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 맨스필드 캠퍼스의 심리학자 테리 피셔 교수의 조사 결과가 화제를 모았다. 젊은 남자는 하루 19차례, 젊은 여자는 10차례 섹스 생각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절대수치는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남성 우위가 맞지만, 남자는 기존의 속설보다 섹스 생각을 적게 하고 여자는 의외로 섹스 생각을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대다수 매체의 기사에선 조사 결과의 다른 내용도 많이 다뤘으나 ‘젊은 여성 하루 10번 섹스 생각’이라고 제목을 뽑았다.
피셔 교수는 심리학 연구 참여 프로그램에 등록한 18~25세의 학부 여학생 163명과 남학생 120명 중 59명에게는 음식, 61명에게는 잠, 163명에게는 섹스에 대한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각각 횟수 기록 장치에 입력하게 했다. 섹스 생각 참여자에게는 모든 종류의 성적 활동, 판타지와 에로틱 이미지, 섹스와 관련된 추억, 뭐가 됐든 성적인 흥분을 유도하는 자극 등이 떠오를 때마다 기록하게 했다. 음식 생각 참여자에게는 음식, 배고픔, 먹고 싶음, 간식이나 요리에 대한 생각을, 잠 생각 참여자에게는 꿈, 잠, 낮잠, 침대로 향하는 것, 휴식을 취하고 싶은 것에 대한 생각을 각각 기록하게 했다.
이런 연구 설계는 무엇보다도 식욕, 수면욕과 마찬가지로 성욕이 인간의 본능적 욕구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인간이 섹스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은 음식이나 잠을 생각하는 것처럼 성별을 떠나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인간의 본능적 욕구란 것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섹스에 대한 것만 제목으로 수치화하니 대단해 보이지만 실제로 남자는 음식 생각을 하루 18차례, 잠자는 생각은 11차례 했고 여자는 음식은 15차례, 잠은 8.5차례 생각했다. 음식에 대한 생각이 섹스에 대한 생각보다는 더 우선이었다. 남녀 모두 식욕이 욕구 중 가장 강렬한 셈이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성욕의 결과에 가장 강렬했다.
그동안 남자는 밥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섹스를 생각한다든가 18분마다 섹스 생각을 한다든가, 심지어 7초에 한 번씩 시도 때도 없이 섹스 생각을 한다는 속설이 정설인 양 믿어져 왔었다. 남자들 입장에서 보면 하루 8시간 잔다면 하루 16시간 동안 8000번 이상 섹스를 생각한다는 것이니 가당치 않은 일임에도 치마 두른 여자만 보면 다 발동이 걸리는 짐승으로 치부돼 억울한 점도 없지 않았다. 맺힌 게 있었던지 과장이 속설일 뿐임이 증명되고, 여자도 섹스 생각을 하루에 10번이나 한다고 입증되니 금세 “오호라, 아닌 척해도 여자도 섹스 생각을 좀 하는데” 하고 공격적 입장을 취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 여자를 남자같이 생각하고 덤벼서는 절대 안 될 일이다.
이성과의 관계에서 소위 ‘진도를 빨리 나가고’ 싶어하는 남성일수록 자신에 대한 상대 여성의 성적 욕망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남학생 96명과 여학생 103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스스로 평가하는 성적 매력도와 단기간의 성적 만남에 대한 흥미도를 수치화해 측정했는데, 자가 평가를 마친 실험 참여자들은 이성 5명과 3분씩 이야기를 나눈 뒤 상대 이성에 대한 성적 매력도의 점수를 매긴 후 상대 이성이 자신에게 어느 정도 성적으로 호감을 느꼈을지를 예상하게 했다. 실험 결과 이성과의 빠른 관계 진전을 추구하는 남성일수록 상대 여성의 성적 욕망 또한 클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남성은 공통으로 호감이 더 가는 여성에 대해 그 여성의 성적 욕망을 과대평가했다. 정작 여성들에게서 실제로 매력적이란 평가를 받은 남성들은 여성의 욕망을 과대평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반면 여성은 전체적으로 남성의 욕망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남성은 성적으로 끌리는 여성을 만날수록 자신이 상대방의 의사를 잘못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여자도 섹스를 생각한다. 그 전제를 가지고 다시 이야기하자. 그러면 여자는 언제 섹스 생각을 하는 걸까? 남자들의 관심은 언제 어디서나 섹스에 집중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잠을 잘 때나, 밥을 먹을 때나, 화장실에 있을 때나 마찬가지로 오로지 여자와의 섹스 생각에 몰입할 수 있다. 하지만 여자들이 언제 섹스를 생각하고 성욕을 느끼는지 잘 알지 못한다. 남자들이 섹스 상대인 여자들의 섹스 성향을 미리 알고 있다면 자신이 원하는 때에 맞춰 즐거운 섹스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여자가 하루에 10번씩 섹스를 생각한다는 걸 알았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다.
여자들의 성욕이 실제 섹스로 이어지는 과정은 실로 복잡하다. 오죽하면 여자들의 복잡한 성욕 발전(發電) 기제를 애거사 크리스티 소설에 나오는 중년 부인 탐정의 이름을 따서 ‘미스 마플 탐정 사무소’라 부를까. 수십만년 동안 남자들을 파헤치며 갈고 닦은 수많은 단서를 갖고 생식에 임하는 신중한 과정을 비유한다. 이 사무소를 구성하는 것은 감정, 사회성, 문화, 신체 담당 탐정으로, 네 가지 소프트웨어를 감독해 ‘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를 결정한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수십만년에 걸쳐 진화해온 소프트웨어가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임신하고 출산하고 육아에 매달리는 등 여성은 섹스를 통해 자칫하면 삶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여성의 성욕은 이 모든 잠재적 리스크를 신중히 감안해야 한다. 현대의 여성은 그 조심성이 축적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신디 메스턴·데이비드 버스의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 란 책 표지를 보고 섹스하는 데 무슨 이유가 이렇게나 많으냐고 반문하는 대다수의 남성들에게 그 중 몇 가지라도 알아보려고 노력하는 편이 민망한 상황이나 상처 주는 상황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항상 조언한다. 한 인터넷 설문조사의 결과처럼 단순히 여자는 에로틱한 분위기일 때, 오랫동안 섹스를 하지 않았을 때, 에로물을 봤을 때, 상대 남성이 섹시해 보일 때 등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이유로만 성욕을 느낀다. 하지만 이것이 쉽게 섹스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성욕을 느끼는 원리는 뇌 속의 성욕을 일으키는 신경전달 물질 때문이고, 이 물질을 제거하면 성욕을 상실한다. 호르몬의 기질적 영향도 마찬가지다. 이는 성욕의 작동 메커니즘일 뿐, 실제로 무엇에 의해 자극을 받느냐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상대방이 무슨 욕망을 가졌으며 나와 왜 다른지 차근히 바라보려는 노력은 더불어 즐겁게 살기 위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