 이웃 나라 왕자님을 만나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는 백설공주 이야기. 여기에는 조연으로 일곱 명의 사랑스러운 난쟁이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나쁜 계모로부터 백설공주를 보호해주는 것은 물론, 왕자님과의 사랑을 이어주는 중매쟁이 역할도 한다. 숲속에 살며 귀엽고 깜찍한 모습으로 공주의 행복을 빌어주는 난쟁이들은 그야말로 백설공주를 위해 존재하는 천사 같은 역할을 맡아왔다.
그러나 지난 4월5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 등장한 난쟁이들은 동화 속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공주를 떠나보내서였을까.
고뇌에 찌든 어두운 얼굴에 불뚝 솟은 배가 중년의 고단함을 느끼게 해준다. 특히 곳곳이 부서진 모습에서 현실의 처절함과 인생의 상처들을 그대로 보여준다.
개관 30주년을 맞아 새롭게 3관의 문을 연 국제갤러리가 발표하는 작품마다 글로벌 미술계의 논란을 일으켰던 미국의 현대미술가 ‘폴 매카시’의 ‘아홉 난쟁이들’을 국내에서 전시한다.
1937년 디즈니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패러디한 작품인 매카시의 ‘아홉 난쟁이들’은 백설공주를 탐하는 난쟁이들의 남성적 욕망과 성공에 대한 고뇌를 강렬하게 표현하는 것은 물론, 처절하게 파괴된 모습을 통해 사회적 성공을 향한 그들의 고단한 인생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공개되자마자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끌며, 호평과 혹평을 동시에 받았다. 남성의 상징인 남근을 자주 사용하는 매카시의 특징은 이번 아홉 난쟁이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홉 난쟁이들의 코가 모두 남근 형태로 표현됐기 때문이다.
또한 등이나 얼굴이 후벼 파진 난쟁이들은 미소를 띠고 있음에도 무언가 텅빈 듯한 느낌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랑하던 백설공주를 떠나보내고 갖고 있던 애증만큼 파괴돼 버린 아홉 난쟁이들의 쓸쓸한 모습을 보고 싶다면 지금 매카시의 ‘아홉 난쟁이’가 있는 국제갤러리로 가보는 것이 어떨까.
전시회는 5월 12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 3층에서 열린다.
서른 살 국제갤러리, 세 번째 전시관을 열다.
국내 화랑가의 리더 격인 국제갤러리가 개관 30주년을 맞아 세 번째 전시관의 문을 열었다. 새로 문을 연 3관은 기존 갤러리 형식에서 벗어나 보다 실험적이고 기능적인 모습이 돋보이는 공간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외관이다. 갤러리 외부 전체를 흡사 철제 그물로 덮어논 듯하다. 금속 소재인 ‘메시(mesh)’로 제작된 외부 그물은 매우 단단하면서도 직물처럼 신축성이 좋아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개방성을 강조한 내부 전시 공간은 6.1m의 천장이 그대로 드러나며, 큐브 형태로 볼륨을 줘 기하학적인 구조가 매력적이다. 입구와 현관, 엘리베이터, 계단 등의 통로를 주변부로 배치해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했으며, 개방형 천장을 통해 자연광이 들어와 쾌적하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이 개방형 천장은 때에 따라 완벽하게 차단할 수도 있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3관의 건축 디자인은 젊은 건축가 플로리안 아이덴버그를 주축으로 한 SO-IL이 디자인했으며, 지난해 5월 미국 AIA 뉴욕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했다.
작가소개
1945년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태어난 폴 매카시는 1966년 유타대에서 회화를 전공한 뒤, 1970년 남가주대에서 영화와 비디오를 전공했다. 1990년대 초부터 피노키오, 산타클로스, 해적과 같은 캐릭터들을 탐구하면서 화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전직 미국 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 엘리자베스 여왕, 오사마 빈 라덴과 함께 흥청거리며 성적인 행위를 지속하는 ‘지하벙커(Bunker Basement·2003)’로 관심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