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에 입사했으니 13년이 흘렀다. 그동안 MBN의 다양한 변화와 뉴스의 현장에 그가 있었다. <MBN 뉴스광장>을 진행하는 최중락 앵커는 MBN의 고참 앵커이자 기자, 그리고 PD다. 증권과 제작을 담당하는 PD로 입사해 MBN의 첫 국제부 기자를 거쳐 앵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건과 인터뷰이를 거쳤다.
“PD로 입사해 국제대학원을 졸업하고 나니 국제부로 발령 났어요. 9·11테러 때 별다른 대본 없이 10시간 가량 뉴스를 전하고 나니 앵커로 발령이 나더군요. 그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빅이슈가 있을 때 뉴스룸에 있는 게 가장 짜릿합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에 출입하며 뉴스를 진행하는 최 앵커는 9·11테러 당시 뉴스 생방송에 첫 생존자 인터뷰를 내보낸 순간을 이야기했다.
한국인 생존자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상황, 당시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근무하던 증권 관계자가 최 앵커의 안부전화를 받곤 곧바로 생방송으로 연결됐던 것.
희망찬 뉴스가 많아져야
MBN의 생방송 인터뷰 후 한국인 생존자와 현지 상황이 각 매체에 인용돼 보도되기도 했다. “일본대지진이나 김정일 사망처럼 갑자기 특보체제로 전환될 때 제가 방송하고 있다면 하는 생각을 늘 합니다. 아! 그런 뉴스가 없어야 좋은 세상인가요?”(웃음)
10여년 간 앵커로 활동하며 시청자와 소통한 최 앵커는 최근 <MBN 뉴스광장>에서 ‘앵커가 떴다’란 코너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뉴스 스튜디오를 벗어나 앵커가 직접 현장을 찾아 나섰다. 재래시장에서 사과를 팔며 주부들이 체감하는 경제를 전하고 승객과 나란히 택시에 앉아 민심을 듣기도 했다.
MBN 뉴스에서 유일하게 원 앵커로 나선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스튜디오 안팎을 책임진 덕에 시청률도 올라서, 시청자의 피드백도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종로 낙원상가의 국밥집을 찾고 나선 프로그램 게시판에 ‘그 국밥집이 어디냐?’는 질문이 수도 없이 달렸더군요. 뿌듯했습니다. 물론 정치와 관련된 이슈를 전할 땐 악플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몇몇 시청자께서 수고했다는 문자메시지를 주실 땐 내일 뉴스가 기다려집니다.”
시기에 따라 월화수목금금금을 고수해야 하는 최 앵커의 꿈은 ‘MBN뉴스가 지상파를 넘어 국내 최고 프라임 뉴스’가 되는 것. 없는 시간을 쪼개 국제대학원과 저널리즘학 등 2개의 석사과정을 마친 것도 그러한 목표에 다가서기 위한 과정이라고.
“최근 ‘지상파 TV와 케이블 TV 뉴스 앵커 멘트에 관한 비교연구’로 석사과정을 마쳤어요. 하나하나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앵커가 떴다’가 방송되고 현장에 나가니 아주머니들이 알아보시더군요.(웃음) 시청자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는 뉴스가 MBN 아닙니까. 지상파를 넘어설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최 앵커가 진행하는 <MBN 뉴스광장>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10시에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