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 기자의 브라보 클래식] ⑤ 음악으로 구원받고 설교했던 바흐…그의 선율은 신에 대한 보답이었다
입력 : 2012.02.27 13:48:45
수정 : 2012.02.27 13:57:51
가난한 고아 소년, 교회서 보금자리 얻고 외로움 잊어
바흐(1685~1750)의 음악은 마음을 정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탐욕을 씻어주고 과오를 반성하게 한다. 성스러운 교회에서 치열하고 경건한 기도로 써내려간 음악이기 때문이다.
바흐는 가난하고 외로운 고아를 구원해준 교회에 보답하기 위해 신을 위한 음악에 한평생을 바쳤다.
그는 아홉 살에 부모를 잃었다. 졸지에 고아가 된 후 큰 형 크리스토프의 집에 얹혀살게 된다. 눈칫밥을 먹다가 열네 살에 독립했다. 방황하던 그는 북부 독일의 뤼네부르크 교회 합창단원이 되어 보금자리를 얻었다. 합창단원은 학비를 내지 않고도 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졸업 후 일자리도 교회서 얻었다. 바이마르 궁정악단과 아른슈타트 교회·성브라지우스 교회 등을 거치면서 바이올린과 오르간을 연주했다.
하느님과 성가로 고단한 인생을 위로받은 바흐는 음악으로 그 빚을 갚으려 했다. 고아였던 그가 유난히 소외감을 느꼈던 주일 예배와 성탄절을 풍요롭게 만드는 교회 칸타타를 많이 작곡했다. 칸타타란 바로크 시대 교회에서 낭독되는 성서 구절이나 목사의 설교 내용을 담은 성악곡을 이른다.
1723년 바흐는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 칸토르(합창단-합주단 음악감독)로 취임하면서 교회 칸타타의 꽃을 피웠다.단지 형식에만 치우쳤던 칸타타를 예술로 승화시킨 그는 이곳에서 27년 동안 묵묵히 300여곡의 칸타타를 작곡했다. 단지 밥벌이가 아니라 기도하는 마음으로 곡을 썼기 때문에 그의 칸타타는 경건하고 숭고하다. 깊은 신앙심에서 우러나온 바흐의 칸타타 중 147번 '마음의 입과 행동과 생명으로' 중 10번째 곡 '예수, 온 인류의 기쁨'이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다.
1723년 7월 2일 '성모 방문축일'주일에 초연된 이 작품은 바흐 예술을 대표하는 합창곡 중 하나. 잔잔하고 따뜻한 선율 속에 인간의 회개와 슬픔·갈망과 소망·평안과 기쁨이 충만해 있다.
가사 내용도 간절하다. “예수님은 기쁨의 원천이시며, 내 마음의 본질이며 희망이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근심에서 나를 보호하시며, 내 생명에는 힘의 근원이 되시며, 내 눈에는 태양이며 기쁨이 되시고, 나의 영혼에는 기쁨이며 보물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과 눈에서 예수님을 멀리 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 곡은 원래 합창과 관현악곡이지만 피아노 2중주와 현악4중주 등 다양한 악기 편성으로 편곡되어 성탄절 음악회나 교회에서 자주 연주되고 있다. 아름다운 칸타타를 신(神)에게 바치고 영혼의 안정을 얻은 바흐는 20명의 자식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자식이 많다보니 생활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그의 삶은 기쁨으로 충만했으며 음악을 통해 인류에게 기쁨을 나눠줬다.
140년 후 헌 책방서 발견된 '무반주 첼로 모음곡'
바흐는 사후 오랫동안 잊힌 작곡가였다. 오직 신앙심으로 가득 찬 그의 종교 음악은 대중에게 인기가 없었다. 사업 수완도 없어 악보를 보존하거나 팔 생각도 못했다. 무려 20명의 자식들이 있었지만 자기 앞가림조차 힘이 들어 아버지의 작품을 보존하고 계승하지 못했다. 어이없게도 생계를 위해 싼 값에 악보를 팔아넘겼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바흐의 음악은 완전히 역사에 묻혀버렸다.
다행히 그의 작품들은 훗날 음악가들에게 발견됐다. 1889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헌책방에서 빛을 본 걸작이 바로 '무반주 첼로 모음곡'. 바흐가 1720년 궁정악단 연주자였던 크리스티안 페르디난트 아벨을 위해 쓴 작품이다. 140년 동안 잠들어 있던 이 곡을 발견한 사람은 13세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1876∼1973). 거장을 꿈꾸던 소년은 오랜 먼지를 털어내고 이 작품을 연주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인생의 희로애락과 회한이 담긴 이 작품은 대곡이자 난곡이다. 무대에 홀로 앉은 첼리스트는 음악의 궁극에 도달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그 여정은 한없이 외롭고 고통스러워 보인다.
이 곡을 통해 도달해야 할 음악적 목표치는 높고 험난하기만 하다. 또 아무리 파고들어도 그 바닥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깊다. 오죽했으면 첼로의 대가였던 카잘스가 96세에 삶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매일 이 곡을 연습했을까. 생전에 그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이 곡을 완벽하게 연주했다는 만족감을 얻을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난해하지만 첼로의 기본이기 때문에 이 곡은 첼리스트가 반드시 넘어야 할 통과의례다. 연주자에게는 히말라야 등반처럼 정복하기 어렵지만 고통을 극복한 결과물이기에 그 선율은 숭고하고 아름답다. 찬찬히 이 곡을 듣고 있자면 마치 한 권의 성서를 읽은 것처럼 정신이 맑고 깨끗해진다. 역경을 극복한 선율이 주는 감동에 젖어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질 때도 있다.
특히 첼로의 거장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1927~2007)의 연주 음반은 거장의 예술혼이 그대로 담겨 있는 역작이다. 황혼의 연주자가 고즈넉한 성당에서 이룬 음악의 철학은 너무 아름다워 고개를 숙연하게 만든다. 그는 일생동안 자신이 원하는 음향을 갖춘 장소를 찾아다니다 60세 되던 1991년 프랑스 베즐레의 바실리크 세인트 마들렌느 성당에서 역사에 남을 녹음을 남겼다고 한다. 이 곡을 완성하기 위해 그는 평생을 바친 셈이다.
초연된 지 100년 후 푸줏간에서 찾은 '마태 수난곡'
바흐가 44세이던 1729년 초연된 지 100년 만에 푸줏간에서 발견된 작품도 있다. 고기 포장지가 악보였다. 작곡가 멘델스존(1809~1847)이 한 눈에 알아 본 이 곡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작, 마태가 전한 복음서에 의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곡'. 일명 '마태 수난곡'이다.
신약성서 중 마태복음의 예수 수난과 죽음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곡된 종교 음악의 걸작으로 연주 시간만 3시간이 넘는다. 5명 이상의 독창자와 2개의 합창단, 2개의 오케스트라가 필요한 대작이다.
멘델스존은 종신 지휘자로 이끌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통해 이 작품을 자주 연주했다. 그 때마다 바흐가 27년 동안 재직했던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 합창단이 가세했다.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바흐가 한창 활동하던 1743년 창단됐다. 상인 12명이 음악가 12명을 초청해 여관에서 연주회를 연 것이 시초다. 출발은 미약했으나 부유한 작곡가 멘델스존이 지휘를 맡게 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마태복음 26∼27장을 담은 '마태 수난곡'은 바흐의 신앙 고백이자 신에 대한 찬양이다. 루터파 가계에서 태어나 독실한 프로테스탄트 신자였던 바흐는 “모든 음악의 목적은 신의 찬양에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코랄 전주곡집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에게 바친다”라고 썼다. 칸타타와 수난곡들의 악보 서두에도 J.J(Jesu,juva 예수여 도와주소서)라고 쓰고, 마지막에 SDG(soli Deo gloria 하나님에게 영광 있으라)를 써 넣을 정도였다. 그는 종교적인 예술과 세속적인 예술 사이에서의 원칙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2부 78곡으로 완성된 '마태 수난곡'은 청중을 예수 고난에 동참하게 만들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한다. 알토의 아리아 '참회와 회한은 죄의 마음을 두 갈래로 찢어'와 소프라노의 아리아 '사랑 때문에 이제 나의 구세주는 죽어가고 계시다'는 통한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신학자 크레츠만은 “바흐는 영원을 향한 언어로 우리에게 말을 하고 있다.
그의 음악을 감싸고 번져 나오는 거대한 영적인 힘은 우리 시대의 수없이 많은 상한 영(靈)들을 소생시켜 준다”고 했다. 신을 부정한 니체조차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번 주에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3번이나 들었네. 표현할 수 없는 감격이 나를 감쌌다네. 기독교를 완전히 잊어버린 사람도 아마 이 음악에서 복음을 깨달을 것이라고 생각하네…”라고 썼다.
■ '마태 수난곡' 2월23일 예술의 전당 무대에
'마태 수난곡' 연주 교과서는 당연히 바흐 음악의 전통을 간직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성 토마스 교회 합창단(사진)의 앙상블.
단순히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장면을 드라마 보듯 전개하기보다 슬픔을 응축하고 내면화시킨다. 곡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구원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들이 '마태 수난곡' 역사를 들려주기 위해 2월 23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선다.
제16대 성 토마스 교회 칸토르 게오르크 크리스토프 빌러(57)가 지휘봉을 잡는다.
멘델스존이 조련한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유서 깊은 선율로 세계인을 매료시켜왔다.1212년 창단된 성 토마스 교회 합창단은 8~18세 청소년 합창단원 80여명으로 구성되어 있다.이들이 매주 3회 펼치는 성 토마스 교회 공연에는 음악신도 2000여명이 모여든다.
이번 내한 연주회에는 소프라노 우테 젤비히·알토 토마노 슈테판 칼레·테너 마틴 페촐트와 크리스토프겐츠·베이스 마티아스 바이헤르트와 고트톨트 슈바르츠 등이 참여한다. (02)599-5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