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이 완연하다. 짙푸르던 가로수의 색은 이미 많이 바래졌다. 곧 검은 아스팔트 위로 다홍빛 손수건 같은 낙엽들이 부지런히 내려앉을 것이다. 그리곤 바람에 버스럭버스럭 휩쓸려 다니겠지.
나무들은 다가오는 계절을 준비한다. 가만 보니 오늘 하루 가을로 성큼 접어든 것 같다. 어제와 비슷하지만 사뭇 다르다. 콧속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어제의 친숙하고 훈훈한 기색 대신 갑자기 찾아온 친구처럼 먼 데서 온 냄새를 풍긴다. 틀림없이 눈 덮인 산도 넘고, 차갑게 깔린 돌멩이들을 스치고, 맑은 물도 건넜겠지. 허전한 목덜미로 싱싱하고 서늘한 바람이 인사하듯 훅 밀려들어온다. 옷장 속 스웨터가 그리워진다.
사진가이자 화가인 하선영 작가를 만났다. 그녀는 모딜리아니의 그림에 나오는 여인처럼 긴 목에 갸름한 얼굴, 길고 쭉 뻗은 콧대 끝에 또렷한 입술선을 가졌다. 검은 머리카락에 짙은 눈썹과 긴 속눈썹이 이국적이고도 우아한 곡선을 그리고 있다. 거침없는 웃음과 어린아이 같은 장난기 뒤에 슬쩍 비치는 예민한 눈빛이 그녀가 품고 왔을 많은 경험과 취향, 상처와 만족, 사랑과 외로움이 뒤섞인 가을 같은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녀를 마주 대하고 있자니 야생의 밀림 속에 숨겨져 비밀스럽게 자라난 기이한 동물을 목격한 것 같은 신비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처음 만난 그녀의 그림들은 양지바른 곳에 놓인 화분처럼 벽에 조용히 기대있었다. 향기 짙은 그녀의 외모와는 대조적이어서 의외였다. 그동안 보여 주었던 강렬한 사진 작품들의 느낌과도 매우 달랐다. 캔버스 안에 그려진 것은 아무런 기교도 없는 평범한, 그냥 조용한 초록 화분이었다.
“나무들도 각자 자기만의 생김새들이 있잖아요. 역할들도 있을 테고요. 특히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거나 햇빛에 반짝거리는 모습을 보면 참 행복해요.”
각각 둥그런 잎, 동글동글한 잎, 길쭈름한 잎, 새초롬하게 야무진 잎들을 가졌다. 나무들은 그림마다 각자의 초록을 뿜어낸다. 촘촘히 쓸어내린 붓질은 화면의 구석구석 빼놓지 않고 잔잔하다. 방 청소를 마치고 난 느린 오후의 공기가 여유롭게 방안을 가득 채울 때처럼 정갈한 기분이 들었다.
“봄에는 보송보송하게 돋아나는 새 이파리들이 예쁘고 여름엔 브로콜리처럼 꽉꽉 차는 산이 사랑스러워요. 가을이 되면 약간 쓸쓸하고 노랗게 바람과 함께 색 물이 들고, 겨울엔 앙상한 가지만 남아 흔들리며 봄을 기다리죠. 희망을 품게 하는 이런 모습들이 좋아요. 화분은 인공적이긴 하지만 어쨌든 희망이고 자연이고, 그 모습대로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야생의 나무가 아니라 화분을 그리는 이유는, 글쎄요. 화분에 담겨 자라나는 식물은 보호받는 존재들이잖아요. 아직까진 제가 어딘가에 갇혀있다는 느낌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녀는 담담하고 솔직한 음색으로 말했다. 오래전 학교 운동장 커다란 느티나무 그늘 아래 앉아 모래알을 바라보던 쓸쓸하고도 느긋한 기분을 생각나게 하는 목소리로.
하선영 작가는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수없는 훈련을 거쳐야 하는 입시를 통과했기에 그녀는 뭐든 거울에 비친 똑같은 유리알처럼 말짱하게 그려낼 만큼의 테크닉을 갖췄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 안에서 그런 자랑은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소박한 실루엣의 초록 잎들과 겸손하고 성실한 붓질만 햇살처럼 가득할 뿐.
머릿속에선 얼마 전 떠들썩한 미술제에서 봤던 화려한 테크닉의 그림들이 떠올랐다. 그곳에는 아주 정교하게 잘 그려진 반짝반짝한 유화부터, 영감을 자극하는 화려한 아이디어와 장식들이 현대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유혹했다. 아예 진짜 보석을 박아 넣은 그림들도 있었다. 저마다 날 보라고 외치는 그림들은 성형미인들 같았다. 화려하게 시선을 끌고 매끈하게 잘 차려입어야 사랑받을 수 있는 그녀들은 눈길을 구걸하는 만큼 슬퍼진다.
그에 비해 하 작가가 보여주는 그림 속 나무들은 지나치다 할 만큼 수수하다. 세련되지도 특이하지도 않다. 그러나 남들이 뭐라 하든, 어떻게 바라보든 자기 생김대로 튼튼하게 잘 자라고 있다. 매끈매끈하고 싱싱하고 행복해 보인다.
어릴 때는 식물이라든지 꽃이 왜 예쁜지 몰랐다. 어떤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젊은이들이 꽃이 예쁜지 모르는 건 바로 그들이 꽃보다 찬란하기 때문이라고. 꽃 이파리가 신기하고 예쁘고, 새삼 나무의 초록들이 눈부시게 여겨지는 요즘은 내가 더 이상 빛나고 두려움 없는 젊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나 보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본다. 어쩌면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이란 없다는 것을 이제 깨닫게 된 것이 아닐까. 당연히 거기 있는 가로수, 당연히 자라는 화분, 때가 되면 당연히 피는 꽃과 맺히는 열매라고만 느껴왔던 자연이 실은 엄청난 수고로움과 우연과 기적으로 신비롭게 여기 살아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알아보게 됐다는 것은, 한편으론 조금 철이 들었기 때문일 거라고.
당신이 있는 바로 그 자리
아무것도 당연하지 않다. 낯선 타인에게 한 번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 돈을 버는 것, 진실한 대화를 나누는 것, 일상의 상념들을 물리치고 햇빛 속을 평화롭게 걷는 것, 그저 달게 밤잠을 곤히 자는 것.
이 일들은 사소해 보이지만 얼마나 어려운가. 그 사실을 알게 되는 만큼 우리는 아픈 밤들을 딛고 그만큼의 어른이 된 것이리라. 스스로의 욕망과 요구에 채찍질 당하며 값없이 선물 받았던 자연스러운 축복들을 얼마나 누리기 어렵게 됐는지 문득 깨닫는다.
프랑스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하던 시절, 아를르의 나무와 풀에서 자연의 빛나는 기쁨을 발견했다는 그녀. 건조한 서울보다 아름답던 그곳이 그립지 않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어디에 있든 지금 있는 이 자리가 제일 좋아요.”
‘지금’의 소중함을 그녀는 일관되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덧붙인다.
“마음도 변화해야 하고, 살아있는 것은 모두 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계절에 맞춰 서로 소통하며 변하는 나무들처럼요. 저도 물론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잘 자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시 그림을 본다. 따스한 공기가 흐르는 공간 구석에 쓰다듬듯 정성껏 그려진 나무 한그루가 있다.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자랑하지 않는다. 그냥 최선을 다해 햇빛을 받고 물기를 머금는다. 숨을 쉰다. 건강하게 하루하루 자라난다. 가끔 바람에 흔들리며 반짝반짝 춤도 추겠지. 그러다보면 때가 됐을 때 열매도 맺고 어쩌면 또 다른 생명도 품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이대로도 충분하다. 아름답다. 모든 붓질 하나하나가 생에 대한 찬미이자 그녀의 기도였다.
■ 하선영 작가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 후 프랑스 아를르국립사진학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프랑스에서 20여 회의 전시를 했다. 2001년에는 아를르 국제 사진페스티발에서 젊은 사진작가상을, 2003년 프랑스 끌레흐몽페랑에서 열린 제17회 국제비디오·멀티미디어 비엔날레에서 비디오아트작가상을 수상했다.
2003년 귀국해 사진과 일반인의 소통을 위한 전시를 기획하고 <월간사진> 등에 기고를 하는 등 사진가로서 활동했다. 현재 평면회화 작업에 매진하고 있으며 전북대와 강남대, 경인교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매체를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하선영의 회화 작품은 11월1일부터 13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담에서 만날 수 있다.
[박보미 / 아트 칼럼니스트·봄봄 대표 bomi1020@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