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장타자다. 잘 맞는 날 드라이버샷은 평균 250야드 정도 나오고 롱기스트를 정하는 홀에서 힘껏 때리면 280야드는 넘어간다. 물론 잘 맞았을 경우다.
장타의 비결은 특별하지 않다. 오른팔을 붙이고 부드럽게 스윙을 하면 자연스럽게 장타가 나온다. 하지만 ‘장타자의 숙명’이라는 말처럼 타수는 그리 잘 나오지 않는다.
어느 날 장타에 아이언샷, 퍼팅까지 잘 맞으며 ‘오늘 잘하면 싱글도 하겠다’라는 생각에 신나게 라운드를 하고 있는데 80대 초반 타수를 치는 사람이 연신 칭찬을 해준다. 지금 생각해보면 ‘싱글 구찌’였다. 조금은 머리를 써서 상대방을 무너뜨리는 치사한 ‘구찌(일본어로 입이란 뜻의 말로 상대방을 흔들어 놓는 심리전의 한 수단을 의미하는 골프 은어)’이기도 했다. “오른발이 고정이 잘 되네”라고 하다 또 티샷이 잘 나가자 다음 홀에서는 “왼팔이 쭉 뻗어지는 것이 프로 같다” 며 연신 좋은 샷이라고 말해준다.
결국 기자는 후반 6개 홀에서 OB를 두 번이나 하고 탑볼을 한 번 치는 미스샷을 했다. 싱글의 꿈은 물론 앞선 홀에서 땄던 상금도 절반 이상 토해내야 했다.
끝나고 나니 기분이 나빴지만 그 상황에서는 ‘치사한 구찌’가 칭찬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정도면 ‘싱글 구찌’가 성공한 셈이다.
“피니시가 정말 깔끔하네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멋있게 할 수 있나요” 같은 말로 상대방을 치켜세우는 것이다. 그럼 상대는 칭찬 받은 부분에 더 신경을 쓰게 되고 결국 리듬을 잃게 되는 것이다.
“티샷이 임팩트가 참 좋다”고 말하고 나면 분명 공을 때리고 훅이나 슬라이스가 심하게 나는 경험을 한두 번씩은 했을 것이다.
구찌는 때로 상대방을 직접적으로 흔들어 놓거나 동반자들 사이에 싸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듣는 사람이 구찌인지 아닌지 모르고 넘어가는 수도 있다. 이 정도면 ‘프로 구찌’다. 티가 나지 않게 중요한 순간 상대방의 생각을 어지럽게 하는 것. 이 수준에 올라서면 상대방의 흐름을 끊고 라운드의 흐름을 자신에게 가져올 수 있다.
‘프로 구찌’는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두 골퍼의 공이 비슷한 그린 위에 놓여 있다. 뒤에 있는 골퍼가 먼저 쳤는데 짧게 치는 바람에 홀에 가기 전 많이 휘었다. 그러고 나서 혼잣말처럼 한마디 한다.
“경사가 생각보다 많네. 왼쪽 라이를 덜 봤더니 확 휘어져 버리네.” 사실 그렇게 경사가 심하지 않은 라이였다. 하지만 이렇게 상대방이 들릴 듯 말듯 얘기를 해 놓으면 상대방은 자신이 본 라인을 헷갈려 하고 결국 라이를 많이 봐 공은 홀을 지나가게 된다.
말이 없는 구찌도 있다. 상대방이 티샷이나 아이언 샷을 한 뒤 자리로 돌아올 때 말없이 고개를 갸우뚱 하거나 약간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어보라. 잘 쳤어도 생각이 많아진 상대 골퍼의 다음 샷은 미스샷이 날 확률이 높다.
‘100돌이 구찌’는 최악이다. 만약 당신이 이런 초보 수준의 구찌를 연신 해댄다면 다음부터는 동반자들을 필드에서 만날 수가 없다. 이제 막 스윙과 골프에 눈을 뜨면서 아무나 보고 레슨을 하려 한다. 동반자들이 짜증을 내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좋은 골퍼가 되려면 물론 골프를 잘 쳐야 한다. 하지만 이에 앞서 ‘역지사지’로 자신의 쏟아내는 구찌를 듣고 골프를 쳐야 하는 상대방의 마음도 헤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