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다가올 밤이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편안했다. 모든 일이 그저 당연하기만 했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일이 아닌가.”
오스트리아 태생의 산악인 헤르만 불은 1953년 히말라야의 낭가파르바트 정상 단독 등정에 나선다. 그는 바람을 막을 장비와 추락을 예방해주는 자일도 없이 빙벽에 매달려 밤을 맞이하게 된다. 눈앞에 다가온 죽음 앞에서 29세의 한 산악인은 의연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일’이라며 산을 선택한 자신의 의지를 후회하지 않는다.
서두에서 직접 인용한 글은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온 헤르만 불이 쓴 <8000미터 위와 아래>라는 수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극한의 상황을 겪은 산악인들의 경험담은 손끝으로는 흉내낼 수 없는 중량감을 지니고 있다.
죽음의 공포와 외로움 앞에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본 인간만이 말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누가 감히 그들의 경험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있으랴.
산은 그 자체로 위대하다
이노우에 야스시의 산악소설 <빙벽>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친구와 함께 등반을 갔던 주인공이 혼자 살아서 돌아온다. 자일이 끊어졌던 것이다. 사람들은 실연한 친구 고사카가 자살하기 위해 스스로 자일을 끊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주인공은 이것을 단호하게 부정한다.
“고사카는 산악인이다. 그가 암벽을 오르면서 자살할 이유는 없다. 그것은 산의 신성을 모독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산악인은 산이 원하면 생명을 바치지만, 속세를 청산하려고 산에서 일부러 목숨을 끊는 그런 짓은 결코 하지 않는다.”
산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산서(山書)에는 신변잡기의 소설이나 처세술로 가득 찬 책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인간정신의 가장 높은 성취가 담겨 있다. 그 책들 역시 결국 산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고 잠시라도 자연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한곳에서 오래 참을 줄 알아야 하고 주의해서 지켜보고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언뜻 보기에 도를 닦는 법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아니다. 좋은 낚시꾼이 되는 법을 이야기한 말이다. 인간이 오랫동안 즐겨온 취미는 모두 인생과 닮아 있다.
낚시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 폴 퀸네트는 이름난 낚시광이다. 그는 자신의 장례식장에 이렇게 써붙여 달라고 주문한다.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마시오. 신나게 낚시했으니.’ 그에게 낚시는 단순한 어로 행위가 아닌 철학이고 즐거움이다.
그가 쓴 산문집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낚시를 해야 할 때가 온다>는 반짝이는 수면에서 낚싯대로 건져 올린 인생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퀸네트의 말에 의하면 낚시는 낡은 일상에서의 일탈이자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일을 함께 하는 것이다.
낚시… 자연의 일부가 되는 법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억해야 하는 특별한 날에는 자신만이 아는 호수로 낚시를 떠나라. 혼자서 낚싯대를 챙겨들고 지도도 없이 해와 별을 지표 삼아 떠나라. 인생에 필요한 세 가지 필수품이 음식, 물 그리고 물고기 미끼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인생을 아는 낚시꾼이다.” 이 대목에서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영화가 <흐르는 강물처럼>이다.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플라이낚시를 가르친다. 아버지가 강조하는 건 정통성과 절제, 도덕과 관습이다. 장로교 목사인 완고한 아버지는 네 박자에 맞춰 10시와 2시의 시침 사이 방향으로 정확하게 미끼 던지는 걸 가르친다.
박자를 벗어나거나 방향이 틀리면 호되게 혼이 난다. 형은 아버지의 가르침에 충실하게 따르지만 동생은 낚싯대를 왼손으로 잡는다. 아버지가 아무리 고치려고 해도 소용이 없다. 동생은 아버지가 정해 놓은 틀을 벗어났다. 세월이 흘러 대학 교수가 된 형과 한량기 있는 지방 신문 기자가 된 동생이 오랜만에 낚시를 간다. 형은 동생의 낚시 기술을 보고 깜짝 놀란다. 아버지가 가르쳐준 네 박자가 아니라 자신만의 기법을 터득한 것이다. “아우는 강물 위에 서 있지 않았다. 그는 낚싯대와 더불어 강과 함께 흐르고 있었다. 그가 보여준 건 낚시가 아니라 차라리 예술이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일탈을 일삼던 동생은 어느 날 총상을 입은 시신으로 발견된다. 왼쪽 손이 으스러진 채…. 관습을 거부하지 않은 형은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지만 거부한 동생은 불행하게 인생을 마친 것이다. 그러나 동생은 일탈의 대가로 아름다움을 완성한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는 이처럼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이 영화에서 서로 너무나 다른 형제의 낚시 스타일은 곧 인생관의 차이를 의미한다.낚시란 단어는 하나지만 낚시 스타일은 낚시꾼의 숫자만큼 많다. 낚시는 곧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퀸네트는 낚시가 깨달음의 과정이라는 진리를 이렇게 설파한다. ‘중년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멋진 물고기를 놓쳐도 화가 나지 않는 것이다.’ 낚시에서 고기를 잡고 못 잡는 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내가 인생의 어느 한 시기에 흐르는 물을 잠자코 지켜봤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다.
[허연 매일경제 문화부 부장대우·시인·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