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 기자의 브라보 클래식 ⑧] 귀족 사회에 기생했지만 자유를 꿈꿨던 천재 모차르트…오페라로 상류사회 위선을 비웃다
입력 : 2012.05.04 11:25:10
수정 : 2012.05.25 08:54:11
귀족사회의 위선을 풍자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1756~1791)의 음악은 그의 성격과 꼭 닮았다. 장난스럽고 유쾌하지만 변덕스럽다. 전통을 지키는 것 같으면서도 진보적이고 혁신적이다. 왕과 귀족을 위해 만든 음악 속에 조롱의 선율을 몰래 집어넣기도 한다. ‘반전과 역설’로 요약되는 그의 음악을 통해 짧은 인생을 반추해봤다.
귀족을 위해 작곡한 생계형 작곡가
"모차르트는 귀족에게 종속된 음악가였지만 자유를 원했다.
오페라 "피카로의 결혼"으로 상류층의 위선을 비웃기도 했다."
모차르트는 어릴 때부터 세상을 놀라게 만든 음악 신동이었다. 5세에 이미 소곡(小曲)을 작곡했다. 잘츠부르크 대주교의 궁정음악가였던 아버지는 그의 재능을 알리는 데 너무 적극적이었다. 어린 모차르트는 아버지 손에 끌려 1763년부터 3년 반 동안 유럽 여행을 하며 귀족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줬다.
아버지는 아들의 재능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은 욕심에 다소 무리한 일정을 잡았다. 지금으로 치면 아동 학대죄(?)로 고발당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어린 음악 천재에 대한 입소문은 오스트리아 빈의 쇤부른 궁전에도 퍼졌다. 모차르트는 6세에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앞에서 하프시코드(피아노 전신)와 바이올린을 연주하게 된다. 그런데 그만 여제를 알현하는 순간 엉덩방아를 찧고 만다. 넘어진 모차르트가 창피해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어리고 예쁜 공주가 다가와 그를 일으켜 세우고 뽀뽀를 해준다.
당돌한 꼬마 모차르트는 공주에게 “참 상냥하군요. 내가 크면 청혼할게요”라고 구혼을 했다. 그 공주가 바로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로 모차르트보다 한 살 위였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이 이뤄졌던 궁전 내 ‘거울의 방’은 오늘날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왕족들의 귀를 즐겁게 해 주는 방법을 터득한 모차르트는 상류층의 사교 음악인 디베르티멘토(divertimento, 기분전환)의 귀재가 됐다. 디베르티멘토란 귀족들의 생일이나 축제 만찬 시간에 분위기를 띄워주고 소화를 도와주는 일명 ‘식탁음악’. 궁전이나 대저택의 살롱에서 주로 연주됐기 때문에 소규모 악기 편성이다.
모차르트는 디베르티멘토 37곡을 작곡했는데 D장조 K136과 플랫장조 K287, D장조 K334 등이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
특히 현악 4중주곡 D장조 K136은 드라마나 영화의 파티 장면 배경음악으로 자주 깔린다. 16세의 모차르트가 두 번째 이탈리아 여행 직후 쓴 이 곡의 선율은 남부 유럽의 햇살처럼 화사하다. 밝고 건강한 리듬의 제1바이올린이 활기차고 우아하게 곡을 끌어나간다.
3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의 1악장은 이제 갓 사교계에 데뷔해 왈츠를 추는 아가씨처럼 신난다. 제2악장에서는 한결 부드럽고 아기자기해지며, 3악장은 생기발랄한 청년 모차르트를 닮았다.
이 곡은 보통 바이올린 2대와 비올라 1대, 콘트라베이스로 연주된다. 첼로가 콘트라베이스를 대체하기도 하고 첼로까지 가세해 5중주를 연주하기도 한다. 또 관악기 없이 10여 명이 모인 실내악단이 좀 더 풍성한 선율로 풀어내기도 한다.
이 곡 외에도 아름다운 디베르티멘토 작품들을 쓴 모차르트는 상류 사회 분위기를 잘 띄운 덕분에 훗날 잘츠부르크 대주교 궁정악단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에 올랐다.
귀족들은 가볍게 들었겠지만 모차르트에게는 생계용 음악이었던 디베르티멘토는 18세기에 번성한 후 사라지기 시작했다. 시민혁명 영향으로 후원자인 귀족들이 몰락했기 때문. 20세기에 이르러 스트라빈스키와 버르토크 등 현대음악 작곡가들이 부활시키기도 했다.
어렵게 돈을 벌었지만 모차르트는 경제관념이 부족했다. 낭비벽이 심해 항상 빚을 지고 있었다. 그의 아내 콘스탄체도 마찬가지였다. 옷과 향수, 여행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결국 파산 직전에 이른 모차르트가 생활비를 벌려고 다급하게 쓴 작품이 <피아노 협주곡 21번>. 1785년 29세의 모차르트가 1개월 만에 완성한 곡으로 철저하게 오스트리아 빈 청중의 취향에 맞췄다. 그가 직접 초연한 이 곡은 서정미가 넘친다. 약간 들떠있으면서 밝은 기존 선율과는 다르다. 청아하고 단정한 피아노와 우아한 관현악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뤘다. 피아노 기교를 요란하게 드러내지 않고 관현악을 다채롭게 변화시켰다.
모차르트는 왕과 귀족에게 종속된 음악가였지만 자유를 원했다. 그러나 전업 작곡가가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귀족 사회에 기생했지만 그 생활에 염증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1786년 작곡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은 상류층의 위선을 비웃었다. 백작부인과 하녀 수잔나, 하인 피가로가 바람기 많은 백작을 골탕 먹이기 위해 계략을 짜는 내용이다. 백작이 피가로와 결혼을 앞둔 수잔나의 초야권을 행사하려 했기 때문. 하지만 백작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들의 덫에 걸려 망신만 당한다. 영리한 피가로가 백작부인을 수잔나로 위장시켜 백작의 마음을 돌리고 결국 수잔나와 결혼에 성공한다.
이 와중에 수잔나와 백작부인은 신분 격차를 허물고 끈끈한 동지애를 느낀다. 그들이 부르는 편지의 이중창 ‘저녁 바람이 부드럽게’는 사랑과 자유 앞에서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며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준다.사람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이 노래는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자유로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존엄한 가치로서 더 큰 의미를 얻게 된다. 감옥 도서관에서 LP를 발견한 앤디(팀 로빈스)가 방송실 문을 걸어 잠그고 동료들에게 틀어줬던 곡이다. 수감자들은 일제히 넋을 잃고 허공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선율에 귀를 기울였다. 그 순간을 앤디의 동료인 레드(모건 프리먼)는 이렇게 묘사했다. “노래가 아름다웠다.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꿈에서도 생각할 수 없는 높은 곳에서 아름다운 새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 벽들이 무너지고 그 짧은 시간에 쇼생크의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
감옥의 벽을 넘나들며 새처럼 날아다니는 노래는 갇힌 공간의 수감자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자 자유로운 영혼을 의미했다. 잠시나마 삭막한 감옥생활을 잊게 해주는 위안의 선율이기도 했다.
음악을 통해 사회를 풍자하던 모차르트는 1784년 12월 비밀 결천재 작곡가 모차르트(1756~1791)의 음악은 그의 성격과 꼭 닮았다. 장난스럽고 유쾌하지만 변덕스럽다. 전통을 지키는 것 같으면서도 진보적이고 혁신적이다. 왕과 귀족을 위해 만든 음악 속에 조롱의 선율을 몰래 집어넣기도 한다. ‘반전과 역설’로 요약되는 그의 음악을 통해 짧은 인생을 반추해봤다.
귀족을 위해 작곡한 생계형 작곡가
모차르트는 어릴 때부터 세상을 놀라게 만든 음악 신동이었다. 5세에 이미 소곡(小曲)을 작곡했다. 잘츠부르크 대주교의 궁정음악가였던 아버지는 그의 재능을 알리는 데 너무 적극적이었다. 어린 모차르트는 아버지 손에 끌려 1763년부터 3년 반 동안 유럽 여행을 하며 귀족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줬다.
아버지는 아들의 재능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은 욕심에 다소 무리한 일정을 잡았다. 지금으로 치면 아동 학대죄(?)로 고발당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어린 음악 천재에 대한 입소문은 오스트리아 빈의 쇤부른 궁전에도 퍼졌다. 모차르트는 6세에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앞에서 하프시코드(피아노 전신)와 바이올린을 연주하게 된다. 그런데 그만 여제를 알현하는 순간 엉덩방아를 찧고 만다. 넘어진 모차르트가 창피해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어리고 예쁜 공주가 다가와 그를 일으켜 세우고 뽀뽀를 해준다.
당돌한 꼬마 모차르트는 공주에게 “참 상냥하군요. 내가 크면 청혼할게요”라고 구혼을 했다. 그 공주가 바로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로 모차르트보다 한 살 위였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이 이뤄졌던 궁전 내 ‘거울의 방’은 오늘날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왕족들의 귀를 즐겁게 해 주는 방법을 터득한 모차르트는 상류층의 사교 음악인 디베르티멘토(divertimento, 기분전환)의 귀재가 됐다. 디베르티멘토란 귀족들의 생일이나 축제 만찬 시간에 분위기를 띄워주고 소화를 도와주는 일명 ‘식탁음악’. 궁전이나 대저택의 살롱에서 주로 연주됐기 때문에 소규모 악기 편성이다.
모차르트는 디베르티멘토 37곡을 작곡했는데 D장조 K136과 플랫장조 K287, D장조 K334 등이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
특히 현악 4중주곡 D장조 K136은 드라마나 영화의 파티 장면 배경음악으로 자주 깔린다. 16세의 모차르트가 두 번째 이탈리아 여행 직후 쓴 이 곡의 선율은 남부 유럽의 햇살처럼 화사하다. 밝고 건강한 리듬의 제1바이올린이 활기차고 우아하게 곡을 끌어나간다.
3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의 1악장은 이제 갓 사교계에 데뷔해 왈츠를 추는 아가씨처럼 신난다. 제2악장에서는 한결 부드럽고 아기자기해지며, 3악장은 생기발랄한 청년 모차르트를 닮았다.
이 곡은 보통 바이올린 2대와 비올라 1대, 콘트라베이스로 연주된다. 첼로가 콘트라베이스를 대체하기도 하고 첼로까지 가세해 5중주를 연주하기도 한다. 또 관악기 없이 10여 명이 모인 실내악단이 좀 더 풍성한 선율로 풀어내기도 한다.
이 곡 외에도 아름다운 디베르티멘토 작품들을 쓴 모차르트는 상류 사회 분위기를 잘 띄운 덕분에 훗날 잘츠부르크 대주교 궁정악단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에 올랐다.
귀족들은 가볍게 들었겠지만 모차르트에게는 생계용 음악이었던 디베르티멘토는 18세기에 번성한 후 사라지기 시작했다. 시민혁명 영향으로 후원자인 귀족들이 몰락했기 때문. 20세기에 이르러 스트라빈스키와 버르토크 등 현대음악 작곡가들이 부활시키기도 했다.
어렵게 돈을 벌었지만 모차르트는 경제관념이 부족했다. 낭비벽이 심해 항상 빚을 지고 있었다. 그의 아내 콘스탄체도 마찬가지였다. 옷과 향수, 여행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결국 파산 직전에 이른 모차르트가 생활비를 벌려고 다급하게 쓴 작품이 <피아노 협주곡 21번>. 1785년 29세의 모차르트가 1개월 만에 완성한 곡으로 철저하게 오스트리아 빈 청중의 취향에 맞췄다. 그가 직접 초연한 이 곡은 서정미가 넘친다. 약간 들떠있으면서 밝은 기존 선율과는 다르다. 청아하고 단정한 피아노와 우아한 관현악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뤘다. 피아노 기교를 요란하게 드러내지 않고 관현악을 다채롭게 변화시켰다.
모차르트는 왕과 귀족에게 종속된 음악가였지만 자유를 원했다. 그러나 전업 작곡가가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귀족 사회에 기생했지만 그 생활에 염증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1786년 작곡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은 상류층의 위선을 비웃었다. 백작부인과 하녀 수잔나, 하인 피가로가 바람기 많은 백작을 골탕 먹이기 위해 계략을 짜는 내용이다. 백작이 피가로와 결혼을 앞둔 수잔나의 초야권을 행사하려 했기 때문. 하지만 백작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들의 덫에 걸려 망신만 당한다. 영리한 피가로가 백작부인을 수잔나로 위장시켜 백작의 마음을 돌리고 결국 수잔나와 결혼에 성공한다.
이 와중에 수잔나와 백작부인은 신분 격차를 허물고 끈끈한 동지애를 느낀다. 그들이 부르는 편지의 이중창 ‘저녁 바람이 부드럽게’는 사랑과 자유 앞에서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며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준다.사람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이 노래는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자유로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존엄한 가치로서 더 큰 의미를 얻게 된다. 감옥 도서관에서 LP를 발견한 앤디(팀 로빈스)가 방송실 문을 걸어 잠그고 동료들에게 틀어줬던 곡이다. 수감자들은 일제히 넋을 잃고 허공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선율에 귀를 기울였다. 그 순간을 앤디의 동료인 레드(모건 프리먼)는 이렇게 묘사했다. “노래가 아름다웠다.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꿈에서도 생각할 수 없는 높은 곳에서 아름다운 새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 벽들이 무너지고 그 짧은 시간에 쇼생크의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
감옥의 벽을 넘나들며 새처럼 날아다니는 노래는 갇힌 공간의 수감자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자 자유로운 영혼을 의미했다. 잠시나마 삭막한 감옥생활을 잊게 해주는 위안의 선율이기도 했다.
음악을 통해 사회를 풍자하던 모차르트는 1784년 12월 비밀 결사 단체인 프리메이슨 단원이 됐다. 자유,평등,박애를 실현했던 이 단체는 정치적 전체주의와 배타주의를 비판했다.
예술가를 좌지우지하는 귀족 사회에 거부감을 느낀 모차르트는 프리메이슨 암호를 오페라 <마술피리>(1791) 곳곳에 숨겨놓았다. 타미노 왕자 일행을 안내하는 세 명의 천사, 자라스트로 궁전의 세 개 관문, 밤의 여왕의 세 시녀 등 숫자 3이 두드러진다. 3은 자유, 평등, 박애 즉 완전무결을 상징하며 프리메이슨 의식과도 연결된다. 깊은 속내와 달리 내용은 친근한 동화 같다.
타미노 왕자는 온갖 역경을 딛고 밤의 여왕 딸인 파미나 공주를 구해낸다. 공주는 사악한 밤의 여왕의 악행 때문에 자라스트로에게 볼모로 잡혀가 있었다. 밤의 여왕은 딸을 찾기 위해 타미노 왕자에게 구조 요청을 하고, 파미나 공주 초상화에 반한 타미노 왕자는 새잡이 파파게노와 함께 길을 떠난다. 왕자는 밤의 여왕이 준 마술피리 덕분에 물과 불의 시험을 통과하고 공주를 구한다.
모차르트는 시련 끝에 이뤄진 사랑, 선과 빛의 승리를 웅장한 합창과 관현악으로 끝맺는다. 동화 속에 작곡가의 철학과 이상을 숨겨둔 보물상자 같은 이 작품은 독일어로 쓰여졌다. 이탈리아어로 작곡되던 기존 오페라 전통을 깨고 독일어 징슈필(Singspiel, 노래 연극) 시대를 열었다. 징슈필은 연극적 대사가 특징. 대사조차 노래로 표현하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레치타티보 형식과 차별화된다.
자유, 평등, 박애를 지향하는 프리메이슨 정신을 담은 오페라.
사람과 음악을 지독하게 사랑했던 작곡가
세상을 비웃기도 했지만 모차르트는 근본적으로 인본주의자였다. 사람과 음악을 너무 사랑했다. 죽기 두 달 전 작곡한 그의 마지막 협주곡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는 친분이 깊었던 클라리넷 연주가 안톤 슈타틀러를 위해 썼다. 슈타틀러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쓸쓸하게 살고 있던 모차르트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다.
음악적 영감이 무르익을 무렵인 말년에 쓰여진 이 작품은 완성도가 높다. 화성이 복잡하고 진보적이지만 듣기에는 아주 편하다. 죽음을 예감한 탓인지 악동적 기질은 없어졌다. 연주시간 25분 동안 곡 전체가 반듯하고 서정적이다. 1악장에서는 예절바른 젊은이의 긍정적인 시선이 읽히고, 2악장에선 현명한 여인의 따뜻함이 엿보인다. 3악장에서는 다시 천진한 어린애로 돌아간다. 단순한 멜로디로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작품이다.
이 곡은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 배경음악으로도 유명하다. 남편의 바람기로 마음고생이 심었던 캐런(메릴 스트립)과 데니스(로버트 레드퍼드)의 사랑이 무르익을 때 2악장 아다지오가 흘러나왔다. 짙푸른 향기로 퍼져 나오는 클라리넷 선율 속에서 데니스가 캐런의 머리를 감겨주는 명장면은 세월이 지나도 빛이 바래지지 않는다.
삶의 마침표에 남긴 작품이라 그런지 이 곡은 35세에 떠난 모차르트의 기구한 인생을 자꾸 곱씹게 한다. 5세에 작곡을 해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은 천재였지만 그의 삶은 순탄하지 못했다. 자기중심적이고 변덕스러워 욕을 많이 얻어먹었다. 또 얽매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궁정이나 귀족 밑에서 하인처럼 일하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왕과 귀족에게서 벗어나는 것은 곧 경제적 궁핍을 뜻했다. 그가 눈을 감을 때는 빈곤과 고독이 옆을 지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