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광고 카피가 유행하면서 학생들이 침대가 가구가 아니라고 답한 적이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았다. 그렇다면 가구는 무엇인가. 가구에 속하는 침대가 과학이라면 가구도 과학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구는 예술이라고 답한 이가 있다. 바로 덴마크의 가구 거장 핀 율(Finn Juhl)이다.
핀율이 디자인한 치프테인(Chieftain) 의자는 덴마크 왕 프레데릭 9세가 핀율의 가구 전시 때 직접 앉았던 의자로도 유명하다. 매끈하게 깎은 나무와 말안장처럼 다듬은 검정 가죽이 조화를 이룬다. 나무로 어떻게 저런 디자인이 나올까 싶을 정도로 미끈하게 생긴 No.45 의자와 함께 현대 의자 디자인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두 제품은 지금도 가구 컬렉터들이 꼭 소장하고 싶은 아이템이라고 한다. 이들 작품을 만든 핀율은 많은 가구 디자이너가 그랬듯이 건축학도로 시작해 가구와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된 인물이다. 1912년 덴마크에서 직물 도매상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예술사가가 되고 싶어 10대의 많은 시간을 국립미술관에서 보냈다.
그러나 아들이 나약해 보이는 것을 싫어한 완고한 아버지의 강권에 밀려 건축학도의 길로 들어섰다. 왕립 덴마크 예술 아카데미에서 저명한 건축가 카이 휘스커로부터 건축을 배운 그는 졸업 후 빌헬름 로리첸 건축회사에서 건축일과 함께 가구 디자인을 배우게 되고 나중에 덴마크 라디오 방송사의 인테리어를 맡으면서 인테리어와 가구 디자인 전문가로 성장했다.
10년 만에 독립한 핀율은 인테리어와 가구 전문 디자인 회사를 차려 이 부문으로 특화해 나갔다. 1950년 밀라노 전시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1951년 시카고 ‘굿 디자인 전시회’에 참석해 미국인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핀율은 GE의 냉장고나 그릇 등을 디자인했고 나중에 뉴욕 유엔 신탁통치회의장 건물 인테리어를 맡으며 세계적 인테리어와 가구 디자이너로 우뚝 섰다.
핀율은 특히 현대 예술가구의 영역을 개척한 선구자로도 인정받고 있다. 어릴 때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파블로 피카소나 헨리 무어의 영감을 받은 현대적 디자인의 가구를 내놨다. 초기엔 전통을 벗어난 디자인이라며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결국 가구 디자인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인물이 됐다. 특히 대부분의 가구 디자이너들이 대량 생산 가구를 디자인하는 데 주력했으나 그는 소량 생산을 고집했다. 이것이 그의 가구를 단순히 쓰고 버리는 것을 넘어서 고가의 수집 대상이 되는 예술품 반열로 끌어올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 멋과 품위에 이끌려 오래도록 그의 가구를 수집한 이가 있다. 오다 노리쓰구 일본 삿포로 대학 교수다. 오다 교수는 지난 30년 간 덴마크 의자를 연구하고 수집해왔으며 핀율과 개인적 친분까지 있다고 한다.
‘북유럽 가구 이야기’ 핀율 회고전 4월26일부터
Finn Juhl House ⓒ One Collection
올해는 그 핀율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대림미술관은 오다 노리쓰구 컬렉션을 가지고 오는 4월26일부터 9월23일까지 ‘북유럽 가구 이야기’라는 주제로 핀율 회고전을 연다.
이번 전시회엔 핀율을 유명하게 만든 다수의 의자와 책상, 캐비닛 같은 가구와 그릇, 조명기구 등이 나온다. 또 핀율의 자택을 볼 수 있는 동영상과 설계도면, 작업실 등 그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자료도 함께 전시된다.
전시회에는 핀율과 동시대에 활약한 디자이너들의 가구와 제품도 나온다. 가구로 유명한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정수를 폭넓게 접할 수 있는 기회이다. 문의 02-720-06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