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다해 우리의 경험과 냉철한 이성을 너희들에게 바쳐 너희들의 충실한 지팡이가 되고 싶다. 어느 날, 너희들이 이 지팡이가 귀찮다고 생각할 때 나는 소리 없이 종적을 감추어 절대 너희들에게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민음사에서 출간된 '상하이에서 부치는 편지'라는 책을 읽으면 부정(父情)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된다.
중국의 유명한 번역 작가이자 음악평론가인 부뢰(傅雷)가 쓴 이 편지는 폴란드로 피아노를 공부하러 간 아들에게 보낸 것이다. 이 책에 담긴 부정은 눈물겹다.
세상의 모든 부모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편지는 아들이 유학을 떠난 1954년부터 저자 부뢰가 문화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죽게 되는 1966년까지 계속된다. 중간 중간 편지가 중단될 뻔한 위기도 많았다. 1958년 아들 부총이 자본주의 국가인 영국으로 망명하자 중국 정부는 부자간의 서신왕래를 중단시켰다. 그러나 1959년 당시 중국 총리였던 저우언라이(周恩來)의 배려로 편지는 재개된다. 부뢰가 이념문제로 혈육 간의 편지를 막는 것은 부당하다고 항의했고, 저우언라이가 이 항의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념도 부정(父情)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나의 아빠 닥터 푸르니에] 장 루이 푸르니에 지음 | 웅진닷컴
부성애에 대한 책 중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책이 '나의 아빠 닥터 푸르니에'(장 루이 푸르니에, 웅진닷컴)다.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전지전능한 존재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버지가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하나씩 깨달아 가면서 어른이 되어가고 자신도 어느 날 아빠가 된다. 책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2차 대전을 전후한 시기를 살았던 프랑스 의사다. 성장해 가는 저자 푸르니에의 눈에 이 아버지는 점점 이상한 사람으로 비친다.
저자는 늘 술과 담배에 찌들어 있고,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고, 집에 있는 것보다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걸 더 좋아하는 아버지의 속내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버지의 사회적인 훌륭함도 아이에게는 큰 점수를 얻지 못한다. 사회적 판단력을 갖지 못한 어린아이에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언제나 주위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가난한 환자들에게는 돈도 받지 않고 영수증을 끊어주어서 의료비를 환급받을 수 있게 도와주는 인간적인 아버지. 전쟁통에 정신없는 의사 생활을 하면서도 레지스탕스 운동에도 가담했던 아버지의 가치를 아이는 모른다. 물론 모든 가치가 파괴되는 암울한 시대를 살아야 했던 지식인 아버지의 고민은 더더욱 이해하지 못한다.
고은경 작, 소소한 그리고 행복한 이야기2
아이들은 대개 집안에서 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아버지를 판단한다. 아버지의 사회생활은 집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지, 바깥 생활이 아버지를 말할 수 없는 고통에 빠뜨릴 수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곤하게 자고 있을 때 술에 취해 들어온 아버지가 까칠한 수염이 난 턱을 자기 얼굴에 비빌 때다. 엄마가 그토록 싫어하는 술 냄새에 까칠한 턱수염은 아빠의 가장 못난 모습이다.
아이들은 모른다. 아버지가 직장 상사에게 자존심 상할 만큼 욕을 얻어먹고, 혹은 출세한 대학 동창 앞에서 초라함을 느끼고, 못다 이룬 꿈을 가슴에 안은 채 살아가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모른다. 직장 상사에게 마음을 다치고 거나하게 술을 마신 아버지는 왜 다시 마음을 다져먹고 집으로 돌아왔을까. 당연히 아이들 때문이다. 그리고 천사처럼 자고 있는 아이들을 안아준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고 이해할 즈음 아버지는 우리 곁에 없기 십상이다.
저자 푸르니에에게 아버지는 무능력한 존재였다. 의사 일로도 돈을 벌지 못해 어머니가 필경사 일을 해야 했고 자신에게 나들이 옷 하나 제대로 사주지 못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책의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저자는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럴 즈음 저자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 마흔세 살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술에 취해 자는 줄 알았던 아버지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저자는 아버지를 땅에 묻던 날 처음으로 담배를 피워 문다. 그리고 어른이 되기 시작한다.
왜 그때 환자들이 돈을 모아 아버지의 묘비를 만들어 주고 ‘사랑하는 우리의 의사에게 친구들이 바칩니다’라는 묘비명을 썼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주정뱅이로만 기억됐던 아버지가 세상 속에서 어떤 가치를 지닌 인물이었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저자는 책 후기에 이렇게 적는다.
“난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누구나 세상을 견디는 방법은 다르다. 아버지의 나이를 지나버린 지금, 사는 게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것을 이젠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