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쾰른신문사의 특파원이자 지리학 박사인 지그프리트 겐테는 1901년 제물포항에 내려섰다.
그는 약 반 년 동안 서울, 강원도, 제주도 등을 돌아본 소감을 쾰른신문에 연재한다. 겐테의 여행기에서 기자의 눈길을 잡아끈 대목은 조선 사람들의 시간관념에 관한 부분이다.
“이곳 먼 동양에서 유일하게 누구나 풍요롭게 누릴 수 있는 것은 시간이다. 이곳에서는 아무리 가난한 거지라도 여유롭게 시간을 즐길 줄 알았다. 나처럼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는 서양의 미개인들은 돈의 개념으로 시간을 환산하고 시간에 인색하다. 그러나 시간에 관한 한 모든 조선인들은 부자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스스로 ‘바쁘다 바빠’를 연발하는 성질 급한 사람들로 묘사한다. 무엇이 그리 급한지 신호등 하나를 못 기다리고, 식당에서도 음식을 빨리 달라고 난리다. 그러나 겐테의 기록을 보면 100년 전 우리 조상들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벽안의 서양인을 어리둥절하게 만들 만큼 그들은 여유롭고 느긋했다. 겐테는 한술 더 떠서 말들까지도 여유로웠다고 술회한다.
“특히 이곳의 말들은 독일 전체 기병사단이 행군할 때 취하는 휴식시간보다 더 넉넉한 점심시간을 요구한다. 조선의 말들은 순수 토종마로 정말 사치스러운 동물”이라고 기록했을 정도니 조선 사회가 얼마나 시간에 대해 너그러웠는지 짐작이 된다.
조선 사람의 풍류를 묘사한 부분도 있다. “특히 춤은 모든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진정한 조선의 전통놀이인 것 같다. 춤은 낙천적인 기질을 가진 조선인들의 정서에 어울리는 즐거운 오락거리다. 춤이 없는 가족잔치는 상상할 수 없으며, 춤 없이는 과거시험에 합격한 선비들의 흥겨운 잔치도 열 수 없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취약해지는 인류
“인류 역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전개되어왔다. 앞으로도 환경은 계속 변화할 것이다. 산 자의 기준이 장기적으로 실현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기후학자 휴버트 램은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삶의 기준은 결코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유구한 인류 역사와 비교해 인간의 삶은 아주 짧다. 인간들이 영원할 거라고 믿는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뒤바꿔놓는 가장 무시무시한 요인은 날씨다. 전쟁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을 날씨는 해낼 수 있다.
세계적 고고학자인 브라이언 페이건은 저서 '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에서 마야가 스페인 침략이 아닌 가뭄 때문에 멸망했다고 주장한다. 뛰어난 건축술과 농경술로 놀라운 문명을 구축했던 마야는 스페인이 침략하기 이전 이미 과거의 영화를 모두 잃어버리고 잔존세력만이 남아 있었다. 위대했던 마야는 750~1025년에 든 가뭄으로 인구가 3분의 1로 줄어들었고 코판, 팔렌케, 티칼 같은 대도시들이 파괴되면서 서서히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페이건은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인류의 취약성은 커진다고 말한다. 당시 마야는 당연히 늘 그랬듯이 그들 모두가 먹고 살 수 있는 농업 생산성이 지속되리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우물과 축대가 영원할 거라고 믿었다. 이것은 매년 같은 기간에 비슷한 날씨가 지속된다는 가정 하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대로 되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가뭄은 계속됐고 결국 마야는 멸망의 길로 갔다. 만약 마야가 대도시를 건설하지 않고 소규모 집단으로 흩어져 살면서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렇게 쉽게 멸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도시의 건설이 오히려 취약성을 높였던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처음 발생한 인류가 전 지구로 퍼져나갈 수 있었던 것도 따뜻해지는 날씨를 따라 나일 강 유역으로, 아시아로, 베링 해를 건너갔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지구의 기온 상승은 인류의 적응력을 떨어뜨렸다. 1만5000년 전부터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자 숲이 울창해졌고 먹을 것이 많아진 인류는 한 곳에 정착 생활을 시작했다. 유연성과 기동성이 떨어진 인류는 이때부터 날씨의 지배를 받는 존재가 됐다. 그날 이후 예상치 않은 기후 변화는 인류에게 치명타를 안겼다. 성경에도 언급되는 대도시 우르는 기원전 2200년경 극심한 가뭄 앞에서 힘없이 무너졌다. 기원전 1200년경 엘니뇨로 인한 가뭄은 히타이트 제국을 멸망으로 몰고 갔고, 미케네 문명을 파괴했으며,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를 도탄에 빠뜨렸다. 이 책은 우리에게 두 가지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하나는 지금의 날씨가 영원할 거라는 맹신에 대한 의문부호이고, 또 하나는 우리가 건설한 도시문명의 취약성에 대한 자각이다. 지금 지구의 여름은 확실히 수상하다. 한국의 기후대가 아열대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1900년에서 1990년까지 지표면의 평균온도는 0.6도 상승했다. 단순히 온도만 상승한 게 아니다. 문제는 인구집중이 두드러진 현대문명이 너무 취약하다는 데 있다. 19세기 이후 기후 변동으로 인한 천재지변 때문에 사망한 사람은 2000만명이 넘는다.
이는 같은 기간 전쟁 사망자의 숫자를 압도한다. 허리케인이 미국 남부의 대도시를 하루아침에 초토화하고 있지만 인간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기후 변화의 주범인 무분별한 토지 개간과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는 것뿐이다. 이제 인류에게는 이동할 땅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