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거의 매일같이 뜰의 낙엽을 긁어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이효석의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가 생각난다. 가을이 무르익어 가는 어느 길목에서 떠오르는 글이다.
그는 ‘낙엽 타는 냄새 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라고 물었나. ‘갓 볶아 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고 했나. 가만 생각하니 참 매정한 말이다. 나무와 작별하는 것도 서럽건만 한 줌의 재로 사라져야 할 운명이라니. 가을을 떠나보내기가 못내 아쉬운 사람의 욕심이려나. 홍릉수목원에는 만추(晩秋)의 향취가 가득하다. 그리고 가을은 코끝보다 발끝에서 저문다.
옛 왕조의 가을 숲 속으로
낙엽송 숲길
10월 말에서 11월 사이, 가을이 끝나기 전 어김없이 찾는 장소가 있다. 청량리에 있는 홍릉수목원이다. 서울에서 가장 깊고 오랜 수목림이다. 계절의 변화가 확연한 봄과 가을이 백미다.
이 맘 때는 형형색색의 단풍이 손님을 맞는다. 나무는 저마다의 생김이 다르듯 가을을 맞는 표정도 다르다. 단풍의 빛깔이 다르고 같은 빛깔의 단풍도 잎의 모양새에 따라 그 자태가 달라진다.
그러므로 가을의 색은 풍요롭다. 바스락거리며 부서지는 낙엽의 신음도 바쁜 걸음을 잡아채는 쉼표다. 그러니 마지막 잎새 하나에 깃든 정취도 쉬이 지나칠 수 없다. 느긋한 가을의 산책이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홍릉수목원 일대는 이미 조선시대부터 무성한 숲이었다. 원래는 천장산의 남서쪽으로 조선왕조의 국유림이 있었다. 홍릉이 만들어진 것도 그런 까닭이다. 홍릉은 일제에 의해 시해당한 명성황후의 능이다. 그녀는 비참한 죽음을 맞은 후 서인으로 폐위됐다가 1897년에 복호됐다. 그 해 11월 국장을 치렀고 지금의 홍릉수목원에 묻혔다. 1919년 고종이 승하한 후에는 남양주로 이장해 합장했다.
그래서 홍유릉이다. 조선총독부는 그 자리에 임업시험장을 설치했다. 전국 각지의 나무 종자 표본을 수집해 4000여 종의 목초본 식물로 꾸몄다. 1922년의 일이다. 홍릉수목원의 시작이다.
임업시험장은 광복 후에도 국립임업시험장으로 그 명맥을 유지했다. 하지만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이 불에 탔다. 현재의 홍릉수목원은 1960년대 후반부터 다시금 가꿔온 흔적이다. 그 시간만 해도 족히 반세기가 넘었다. 나무가 자라고 숲을 이루니 조류나 곤충류도 부쩍 늘었다. 현재는 국립산림과학원으로 불린다.
홍릉숲이라고도 하는 홍릉수목원은 그 부속 수목원이다. 나무의 나이테만큼 시간의 퇴적층이 어느새 사람의 발자취를 앞섰다. 서울에 있는 인공의 숲 가운데 자연에 가장 가깝다.
가을의 길을 따라
홍릉수목원 생태관찰로
홍릉수목원은 8개의 수목원과 7개의 테마원으로 이뤄져 있다. 총 157과 2035종의 식물 20만여 개체다. 출입문을 지나자 메타세쿼이아가 높게 자랐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수목원의 위용을 드러낸다. 좌우로는 제1 수목원과 제2 수목원이다. 대부분 낙우송과 침엽수들이다. 그 중 제1 수목원에는 일대에서 가장 큰 수형의 튤립나무가 있다. 백합나무라고도 불리는 튤립나무는 가을에 으뜸이다. 너른 잎이 온통 주황색으로 물들어 단풍이 장관이다.
가을의 현화다. 걸음은 자연스럽게 다음 산책로를 따라 순환한다. 나무와 나무 사이의 숲이다. 그 무리에는 수종의 이름과 설명이 붙었다. 나무의 인사인 양하(아시아 열대지방이 원산지이며 비늘 조각 모양의 잎으로 덮인다)다. 먼저 출입구를 지나 산림과학관 방면이다. 곧 우리네 강산을 꼭 닮은 가을의 풍경이다.
우리나라 산에 가장 풍부한 활엽수가 참나무였던가.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등 6종의 참나무가 저마다 다른 개성으로 활엽수림을 물들인다. 짙은 가을의 색이다.
고로쇠나무도 황홀한 가을 풍광을 거든다. 산책로의 반환점인 조경수원도 그 못지않다. 국내 조경회사에서 기증한 나무로 꾸며 ‘조경인의 숲’이라고도 한다. 은행나무, 복자기나무 등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수종이지만 수목원에서 마주하니 감회가 남다르다. 그에 앞서 역사의 흔적도 깃들었다. 고종의 우물터였을 어정을 지나 이제는 자취를 알아보기도 어려운 홍릉터가 나온다. 명성황후가 묻혔던 자리다. 유래를 알리는 표지판만이 위치를 표시한다. 두텁게 내려앉은 낙엽이나마 그 비통한 죽음을 안위하니 다행이다.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 위에 쓰인 수목의 기록이다.
그 위로 내는 후대의 걸음이 지난다. 조경수원을 돌아 나오는 길에는 골짜기 사이로 좁은 단풍이 두드러진다. 이 또한 우리네 단풍나무라 더 반갑다.
가을은 눈에서 피어 발에서 지네
메타세콰이아 길의 가을
홍릉수목원은 매일 개방하지는 않는다. 일주일에 두 차례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문을 연다. 일요일 하루만 방문객을 맞이하다 지난 2008년부터 토요일에도 열린다. 서울 인근의 여느 수목원과 달리 주차장도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들어설 수 있다. 그 초대장부터 도시의 편의를 내려놓으라고 한다. 이곳은 사람이 아닌 나무들의 땅이라는 선언이다.
길은 때론 좁고 넓게 열린다. 아스팔트 도로에서 출발해 나무 데크를 밟거나 걸음으로 다져진 흙길을 지난다. 그 길 위에서, 그 숲 속에서 가을은 눈에서 피고 발에서 진다. 단풍은 가지 끝에 꽃처럼 달려 계절의 절정을 실감케 하고, 낙엽은 나무 아래 떨어져 계절의 상실을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단풍의 붉은 빛에 홀려 가을을 맞고 낙엽을 밟으며 가을을 떠나보내는 것일 테지.
서울 시내 곳곳에 공원이 있고 너른 숲을 조성했다만, 저마다 다른 모양새의 단풍이 든다만, 그 가운데 홍릉수목원이 단연 발군이다.
낙엽을 태울 때 나는 커피향보다 낙엽을 밟을 때 바스락대는 소리의 살가운 정취다. 나무가 주인이다. 11월이 왠지 모를 아쉬움으로 남는 것도, 목적 없이 서성이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홍릉수목원의 가을은 만추(晩秋)의 길이다.