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휴! 한국 골퍼들이 해외 대회 나가면 상을 싹쓸이해서 본사에서 핸디캡 정말 맞는 거냐며 계속 물어보는데 곤란해서 죽겠어요. 이제는 한국에서 오는 선수들 핸디캡은 안 믿겠다고 출전 금지까지 시킨다고 윽박지르기까지 해요.”
최근 만난 대기업의 임원이 기자에게 한탄하듯 말을 쏟아냈다.
내용은 이랬다. 한국에서 아마추어 대회를 연 뒤 세계 대회에 출전시킬 골퍼들을 뽑았다. 물론 참가자로부터 받은 핸디캡을 적용시켜 대표를 뽑았다. 그런데 핸디캡 17이라고 한 사람이 국제 대회에 나가 80타를 치며 우승을 차지했고, 이런 일이 몇 년간 계속됐다.
상황이 이러니 해외 본사에서는 한국 대표들이 핸디캡에 비해 너무 잘 친다고 계속 추궁하고, 내년부터는 출전을 금지시키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핸디캡을 낮추어 상대방과의 내기에서 이기거나 골프대회에서 상품을 타 가는 비양심적인 골퍼를 영어로는 ‘핸티캡 치터(handicap cheater)’나 속어로 ‘샌드배거(sandbagger)’라고 한다. 바로 외국인들의 눈에 한국 골퍼들이 핸디캡 치터로 낙인찍힌 것이다.
사실 한국 주말 골퍼들 중 본인의 정확한 핸디캡을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알고 있다고 해도 컨디션과 내기 금액, 동반자들에 따라 4~5타는 늘었다 줄었다 하는 ‘고무줄 핸디캡’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80대 후반 칩니다”라는 말을 하는 골퍼도 동반자가 누구인지, 어떤 상황인지, 지금 골퍼의 기분이 어떤지에 따라 핸디캡이 고무줄처럼 줄었다 늘었다 한다. 어떤 때에는 90개라고 하고 또 어떤 때에는 갑자기 95개 정도라고 말을 바꾸는 것.
이런 사람은 평소에 자신의 실력이 부쩍 향상됐다며 자랑을 늘어놓다가도 일단 내기 금액이 높아지면 어김없이 예전 핸디캡을 적용받으려 부단히 노력을 한다. “전·후반 각각 5개씩은 잡아 줘야해”라며.
“자랑할 때 핸디캡과 내기할 때 핸디캡이 달라진다”는 말이 이렇게 딱 떨어질까. 자랑할 때의 핸디캡은 잘 쳤을 때 스코어를 기준으로 한다. 반대로 내기할 때의 핸디캡은 쪼그라들게 마련이다. 천원이라도 더 따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이렇게 자기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내기에서 이기고 싶을까.
주말 골퍼들 중 80% 정도는 스스로 ‘보기 플레이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은 정말 사람 잡는 애매모호한 핸디캡이다.
서로 라운드를 함께 해보지 않은 사람들끼리 처음 만나서 하는 말이 있다. 바로 “얼마나 치세요?”다. 핸디캡이 어떻게 되냐는 것이다. 일정 금액을 거둬서 스킨스게임을 하던지 매 홀 타수를 계산해서 내기를 하는 스트로크 경기를 할 때를 대비해 상대의 실력을 물어보는 것이다.
한국 주말 골퍼들 대부분은 보기 플레이 정도 한다고 답한다. 그런데 보기 플레이어라는 영역은 너무 넓다. 85타부터 90타 정도를 치는 ‘고수 보기 플레이어’가 있고 90타에서 95타 내외를 치는 ‘하수 보기 플레이어’가 있다. 같은 ‘보기 플레이어’라는 말 안에 무려 10타나 차이가 나는 것.
겸손한 보기 플레이어와 허풍 치기 좋아하는 보기 플레이어는 하늘과 땅 차이다. 겸손한 골퍼의 보기는 파를 노리다 보기를 하는 것이고, 허풍쟁이 골퍼의 보기는 더블 보기 위기에서 가까스로 보기를 하는 것이다. 만약 이 두 유형의 보기 플레이어가 만나서 내기를 했다면 한쪽에서 곡소리가 날 게 분명하다.
골프는 스포츠 종목 중 드물게 상대에게 핸디캡을 적용해 스코어에서 이를 조정해주는 운동이다. 이것은 서로의 기량 차이를 미리부터 인정하고 가능한 한 평등한 조건에서 게임을 즐기고자 하는 페어플레이 정신에서 온 것이다.
만약 그저 돈 좀 더 따겠다는 마음으로 “저 잘 못쳐요. 핸디캡 많이 주세요”라며 자존심까지 버린다면 겸손한 골퍼가 아닌 치사한 동반자로 낙인찍힐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